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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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읽다 내려놓았던 이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타임스, 르 몽드선정 ‘20세기 최고의 책, 프루스트 이후 모든 현대 소설의 출발점’, “20세기 소설의 혁명”,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이라는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의식 흐름이라는 독특한 서술 방식의 대표 격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프루스트의 이런 작품을 읽으면 개안수술을 받은 듯 사물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토록 극찬하는 작품이라니, 의기양양하게 일독을 시도하지만 오래지 않아 굴복하는 보통의 독자들은 어찌하라고 그런 말로 놀라게 하는지.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열 권짜리 시리즈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이후 실로 오랜만이다. ‘태백산맥처럼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기에 한 달 한 권씩 읽으며 완독해보자는 도전을 시작했다. 처음엔 몰입이 안 되어 옛날에 중단했던 그 트라우마(?)가 되살아날까 두려웠지만 차츰 적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1권을 읽었다. 이렇게 한 권씩 도장 깨기를 하다 보면 완독의 기쁨도 누릴 수 있지 않을까.(그래야 연말.)

 



 우선 광범위한 가계도에 놀라게 된다. 세속적인 야심이 많고 사회적 지위도 높으며 기상학에 관심이 있는 아버지와, 남편과 자식밖에 모르는 헌신적인 여인인 어머니를 비롯하여 할아버지, 할머니 등 삼대가 한집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손님이나 이웃 사람들까지 하면 등장인물은 더욱 늘어난다. 신경이 예민하고 마마보이(?) 기질까지 있는 화자인 는 책읽기를 좋아해서 작가가 되기를 열망한다. 잠자기 전 어머니의 키스를 받아야 잠들 수 있는 아이다. 그런데 손님이 와서 그 시간을 빼앗기게 되면 불안해지고 슬픈 마음이 되어 끙끙 앓는데, 어린아이의 마음이 엿보여 웃음이 난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우려고 단호하게 대하지만 아들과 함께 자라는 남편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고 함께 있어 주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장면은 화자인 내가 마들렌과 홍차를 마시는 장면이 아닐까. 콩브레를 떠났다가 집에 돌아온 어느 추운 겨울날, 어머니의 권유로 홍차를 마시게 된다.

 



침울했던 하루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울적해진 화자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그리고... 예전에는 결코 공감할 수 없었던 이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P86)

 



 차 한 잔, 홍차 한잔으로 우리는 화자처럼 이렇게 놀라운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 그렇게 홍차를 마시면서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우고 콩브레의 추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와 마들렌 조각, 정원, 별채, 온갖 날씨와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마을 모습, 오솔길들을. 그리고 유년시절 첫사랑이었던 질베르트도.

 



물에 가득 담은 도자기 그릇에 작은 종잇조각들을 적시면, 그때까지 형체가 없던 종이들이 물속에 잠기자마자 곧 펴지고 뒤틀리고 채색되고 구별되면서 꽃이 되고, 집이 되고, 단단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P91)

 



 처음의 지루함과 달리 눈앞에 펼쳐지는 이 장면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화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게 된다. 그렇다고 계속 술술 읽히는 건 아니다. 읽다가 맥락을 놓치기도 한다. 풍경, 사물 묘사, 인물의 세심한 내면을 표현하는데도 문학 작품이나 음악, 미술에 관련된 묘사가 덧붙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프루스트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배경지식이 풍부해야 이 작품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주석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읽는데 지장은 없다) 만연체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감성이 듬뿍 느껴지는 문장들을 만나게 되면서 내 유년시절의 풍경이 떠올라 아련한 그리움에 젖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다. 콩브레 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기차에서 멀리 바라보는 콩브레 마을을 묘사로 시작한 이야기는 각종 냄새 이야기로 이어진다. 방에서 맡았던 온갖 냄새의 묘사는 거리, ‘가족 같은 성당의 종탑이 자아내는 풍경 등으로 옮겨가며 한없이 이어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유년시절의 냄새를 떠올렸다. 아궁이에 가득 남아있던 재 냄새, 타닥타닥 타오르던 아궁이에서 빨간 불꽃이 튀기며 나던 냄새, 마른 땅에 떨어진 비와 흙이 섞인 냄새 등 기억 속에 숨어있던 냄새들이 되살아났다.

