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성공시대 2 히틀러의 성공시대 2
김태권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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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성공시대'는 당연히 히틀러의 전 생애를 다룬다고 착각을 했다. 이 책이 한겨레신문에서 연재되었던 것으로 처음 기획부터 집권할 때까지만 다루기로 했단다. 그러다보니, 어딘지 모르게 괜히 찜찜하다. 읽다 만 느낌도 든다. 무엇인가 더 중요하고 궁금한 내용을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냥 연재가 끝난 느낌이다.

 

다른 면에서 볼 때 책의 제목이 성공시대라는 걸 보면 집권할 때까지가 성공시대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막상 집권을 한 후에 전쟁을 치루는 과정은 성공시대라기보다는 늪에 빠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쟁을 시작한 후로는 자신의 마음대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책에서 나오는 히틀러는 상당히 우유부단하고 자신의 일을 스스로 못하는 인물이다. 또한, 히틀러가 주인공인 작품이지만 히틀러보다는 오히려 주변인물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행동과 사고로 히틀러가 집권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실제로 히틀러가 그러 많은 것을 한 것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렇다고 히틀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대통령과 총리를 겸하는 총통이 된 것은 분명히 아니다. 야망이 있었고 고집이 있었고 타협을 하지 않았고 자신을 절대자로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런 노력들에 보태서 주변 상황들이 의도하지 않게 히틀러가 집권하게 만들었다. 다들.. 설마.. 했던 것이다.

 

히틀러보다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로 보인다. 주변 인물들의 열심히 삽질은 하고 자신의 이익을 노리고 한 행동들이 모이고 모여서 히틀러에서 유리한 환경으로 만들어주었고 결국에는 사람들이 히틀러 정당에 표를 준 것이다. 히틀러가 딱히 더 잘하거나 대단한 것을 보여 준것이 아니라 일관성있게 '똘아이'의 모습을 보여줬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작가의 의도적인 편집이 있기는 하지만 책에서는 참으로 기시감이 많이 느껴진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비슷한 점이 많다. 분명히 완벽하게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단언컨대 어느정도 의도는 갖고 있었을 것이라 보이지만 억지로 상황을 갖다 붙힌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히틀러 당시의 독일과 현재 이 땅의 상황이 오버랩된다.

 

그렇다면, 현재와 히틀러 당시의 독일이 비슷한 상황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절대로 그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역사를 볼 땐 아주 작은 사건에도 예기치 못한 소용돌이가 펼쳐지게 되어 있다. 일전에 광복절 특집 다큐 중에 일본에서 전쟁을 원한다는 책이 출판된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은 현재 일본에서 미래도 안 보이고 취업도 안되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전쟁뿐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말도 안되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고 이를 노려 자신의 이익으로 취하려는 인간들이 나오게 된다.

 

역사적으로 늘 자신의 곤란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을 외부로 돌린다. 국내에 있는 공통의 적을 만들어 다른 잡념이 떠오르지 않게 만들고 국내가 힘들면 외부로 적을 만들어 함께 물리치며 단결을 만들어 낸다. 충분히 현실에서도 가능한 방법이다. 특히, 이런 저런 이야기가 떠돌고 다양한 이념들이 쏟아질 때는 더더욱 그렇다.

 

민주주의에서는 이런 이념들이 소화되고 인정되지만 어느 순간 적대하고 인정하지 않는 순간 서서히 한가지 이념만 옳다고 여겨 어떠한 행동도 다 용납이 되고 무서워 자신의 생각을 펼치지 못하게 될 때 바로 히틀러 같은 사람이 우습지도 않게 권력을 갖게 된다. 지나고 보거나 주변에서는 말도 안될 것 같지만 그 경험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 되어 버린다.

 

내 생각을 옳고 당신 생각은 틀렸다는 생각으로는 절대로 대화와 협상과 합의점이 나올 수 없다. 내 생각과 다르지만 당신 생각을 존중하겠다는 정신이 바로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과도기 현상이라 믿지만 갈수록 이런 정신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우려가 든다. 워낙 흑백논리가 명확했던 시절을 보냈고 그게 사실 편했기에 그럴 것이다.

