300개의 단상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서제인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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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세라 망구소의 망각 일기와 세트로 나온 책이다. 이 글들은 짧은 생각을 표현한 300개의 단상을 모은 글이다. 역자의 말에 의하면 200개의 글은 15년 동안 쓰려고 애쓰던 다른 책의 집필을 미루는 과정에서 쓰였다고 한다. 여기에 100개의 단상이 더해져 이 책이 된 셈이다. 주제는 대략 자아, 타인들, 욕망, 예술, , 실패, 죽음이라는 일곱 가지 주제로 분류할 수 있다. 유머와 재치가 느껴져 공감할 수 있는 문장도 있지만 당혹스러운 얘기도 만날 수 있다. 또 한 번 읽는 것으로 의미가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있다. 어쩌면 약간은 격언처럼 들리는 강렬한 글도 있어서 그런 문장은 따로 적어두고 되새겨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내게 좀 더 다가왔던 문장들을 소개해 보겠다.

 



우리 집 근처에 사는 물새들은 마치 중학생 같다.

검둥오리들은 목소리가 갈라졌고, 갈매기들은 오리들을

못 살게 굴고, 방금 치아 교정기를 낀 듯한 백로는 자존심

상한 얼굴로 혼자 서 있다.’(p8)

 



우리가 지닌 최악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일 때의 문제는 그 모습을 남들이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기억하게 된다는 사실이다.’(p25)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서 놓여나자 내가 가진 두려움들은 더 이상 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들을 짐이 되게 만든 건 희망이었다.’(p25)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를 통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문제를 갖는 일을 사랑할 뿐이다.’(p27)

 



천천히, 천천히, 나는 문장들을 쌓아 올린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그렇게 쌓아 올리다 보면 갑자기 이야기가 거의 완성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낸다.’(p28)

 



우리가 처음으로 들은 아름다운 노래는 시간이 흘러도 아름답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보다 좋은 건 처음으로 아름다움을 발견한 기억이기 때문이다.’(p31)

 



나는 사관학교 학생들이 게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그저 두려움 없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전쟁에 나가려고 준비 중인 그들은 낭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진심이다.’(p39)

 



적응을 잘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자기 삶 한구석에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여기저기로 골고루 분배한다. 그래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 같다.’(p41)

 



친구는 선택할 수 있지만 친구와 어떤 관계가 될지는 선택할 수 없다.’(p45)

 



의지가 있으면 우리는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다. 다만 의지를 쏟을 만한 일이 어떤 일인지 알아내는 데 의지를 다 써버리게 된다.’(p74)

 



엄마가 되고 나서 나는 더 외로워지는 동시에 덜 외로워졌다. 내가 덜 외로울 때는 이 특별한 외로움을 함께 느껴온 이름 없는 타인들, 알려지지 않은 수십억 명의 여성들을 떠올릴 때다.’(p99)

 



우정, 결혼, 부모 됨, 자기 자신의 삶, 이런 것들처럼 끝나는 지점이 어딘지 알려져 있지 않은 일에 대한 헌신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헌신이다.’(p103)

 



인용 문장에서 보듯이 세라 망구소는 다양한 주제의 단상을 글로 썼다. 그중에서도 사물을 보고 느낀 생각은 물론 글쓰기에 대한 생각, 기억에 대한 생각, 여성으로서 삶을 꾸려가며 느낀 통찰은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읽었던 계속 쓰기의 작가 대니 샤피로 등 여러 작가들과 매체의 추천의 말도 실려 있다. 이런 글쓰기도 책이 될 수 있구나, 참신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편안한 에세이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약간의 호불호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요즘은 유튜브 등 영상의 발달로 인해 긴 글을 읽기 어려운 시절이기도 하다. 곁에 두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부담이 없는 분량의 책이다. 물론 거기에 담긴 단상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을 기꺼이 즐기려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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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1-06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천천히 문장들을 쌓아 올린다˝는 말이 좋습니다.
<망각 일기>부터 사야하는데... 이 페이퍼 읽고 <계속 쓰기> 검색해보니까 이것도 재밌어보이네요. 저는 근데 은근 아포리즘이 안 맞더라구요. 몰입해서 계속 이어 읽고 싶은데 짧으니까 오히려 더 집중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ㅋㅋㅋ

모나리자 2023-01-06 23:52   좋아요 1 | URL
네, 긴 글, 짧은 글 읽기에도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아포리즘 성격의 글은 글쓰기 할 때 인용 문장으로 적절하게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계속 쓰기>는 참 좋았어요. 공감하고 좋은 문장들도 많았지요.
반갑고 감사합니다. 은오님.^^
평안한 주말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3-01-06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물새들 비유에서 빵 터집니다. ㅎㅎ

모나리자 2023-01-06 23:53   좋아요 0 | URL
그쵸.ㅎ 정말 재치 있어요.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바람돌이님.^^

젤소민아 2023-01-08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를 통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문제를 갖는 일을 사랑할 뿐이다.’(p27)===>정말이지, 공감해요. 글을 쓰면 없던 문제도 막 생겨...아니 떠올라서요 ㅎㅎ 좋은 책 리뷰 감사해요! 사러 갑니다~~

모나리자 2023-01-10 07:3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지요. 마음이 복잡할 때도 글을 쓰다보면 풀리기도
하는 경험을 자주 하니까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리뷰가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 기쁘네요.ㅎㅎ
감사합니다. 젤소민아님.^^
오늘도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