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말하다 - 우리 미술이 발견한 58개의 표정
박영택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추녀다. 
가을이 되면 진득하게 붙어서 책 읽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이리저리 나다닐 궁리다. 

점심시간에 걷기 좋은 가로수길 어딘가에 가서 채 물들지도 않은 은행잎을 보며 궁시렁거리다가,
앞서 가는 다정한 미중년을 보게 되었다.
나는 같이 가로수길을 걷던 이와,
'중년에 저렇게 다정할 수가 있느냐?필시 불륜일게다.'
따위의 엉뚱한 실랑이를 벌이다가 급기야 확인사살을 하게 되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그들이 불륜인지 아닌지는 알아 차릴 수 없었다.
팔장을 끼고 걷는 이는 까만 선그라스를 낀 맹인이었다.
하지만 눈이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얼굴 한가득 웃음을 띠고 있었고,
그 광경만으로도 충분히 내겐 부끄러움이었고 부러움이었다.

손의 감각으로 사람의 상태를 읽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으로는 더 미루어 짐작하기가 쉬워진다. 
왜 나는,한쪽 팔에 달랑달랑 매달려 걷는 그 광경을 보고도 맹인이라고 생각을 못했을까?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걷는 그 걸음걸이가 마냥 부러웠던 건 아닐까? 

평상시의 나였더라면,짧은 시간 안에 하나라도 더 읽어내려고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보여주는 걸 그대로 쫒다가는 헷갈려서 낭패를 당하는 고로,
누가 읽어주는 걸 그대로 따른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그 이면에 숨은 것들을 잡아내야 한다. 

이 책은,대형서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훑어보려 하다가,그림,판화,조각,사진 들이 너무 맘에 들어 홀라당 안아오게 되었다.
거기에 해설을 붙인 박영택의 글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한권의 책에서 공감각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저자<박영택>에 관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나는 '얼굴이 말하는' 바를 읽어낼 수 있는 비법에 관한 책이 아닐까 호기심을 가졌었다. 
하지만,이책에는 수많은 얼굴들이 등장하지만,'얼굴이 말하는 바'를 요점 잡아 읽어내는 법에 관한 책은 아니다.

하나의 고착된 작품 한점을 가지고도,보는 사람에 따라 무수히 다른 표정을 읽어낼 수 있단다.
그것을 '박영택'은,
'이것은 미술평론도 아니고 미술사 논문도,작가론도 아니며,그렇다고 마냥 물렁거리는 감상으로 눅눅해진 수필도 아닐 것이다.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두루 섞어놓은 글,특정한 이름으로 규정되기 어려운 문장이자 문체였으면 한다.얼굴 이미지에 기대어 독해하고 고백한 어떤 흔적의 행간이었으면 한다.'
라고 책머리에 소박하게 얘기한다.  

책 표지의 얼굴을 가린 그림은'양유연'의 <숨바꼭질>이란다.
여기서 그는,얼굴이 아닌 얼굴을 가린 손에 대해서 집중조명한다.
제목은 '얼굴이 말하다'이지만...
얼굴만이 아닌 손에 대한,손의 숭고한 노동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래서 그의 글들에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었고,그래서 이렇게 울림이 남다른 건지도 모르겠다.

'농부들이 고된 노동을 통해 작물을 길러내듯이, 그 역시 상당한 노동을 통해 그림을 그려낸다...그에 따라 농사짓는 노동의 미덕을 내재화해서 그림 그리는 일의 당위성을 확보하는 차원으로 바짝 끌어당기고자 한다.(39쪽)' 