 



화자가 부모님과 함께 달빛을 받으며 산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세속적인 명예나 야심을 중요시하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오랜 산책을 시켰단다. 끝 모를 산책길에 나는 다리를 질질 끌며 졸음으로 쓰러질 것 같은상황이 되었는데 집 뒤편 정원에 다다랐음을 알고 갑자기 힘이 솟는다.

 



오래전부터 내 행동에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정원에서는 땅이 대신 걸어 주었기 때문이다. ‘습관이 날 품에 안고는 아기처럼 침대까지 옮겨다 주었다.‘(P205~206)

 



 ’땅이 대신 걸어주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정원을 그만큼 좋아했다는 말이구나. 온갖 보이는 사물에 애정을 갖고 있는 화자가 정원을 뛰어다니는 일은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기뻤을 것이다. 개 짖는 소리, 보리수나무 달빛이 비치던 역 앞 큰길 등을 떠올리는 장면은 한마디로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런 달밤의 정경을 언제 느껴보았던가.

 



 화자의 눈길은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길도 빠뜨리지 않고 담아낸다.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는 식탁 위에서 부엌 하녀가 이제 막 껍질을 벗겨 놓은 완두콩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마치 무슨 장난감 초록빛 구슬의 수를 셀 때처럼 가지런히 크기별로 놓여 있었다. 그러나 내가 황홀감에 사로잡힐 때는 특히 아스파라거스를 마주할 때였다. 아스파라거스는 짙은 군청색과 분홍빛이 감돌아, 꼭지 부분이 벼이삭처럼 보랏빛과 하늘빛으로 어우러져 아래로 내려갈수록- 밭의 흙이 아직 묻어 있는- 땅 색이 아닌 무지갯빛으로 아롱거리며 그 빛깔이 조금씩 연해져 간다. 이러한 천상의 빛깔은 어떤 감미로운 존재들이 즐겨 채소로 변신해서는, 먹을 수 있는 단단한 살로 변장해, 해 뜰 무렵 여명의 색깔이나 짧은 무지갯빛 출현, 푸른빛 저녁이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그 귀중한 정수를 드러내는 듯 보였다. 저녁 식사 때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자는 날이면 나는 밤새 그 정수를 느꼈는데, 그것은 마치 셰익스피어 요정극장에서처럼 시적이면서도 외설적인 소극을 연출하여 내 방의 요강을 향수병으로 바꾸어 놓았다.‘(P215)



 이렇게 화자는 그냥 지나칠 것 같은 아스파라거스를 보면서도 셰익스피어의 소극을 환기한다. 아스파라거스 묘사는 이 작품에 자주 등장하며 화가 마네가 즐겨 그렸던 그림 소재이기도 하단다. 우리는 이렇게 이 작품으로 문학, 그림, 음악 등 다양하게 심취했던, 그리고 한번 시선이 꽂히면 집요하게 관찰하고 글로 풀어내는 프루스트를 만나게 된다.

 



 또 인상적인 장면은 식사 준비를 위해 프랑수아즈가 닭을 잡는 것을 화자가 보고 있는 부분이다. 몸부림치는 닭과 대적하는 프랑수아즈를 보면서 는 부들부들 떨며 도망치면서 누군가 프랑수아즈를 쫓아내기를 바라지만, 누가 뜨거운 물주머니와 향기로운 커피, 닭고기 요리를 해줄 것인가 계산하면서 곧 뉘우친다. 성당의 아름다운 채색 유리에 그려진 왕과 왕비의 뒷면에 피로 얼룩진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프랑수아즈보다 닭을 불쌍히 여겼던 마음을 거둔다. 보기에 아름답지 못한 악역을 누군가 해주어야 맛있는 밥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어린 화자도 알고 있었다.

 



스완네 집 쪽으로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궁금했었다. 콩브레 주변에서 산책을 하려면 길이 두 개인데 그 중 하나는 메제글리즈라비뇌즈이고 이 길로 가려면 스완 씨네 땅을 지나가야 했기 때문에 스완네 집 쪽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또 하나의 길은 게르망트 쪽이다. 이렇게 1권의 내용은 스완네 집 쪽으로 걸어 산책길에 보았던 콩브레에 대한 기억과 추억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다.

