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 개정판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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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적다. 기독교 세계관을 갖고 있는 유럽이 자신들이 힘을 내부가 아닌 외부로 돌리기위해 예루살렘을 이슬람으로부터 다시 찾기 위해 벌인 전쟁이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같은 서양인들끼리 약탈을 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실패한 전쟁으로 남은 후에 유럽이 본격적인 암흑기(??)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추가로 더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갖가지 음모론에 가까운 많은 신화와 같은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아 이 후 현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소설, 영화, 드라마의 양념과 같은 역할을 많이 했다는 정도가 십자군 전쟁에 대해 알고 있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 간략하게 알지만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은 그저 다른 분야의 관심에 비해 딱히 더 큰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보고 관련 글을 읽다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훨씬 더 좋다는 글을 읽고 '그래~~ 한번 읽어봐야 겠다'라고 생각을 했다. 마침,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도 종결이 되어 이왕이면 읽기전에 먼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를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아시아인이 바라보는 로마인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관심을 갖고 읽었지만 사실 그 책은 아시아인의 관점은 거의 없는 듯 했다. 모든 역사는 저술한 사람의 사상과 개념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단순하게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역사기록을 남겨도 어떤 기록을 넣고 빼는냐에 따라 저술가의 사상이 들어 갈 수 밖에 없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이자 좋은 것은 바로 만화라는 것이다. 원래 만화만해도 수천권을 읽은 전력이 있고 좋은 만화는 그 어떤 책보다 한 사람의 인생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글씨만 읽으면 조금 지루하거나 잠시 집중을 못할 수 있지만 그림과 같이 있으면 그림과 글을 번갈아 읽으면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볼 수 있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단순하게 만화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 책을 치부할 수는 없는 내공을 갖고 있다. 굳이 지속적으로 부시에 대해 지금말로 '디스'하는 삽화가 많기는 하지만 읽으면서 가장 기쁜 것은 알지 못하는 사실과 지식에 대해 새롭게 취할 수 있다는 것이였다.

 

어떤 면에서 십자군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슬람에 대한 이야기가 더 관심있고 흥미로웠다. 솔직히 이슬람에 대해 잘못 알려진 면이 많다는 것은 얼핏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 점에 대해 찾아 알아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딱히,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우선순위 앞에 설 정도의 지식이나 관심거리는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중에 한번 이슬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고 했는데 이 책에서 어느정도 그 호기심에 대해 기본적인 욕구는 충족해준다.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기 전 유럽역사와 이슬람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해 주는데 유럽역사는 그래도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 어느정도 기억이 존재하여 이해하는데 좀 더 쉬웠다. 더구나, 김태권이 전하는 역사관은 마음에 든다. 어차피 역사란 가치중립 하기는 쉽지 않고 어느정도 한쪽으로 편향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시아 사람이라 그런지 오린엔탈리즘에 탈피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그런지 그 정확한 내 심중은 몰라도 김태권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는 거의 지식이 없다고 생각을 분명히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 물론 이 책은 십자군 전쟁의 도입부이다 - 흥미롭게 페이지를 넘기고 새로운 역사지식을 머리에 쌓아 놓기는 하지만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이 전혀 새롭지는 않았다. 전체적인 흐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지만 어딘가에서 읽거나 봤던 것이다.

 

그것이 영화에서인지 만화에서인지 책에서 인지는 정화하지 않아도 말이다. 다만, 은자 피에로라는 인물은 처음으로 알고 되었고 지금 말로 이야기하면 똘끼로 충만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지식은 경험을 이길수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게 만드는 인물로 보인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늘 눈에 들어오는 전집이 있다. 책 제목은 에드워즈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와 E.M.번즈의 서양 문명의 역사인데 늘 쉽게 손이 가는 책이 아니라 그저 노려보기만 했다. 글도 조밀하게 빽빽해서 더더욱. 이 책을 읽으면 다시 한 번 저 책들을 한 번 정도 도전할 책중에 하나로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외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이 소개되는데 상당히 흥미롭게 보였다. 내용 자체는 흥미로웠고 전반적인 개념은 다른 책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한 개인을 통해 - 살아있고 실험이 아닌 실제로 악을 행한 인물로써 - 구체적으로 알아본다는 재미(??)를 줄 듯 했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나미의 십자군 전쟁에 대해 글을 읽다 우연히 '김태권의 십자군 전쟁 이야기'가 훨씬 낫다고 한 그 분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특정 역사에 대해 재미있게 만화로 되어있는 책을 선택해서 읽는다는 것은 아주 좋은 지적만족을 준다. 이제 2권으로 달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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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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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가진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또한, 역사는 자신이 아무리 공평하고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해도 자신의 가치관이나 역사관이나 사상등이 투영될 수 밖에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살아남은 자들의 말을 듣거나 그들의 기록을 찾아 역사를 서술해야 하니 힘없는 사람들이나 패배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승리한 사람의 관점이 투영되는 것이 당연하다.