52쪽의,
'어떤 사람의 공간을 엿볼 때 제일 먼저 그곳의 책을 본다.책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모든 것을 어느 정도 대변해주는 핵심 단서처럼 다가온다..그의 관심사,기호,취향,그리고 세계관 같은 것들을 은밀히 접촉하고 있다는 기분도 든다.사람들은 살면서 다양한 책을 소유한다.그 책들은 그가 어느 시간대에 필요로 했던 순간을 환기한다.책을 통해 우리는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삶이 어떠해야 할지를 가늠하곤 한다.해서 그 사람이 읽고 지닌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 것도  같다.그 사람의 책은 그의 얼굴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책을 한 권 읽은 사람이라고 한다,자신이 읽은 책 한권에 저장된 지식을 갖고 평생 살아가는 존재다.그는 무슨 말만 하면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들먹이며 강변할 것이다.오로지 자신이 읽은 책 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다.그런 이들은 차라리 책 한 권도 안 읽은 이들보다 못나고 무서운 존재다.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힘닿는 한 열심히 읽고 생각하다가 죽는 일이다.그렇기에 무엇을 안다고 확신하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공부란 그저 하다 가는 일이다.편견에 사로잡히거나 편협한 사고를 하거나 특정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으면서 나아가는 일이다.' 
같은 구절은 내가 사람을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을 보면 그래서 좀 무서울 때도 있다.

또 62쪽의,
'오윤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의 작품이 말할 수 ('없는'정도가 생략되지 않았을까?)어떤 친근함으로 다가옴을,알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그만의 내음이 질펀했고 아득했다.그것은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오윤이란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였다.그만의 지문 같고 체취 같은 사상이다.마치 박수근이나 장욱진,권진규의 작품이 멀리서 봐도 그 사람의 체취로 혼절할 것 같듯이 말이다.'
같은 경우는 어떤가?
그림이나 사진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도 곁에 두어도 좋을 것 같다.
그도 충분히 그만의 지문과 체취,'문체'라는 것을 내게 각인시킨다.

105쪽의 '먹처럼,멍처럼' 
113쪽의 '얼이 깃든 굴'
따위의 언어 수사는 또 어쩔 것인가 말이다. 

70쪽의'어떤 상황에 몰입된 인간의 얼굴만을 응시하고 있다.빠른 붓질과 핵심적인 부분만을 처리해나가고 나머지는 비워두었다.그 여백은 보는 이들의 상상과 감정이입을 허용하는 공간이다.' 
는 요즘 내가 고민하는 비워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당시부터 그는 형식적완결성보다는 다소 미완인 상태지만 정신적으로 고양된 단순 고졸한 형태에 더 매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원시적인 조각들에서 풍기는 강렬한 생명감과 정신성에 그만큼 관심이 컸다는 얘기다.(118쪽)' 
권진규에  대한 해석에 이르러 그의 전공을 상기시킬 수 있었으며...

'그러니까 이성이 통제하는 심리적 질서가 파괴되면서 굳게 닫혀 있던 무의식의 뚜껑이 벗겨지는 것,그것이 바로 불안이다.(131쪽)'
위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정신의학과 철학도 넘나든다.

이쯤되면 무조건 일독을 권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그래야만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를 덤으로 읽어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과 표정에 관한 책이어서 일게다.
이 책을 읽는 내내,'파울 클레'의 <앙겔루스 노부스>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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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0-09-30 03:29   좋아요 0 | URL
아, 재밌을 것 같아요. 괜히 리뷰를 읽었다는 후회가 뒤늦게 찾아옵니다.
사고 싶고, 읽고 싶은 책들이 워낙 많아서 이제 나무꾼님 리뷰는 안 읽고 싶어요! ㅠ.ㅠ

손의 감각으로 사람의 상태를 읽어야 하는 직업.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양철나무꾼 2010-09-30 03:38   좋아요 0 | URL
이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뭐하세요?
봄날 식스 팩을 위하여 몸을 만들고 계셨나?ㅋ~.

제 리뷰는 안 읽어도 용서해 드릴테니,
'날씬하네요'같은 잼난 페이퍼 많이 올려주세요~^^

마녀고양이 2010-09-30 08:50   좋아요 0 | URL
굉장히 좋은데?

