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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베 미유키 여사가 쓴 <크로스파이어>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이 작가가 왜 점점 더 초능력 쪽으로 빠지는 걸까?
손에서 불을 내는 소녀라니, 정말이지 말도 안된다고!"
난 <이유>같은 사회소설을 좋아하는데, 미미여사는 점점 내게서 멀어지려 한다고 말이다.
<용은 잠들다>(이하 용잠)는 1992년에 쓴, 미미여사의 초기작 중 하나다.
이 소설에서 핵심이 되는 건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소년,
그러니 미미여사가 요즘 들어 초능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초능력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거다.
손에서 불이 나가는 건 싫었던 나였지만
이 책은 정말이지 숨이 막힐 만큼의 스릴을 느끼며 읽어나갔다.
무지하게 재미있게 읽었던 <낙원>에 미래를 예견하는 초능력 소년이 나오는 걸로 보아,
내가 초능력을 무작정 싫어하는 건 아닌 듯하다.
오히려 <용잠>은 미미여사가 그 후에 쓴 <스텝파더<나 <스너크사냥>처럼
초능력이 나오지 않는 소설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다.
이전 책들이 범인을 미리 알려주고 잡히는 과정을 그린 데 비해
이 책은 범인이 누군지 끝까지 몰랐던지라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미미여사를 좋아하는 건 그의 소설에서 은연중 드러나는 사회성 때문인데,
<용잠>을 읽다보면 미미여사를 그전보다 더 좋아하게 된다.
"어떤 형태건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살기 편하게 해주지 않고서야 문명국이라고 할 수 없다...전기 장치로 달걀 거품을 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왜 절실하게 편리함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에 그 기술을 사용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일까....그냥 참아라, 강해져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275쪽)"
가슴이 찡하지 않는가? 다음 구절도 멋지다.
"사실 '정상'이란 말은 마땅치 않은 표현이다. 정신이 썩은 인간이라도 사지만 멀쩡하면 정상이라는 얘기니까."(349쪽)
책의 제목인 <용은 잠들다>는 말은 누구나 초능력을 갖고 있지만
쓰지 않아서 사장된다는 뜻이란다.
주위 사람들밖에 모르는 일인데, 난 제법 초능력을 쓰는 편이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하나 소개하자면,
매제가 이번에 해외 연수를 가게 되어 환송회를 해줬다.
모자를 2-3일 간격으로 바꿔 쓰는 난 그때 하필이면 세인트루이스 야구팀 모자를 쓰고 갔는데,
알고보니 매제가 세인트루이스에 간다는 거다.
내가 갖고 있는 메이져리그 모자가 90개 정도고,
그 중 세인트루이스가 딱 두 개에 불과하니,
그게 일치할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난 그때 내 힘을 다시한번 느꼈는데,
"그게 국가적으로 무슨 득이 되느냐?"고 물을 사람들에게 미리 답한다.
"우리나라 여자선수들은 미국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많이 한다. 근데 그게 걔네들 실력만 가지고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