 

역사를 서술하는 대부분의 책들이 일대기나 연대기식으로 구성한다. 역사란 과거의 기록이다 보니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연대기 순으로 하는 것만큼 머리속에 잘 들어오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 역사를 서술한 책들은 특정한 목적과 핵심을 근거로 역사를 바라보는 조금은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역사를 총 다섯가지의 방법으로 이야기한다.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라는 특정한 주제를 갖고 그 주제에 맞게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색다르거나 기존 역사채들과 큰 차별성이나 변별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역사란 과거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후대에 살펴보는 것이라 그 한계가 있고 사건 자체가 갖는 의미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논점이 달라 질 수는 있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첫번째 방법으로 '욕망'을 제시하는데 이 욕망은 사실 다섯 가지를 다 포함하는 주제다. 욕망이 바로 인간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더 갖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을 채운 후에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채운다. 그 욕망이 채워지면 한 국가가 아닌 다른 땅 덩어리까지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의식까지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 그 욕망마저 채우게 되면 결국에는 신이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 모든 욕망을 채운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바로 인간이 갖는 유한성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과거에는 개인의 욕망이 지극히 소박하고 그 중에 이미 선택된 인간들이 갖는 욕망으로 벌어진 사건들이 역사를 이루고 있다면 - 가진자의 논점에서 - 이제는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욕망이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고 이 욕망들이 모여 한 단체와 국가로 번져 이 욕망들을 채워주는 사람들이 그들을 대표하게 된다.

 

책에는 욕망중에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근대화로 넘어가며 커피가 기호식품이 된 것은 커피가 바로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정신상태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과거에는 차가 지금의 커피를 대체하고 있었지만 영어로 커피는'break time'이라고 하고 차는 'tea time'이라 하여 커피는 무엇인가를 각성하는 시간이라면 차는 쉬는 시간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대표된다고 한다. 예전보다 더 도시가 발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바로 도시가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고 해결하는데 더 유리하고 욕망을 소비해 주기 때문이란다.

 

다섯가지로 대변되는 주제를 다 읽고 바라보니 욕망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귀결된다는 보인다. 욕망의 주제 이후에 모더니즘이나 제국주의등은 비슷한 주제로 개인의 욕망이 발현되어 좀 더 갖고 싶고 더 잘 살고 싶어 근대화를 이루게 되고 이것들이 모여 제국주의가 발현되었다고 보인다. 이 중에 시선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이미 우리의 모든 것들은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우리를 감시하고 주시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에 대해 감시하고 내가 몇 시에 어느 곳에 있고 어떤 것을 주로 읽고 웹 서핑 하느냐를 토대로 얼마든지 마음대로 나를 제단하거나 단절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모여 지금은 정보가 권력이 된다고 하는데 이 정보라는 것이 결국에는 얼마나 더 많은 눈을 갖고 세상이 돌아가는 가를 알 수 있는 시선의 집합이다.

 

몬스터와 종교에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파시즘과 지구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기도교, 유대교, 이슬람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의 싸움에서 패한 것은 결국에 인간의 욕망을 발산시켜줄 수 있는냐가 핵심이다. 사회주의는 일정수준까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만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무한대로 충족시켜 준다. 이런 와중에 욕망이 덜 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거나 억압 착취를 받을 수도 있고, 이런 인간의 욕망을 공동체의 힘으로 발산시켜 한쪽으로 몰아 준 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가 이론적으로 더 완벽해 보여도 결국에 실패한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을 만족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을 억제시키고 정화시켜주는 종교가 각 개인이 종교를 믿어 실천하면 좋은 쪽으로 발전하지만 각 개인이 뭉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욕망들이 모이면 그 자체로 다시 거대한 욕망으로 변해 종교가 갖고있는 의미와 이유를 망각하고 종교의 욕망으로 변해 모든 것을 집어 삼키게 된다. 이때에 개인의 욕망은 종교의 욕망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현재 가장 위험한 욕망이 바로 이 종교적인 욕망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참사나 다툼, 분쟁들이 이 종교적인 문제로 생기고 있다. 종교적인 문제의 어려움은 바로 배타성과 불관용에 있지 않을까 한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가 아니라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로 대변되는 이 논리를 뛰어넘는 믿음이 바로 모든 불행의 근원이 되고 있다.

