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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사용후기 - 상식인을 위한 역사전쟁 관전기
한윤형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20대가 쓴, 그것도 소설이 아닌 사회비평서를 읽고 감화되는 건 좀 쑥스러운 일이다,라고 생각했었다. 나보다 어린 가수가 부른 노래를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사안인 게, 나이가 많으면 곧 우리 사회에 대해 아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의 대학생이 쓴 <뉴라이트 사용후기>만큼 내게 큰 깨달음을 준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이 책으로 인해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바꾸기까지 했으니, 정말 대단한 책이라 할만하다. 물론 저자인 한윤형은 그냥 평범한 20대는 아니다. 아흐리만이란 아이디로 안티조선 사이트에서 활동할 때가 10년 전이니, 그 후로 얼마나 내공이 쌓였겠는가? 그의 첫 번째 책 <키보드 워리어의 전투일지>가 아흐리만으로 산 지난 십년 세월을 정리한 것이라면, 두 번째 책 <뉴라이트 사용후기>는 한.윤.형.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첫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탁월한 논리와 문장력을 갖춘 데다 블로그에 쓴 글을 모아 책을 내는 대신 책을 내기 위해 글을 다시 쓰는 성실성까지 겸비한 그의 다음 책들이 기대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뉴라이트. 수구꼴통의 상징. 맨날 헛소리만 하는 애들의 집단. 내가 뉴라이트에 대해 아는 건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그네들 주장에도 일리는 있었고, 뉴라이트가 꼴통인 것처럼 내가 ‘우리’라고 믿었던, 소위 진보개혁세력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막무가내이긴 마찬가지였다. 난 한번도 뉴라이트의 주장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건 뉴라이트의 주장이 물의를 빚었다는 류의 기사만으로 그들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뉴라이트 같은 집단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느냐는 의문도 들지만, 문제는 뉴라이트가 ‘우리’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는 거다. 그네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모든 문제를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따위의 근원적인 명제로 돌려놓고 사태를 판별”해왔다. 친일파는 청산되어야 한다는 단순명쾌한 내 고정관념은 친일파에 대한 복잡다단한 심층구조를 알지 못한 소치였고, “민주주의를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세력의 문제로 바라”본 것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내 무지에서 비롯된 거였다. 나같은 사람에게 저자는 말한다. “이명박 시대의 민주화 후퇴를 말하는 지금,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깊게 성찰하고 있는가?(330쪽)”
저자는 진중권을 좋아하는 듯하며, 첫 번째 책에서 “책을 쓰며 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던 것 같다. 둘을 잠시 비교해 보면 논리와 글발은 진중권에게 전혀 뒤지지 않고, 설득력은 오히려 진중권보다 더 나은 듯하다. 진중권의 글은 조롱의 투가 엿보여 읽는 이가 수구꼴통인 경우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는 반면, 한윤형은 하나하나 조목조목 머리에 넣어주니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내가 더 이상 친일파 청산을 부르짖지 않게 되었겠는가? 우리나라가 좋아지는 데 수구꼴통의 회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한윤형의 책은 꼭 필요하다. 물론 유머감각은 진중권에게 많이 뒤진다. 하지만 책의 재미는 유머에만 있는 건 아니었고, <뉴라이트 사용후기>는 유머감각이 없어도 책이 무지하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고, 나이어린 사람에게 배우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오히려 자기가 옳은 줄 알고 계속 헛소리만 해대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부터 한윤형은 내 좋은 스승이다.
* 결정적 오타를 하나 지적한다. "개혁파가...전보다 낳은 정책수행력을 보인다면(3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