자기 페이퍼도 좋고, 책의 스크랩 부분도 좋고.
석달동안 책을 사지 않겠다는 터무니없는 결심 중이지만,
일단 장바구니에 넣고, 석달 후에 사야겠다......... ^^

자기 손은 아주 예민할거야. 담에 만나면
요모조모 살펴봐야지,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서.
내내 내가 자기 손만 만지작거리면서 장난쳐도 용서해 줘~ 크크.

글구! 언니인 내가 잔소리 하건데
일하는 사람이 새벽 세시에 머하는 거야!!! 피부 망친다 그랬지!!!

양철나무꾼 2010-09-30 11:51   좋아요 0 | URL
난 사람들이랑 부비부비 좋아해~
계속 내 손 만져줘.

갑자기 이런 생각도 나네.
이름만 대면 다들 아는 정치인 중에서...악수를 할 때 꼭 손바닥을 간질이며 장난을 치는 사람이 있는 데...

나두,피부 망치는 건 심히 걱정되는데...
지금 공부하는 거 새벽에 집중과 몰입이 잘 된단 말야~ㅠ.ㅠ
뭐,좋은 방법이 없을까요,마고 언냐?^^

마녀고양이 2010-09-30 13:21   좋아요 0 | URL
그럼 좋은 마사지 크림이라도 사서,
내내 열심히 발라! 새벽 공부할 때 얼굴에 팩하고 공부하고!
내가 보기엔,,, 그런거 하나두 안 하지?
맨날 숨쉬는 운동만 하구~ ^^

그런데.... 아무리 집중이 잘 되어도, 새벽엔 잠을 자야하는데 말야.

hnine 2010-09-30 08:58   좋아요 0 | URL
불안과 무의식이 그렇게 연관지어 지는군요.
함민복의 시는 저 책과 또 어떤 관련이 있길래??
한번에 다 알려주지 않는 양쳘나무꾼님~ ^^
손의 감각으로 사람의 상태를 알아내는 일, 저는 알것 같아요 ^^
역시 훌륭한 리뷰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9-30 11:54   좋아요 0 | URL
이 책의 저자,내공이 보통이 아녜요~
전작들도 찾아보고 싶어져요.

훌륭한 리뷰라고 칭찬해주셔서...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0-09-30 11:47   좋아요 0 | URL
손이 닿는 느낌이 참 좋은 사람이 분명 있어요.
제손은 타인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궁금해요.
나무꾼님이 제손을 잡아봐야 아실텐데요.
한번 봐주세요.^^

양철나무꾼 2010-09-30 11:5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의 글이 제게 닿는 느낌은 정갈하고 따뜻해요.
님의 손도,마음도 그러실거예요~^^

쟈니 2010-09-30 13:29   좋아요 0 | URL
오윤 화가의 그림이었던걸로 기억되어요. 얼마전 아시아 리얼리즘에서 본 그림인데, 쌀포대에 그림을 그렸다고 하더군요. 농사의 고단함. 무거움. 그 아래 아버지의 편지.. 등이 마음에 묵직하게 와닿았습니다.

저도 이책 읽고싶어지네요. ^^

양철나무꾼 2010-09-30 14:49   좋아요 0 | URL
착각 하셨던 것 같아요.쌀포대에 그린 저 그림은 '이종구'라는 화가의 작품이고요~
오윤은 박노해와 백무산 시집표지에서 보던 그 판화요~
전 이제 박노해는 별로인데,오윤의 판화가 종종 보고싶어 들출 때가 있어요.

9월 마무리 잘 하시고요,10월에는 좀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10-09-30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30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9-30 17:20   좋아요 0 | URL
글은 그 사람의 얼굴...맞져.
책은 그 사람의 역사가 되구.
한 마디 한 마디...뱉어내어 흩어지는 말들조차 나를 이루는 것들인데, 나로인해 표현되는 그것들에 정성과 공을 들여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글 보고갑니데이^^

양철나무꾼 2010-09-30 23:44   좋아요 0 | URL
전 때때로 maggie님의 댓글이 시나 경구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머큐리 2010-09-30 18:49   좋아요 0 | URL
찜!!