 

향후 세계는 인간들의 이 욕망을 어떻게 다스리냐가 새로운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각 개인이 점점 똑똑해지고 과거와 같은 욕망을 채워주는 것으로 절대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종교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지만 이 종교가 다시 문제의 발단이 되고 있으니 어떤 방법으로 해결 될 것인지가 궁금하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도 갖고 있지 않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나 단체가 나타날 수도 있고,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숙제가 될 수도 있지만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 지금과 같이 특정한 사상이 세계를 지배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고 획일화된 적도 있고, 다양성으로 서로 신경쓰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일국 체제가 될 수는 있어도 유일 신이 지배한 적이 없으니 이 부분은 분명히 딜레마로 보인다.

 

결국에는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을 종교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소해야만 해결 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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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4 - 그리스도의 승리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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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황제도 단 몇 줄로 끝이 날 정도로 간단하게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몇 페이지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로마사라는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이번 14권에서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선대에 이어 충실히 심은 콘스탄티우스황제를 뒤이은 율리아누스 황제같은 경우에는 그의 치세기간은 겨우 3년이라는 기간 밖에 안되었지만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가 로마를 지배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된지도 이미 반세기가 지날 정도로 도도한 강물이 되어 그 흐름을 막거나 변경시키기는 힘들다고 볼 때 짧은 3년이라는 시간동안 잠시 조약돌과 같은 둑으로 막은 것에 지나지 않는 율리아누스 황제의 치세를 꽤 길게 소개한 것은 아마도 로마라는 위대한 제국이 기독교라는 이데올로기기(종교)에 의해 결국 망하고 만 것에 대한 반발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싶다.

 

시오노 나나미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로마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기독교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이라는 시선에서 긍정보다는 부정적으로 좀 더 치우쳐져 서술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도 기독교라는 종교를 갖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객관적인 시선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로마라는 체계를 볼 때 기독교 국가로 변하면서 절대왕정으로 변하고 원로원과 시민들을 의식하며 통치를 했던 것에 비해 거대한 궁으로 둘러쌓여 외부와는 차단되어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되어 황제의 측근들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로마로 변한 것은 무척 아쉽고 제국이였던 로마가 그립다고 느끼며 책을 읽게 되었다.

 

로마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로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제 로마는 국가의 이름이 되었을 뿐이고 로마라는 수도로써의 도시 기능은 완전히 사라지고 로마 도시가 책에서 언급되는 것도 점점 사라졌다. 오죽하면 황제로 등극하여 국가를 다스리면서도 로마를 방문하지도 않고 몇 년이라는 기간이 지나 겨우 로마를 방문하고 오랜 세월동안 로마에 황제가 방문하지도 않아 로마에 사는 시민들이 로마로 입성하는 황제를 보는 것이 낯설을 정도면 로마라는 국가로 불리울 수 없지 않을까 한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니 로마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한 역사학자들이 로마의 연구를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는 하지 않고 접었다고 하는 겻도 이해가 된다. 지속적으로 황제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고 견제기능으로 로마라는 국가를 이끌던 원로원은 이제 존재자체가 희미해졌고 아직까지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로마인 이야기 14권에서는 언급자체가 거의 없다.

 

실제로 이런 궁금증을 갖게 되었을 쯔음에 원로원에 대해 언급하는 문구를 읽고는 시오노 나나미도 쓰다보니 '아,, 원로원에 대해 책에서 이제 거의 쓰지 않는구나'하며 원로원에 대해 굳이 언급한 것이 아닐까한다. 이제 원로원이라는 조직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되어 로마라는 절대왕정으로 변한 시대에는 그 용도가 폐기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당시에 원로원들은 도대체 모여서 무엇을 하였는지 무척 궁금하다.

 

그래도 원로원이라는 이름은 모여 국가와 사회에 대해 토론을 하든지 잡담을 나누던지 했을 텐데 말이다. 로마에 대한 사료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볼 때 이 당시 원로원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모이면 하고 토론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텐데 황제와 중요인물 중심으로 서술하다보니 제외시킨 듯 하여 좀 아쉽다.