 

막상 '히틀러의 성공시대'를 읽으니 많이 아쉽고 너무 단편적으로 이야기가 다뤄지고 있어 깊이 있는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대략적인 당시의 상황을 알게 되었고 인물들과 친숙해졌으니 나중에 보다 깊게 다룬 책을 읽으면 훨씬 재미있고 집중해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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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성공시대 1 히틀러의 성공시대 1
김태권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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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인지 고등학생때인지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친척 집 형인지 누나인지 방에 '나의 투쟁'이라는 책이 병아리색 표지에 검은 글씨로 써 있는 책을 발견했다. 지은이는 '히틀러'였다. 무슨 불온 서적을 발견한 것과 같은 감정이 들었다. 당시 의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였는데 왜 그런 책이 있는지는 지금도 알지는 못하지만 그 책을 나중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여전히, 그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읽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히틀러의 성공시대'을 읽으니 '나의 투쟁' 읽을 생각이 사라지고 말았다. 책 내용이 엉망이고 논점도 왔다 갔다 하는등 여러가지로 글이라고 할 수 없다는 평을 읽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 책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고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많은 위인과 악인이 있지만 '히틀러'만큼 흥미로운 인물도 없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히틀러에 대해 사실 모른다. 그저 나치와 2차 세계 대전과 연관시켜 손을 뻗으며 '하일 히틀러'라고 외치는 이미지로 기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한다. 악의 화신으로까지 불리우고 있지만 가장 근대에 일어난 사건중에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라 더욱 이미지 과잉이 있는 인물이 아닐까싶기도 한다.

 

그러한, 히틀러에 대해 나도 궁금한 것은 있었지만 여러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뜨문 뜨문 봤던 지식이외에는 갖고 있는 상식이 없어 이 책을 발견했을 때 기쁨이 앞섰다. 무엇보다 만화가 아닌가? 게다가 김태권이라는 이름은 신뢰를 주기에 충분하다고 여겼다. 공정한 잣대로 알려주지는 못할지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잣대로 역사를 말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성공시대'는 한겨례 주말판에 연재되었던 것이라 한다. 전혀, 몰랐다. 뭐,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단행본으로 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싶다. 그렇게 히틀러라는 인물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입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단순하게 히틀러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히틀러와 그 주변인물을 함께 다루고 있어 히틀러가 발자취와 당시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준다.

 

특히, 괴벨스와 같은 인물은 선동가로써 마케팅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인물이 함께 언급되면서 히틀러와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들로 인해 히틀러가 어떤 식으로 성장하고 힘을 키우고 여러 부침을 겪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줘서 더 재미가 있었다. 어떤 영웅이라도 혼자만의 힘으로 올라 설 수는 없기 때문에 더더욱 주변인물을 살펴봐야 한다.

 

 

무척 똑똑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자신감을 똘똘 뭉친 히틀러라고 생각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많은 영상을 통해 본 히틀러나 드라마나 영화속에 나오는 히틀러는 선입견때문이지 몰라도 악인으로 보이고 절대 악인(??)인 만큼의 능력 소유자로 보이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무척이나 찌질하다고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데 있어 주변 사람과 상황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여도 본인의 능력과 의지가 있지 않았다면 그런 자리까지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라 본다. 그렇다 하여도 책에서 본 히틀러는 무척이나 찌질하고 소심하고 개념없고 즉흥적인 인물인데다가 오로지 자신만 아는 후안무치의 인물로 보인다.

 

일견, 바로 그런 점이 정치인의 미덕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 바라보는 사람들만 상대하고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도 충분하게 일정 정도의 포지션을 갖게 되고 헤게모니를 차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이상은 본인의 능력과 우연이 결부되는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히틀러가 바로 그런 천운(??)을 가진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거의 대부분 승자들은 한결같이 그러한 운이 공교롭게도 몇 번에 걸쳐 반복되며 얻은 경우가 많다. 운이라는 것도 본인이 준비되어 있고 노력할 때만 빛을 발한다는 점에서는 비록, 나쁜 방향으로 결과가 나왔지만 히틀러에게도 서서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상황이 착착 하나씩 하나씩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오게 된 것이다.