양철나무꾼 2010-09-30 23:47   좋아요 0 | URL
저요,책이요,이 리뷰요,앙겔루스 노부스요?
참고로...전 돼지는 찜보다는 보쌈으로다가 먹는 게 더 맛나던데...ㅋ~.

머큐리 2010-10-01 12:19   좋아요 0 | URL
양철댁이 거론한거 다 찜!!

저도 보쌈이 좋아요..ㅎㅎ

양철나무꾼 2010-10-01 21:19   좋아요 0 | URL
ㅎ,ㅎ...앙겔루스 노부스 보고 알아봤어요~
저도 찜!!!

꿈꾸는섬 2010-10-01 00:37   좋아요 0 | URL
아, 양철나무꾼님 전 군침만 꿀꺽 삼켰어요. 도서관에 신청할까봐요. 9월 과다지출로 허덕이고 있거든요.ㅜㅜ 꼭 이럴때 좋은 책들이 더 보인다니까요.

양철나무꾼 2010-10-01 20:51   좋아요 0 | URL
전 10월에도 과다지출 예정이예요.
친정 아부지와 시어머니가 한날 생신이시지~
울 아들 탄신일이 있어주시지.

맞아요,이럴때 좋은 책들이 더,더,더 눈에 보인다니까요~^^

같은하늘 2010-10-01 00:49   좋아요 0 | URL
서재활동 못해도 잊지 않고 저를 찾아 주시는 양철나무꾼님께 감사해요.^^
저도 이 책 너무 궁금했는데...
요즘 같아서는 책을 손에 붙잡을 시간도 없지만 찜해 두려구요.^^*

양철나무꾼 2010-10-01 20:53   좋아요 0 | URL
책이 좋은 게 그런 거겠죠~
어디 도망가거나 하지 않는거...
잘 쟁여두었다가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다는 것.

서재 활동을 열심히 하시든,그렇지 못하시든...
제겐 여전히 '같은하늘'이신걸요~^^

2010-10-01 02:48   좋아요 0 | URL
{얼굴이 말하다} 흥미로운 책이군요. 언젠가 구해 읽어야겠네요. 저도 얼굴과 관련해 책들을 조금씩 구해두었는데, 겨울에 여러 권을 함께 읽어보려고 합니다. / 함민복 시인의 시를 읽어드리고, 또 읽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던 돌아가신 어머니 모습이 떠오르네요. 지난 해에는 그의 시집{말랑말랑한 힘}을 구해서 몇몇 시편은 되풀이 읽곤 하였네요.

양철나무꾼 2010-10-01 20:56   좋아요 0 | URL
겨울이 되면 좀 한가해지시나 봅니다.

'함민복'님 좋죠~
읽다보면 전 말랑말랑해 지는게 아니라,결연해지는 것 같아서 탈이지만...
암튼 어렵기만 한 시를 쓰지않아서 좋아요.^^

2010-10-01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1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4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4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0-06 11:10   좋아요 0 | URL
얼굴과 한국 미술에 대한 내용이라 흥미가 가는 책이네요^^
함민복의 시,, 참 제목만 들어도 짠합니다ㅠㅠ
간혹 수많은 알라딘 리뷰들을 읽으면 양철나무꾼님의 글들이 발견하곤 했었는데,,
닉네임도 한 번 보고 나니깐 잊혀지지가 않았구요
드디어 양철나무꾼님의 서재에 들리네요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ㅋ

양철나무꾼 2010-10-11 03:10   좋아요 0 | URL
앗,죄송~!!!
이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그쵸,함민복님의 시는 생활 속에서 깨달음을 줘서 그런가...제목만 들어도 짠해요~ㅠ.ㅠ
 
그랑프리 - Grand Prix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난 제주도 풍경이 아니라 한편의 영화를 원했어요.이건 아니잖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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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9-28 13:30   좋아요 0 | URL
내가 양동근에게 홀릭하여 헤어나오지 못하는 건 맞지만,
그래도 제주도 풍경이나 김태희 얼굴이 아닌...영화를 보고 싶었다.