 

마지막 단락의 암브로시우스주교를 타이틀로 삼은 것은 이전까지 황제중심으로 서술되어 로마에 대해 이야기가 진행된 것에 비추면 당시의 황제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로 로마의 중심이 황제에서 주교로 변한 것을 알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만, 철저하게 인물과 정치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다 보니 주교라는 관점보다는 정치적이고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현재도 주교라는 지위가 단순한 종교적 지도자이기 보다는 어느 정도 정치적 인물인 것은 맞지만 말이다.

 

실질적으로 14권에서 로마라는 통일된 이름의 국가는 사라진다. 15권부터는 동로마, 서로마라는 이름으로 불릴테니 말이다. 역사에 가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기독교라는 종교가 로마에 침투하지 않았다고 해도 로마가 지속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본다. 결국, 로마는 야민족의 침입으로 -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대대적인 이민이겠지만 - 멸망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야만족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존재하여 나타난 것일까?

 

동양의 한 나라에 속한 곳에 살고 있어 서양 세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무넹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그 야만족이라는 민족에 대한 정보는 무척 적다. 분명히 유럽의 역사에서는 그에 관련된 정보가 많을텐 데 이에 대해서도 한 번 관련 자료나 책을 읽어 보고 싶다. 이런 야만족들의 침입으로 인해 멸망한 것인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를 볼때면 선진문화를 갖고 있는 선진국이라 불리우지만 지금 유럽의 선조들인 야만족에 의해 멸망했다는 것을 보면 중국,한국,일본은 참으로 대단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가 아닐까 한다. 그 오랜 기간동안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보존한 것을 보면 말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이제 딱 한권으로 끝을 맺는다. 아니, 실제로 로마인 이야기는 14권에서 끝났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15권에서는 로마라는 국가의 멸망과 에필로그에 해당된다고 하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까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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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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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로마인 이야기 13권에 나온 황제들을 끝으로 로마사에 대해 더이상 서술하지 않는 역사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역사는 실제로 끝이 나고 중세로 가는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실제로 시오노 나나미도 그런 역사관에 동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은 로마라는 제국에 대해서 쓰기보다는 로마인 - 정확하게는 로마황제겠지만 - 에 대해 저술을 했기 때문에 끝내지 않고 쓴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책의 역사배경이 된 후에도 100년도 넘게 로마라는 나라는 사라지지 않고 존속했으니 좀 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14권을 읽어봐야 내 나름의 판단이 들지 않을까 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지속적으로 자신은 역사학자가 아니라는 애매모호한 관점으로 여러 역사학자들의 의견에 대해 반박하거나 동조를 하며 자신만의 역사관을 피력한다. 역사학자와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을 집필한 시오노 나나미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별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그에 대해 집필하고 연구하여 세상에 내 놓으면 그것으로 학자라고 불러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데 저자는 겸손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자신의 의견에 대해 자신이 없어 그런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자신은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감히 논한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닐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이야기되는 반론에 대해 빠져 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그저 로마에 대해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뿐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역사는 승자의 이야기라고 한다. 패자측의 이야기는 다루기에 재미없기도 하지만 패자에 대해 관용을 베풀고 그에 대한 기록을 문서로 남기기 보다는 제거하는 것이 대부분 승자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팩트를 갖고 객관적으로 서술한다고 해도 자신이 그동안 배운 역사관과 사회관, 가치관, 인문학등이 글에 묻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특정 역사에 대해 서술하는 사람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이고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본다.

 

아주 객관적으로 단순히 사건만 나열한다고 해도 자신이 원하는 사건만 나열을 해도 자신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고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관을 전달하게 된다. 이를테면 전쟁에 대해 서술한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장군에 대해서만 서술하면 그 장군의 관점에서 그 사건을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마인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지속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조금씩 논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종교가 없는 저자이기 때문에 더 객관적인 관점으로 서술할 수도 있고 자신이 기독교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느냐에 따라 의도하지 않아도 그 자신만이 갖고 있는 논점이 나타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갖고 있지만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로마라는 국가의 공인을 받는 과정과 그 후의 서술에 대해서는 약간 움찔은 하지만 대체로 색다르고 재미있게 읽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봤다.