 

사실, 지나고 보니 그걸 알 수 있었던 것이지 역사의 현장에 있던 사람은 그 사실을 전혀 알 수 없다. 각자 자신이 최선이라 생각했던 욕망을 추구하던 인물들이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인물이 '승자독식'을 하는 걸 보게 된다면 어떨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히틀러가 잘한 것은 자신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가꾸고 기회를 노리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이상한 사람이라도 누군가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가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추종하는 사람과 세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세력에게는 적당한 떡밥만 잘 던져주면 계속 끌고 올 수 있다. 그걸 잘 한 것이 바로 히틀러로 보인다. 특히, 그가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만난 인연들을 자신의 것으로 잘 만들었던 것은 히틀러가 비록 당시 사회에서는 바보 취급을 받았을 지라도 개인적인 매력이 충분히 있었다는 뜻이 될 듯 하다.

 

히틀러에 대해 얼마나 많은 책이 나와 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히틀러의 성공시대'를 알게 되어 보게 되었는데 참 재미있게 잘 만들었다. 가볍고 부담없이 히틀러라는 인물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입문서로는 아마도 가장 훌륭하지 않을까 한다. 2권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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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 - 무슬림의 역습과 인간 살라딘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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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에서 마초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고 음모술수가 판을 치는 모습이 반복되다보니 재미가 덜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4권에서는 열심히 싸우는 모습이 나온다. 싸우는 모습이 마초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초적인 모습은 사실 실제 행동보다는 보이는 모습에 가까운 묘사일테니.

 

그런 점에서 이 책에는 마초적인 남자들이 참으로 많이 나온다. 역설적으로 그런 남성들이 대부분 자신들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조용하고 전혀 마초스럽지 못한 남성들이 권력을 잡아 더 큰 국가를 이룩한다. 몇 몇 사람들에게만 인기남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위치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의미는 철저하게 서양인의 관점에서 나온 용어일 것이다. 이슬람 쪽에서 보자면 십자군란이나 도적들의 땅빼앗기정도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국가가 성립되어 있고 대부분의 땅들이 국가에 편입되어 있지만 이 당시만 해도 정확하게 내 땅 네땅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 살고 있는 성을 기준으로 각자의 영역이 세워졌을 것이다.

 

또한, 처음부터 내 땅이다라는 개념이 확고하지 않았으니 굳이 십자군들이 아랍인들에게서 땅을 빼았다는 표현은 옳지 않을 수 있지만 십자군 당시에는 분명히 아랍사람들에게서 유럽인들이 땅을 빼았은 것이 맞다. 고로, 그들 입장에서 십자군은 나쁜놈이고 몰아낼 놈들이였다.

 

3권까지 그래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술은 하지만 그래도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십자군 이야기다 보니 이슬람보다는 유럽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좀 더 감정이입이 되게 되어있다. 4권에서는 이와 반대로 이슬람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입장때문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은 이슬람에서 서서히 힘을 규합하고 자각한다.

 

아무리 적의 적은 내 편이라고 해도 공동의 적이 생겼을 때 일단 공동의 적부터 헤치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슬람쪽에서는 십자군을 물리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십자군측에서도 지금까지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다지 뛰어난 인물도 없었고 대단한 정책을 펴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2차 십자군 원정은 겨우 며칠만에 패배해서 퇴각한 것을 보면 말 다 했다. 실력은 몰라도 지체높은 인물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이 점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십자군 원정대는 다들 한 구역씩 차지하고 있었지만 불안 불안한 줄을 타는 심정이였을 것이다.