머큐리 2010-09-28 15:57   좋아요 0 | URL
오호~ 양동근에게 홀릭하셨더랬어요~~ㅎㅎ

양철나무꾼 2010-09-28 23:13   좋아요 0 | URL
이 영화에서도 양동근은 절 실망시키지 않았어요.
랩처럼 읊조리는 대사와 느긋한 듯,은근한 태도...다 좋았어요.
평점의 별 세개는 다 양동근의 몫이예요~^^

순오기 2010-09-29 11:31   좋아요 0 | URL
나도 김태희 어설픈(?) 연기를 굳이 돈내고 볼 필요 있을까... 그래서 안 봤어요.ㅜㅜ
그러고보니 9월엔 아직 영화 한 편도 안 봤다는...
9월 할인쿠폰 날리지 않으려면 예매라도 해야겠어요.^^

양철나무꾼 2010-09-30 02:37   좋아요 0 | URL
말은 다시 달릴 수 있다지만,
김태희는 다시 달릴 수 있을까 싶었어요~

꿈꾸는섬 2010-09-29 11:43   좋아요 0 | URL
ㅎㅎ양동근 은근 매력있지요.^^

양철나무꾼 2010-09-30 02:37   좋아요 0 | URL
'은근' 아니고 '지대루'요~^^

마녀고양이 2010-09-29 14:05   좋아요 0 | URL
난 절대 안 땡겨뜸, 이 영화.
땡기지 않는 영화는 누가 머리채 잡고 끌고 가기 전까지는 잘 안 봄... ㅋㄷㅋㄷ

양철나무꾼 2010-09-30 02:39   좋아요 0 | URL
예전에 양동근은 매력 있다고 인정했었잖아~ㅋㄷㅋㄷ

기억해 두겠음.
마고님께 영화보러 가자고 할때는,
말로 할 게 아니라,머리채를 잡고 끌고가야 한당~^^
 
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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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는 내내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떠올렸다.
슈베르트가 말년에 죽음을 예감하고 썼다는 이 작품이 침울하고 어둡다기보다 생기있고 경쾌한 그런 것이었듯이, 
<책도둑> 역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작중화자가 '죽음의 신'이기는 하지만...희망을 잃지않는 사람들의 얘기를 다루고 있어서 인 듯 하다.

이런 내용을 암시라도 하듯,얘기가 주로 펼쳐지는 빈민가 거리의 이름은 힘멜(독일어로 '하늘')이다.

평상시의 독서습관대로였다면,
주인공인 책도둑'리젤'을 따라가며 읽든지,
작중화자인 '죽음의 신'에게 감정이입을 했어야 하겠지만,
지리산의 햇살 한조각 바람 한줌을 부탁하였더니,
지리산 자락 야생으로 자란다는 하동녹차를 가져다 준 사람을 아는고로...
그를 떠올리며,리젤의 양아버지인 '한스후버만 '을 쫒을 수 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리젤이 10권의 책을 훔쳐가며 성장해가는 성장기록인 것처럼 보여지지만,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한스후버만과 로자 후버만 내외가, 
다소 거칠게 보이지만 속정 깊게 양녀를 잘 키워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스 후버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양녀 리젤을 위하여 침대맡에앉아 밤을 지새우고,
전쟁터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친구의 아들 막스를 유태인임에도 불구하고 숨겨준다.
끌려가는 유태인 행렬에 빵을 건네주어 더시 전쟁터로 끌려가기도 하고,
(이책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이기도 한)리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든 후, 
죽을 고비를 맞게 되는 막스를 향해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며,
희망의 선물로 리젤이 '어떻게 하늘 한조각을 줄 수 있을까?'고민하자
방법을 알려주는 인물이기도 한다.