 

로마인 이야기 13권에서 나온 새로운 개념은 지금까자와는 달리 1명의 원톱이 아니라 4명이나 되는 사람이 로마를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해 실행된 이 과감한 행정은 결국 로마라는 나라를 본격적으로 해체하게 만드는 사건이 된다. 그 전부터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되었다고 해도 로마라는 제국이 다스리는 모든 영토는 로마라는 구심점 아래에 뭉쳐있었는데 비록 각자 4구역으로 다스린 지도자들이 왕은 아니였어도 결국 그들이 다스린 영토는 각자 로마가 아닌 다른 영토라는 개념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완전히 분리된 개념의 영토로 살다보니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한 후에는 각 영토의 지도자가 사망한 후에 다시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분열이라는 씨앗이 로마제국의 시민들에게 뿌려진 것이 아닐까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현대 국가와 달리 정년이라는 개념이 없는 권력의 시대에 정말 특이하게도 자신이 사망을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은퇴를 하게 되는데 그 사건만을 놓고 보면 참으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업적이지만 권력의 속성상 막강한 힘을 놓은 후에 오게되는 비정한 권력의 파워는 인식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한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쪽에서는 대제라고 불리지만 반대 진영의 역사학자들에게는 다른 논조로 바라보는 듯 한데 그 시대가 끝이 난 지 오래된 후세의 역사학자들에게 그런 의미로 다가올지 모르지만 그 시대에 최선을 다해 살았던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이 볼 수 있는 한도내에서는 최선을 다 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만약, 카이사르가 이 시대에 태어나 콘스탄티누스 대신에 황제가 되었어도 시대를 초월한 역사관과 제도를 내다 본 인물이라도 하여도 그 시대의 상황에서는 특별한 대안은 없을 것이라 본다. 기독교라는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가 공인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어차피 역사에서 만약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로마인 이야기 10권에서부터 로마가 시들어가고 죽어간다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데도 불구하고 로마인 이야기 13권이 될 때까지 로마라는 제국은 멸망하지 않고 존속을 하고 있으며 여전히 야민족의 침략을 물리치며 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영화를 누리고 있다. 너무 현대의 관점에서 로마가 망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후로도 무려 100년을 더 로마가 존속했다는 것을 보면.

 

로마라는 제국의 흥망성쇠에서 흥이라는 로마의 최 전성기가 화려하고 강력해서 후대의 역사학자들과 시오노 나나미가 한없이 그립고 아쉬워서 하는 투정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최소한 로마인 이야기 13권까지의 내용에서는 로마가 망할 것이라는 흔적과 조짐은 전혀 없다.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이 조금씩 영향을 미치기는 했겠지만 여전히 로마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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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2 - 위기로 치닫는 제국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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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고 있는 나도 하루 단위로 보면 상당히 긴 시간이지만 과거를 회상하게 될 때 1~2년은 금방 지나가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컷 하나로 몇 십년이 지나가기도 하는 걸 보면 과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일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 않고 꽤 시간이 걸려 지나 갔을 것이라고 판단이 된다.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시대적 배경도 지금으로부터 2,000년이나 전 이야기이기 때문에 단 한줄로도 1년이나 몇 십년을 이야기하고 끝을 낼 수 있지만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어떠한 사건들이 천천히 이뤄진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인 이야기 12권에 나온 사건들은 당시에 생활한 사람들에게도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사건의 연속이지 않았을까 한다.

 

하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가 즉위를 하자마자 몇 달 되지도 않아 죽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나중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지 않았을까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입장에서 4~5년 동안 재임하는 대통령들의 통치가 길지도 짧지도 않는 시기동안 일어난 일이지만 나중 몇 백년 후에는 찰나의 사건들로 구성될 수 있는데 이 당시의 로마에는 찰나의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로마라는 큰 덩치로 볼 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 아닐까 한다.

 

지금도 서민들이 편안하게 살려면 권력을 갖고 있는 계층이 평화롭고 변고없이 - 그 내부에는 엄청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 나라를 다스려야 자신들의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도 어느정도 참을만 하지만 이처럼 수시로 황제가 변경된다면 나라의 여론이나 인심이 흉흉해 지는 것을 막기에는 힘들지 않았을까 한다.

 

아무리 로마라는 나라가 원로원과 황제와 시민으로 구성되었고 그 사이에 군인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존재들은 서로가 권력을 더 갖고 들 갖고 있는 차이는 있을 지언정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공동체인데 황제에게 변고가 계속 생기고 원로원들은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니 자신의 한 목숨 건지기에 급급한 시민과 성격상 호전적인 군인들로 인해 로마라는 나라가 흔들리게 된다.

