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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ㅣ 더 갤러리 101 2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1년 6월
평점 :
그동안 읽어왔던 미술 관련 책을 떠올려 보니 고흐, 뭉크, 모네, 알폰스 무하 등 한 사람의 화가를 주로 읽거나 미술관 기행 이야기 등을 띄엄띄엄 읽어왔는데, 유파와 함께 연대기적으로 읽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먼저 그 소감은 470여 쪽이나 되는 두꺼운 분량임에도 마치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문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풀어가는 화가들의 작품과 삶 이야기에 푹 빠졌고 그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다. 특히 내가 읽고 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자주 언급되고 있어서 반가웠다. 좀 더 속도를 내어 얼른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더 갤러리 101’(The Gallery 101) 시리즈는 르네상스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예술가 101명의 미술작품 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었단다. 이 책은 두 번째 책으로 라파엘전파부터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미래주의, 표현주의, 추상미술까지 다루고 있다. 특정 사조의 대표작도 있지만 덜 알려졌더라도 ‘인간’이라는 주제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으로 다루었다고 한다. 저자 이진숙은 이 책 외에도 『러시아 미술사』, 『위대한 미술책』, 『시대를 훔친 미술』 등이 있으며 현재 예술의전당 등에서 활발히 대중강연을 하고 있다 한다. 리뷰는 유파에 상관없이 내게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던 화가를 중심으로 소개할까 한다.
미술 사조와 연대별로 중요한 사건들을 보여주며 특징이 되는 용어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본문에서 언급된 그림들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나는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나서 고흐에게 매료되었다. 그 후 프레데릭 파작의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를 읽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영화 <러빙 빈센트>를 만났다. 특히 동생 테오와 나눈 편지 속에 나타난 그림에 대한 열정과 지독한 가난과 테오를 향한 미안한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에서는 고흐의 가슴 속에 시인이나 작가가 살아 있는 듯 감동적이었다. 역시 이 책에서 다시 접한 고흐는 4개 국어로 책을 읽었고 200여 권이 넘는 책을 언급하는 내용을 편지에서 알 수 있다고 한다. 19세기 문인들을 사랑했고 문학 작품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바람대로 그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우체부 룰랭을 화폭의 주인공으로 그려 넣었다. 소박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룰랭의 가족에게 감동했던 고흐의 소탈한 마음이 느껴진다. 흔히 광기를 운운하는 평가가 따라다니는데, 그러한 열정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토록 고귀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을까. 암담하고도 외로운 시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우체부 조제프 룰랭의 초상화>(1888년)
수잔 발라동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살아가는 동안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던 수잔 발라동은 아들보다 어린 앙드레 우터와 사랑에 빠졌는데, 나이 많은 여자가 젊은 남자를 유혹했다는 식의 수근거림이 계속되자 그에 대한 응대로 <아담과 이브>를 그렸다고 한다. 둘이 사랑했으면 둘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대개는 비난의 화살이 여성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는 휘호 판데르 휘스의 작품 <아담의 타락>과 비교하고 있다. 한마디로 남자는 여자의 유혹 때문에 타락했다는 거다. 이에 비하면 수잔 발라동이 그린 <아담과 이브>는 사랑을 한 게 죄라면 모두의 죄이지 어느 한쪽의 죄가 아니라는 거다. ‘미술사 최초로 책임지는 아담이라는 해석’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세탁부로 일하다가 열여섯 살 때 화가 퓌비 드 샤반의 모델로 일하다가 르누아르, 드가, 툴루즈로트레크 등 여러 화가의 모델을 하다가 화가로 성공하는 것도 드라마틱했다. 아들의 아버지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헤쳐나갔던 독립정신으로 꿋꿋이 살아가며,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지만, 1937년 파리 프티팔레에서 열린 ‘독립예술의 대가들, 1898~1937’에 초대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엄마로서 부족하고 숱한 남자들과 사랑을 했지만 결국 홀로 남았고, 성공한 화가로 남을 수 있었다.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는 삶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행복감으로 충만했으리라.