 

이럴 때 이슬람쪽에서는 단순히 정복야욕만 있는 인물이 아니라 공정하고 정대한 인물들이 나와 흔히 말하는 여론을 이슬람쪽에 유리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때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샬라딘인데 이 인물의 이름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다. 책 소개에서는 상당하게 위대한 인물로 나오는데 정작 김태권은 그다지 영웅으로 만들지 않았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책에 나온 살라딘은 너무 과하게 그렸는지 영웅은 커녕 존재감자체가 미비하다 억지로 권력을 맡게 되는 인물로 보인다.

 

그나마, 인상적인 것은 평화를 사랑하고 책을 좋아하는 은하영웅전설의 양 웬리와 같은 인물이나 나같은 - 김태권식의 유머~!!! - 인물이라 오히려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나온다. 살라딘이 거대한 국가를 형성한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도저히 그럴만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음 권에서 좀더 확실한 활약상이 예고되어 있으니 좀 달라지리라 본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장 좋아보인다. 그렇다고 인간인 이상 어느 쪽으로 조금이라도 치우쳐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들은 한쪽을 선택하면 한 쪽은 악으로 규정하거나 말할 수 없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보인다.

 

보수니 진보니 여당이나 야당이니 하면서 자신의 편이 아니면 악이라는 흑백논리가 우리처럼 오랫동안 공산당이라는 눈에 보이는 악당을 눈 앞에 마주보는 나라가 갖게 된 가장 큰 철학적 논리적 아쉬움이 아닐까 한다.

 

지금 일본과 우리가 여러 문제로 반목하고 있지만 그걸 빌미로 한류를 탄압(??)한다고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미국을 싫어해도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처럼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을 같은 관점으로 올려놓으니 문제가 더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십자군 이야기에서 단순하게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십자군 이야기가 아니라 이슬람쪽에서 본 십자군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롭게 사고의 균형을 잡아주는데 도움이 된다. 이제 나나미 아줌마의 십자군 이야기를 읽으면 될 듯 한데 개략적인 내용을 머리속에 넣었으니 보다 자세한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나나미의 책은 읽는데 부담이 덜 할 듯 하다.

 

그나저나, 이왕이면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완결이 된 다음에 읽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6권으로 마무리가 되는 듯 한데 언제 5권, 6권이 나올지 모르겠다. 덕분에 역사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십자군 이야기에 대해 객관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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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 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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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과 2권은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무엇보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 자세하고도 제대로 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특히, 찜찜하다면 찜찜할 수 있는 이슬람에 대한 정보는 상당히 유익했다.

 

느낌상으로는 3권부터는 무엇인가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가 되는 것이 일반 소설류의 패턴일텐데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답보상태가 된다. 김태권의 의도 한것이 아니라 역사가 그러하니 역사를 서술하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리라 본다. 그렇다고 역사를 갑자기 입맛에 맞게 제단하거나 생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후의 이야기를 위해서는 사건 전의 역사는 필수적인 요소이니.

 

3권이 1,2권에 비해 재미라는 요소가 떨어진 것이 어쩌면 책에도 나온 것처럼 전쟁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기때문일 수도 있다. 십자군 이야기에서 싸움은 당연히 필수요소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니 말이다. 그러나, 3권의 제목이 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라는 것에 이 책이 나아갈 바를 보여준다.

 