 

원로원 의원이 몇 백명이나 되는데 그 중에 지도자라고 할 만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좀 의아하기는 하다.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가 될 수 있음에도 그 자리를 노리는 인물이 많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만큼 로마라는 나라의 황제가 매력적이지 않고 고생만 죽어라고 하는 자리가 된 것이 아닐까? 제국의 최 정점에 서는 인물이 되는 것을 주저했다는 뜻이 되는데 권력의 달콤함을 무시할 정도로 로마라는 나라의 기운이 다한것이 아닐까한다.

 

그러니, 정치에 대해 모르는 군인들이 돌아가면서 황제가 된 것이다. 책에 나오는 문구인데 정치인은 정치와 군사를 알아야 하지만 군인은 정치는 몰라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건 맞는 말이다. 전쟁이 나 싸울 때는 군인의 전략 전술에 따라 승부를 벌이면 되지만 바로 그 전쟁을 해야 할 타이밍인지,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지는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사회가 혼란하면 총이라는 권력을 가진 군인들이 날 뛰게 되어있다. 싫어도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그들의 제안을 찬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죽어나간다는 것이다. 당시의 기술이나 의료체계의 문제도 있었지만 황제가 되자마자 칼에 맞아 죽고 좀 안정되었다 싶으면 병에 죽으니 나라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로마는 당시의 패권국가로써 호시탐탐 그 지위를 노리는 나라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12권 전에는 비록 짧은 제위기간을 가진 황제들이 있었지만 어느정도의 분량을 갖고 다루어졌는데 12권에 나오는 황제들은 딱 한페이지로 소개되고 마는 황제가 있을 정도로 약간의 군사력을 갖고 있고 어느 정도의 사회 권력층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거의 돌아가면서 황제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니, 황제라는 자리가 우러러보고 존경해야 할 자리가 아니게 된다. 오죽하면 로마의 수도에서 황제의 승인이랄 수 있는 원로원과 시민들의 승낙도 받기 전에 간단한 서류로 황제로 승인해 달라고 하고 원로원에서 승인을 받은 후 전장을 누빌까?

 

말 그대로 전장에서 전투를 하다 우두머리가 사망하면 본인의 욕심에 의하든 병사들의 추천에 의하든 황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면 로마에 사는 시민들은 자신들의 황제가 누군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 출신이지도 모르고 지내거나 황제의 이름을 알았다 하더라도 이미 그 황제가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된지 오래인 경우도 종종 있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로마가 망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정말 피부에 확 와닿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망해가는 정책들이 나오게 된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은 함유량의 조절이나 이탈리아에 속한 모든 시민에게 로마시민권을 준다든가, 군인에 대한 처우등이 당시에는 선한 의도로 행해진 일이지만 결국 의도하지 않게 로마를 망하게하는 시발점들이 되고 만다.

 

여러가지 정책들이 전부 결국에는 희소성이라는 것을 없애고 평등하게 주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어렵게 얻고 소유에 대해 남들보다 우월한 지위를 획득해야만 인간은 더욱 노력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점때문에 보수적인이야기를 저자가 듣게 되는데 일견 틀린 말은 아닌듯 하다. 그걸 꼭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는 없지 않을까 한다.

 

공정하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위로 올라가면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사회가 진정으로 올바른 나라가 아닐까 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 조건에 부합하여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약자에 대한 배려로 사회와 국가가 보다듬어 줘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당시의 황제들은 자신의 영광이나 이익을 위해 황제가 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황제가 되자마자 전부 나라 밖의 외적들을 물리치는데 온 힘을 쏟았으니 결코 쉽지 않은 자리였다. 나라도 그런 자리를 맡고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황제가 되어 편안함과 남들로부터 우러러 받는 권력의 달콤함보다는 자신의 능력여부와 상관없이 전장에 투입되어야 하니 얼마나 난감했을까? 그렇기 때문에 어떨 때는 몇 개월동안 아무도 황제를 하고 싶다고 나서지도 않아 공석이 된 웃기는 환경도 생기게 된다.

 

환경이 영웅을 만드는지 영웅이 환경을 만드는지는 모르겠다. 두 가지가 적당히 섞여 나타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카이사르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환경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 당시의 환경이 카이사르와 같은 영우을 만들었다고 볼 수 도 있으니 말이다. 12권에 나오는 황제들이나 사람들 - 영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니 - 은 자신의 능력여부와 상관없이 당시의 시대적 환경으로 인해 함몰된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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