이런 한스를 책에선,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사람은 배경에만 머무는 능력을 지녔다.'
'그 눈은 선한 마음으로,은으로 이루어졌다.'
'한스는 완벽한 연주를 하는것이 아니라,따뜻한 연주를 했다.심지어 실수를 해도 거기에는 어떤 좋은 느낌이 있었다.'
라고 묘사한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뿐만 아니라,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가장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이상적인 덕목이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이들이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부둥켜안고 같이 울거나,
절망의 구렁텅이에 같이 빠져버리는 사람들을 많이보어왔었던 터라...
(한스가 거의 눈에 띄지않고 배경에만 머무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이 힘든 상황에 처했을때,
주변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녀인 리젤 또한,한스를 금방 좋아하고 존경하게 된다.
리젤과 한스의 깊은 유대관계를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아빠가 하는 일의 기술적인 면을 알게 되자 리젤의 존경이 더욱 커졌다.빵과 음악을 나누는 것도 좋은 일이었지만,아빠가 자기 일에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능력은 매력이었다.'
하는 구절이 나온다.

먹을 게 없어 항상 굶주려야 했던 그 시절의 정황 상,
"네가 삼페인병이 페인트를 펴는데만 쓰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지."
하며 리젤이 샴페인을 처음 맛보게 되는 장면도,
한스와 리젤의 상호간의  따뜻한 배려와 신뢰를 느낄 수 있어 기분 좋았던 대목이다.

얼마전에 읽었던 '비밀의 계절'에선
'처음 술을 먹었을 때의 느낌'이라고 하여 작가의 경험부족에서 오는 애매함이 느껴졌다면,
 이 책에선 구체적이고 섬세한 작가의 저력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던 부분이 있다.

"...찬란하게 부서져버린 규칙이 맛을 느낄 수 있었다.거품들이 리젤의 혀를 먹었다.배를 콕콕 쑤셨다.다음 일할 곳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속에서 바늘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또 하나의 표현은 리젤이 가장 친한 친구 루디의 주검에 키스르 하는 장면이었다.

'...먼지가 끼었지만 달콤한 맛이었다...입술에 살이 진 느낌이었다.'

유난스럽지 않은 일상의 언어들이 어찌 이렇게 가슴을 두드리는 큰 울림이 되어줄 수 있는건지...

암튼 리젤의 양부모가 리젤에게 흔들리지 않는 배경으로 사랑과 희망을 주었다면,
리젤은 양부모에게 받은 사랑과 희망을 버팀목 삼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랑과 희망을 전해준다.

두려움이 가득한 공습대피소 사람들의 심리는
'음들이 로자의 숨에서 태어나 입술에서 죽었다.'
하는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

리젤은 겁에 질린 눈들이 자신에게 매달려있다는 것을 느끼며,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듯 단어들을 잡아당겼다가 숨으로 뱉어내는 책읽는 행위로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준다.

말은 이렇게 상처입은 사람들을 치유하기도 하지만,
지도자 통치자의 말 한마디는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결국,책도둑 리젤은 책을 훔치고 읽는데 만족하지 못 하고,자신의 일들을 책으로 쓰게된다.

리젤은
'나는 말을 미워했고,
 나는 말을 사랑했다.
 어쨌든 나는 내가 말을 올바르게 만들었기를 바란다.'
라고 얘기한다.

이 책은 독일어를 그대로 음역해 놓고,그 옆에 뜻을 번역해 놓은 부분들이 곳곳에서 눈에 띤다.
보다 나은 의미전달을 위해서 그랬겠지만,
그로 인해서 독일어가 주는 리듬감 때문에 시적이고 서정적이라는 느낌이 더한 거겠지만,
언젠가 배웠던 알퐁스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나,창씨개명 등이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때는 전쟁에 패한 약소국이어서였겠지만, 
요즘 대통령인수위원회의 '영어예찬론'을 보면,'문화적사대주의'의 극한을 보는 것 같다.
더 큰 문제다 싶은 건...요번의 것은 전쟁이나 힘에 의해서가 아닌,'문화적 사대주의'라는 정신적인 것에서 기인하는 자발적인 것이라는 데 있다.