 



 이 작품 읽기를 도전해보고 싶은 독자가 많을 것이다. 이제 막 한 권을 읽었지만, 이 작품은 보통의 소설처럼 읽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이나 추억을 되새기며 화자의 마음을 따라 읽기를 권한다. 보통의 소설처럼 어떤 사건의 발생이나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이야기의 구성이 아니라 화자의 생각을 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자를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했다고는 하지 않겠다. 첫술에 배부르랴. 한번 완독을 하고 거듭 읽기를 통해서 이 작품에 매료될지 누가 알겠는가. 일단 1권 일독을 자축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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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3-24 18: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완독축! 읽어보고 싶어지는 리뷰네요.😆 주석이 정말 잘 쓰여져 있더라구요.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잘 읽히는 글이란것도 공감해요! 저는(거꾸로 읽기고) 아직 10권 절반정도 나갔는데 서둘러야겠네요.😁

모나리자 2021-03-24 23:35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미미님~
네, 주석이 자세하게 잘 나와 있죠. 거꾸로 읽는 느낌은 어떠신가요?ㅎ
완독 때 거꾸로 1권과 10권에서 만나게 될까요?
아니 미미님이 빠르실 수도 있겠네요.ㅎ
편안한 밤 보내세요.^_^

미미 2021-03-24 23:43   좋아요 2 | URL
두 번정도 1권에서 포기해서 거꾸로 해봤는데 저에겐 이게 맞는거 같아요ㅋㅋ 욕심땜 동시에 읽는책이 많아져서 느리긴 한데 읽을때마다 너무나 좋아요♡ 꼭 함께 완독가요! 모나리자님두 굿밤요!😍👍

모나리자 2021-03-24 23:57   좋아요 1 | URL
맞으시다니 다행이네요.ㅎ
느리게 읽더라도 끝까지 가자구요.
꼭 함께 완독해요~^^

새파랑 2021-03-24 19: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권 일독 축하드려요^^ 화자의 생각을 쫓으면서 읽는다는게 쉽지가 않던데 대단하세요~! 제가 가지고 있는 1권은 사놓고 책꽂이에서 나온적이 없어요ㅜㅜ 이렇게 권수가 많은 책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계속 봐야할거 같아서 시작하기 주저하게 된다는 ㅜㅜ
책을 완독해야 생각하는 저같은 사람은 아직 독서 초보인가봅니다 ㅋ

모나리자 2021-03-24 23:38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새파랑님~
처음엔 정말 힘드네.. 했는데 점차 나아지더라구요.ㅎ 느리게 읽기를 권하고 밤에 잠 안올 때 시도해 보세요. 읽다 보면 금세 졸려서 꿀잠에 특효.^^ ㅎㅋ
새벽에 읽어도 좋구요. 이렇게 잘 안 읽히는 책을 연달아 읽으면 다른 책을 읽을 수 없으니 한 달 한 권으로 정한 거지요.ㅎ
새파랑님의 도전도 응원하겠습니다..^^

scott 2021-03-25 1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권 완독 축하합니다!!
모나리자님 리뷰를 읽으니
주말 브런치는 아스파라거스 들어간걸로 무죠건 ㅋㅋㅋ
분명 읽었는데 마르셀의 책은 읽고나면 잃어버린 시간속으로~ ㅎㅎ

역사 문화 음악사적인 해박한 지식을 함께 습득하며 읽어나가야 할것 같아요.
문학을 넘어 문화사적인 작품인것 같습니다.
^^

모나리자 2021-03-25 14:49   좋아요 1 | URL
네~감사해요!! 뿌듯뿌듯^^

베이컨과 토마토를 곁들여서 만들어 먹으면 식욕도 업! 시키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아요.ㅎ
잊어버리니까 또 읽는 거죠.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해요. 화자의 시선이 홍길동처럼 순간 이동을 하니 정신 없어요.ㅎㅎ

고전과 명작은 거듭 읽기를 통해서 묘미를 알 수 있겠지요.
왠지 오늘이 불금 같은 느낌은 뭐죠?ㅋㅋ
좋은 하루 되세요~스콧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