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일기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양미래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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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일기가 아닐까. 그런데 망각 일기라고? 망각 일기란 어떤 일기를 의미하는 걸까. 25년 전부터 일기를 썼다는 세라 망구소의 망각 일기에 대한 에세이다. 이 책을 읽기 전 흔히 보통 사람들이 쓰는 일기를 떠올렸었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는 통념적인 일기와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 또한 초등학교시절부터 오랜 시간 일기를 써왔고 기록하는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기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녀가 강박적으로 치열하게 써왔던 일에 대해서는 의아하고도 어떤 열정마저도 느껴졌다.

 



일기 없는 삶을 상상하면, 단 일주일이라도 일기 없이 사는 삶을 상상하면 순식간에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p7)

 



이 정도면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집착하고 목숨을 걸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녀는 왜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일기 쓰기에 사활을 걸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일기를 써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쓰기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쓰지 않고는 시간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을 단 한 가지도 떠올릴 수 없었다.’(p8)

 



일기 쓰기는 무엇을 생략할지, 무엇을 잊을지를 솎아내는 선택의 연속이다.’(p10)

 



어쨌든 일기를 계속 써나갔고, 계속 쓴 이유는 일기를 쓰지 않는 편이 더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의 악습인 셈’(p14)이라고.

 



잊지 않기 위해서 쓰는 일기지만 오래전에 쓴 일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자주 없다. 그런데 망구소는 전에 쓴 일기를 다시 읽으며 고쳐쓰기도 했단다. 시간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일기를 썼다. 흔히 나를 포함하여 보통 사람들이 쓰는 일기란 쓰다 보면 넋두리가 될 때도 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을 느낄 때도 많다. 그래서 쓰지 않는 것보다 계속 쓰는 편을 택했던 망구소의 말에 공감하는지도 모르겠다.

 



일기를 통해 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꼭꼭 씹어 소화하고 차곡차곡 정리해. 그 시간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만일 내가 모든 시간을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데 써버린다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나 자신이 생각만으로 시간을 멈출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니,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믿음인가.’(p89)

 



강박적으로 써나갔던 일기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은 완만한 여유를 찾은 듯 보인다. 임신과 출산으로 변화의 시기를 겪기도 한다. 보통 일기라 하면 지극히 사적인 고유의 영역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에세이는 더 폭이 넓다. 출생, 결혼, 질병, 애도, 모성, 예술 등 삶과 죽음 등을 아우른다. 작가에 대한 어떤 고백록이나 회고록 성격의 감성 일기를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뒷부분에 <추천의 말> 들에서는 이 에세이의 성격에 대해 잘 대변해주고 있다.

 



망각 일기는 일기 쓰기를 실천하는 일에 대한 명상이다. 세라 망구소는 무언가를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한다. 망구소의 예술은 적은 단어로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시적이다. 그는 문장에 대한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 가디언’(p111)-추천사

 



일기 쓰기를 실천하는 일에 대한 명상이란 말에 무척 공감할 수 있었다. 앞에서도 인용했지만, 일기는 무엇을 생략할지 무엇을 잊을지 솎아내는 일의 연속이라고 했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의 일기 쓰기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편적인 기록만 계속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금씩 시야를 밖으로 돌려 확장의 시선을 갖고 다른 테마의 글쓰기를 추가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금은 무엇이든 쓰는 시대다. 글쓰기가 브랜딩이 되는 시대이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쓰며 살고 있을까, 궁금하고 배우고 실천하고 싶은 독자들이 읽으면 기록하는 일의 나아갈 방향을 안내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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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2-12-30 0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이거 저를 위한 책인 것 같은데요? 궁금해집니다.

모나리자 2022-12-31 22:30   좋아요 1 | URL
앗, 반갑습니다! 은오님.^^
일기에 대한 얇은 분량의 에세이인데 글쓰기로서의 일기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주제의 글쓰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보통 우리들의 일기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는 일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은오님.^^

그레이스 2022-12-30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무엇을 생략할지 무엇을 잊을지 솎아내는 일의 연속이라는 말!
끄덕끄덕, 감동입니다.

모나리자 2022-12-31 22:32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보통 일기를 쓰다가 넋두리를 쏟아놓다가 다른 길로 새는 경우도 많거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레이스님.^^

억울한홍합 2022-12-31 0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까지 일기같지 않은 일기를 쓰고 있는데 일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어요~~

모나리자 2022-12-31 22:33   좋아요 1 | URL
누구나 보통 사람들의 일기는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이 공감하는 바입니다.
글쓰기 훈련이라 생각하고 그동안 쓰지 않았던 주제의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억울한홍합님.^^

서니데이 2022-12-31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예요.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모나리자 2022-12-31 22:35   좋아요 1 | URL
네~서니데이님~
정말 1년이 금세 지나갔어요.
편안한 밤 되시고 새해 검은 토끼 해에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