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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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가진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또한, 역사는 자신이 아무리 공평하고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해도 자신의 가치관이나 역사관이나 사상등이 투영될 수 밖에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살아남은 자들의 말을 듣거나 그들의 기록을 찾아 역사를 서술해야 하니 힘없는 사람들이나 패배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승리한 사람의 관점이 투영되는 것이 당연하다.

 

역사를 서술하는 대부분의 책들이 일대기나 연대기식으로 구성한다. 역사란 과거의 기록이다 보니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연대기 순으로 하는 것만큼 머리속에 잘 들어오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 역사를 서술한 책들은 특정한 목적과 핵심을 근거로 역사를 바라보는 조금은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역사를 총 다섯가지의 방법으로 이야기한다.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라는 특정한 주제를 갖고 그 주제에 맞게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색다르거나 기존 역사채들과 큰 차별성이나 변별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역사란 과거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후대에 살펴보는 것이라 그 한계가 있고 사건 자체가 갖는 의미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논점이 달라 질 수는 있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첫번째 방법으로 '욕망'을 제시하는데 이 욕망은 사실 다섯 가지를 다 포함하는 주제다. 욕망이 바로 인간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더 갖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을 채운 후에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채운다. 그 욕망이 채워지면 한 국가가 아닌 다른 땅 덩어리까지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의식까지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 그 욕망마저 채우게 되면 결국에는 신이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 모든 욕망을 채운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바로 인간이 갖는 유한성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과거에는 개인의 욕망이 지극히 소박하고 그 중에 이미 선택된 인간들이 갖는 욕망으로 벌어진 사건들이 역사를 이루고 있다면 - 가진자의 논점에서 - 이제는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욕망이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고 이 욕망들이 모여 한 단체와 국가로 번져 이 욕망들을 채워주는 사람들이 그들을 대표하게 된다.

 

책에는 욕망중에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근대화로 넘어가며 커피가 기호식품이 된 것은 커피가 바로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정신상태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과거에는 차가 지금의 커피를 대체하고 있었지만 영어로 커피는'break time'이라고 하고 차는 'tea time'이라 하여 커피는 무엇인가를 각성하는 시간이라면 차는 쉬는 시간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대표된다고 한다. 예전보다 더 도시가 발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바로 도시가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고 해결하는데 더 유리하고 욕망을 소비해 주기 때문이란다.

 

다섯가지로 대변되는 주제를 다 읽고 바라보니 욕망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귀결된다는 보인다. 욕망의 주제 이후에 모더니즘이나 제국주의등은 비슷한 주제로 개인의 욕망이 발현되어 좀 더 갖고 싶고 더 잘 살고 싶어 근대화를 이루게 되고 이것들이 모여 제국주의가 발현되었다고 보인다. 이 중에 시선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이미 우리의 모든 것들은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우리를 감시하고 주시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에 대해 감시하고 내가 몇 시에 어느 곳에 있고 어떤 것을 주로 읽고 웹 서핑 하느냐를 토대로 얼마든지 마음대로 나를 제단하거나 단절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모여 지금은 정보가 권력이 된다고 하는데 이 정보라는 것이 결국에는 얼마나 더 많은 눈을 갖고 세상이 돌아가는 가를 알 수 있는 시선의 집합이다.

 

몬스터와 종교에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파시즘과 지구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기도교, 유대교, 이슬람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의 싸움에서 패한 것은 결국에 인간의 욕망을 발산시켜줄 수 있는냐가 핵심이다. 사회주의는 일정수준까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만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무한대로 충족시켜 준다. 이런 와중에 욕망이 덜 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거나 억압 착취를 받을 수도 있고, 이런 인간의 욕망을 공동체의 힘으로 발산시켜 한쪽으로 몰아 준 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가 이론적으로 더 완벽해 보여도 결국에 실패한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을 만족시켜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을 억제시키고 정화시켜주는 종교가 각 개인이 종교를 믿어 실천하면 좋은 쪽으로 발전하지만 각 개인이 뭉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욕망들이 모이면 그 자체로 다시 거대한 욕망으로 변해 종교가 갖고있는 의미와 이유를 망각하고 종교의 욕망으로 변해 모든 것을 집어 삼키게 된다. 이때에 개인의 욕망은 종교의 욕망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현재 가장 위험한 욕망이 바로 이 종교적인 욕망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참사나 다툼, 분쟁들이 이 종교적인 문제로 생기고 있다. 종교적인 문제의 어려움은 바로 배타성과 불관용에 있지 않을까 한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가 아니라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로 대변되는 이 논리를 뛰어넘는 믿음이 바로 모든 불행의 근원이 되고 있다.

 

향후 세계는 인간들의 이 욕망을 어떻게 다스리냐가 새로운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각 개인이 점점 똑똑해지고 과거와 같은 욕망을 채워주는 것으로 절대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종교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지만 이 종교가 다시 문제의 발단이 되고 있으니 어떤 방법으로 해결 될 것인지가 궁금하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도 갖고 있지 않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나 단체가 나타날 수도 있고,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숙제가 될 수도 있지만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 지금과 같이 특정한 사상이 세계를 지배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고 획일화된 적도 있고, 다양성으로 서로 신경쓰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일국 체제가 될 수는 있어도 유일 신이 지배한 적이 없으니 이 부분은 분명히 딜레마로 보인다.

 

결국에는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을 종교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소해야만 해결 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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