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이 되었다. "해가 바뀌는게 뭐가 대순가. 그냥 인위적으로 인간이 지구의 공전주기 규칙에 따라 의미를 부여한 것 뿐인데." 라고 되네이면서도 난 늘 그렇듯 연말 해넘어가는 방송을 늘 생중계로 시청한다. 다른 가족들은 거의 항상 이른 잠자리에 들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버텨 보고야 만다. 재야의 종소리도 오랜만에 들었고 새해 카운트 다운은 늘 듣는다. 생각보다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남들이 이 시기를 좋아하는 분위기라도 즐기는게 확실하다.
12월 초에 직장에서 회식을 했다. 학생을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직장 동료 대부분이 3-4월에 코로나를 앓았다. 난 우리 부서 중 유일한 순종 무감염자였는데 이를 과시하듯 연말까지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직장에서 연말에 상줘야한다고 으스댔다. 다들 어이 없다는 듯 쳐다보았는데 바로 다음 주인 12월 둘째 주 어디선가 코로나에 걸려온 큰 아들 녀석에 의해 감염자가 되고 말았다. 하여튼 쓸데없는 말은 화를 부르는 법이다.
직장 특성상 12월은 무척 바쁘다. 사실 3월과 더불어 가장 바쁜 시기인데 나의 직책은 12월이 정말로 더욱 더 바쁘다. 그런 시기에 일주일을 일을 못잡고 날리니 무척이나 속이 탔다. 물론 원격으로 상당부분 처리하긴 했지만 그럴 수 없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일주일의 격리 후 복귀하여 다시 밀린 일을 따라잡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집둥이라 어디 잘 안나가도 잘 버티는 성격인데 생각보다 일주일간의 격리는 힘들었다. 그리고 코로나는 생각보다 아팠다.
하여튼 그렇게 2주가 지났다.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왔다고 생각하던 무렵, 아버지께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우리 엄만 2009년 4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뇌지주막하출혈이었다. 당시 부동산을 하시던 엄마는 머리가 무척 아프다고 아버지께 연락을 했다. 아버지와 동생이 부랴부랴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거기서 혈관이 터졌다. 목격한 동생의 말로 몸의 구멍에서 모두 피가 스며나왔다고 했다. 의사는 이 부분의 출혈은 수술을 해도 생존률이 30%정도이고 살아남아도 손상이 심해 예후가 매우 좋지 않다고 했다. 아버진 수술을 고민했지만 당시 어렸던 나와 동생 그리고 뇌출혈이 휴유증이 뭔지 모르는 가족들은 수술을 감행했다.
그렇게 엄마는 14년을 와병했다. 움직일 수 있는 부위는 머리약간과 오른팔 약간에 불과했고, 정신은 중증 치매에 가까웠다. 수술 한달 정도 후 의식을 차렸고 좋아지는 듯 했지만 적극적인 치료에도 상태는 내리막이었다. 요양원에서 9년 요양병원에서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돈은 돈대로 많이 나갔고, 어느 순간부터 일상적인 엄마의 모습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런지도 오래되었다. 엄마는 내 안에서 서서히 죽어갔던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본가를 찾아 엄마를 봤다. 코로나로 요양병원은 상당히 엄격한 면회 제한을 했기에 실제로 뵙는건 거의 2년만이었다. 멀쩡할 무렵 나처럼 무척 살이 많던 엄마는 피골이 상접해 있었고 눈도 잘 뜨지 못했다. 다행이 데려간 다섯 살 둘째 녀석이 할머니가 신기한지 옆에 누워 30분 이상 장난질을 쳤다. 이게 엄마에게 괴롭힘이었는지 재롱이었는지는 난 알길이 없다. 그냥 좋아하셨을 것 같은 느낌 뿐이다.
오후 3시에 집으로 돌아가 7시가 될 무렵 아버지께 연락이 왔다.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본가로 돌아가 장례를 치뤘다. 최근 코로나 창궐과 강추위로 사망자가 많아 장례를 크리스마스부터 치뤘다. 다행히 상조를 가입해 두었다. 이거나마 없었다면 정말로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오래 누워계셔서 언젠가 이런 날이 올줄 알았고 그래서 괜찮을 거란 생각은 오산이었다. 그건 그것이고 실제로 돌아가심은 무척이나 달랐다.
그렇게 12월이 가버리고 1월이 왔다.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여 엄청나게 쌓여있는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간 내 직장생활에 야근은 없었는데 벌써 3일째다. 2022년의 12월은 정말 아픈 달이었다. 이런 시기가 다시 있을까 싶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10일이 지났지만 지금도 문득, 갑작스레, 아무이유없이 불연 듯 생각이 난다. 그럴때 마다 말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죄송해요, 또는 잘 살께요다. 종교도 전혀 믿지 않고 생물체가 죽으면 원자 수준에서 다른 무기물이나 유기물의 일부로 구성된다고 믿으면서도 좋은 곳으로 가셨다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잘 계시고 평안하며 나와 가족을 바라보고 지켜주실 거라 믿는다. 내가 운이 없다면 가까운 시일내에 천수를 누린다면 다소 훗날 죽겠지만 그 순간에도 찾는건 엄마가 될 것 같다. 사람은 늘어서도 어려서도 항상 엄마를 찾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