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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악마가 피리를 분다>를 드디어 다 읽었다.
읽어서 기쁜 이유는, 이제 드디어 이 책에서 벗어나 다른 책을 읽을 수 있어서다.
떠들썩하게 광고를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에 뒷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는 리뷰가 주렁주렁 달렸건만,
난 이 책을 읽기가 무지하게 버거웠다.
'끈기와 은둔'이란 내 성향이 아니었던들 이 책을 완주하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이 날 힘들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우기가 어려워서였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만,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워낙 탁월한지라 이름 외우기가 어렵지 않은데,
이 책은 정말이지 등장인물이 누가 누군지 책이 끝날 때까지 헷갈렸다.
궁여지책으로 등장인물의 연령과 지위를 정리해 놓은 46쪽을 접어놓은 뒤
모르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그 페이지를 펴 이해를 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이름은 계속 날 헷갈리게 했는데,
46쪽에 나오지 않은 사람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고마라는 여자와 다마라는 여자, 그들이 낳은 딸과 아들,
이런 관계가 얽히고 섥히며 내 머리에 거미줄을 치는데
어찌나 헷갈리던지.
두 번째 이유는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등장인물만 무서워한다는 것.
"사람들은 다들 모골이 송연했다"거나 "왠지 모를 으스스함을 느꼈다"고 묘사된 대목을 읽을 때조차
난 무섭기는커녕 잠만 쏟아졌다.
딱 한번 이 책을 읽다가 웃은 적이 있으니, 다음 대목이었다.
[코스케는...벅벅 다섯손가락으로 머리 위의 참새집을 긁어댔다. 너무 격하게 긁어서 비듬이 깃털처럼 흩날렸다.
"어머!"미네코(여자)는 당황해서 뒷걸음친다.
"너무해요, 선생님."
"아하하, 아니, 죄, 죄, 죄송...."]
폭소라기보단 실소였는데, 책에서 비듬이나 방귀, 침 같은 게 나오는 게 뜻밖이어서였다.
머리를 잘 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생각을 좀 해보자.
다른 분들은 다 재밌다는데 난 왜 재미가 없었을까?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서일 거다.
나이가 많아 어제 들은 이름을 오늘 까먹으니,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외울 수가 없다는 게 고령이 불리한 한가지 이유다.
두 번째로는 무서운 일을 하도 많이 당해서
웬만큼 무서운 것에는 눈도 깜짝 안한다는 거다.
최근 들어서도 미디어법이나 대운하처럼 무서운 일들이 잔뜩 벌어지는데,
책 속에서 몇사람 죽는 게 뭐가 그리 무섭겠는가?
역시 책은 젊을 때 읽어야 한다.
그 시절을 프로야구와 술로 보낸 게 후회되는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