예루살렘 왕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미 이곳을 십자군 진영에서 차지하고 있고 이슬람진영은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방치(??)되어 있었다. 멜리장드라는 여인이 주인공이 된 것은 그만큼 전쟁이야기보다는 정치이야기가 나올 것을 예측하게 한다.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 전쟁을 일으키는 위대한(???) 왕이나 장군이 될 수 있겠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도 그런 경우가 드문데 지금부터 1000년 전에 이러한 여성이 있었다면 당연히 클레오파트라나 잔다르크처럼 분명히 유명해서 우리에게 알려진 인물이 되었을 것이나 전혀 생소한 인물이라는 것을 보면 이 책은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음모, 간계, 암살, 배반과 같은 단어들은 정치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저절로 나오게 된다. 과거에 정치를 위해서 저런 단어들은 당연히 위정자들에게는 익숙하고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였다. 지금은 매스미디어와 발달과 집단이성의 발전으로 대놓고 하지 못하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적에게서 해방시키기 위해 출전을 했지만 결국에는 근처도 못 간 것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1차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예루살렘 근처의 다수의 땅을 차지하고 나름 국가라는 이름으로 통치도 하고 있었다. 아마도, 2차 십자군 전쟁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는데 그건 계속 읽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권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 있으니 그 이름은 바로 보에몽이다. 1권에서 간략하게 언급되고 2권에서는 맹렬한 활약을 하고 3권에서는 그의 아들이 나와 감초역할을 한다. 그만큼 십자군 전쟁 초기게 보에몽이라는 인물과 가문의 활약상은 당대에도 후대에도 주목할 만 한듯하다. 다만, 그 활약상이라는 것이 좋은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이고 약간 조롱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역사를 보게 되면 하루 단위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 한달이나 1년 단위로 보게된다. 1,000년 전의 이야기를 하루단위로 서술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다보면 단순하게 볼 때 전쟁을 하고 전쟁이 끝나면 승자들끼리 온갖 음모와 계략과 배반과 줄세우기가 활발하면서 이합집산이 이뤄진다.

 

이합집산이 끝나 줄세우기가 정해지면 그것으로 한동안 자기들끼리 수염만지면서 희희낙락하다 조금씩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만 그 당시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역사를 큰 틀에서 보기에 보일 뿐이다.

 

이처럼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그들끼리 공치사를 수렴하여 어느 정도 안정화 된 것은 전적으로 이슬람측이 자신들의 문제가 우선이라 그런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모르고 십자군측은 여전히 자신들이 잘 났다고 서로 내 땅, 네 땅하면서 땅 따먹기에 치중하고 있었다.

 

만화로 그려져 있어 자세한 설명보다는 여백의 미가 많아 그 간극을 약간은 추측으로 머리속에 마저 채워넣게 되는데 십자군원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조금은 아둔하고 욕심만 많고 현명하게 처신을 한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 보인다. 똑똑한 인물들은 다들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권토중래를 노렸는지 무위도식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십자군 원정은 눈에 보일정도로 기회의 땅이였을 것이다. 못 먹어도 고를 외치거나 죽기 아니면 내 땅먹기를 노리고 갈 만한 곳이였으며, 아직까지 뚜렷하게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절대 군주가 없다보니 군웅할거의 시대가 바로 십자군이 차지하고 있던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정학 위치와 정치적 시기가 아니였을까 한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권에 나오는 내용이 대부분 지들끼리 싸우고 다투는 모습이다. 나름 머리를 쓴다고 써서 권력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결국에 실패하고 다시 또 다른 놈이 나타나서 새롭게 머리를 써서 다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다보니 좀 재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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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 1차 십자군과 보에몽, 개정판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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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십자군 전쟁이 오합지졸로 이뤄진 군대였다면 - 실제로 특별히 기획하고 준비한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최소한 여기보다 먹고 사는게 더 좋을 것이라는 환상도 갖고 - 1차 십자군은 용어처럼 제대로된 군대였다.

 

세명의 공작으로 이뤄진 십자군이였는데 먼저 야심으로 똘똘뭉칭 보에몽과 어느정도 신앙심을 갖고 출전한 레몽공작, 어찌보면 등떠밀려 출전한 듯한 고드프루아이다. 이 중에서 두명과 달리 책 제목처럼 보에몽이 주인공이라 하면 주인공의 역할을 이 책에서 맡아 한다.

 

워낙 많이 이곳 저곳 출연을 하고 등장하여 온갖 일을 저질르고 음모를 꾸미고 1차 십자군이 역할에 혁혁한 공(??)을 세웠기에 보에몽에 대한 이야기가 다수를 이루고 가장 읽을만한 내용이지만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은 조금은 역겨운 보에몽의 활약상이다.

