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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ㅣ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평점 :
책 추천을 할 때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언급한다.
읽으면서 내내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 그 책이야말로 소설에 재미를 붙이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 책의 저자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하지만 모든 작품이 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담보하는 미야베 미유키와 달리
히가시노의 작품들은 다소 편차가 있는데,
<라플라스의 마녀>는 아쉽게도 범작이었다.
이 책엔 내가 좋아하는 소재인 초능력자가 나온다.
그럼에도 이 책이 재미없었던 건, 그 능력을 쓰는 장면장면들이 그다지 공감가지 않아서였다.
초능력 소녀 마도카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계산을 엄청나게 잘해, 비가 언제쯤 올 것인지, 볼링공이 핀 몇 개를 쓰러뜨릴 것인지도 다 예측할 수 있고,
인형뽑기 같은 건 그야말로 도사다.
이거야 그럴 수 있다 쳐도 다음은 좀 너무하다.
사망사건 조사차 나온 아오에 교수가 여관 로비에 앉아 있는 마도카를 관찰하는 장면인데,
마도카는 테이블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앉아 있는 중이다.
그런데 옆에 있던 아이가 페트병을 넘어뜨렸고, 그 액체가 스마트폰 쪽으로 흐른다.
“아오에는 그 여학생 쪽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테이블에 내려놓은
스마트폰을 20센티미터 쯤 옆으로 옮겼다. 딱히 다급해하는 기색도 없었다.
액체가 테이블에 퍼지고 있었다....저러다가 자칫 스마트폰이 젖어버릴 것 같아
아오에가 도리어 속이 탔다. 하지만 그 여학생의 스마트폰은 무사했다.
닿기 바로 직전에 액체의 흐름이 멈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학생이 미리 조금 옮겨두지 않았다면 분명 젖었을 터였다.” (81-82쪽)
그러니까 그 여학생은 페트병의 액체가 어느 위치까지 도달할 것인지를 미리 예측했고,
딱 젖지 않을 만큼만 스마트폰을 옮긴 거였다.
이 장면은 내게 큰 거부감을 줬다.
이왕 옮길 것, 좀 여유 있게 옮기면 덧나나?
꼭 이런 식으로 자신의 초능력을 과시해야 할까?
하지만 마도카는 시종일관 이런 식이고, 이에 호기심이 동한 아오에가 꼬치꼬치 물어도
쌀쌀맞게 군다.
이런 인성의 소유자가 초능력을 가져서 뭐할 것인가, 하는 한탄이 나왔다.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못하니 소설의 재미가 떨어지기 마련,
“가슴이 철렁할 만큼 미인” (283쪽)이라는 여인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소설에 애정을 가져보려 했지만,
그 여자는 거의 활약이 없다시피하다.
마도카와 또 다른 남자 초능력자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뒤늦게 밝혀진 온천 살인사건의 비결이 감탄을 자아내는 것도 아닌 바,
<라플라스의 마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인 내게 깊은 실망만을 안겨줬다.
히가시노님, 다음 작품에서 명성을 만회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