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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평점 :
올 여름, 내가 읽은 책 중 추리를 포함한 호러소설의 최종 승자는 단연 <폐허>다.
이 책을 읽은지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몸 전체에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느낌이다.
<심플 플랜>으로 내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던 스콧 스미스는
<폐허>로 인해 당분간은 호러 부문에서 1위 자리를 지킬 것 같다.
하지만 그 1위가 오래 갈 것 같지 않은 것이,
그가 1993년 이후 써낸 책이 <심플 플랜>을 포함해 딱 두편이라는 것.
무슨 일이 그렇게 바쁜지 모르겠지만, 나같은 독자를 위해 제발 소설에만 전념해 줬으면 좋겠다.
<폐허>는 나보다 아내가 먼저 읽었다.
"아니 뭐 이렇게 무서운 책이 있어?"라며 혀를 내두르던 아내는
뒤를 이어 그 책을 읽던 나를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줄까?"라고 수시로 협박했다.
어느 분은 "스포일러 때문에 영화가 재미없다면 그건 영화가 원래 재미없었던 탓"이라고 말했지만,
막상 책을 다 읽고보니 아내가 결말을 가르쳐 줬다면 이 소설을 훨씬 더 재미없게 읽었을 것 같다.
내가 이 리뷰에 책의 내용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혹시나 이 책을 읽을 분들에 대한 작은 배려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대목.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5분 정도 입을 맞추고..."
키스를 5분이나 했는데 긴 시간이 아니라니, 난 반성해야겠다.
이제부터 책을 읽으면서 짜증났던 대목.
원작에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쉼표가 너무 많아 읽는데 힘들었다.
무시하고 읽으면 되지만 내가 워낙 강직한 스타일이라 쉼표가 나오면 꼭 쉬는데,
다음 대목들에선 쉼표가 내 독서의 흐름을 상당부분 방해했다.
"그가 지금 무슨 생각에 빠져 들었는지, 에이미는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입 안에서 구토 냄새가 감돌아, 벌떡 일어나 이를 닦고 싶었다."
"그런데 구토 냄새와 방광이 꽉 찬 느낌은, 그가 평소에 꾸던 악몽이 아니었다."
"일행은 호텔 로비에 모여, 밴이 오기를 기다렸다."
물론 중반을 넘어서자 "페이지마다 차오르는 전율이 서서히 당신을 조여온다"는 광고카피처럼 나 스스로가 공포에 사로잡혀버려 쉼표가 별 방해가 되지 않았는데,
내 지인 하나가 여자친구에게 작업용으로 어떤 책을 선물할까 물어보기에
대번에 "폐허!"라고 대답해 버렸다.
원래 무서우면 혼자 있기 싫은 법이니, 내 선택은 탁월하지 않았나 자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