 

역겹다는 표현은 이중의 의미인데 십자군은 호기롭게 출발을 했지만 그들에게 펼쳐진 현실은 암담 그 자체였다. 무슨 놈의 전쟁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군량에 대한 계획이 이다지도 없는지 한심할 정도인데 분명히 자신들은 신의 대리인으로 이 땅에 선을 베풀기위한다는 집단 최면 - 위정자들은 아니였겠지만 - 에 걸려 당연히 가는 곳마다 자신들의 환영하고 먹을 것을 아낌없이 제공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기다린 현실은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아무리 선으로 시작했어도 - 실제로 그런 마음은 아니라도 -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정의와 양심은 변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혼자가 아닌 무리를 이룬 군중은 아주 작은 기회만 줘도 군중심리에 의해 개개인이 갖고 있는 양심은 사라진다.

 

나쁜 일을 해도 혼자하면 벌을 받지만 여럿이 군중을 이뤄서 행동하게 되면 의미있는 것으로 변질되어 잘하면 모든지 미화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1차 십자군에게는 일정 선을 넘었다는 것이 가장 큰 패착으로 보인다. 적전성만 지켰어도 이들이 후대에 그렇게 큰 욕을 먹지 않을 것이지만 그들은 음식을 빼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약탈에 살인에 심지어 몰살을 시키며 한 성을 완전히 아작내어 버렸다.

 

이런 와중에 가장 으뜸이 바로 보에몽이였는데 야망이 있는 인간이 가장 무서운 것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한다는 것이다. 가장 처참하고 비굴한 순간에도 버티고 버틴다. 심지어 보에몽은 살기 위해 인육먹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야욕을 위해 온갖 음모와 여론도 조성했는데 김태권의 십자군이야기에서 나온 보에몽은 그다지 똑똑하지는 않은 듯 하다.

 

흥미로운 것은 1차 십자군 전쟁이 승리를 했다. 그것도 크게. 이러한 이유가 십자군 측에서는 롱기누스의 창이라는 신화와 결부되어 기적을 통한 승리로 묘사되었지만 이슬람측에서의 문헌에 따르면 이슬람의 수장이 너무 거대한 권력을 갖게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전투하는 승리만 하고 퇴각했다는 것이다.

 

승리라는 것은 적과의 싸움이지만 결국에는 나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끔 월드컵과 같은 대회에서도 화려한 선수구성을 한 팀이 의외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대부분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조직력이 없어 졌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처럼 팀 스포츠에서 조직력은 개개인의 능력을 뛰어넘는다. 개개인의 능력이 조직력안에서 힘을 발휘해만 시너지를 발휘하는데 자신만 잘 났다고 하면 그 팀은 모래알 조직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속빈 강정으로 전락하여 탈락하게 된다.

 

이처럼 1차 십자군 전쟁에서 뜻하지 않은(??) 십자군측의 대승은 오히려 지금처럼 이슬람이 서양의 관점에서 적대적으로 변하게 되어 버렸다. 아마, 1차 십자군전쟁이 초라하게 끝이 났다면 어쩌면 십자군전쟁전에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간에 서로 반목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지냈던 것과 같은 흐름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한다.

 

분명히 그랬다해도 어떤 이유로든 다시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지만 이러한 1차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결과물들은 역사에 있어 전진을 가져다주지 않고 후퇴를 가져다 주었다. 인간의 욕심에 의한 - 인간의 욕심에 의하지 않은 전쟁은 없지만 - 다툼은 늘 파국을 맞이하고 인간 세상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이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바로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인문학에 대해 재미있게 자신의 책과 결부되어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잘난체 하기 위해서 인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설프게 읽고선 아는체 하는 인문학이 아니라 십자군 이야기에 나온 흐름을 인문학과 결부시켜 자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에서 어느정도는 작가의 의도를 강요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 위대한 사람을 등장시켜 효과적인 설득의 수단으로 - 여타의 인문학책들에서 어떠어떠하다고 떠드는 것보다는 훨씬 더 훌륭하게 보인다. 문제는 그런 인문학 책을 거의 읽지 않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어불성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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