수잔 발라동, <아담과 이브>(1909년)
오귀스트 로댕
시인 릴케와 로댕의 인연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접했는데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여기서는 프랑스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사람인, 발자크의 조각상을 만들었던 배경 이야기까지 나와서 더욱 재미있었다. 실제 모델을 보지 않고 조각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모험이었을 것이고 많은 상상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몇 년 전 여행에서 우에노 공원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에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칼레의 시민들>을 보고 온 적이 있다. 특히 <칼레의 시민들>은 전 세계에 있는 10개의 진품 중 하나라고 해서 뿌듯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상블라주: 카미유 클로델의 두상과 피에르 드 위상의 왼손>의 손의 주인공이 <칼레의 시민들>중 한 인물의 손이라고 해서 반가웠다. 발자크는 단테의 『신곡』에 도전하는 의미로 ‘인간 희극’(Human Comedy)에 격변기의 프랑스 사회를 총정리하기도 했다. 하루에 커피를 40잔씩 마시고 16시간씩 앉아 글을 쓰는, 그야말로 일을 쾌락으로 알았다니 그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일에 대해서는 로댕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아마 좋아하는 일이어서 그렇게 몰입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너무 혹사한 나머지 발자크는 51세에 세상을 떠났단다. 위대한 천재들의 짧은 생은 항상 안타깝다. 전부터 『고리오 영감』을 읽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조만간 실천에 옮겨야겠다.
오귀스트 로댕, <아상블라주: 카미유 클로델의 두상과 피에르 드 위상의 왼손>(1895년)
구스타프 클림트
클림트의 그림은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색이 눈부실 만큼 아름답다. 프리드리히 헤벨(Friedrich Hebbel, 1813~1863)이 쓴 희곡 「유디트」의 배경 이야기를 따라 읽다 보니 이해되지 않던 수수께끼 같던 여인의 표정이 환해진다. 특히 클림트의 <키스>는 한 번도 해외로 반출된 적이 없고 값으로 매겨진 적이 없어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는데, 19년 동유럽 여행을 갔다가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1907~1908년)
오스트리아의 벨베데레 궁전 전시관에서 내가 찍어온 사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 사진도 겨우 찍었다.(아참, 그때 내가 한 손에 깁스를 하고 있었지)
변하지 않는 황금처럼 변치 않는 사랑의 약속이었다. 아마도 그림 속의 여인은 사촌 여동생으로 추정되며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벼랑 끝에 선 모습으로 표현했을 거라는 가이드의 흥미진진한 해설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파울라 모더존베커
이 화가는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 우리 시대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알게 모르게 양성차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파울라가 1906년 친구인 릴케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있다는 이 말에 시선이 멈췄다.
“나는 나입니다.(Ich bin ich) 날마다 조금씩 다른 내가 될 것입니다.”
그 당시 여성이 사회 참여 활동이 쉽지 않았던 배경을 생각하면 스스로 저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어떻게 해소했을까. 세상을 떠나기 전 좋은 그림 세 점을 그릴 수 있다면 꽃을 들고 기꺼이 세상을 떠나겠다던 파울라는 딸아이를 낳고 18일 만에 산후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른한 살의 나이에. 거의 무명인 상태로 세상을 떠났지만 남긴 글이 먼저 출판되면서 이름이 알려지고 자기 이름이 붙은 미술관을 가진 최초의 여성 화가가 되었단다. ‘나로 살고 싶었던’ 열정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글로 남긴 열정, 그런 예술가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조금씩 나아졌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열정과 정신을 귀하게 여기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파울라 모더존베커,<동백나무 가지를 든 자화상>(1906~1907년)
바실리 칸딘스키
음악은 말 그대로 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장르이다. 그런데 칸딘스키의 작품에 대해 알고 나서 정말 놀랐다. 음악을 미술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모스크바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던 칸딘스키가 미술의 세계에 들어갔다는 이력도 정말 특이했다. 그것은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건초더미>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고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칸딘스키는 1911년 1월 뮌헨에서 쇤베르크의 연주를 듣고 큰 감명을 받고 <인상 Ⅲ(음악회)>를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쇤베르크나 칸딘스키 모두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무조음악과 순수미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지향점을 갖고 있었다는데, 분야는 달라도 서로 공명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바실리 칸딘스키, <인상 Ⅲ(음악회)>(1911년)
화가들의 작품 속에 담긴 인간 이야기는 지금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성차별, 인종차별, 시대의 아픔인 전쟁, 생노병사, 희로애락의 모습 말이다. 텍스트로 된 문학은 우리가 읽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이해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림은 작품과 화가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미술에 조금씩 관심이 생겨서 여행의 기회만 있으면 미술관을 가는 내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러시아를 여행하던 중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에 큰 감명을 받아 미술의 세계로 들어섰고 문학과 역사까지도 아우르는 미술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며 고독한 시간을 견디며 열정을 쏟았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나 살다 보면 가끔 공허함에 빠지기도 하고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힘듦에 위로받고 싶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위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감동과 재미, 그리고 살아갈 힘을 얻는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더구나 이런 코로나 시국이라면 더욱 훌륭한 미술관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