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 감는 새 연대기 2 - 예언하는 새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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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고양이는 이제 안중에 없는 일이 되었고, 오카다가 마미야 중위를 만나던 날, 구미코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냥 출근하던 차림으로 나간 채였다. 아내가 없는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구미코가 없다는 걸 실감한다. 회사에 몇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출근하지 않았다는 말만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구미코의 등과 향수 냄새가 자꾸만 떠오른다. 이럴 때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내가 사라졌는데도 너무 침착해 보이는 오카다가 오히려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때 가노 마르타가 고양이 일로 전화를 했다면서 고양이 일 말고 도울 일이 있겠느냐고 묻는 등, 이름 첫 글자가 인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올 거라는 말을 한다. 또 근일 중에 반달이 며칠 동안 떠 있을 거라는 묘한 말을 하며 지금으로서는 기다리는 게 전부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는다. 답답한 마음에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구미코의 옷을 맡긴 것이 떠올라서 세탁소에 갔는데... 세탁소 주인은 이미 부인이 찾아갔다는 말을 한다.

 


 사건이 생기고 시간이 흐르게 되면 소문이 나게 마련이다. 가사하라 메이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소녀 뭔가 모자란 듯 보여도 절대 그렇지 않다. 은근히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해서 오카다를 놀라게 한다. 오래 함께 살았다고 해서 마음속 깊은 곳까지는 알기 어려운 걸까. 오카다는 구미코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는 걸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가노 마르타로부터 구미코의 일로 와타야 노보루와 셋이 만나자는 전화를 받는다. 원래 껄끄러운 사이였던 와타야 노보루를 대면하고 구미코의 얘기를 일방적으로 들으며 오카다는 분노하고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렇게 와타야 노보루에게 쏘아붙인다.

 


아주 먼 어느 곳에, 천박한 섬이 있어요. 이름은 없습니다. 이름을 붙일 만한 섬이 아니죠. 아주 천박하게 생긴 천박한 섬입니다. 거기에는 천박한 모양의 야자나무가 있죠. 그리고 그 야자나무는 천박한 냄새가 나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또 거기에는 천박한 원숭이가 살고 있어서, 그 천박한 냄새 나는 야자 열매를 즐겨 먹어요. 그리고 천박한 똥을 싸죠. 그 똥이 땅에 떨어져 토양도 천박해지고, 그 토양에서 자라는 야자나무를 더욱 천박하게 하죠. 그런 순환입니다.”(P69)

 


 왠지 선문답 같은 독설이다. 구미코의 오빠인 와타야 노보루를 향해 이렇게 퍼부으면서 속이 좀 후련해졌을까. 그리고 가노 마르타의 예언 같은 말이 들어맞기라도 하듯 오카다는 난데없이 우물에 들어갔다가 며칠 만에 구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노 크레타는 알몸으로 나타나 오카다를 놀라게 한다. 오카다는 왠지 여자들로 둘러싸인 형국이다. 의도하지 않게 그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휘둘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노 마르타, 가노 크레타, 가사하라 메이에게서 오카다는 헤어나지 못한다.

 



 왜 오카다는 우물 속에 들어 갔을까. 마미야 중위의 우물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하기 위해서였을까. 또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기묘한 체험을 하면서 지난날의 구미코에 대한 고찰이 시작된다. 특히 가사하라 메이가 가끔 툭 뱉어내는 이야기가 놀라웠다. 속에 어른이 들어있는 아이라고 해야 할까.

 



만약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라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소멸되지 않고 나이를 먹지도 않고, 이 세상에서 계속 건강하게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래도 인간은 여전히,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처럼 열심히 이것저것 생각할까요? 우리는 많든 적든, 여러 가지를 계속 생각하잖아요. 철학이나 심리학이나 논리학이나, 그리고 종교도 있고, 문학도 있고, 그런 유의 복잡한 유의 사고와 관념은, 만약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지구상에 안 생기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P181)

 


 함께 크레타 섬에 가자는 가노 크레타의 제안을 받고 여행 준비를 하다가 심경의 변화가 온다. 오랜만에 찾아온 삼촌의 얘기를 듣다가. 예상치 않은 곳에서 힌트를 찾게 되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다면, 뭔가를 분명하게 알 때까지, 자기 눈으로 보는 훈련을 하는 편이 좋지 않겠어. 시간을 들이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돼. 무언가에 넉넉히 시간을 들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세련된 형태의 복수거든.”(P352)

 



나는 도망칠 수 없고, 도망쳐서도 안 된다. 그것이 내가 얻은 결론이었다. 가령 어디로 간들, 그것은 반드시 나를 쫓아올 것이다. 어디까지나.’(P372)

 


 그 여자에게 들었던, ‘당신에게는 치명적인 사각지대가 있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무언가 놓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수수께끼에 싸여있던 전화 속 여자의 정체가 누구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사실 나는 예전에 상실의 시대(현재는 노르웨이 숲)를 읽은 후, 하루키의 소설을 별로 가까이하지 않았었다. 왠지 너무 리얼하고 자극적인 관계 묘사가 별로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작품도 역시 그렇다.) 그런데 오랜만에 읽어보니 이야기 속에서 통찰력 깊은 문장들을 만나고 그냥 보편적인 것을 태연하게 묘사할 수 있는 능력도 하루키가 가진 힘이 아닌가, 그래서 세계적인 작가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하나씩 작품으로 만나게 될 것 같다. 여기서 우물이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내면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아래로 가야 할 때는 가장 깊은 우물을 찾아 그 바닥으로 내려가면 돼.(본문 )


 

구미코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끝부분에 오니 더욱 재밌고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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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14 2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3권 남으셨네요 ㅎ 하루키 소설 읽다보면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상깊은 문장이 나와서 좋더라구요. 동감합니다^^

모나리자 2021-03-15 13:16   좋아요 1 | URL
네..ㅎ 3권은 엄청 두껍네요!
그래도 재밌어서 다행이에요. 시리즈물 오랜만에 읽는데
이렇게 읽어나가게 되네요.
새로운 한주도 즐거운 시간 되세요~새파랑님.^^

scott 2021-03-14 2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하드보일 원더 랜드 다시 읽고 있는데
문장이 살아 움직여요.
감각적인 묘사가 시각 청각 후각을 자극하는,,
이책이 수십년전에 썼는데 지금 읽어도 전혀 오랜전 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네요.^.^


모나리자 2021-03-15 13:17   좋아요 2 | URL
사이를 두고 여러 번 읽으시는군요.ㅎ
올바른 책읽기 하시네요. 스콧님.^^

새로운 한 주도 화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