모국어를 통하여 자신을 성장시키지 않는,자기 말을 푸대접하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찌될지,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닐까?
책과 말은 단지 어떤 것이 아니라,모든것이니까...

 자크 데리다가 한 말이 떠오른다.
'진리는 두명의 아들을 두었다.말이라는 착한 아들과 글이라는 못된 아들을...'

                                                                                                          (2008-2-12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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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9-27 22:00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이벤트 꼭 참여해서 생일 축하해 주고 싶어서 오래 묵혀놨던 일기장 들춰냈다.
책을 좋아하는 '웬디양'이니까 벌써 읽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리뷰를 트랙백 해보니,없더라~(아,다행이다.^^)

물론,'웬디양'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우편으로 받는 카드를 받아본 게 언제더란 말이냐,ㅋ~.

머큐리 2010-09-27 23:21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었는데...양철댁 리뷰를 보니 더 읽을까 말까하는 망설임이 심해졌어요...책이 넘 심오해 보인다..^^;

양철나무꾼 2010-09-28 12:58   좋아요 0 | URL
제가 2008년 저 때는 생각이 더 이리저리 널을 뛰고,
설익은 생각들을 막 풀어놓고 싶은 욕심이 과할 때여서...
리뷰가 저 모냥이지...책은 정말 괜찮다니까요~
심오하지도 않고~
자식 가진 부모들은 꼭.꼭.꼭. 읽어봐야 한다니까요~
(에고,땀 나라~ㅠ.ㅠ)

마녀고양이 2010-09-28 08:37   좋아요 0 | URL
지리산 자락 야생으로 자란다는 하동녹차... 아흐.
난 녹차 못 마시는데, 넘 맛나게 보인다.......... ㅠㅠ

말이 착하고, 글이 못 되먹었대? 왜 그럴까? 갸우뚱....
난 거꾸로인줄 알았지..........

양철나무꾼 2010-09-28 13:03   좋아요 0 | URL
데리다 때에는,
말은 사고의 근원이자 현존하는 속성으로,
글은 말의 오염된 형태로...봤었어요.

데리다를 얘기로 하기엔 넘 심오하고,
심리학에서도 쓸모 있을테니 함 읽어봐요~^^

전 녹차 좋아하는데...
마고님은 율무차 드세요~

lo초우ve 2010-09-28 08:41   좋아요 0 | URL
보고싶네요 보고싶은건 많고... 요즘 통 책을 볼수가 없어서..아휴.. ㅡ,.ㅡ;
양철님 리뷰를 보고 보관함에 저장 ^^
꼭 봐야겠어요 ^^

양철나무꾼 2010-09-28 13:06   좋아요 0 | URL
제가 제가 강추해요~
존 카첸바크는 좀 좋아해서 장르소설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들이미는 경향이 있지만,
이건 장르소설과는 별개로 좋아요.
진짜 괜찮다니까요~^^

세실 2010-09-28 08:43   좋아요 0 | URL
제목이 참 예뻐요.
"주변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그"런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좋은 아침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9-28 13:10   좋아요 0 | URL
네,세실님도 좋은 하루요~

요즘 전 아들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고,단지 배경이 되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 '배경'이라는 것이 소위 '빽'은 아니고 말이죠~^^

2010-09-28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09-28 10:09   좋아요 0 | URL
양철님은 정말 제목을 어쩌면 그리도 잘 뽑으시는지...
갈수록 제목 정하는 게 힘들던데.
이 책 몇년 전에 선물 받고 아직도 못 읽었습니다. 뭐하고 사는 건지...ㅜ
데리다의 말이 정말 기가 막히군요!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09-28 13:15   좋아요 0 | URL
이글을 썼을 저 당시에는 제목이 없었어요.
그냥 <책도둑>을 읽고...

제목 정하는 건 요즘 시작하는 일이예요~
(저 제목과 내용이 어긋나 따로 논다는 얘기 종종 듣는걸요~ㅠ.ㅠ)

꼭 읽어보세요~!!!

책가방 2010-09-28 15:23   좋아요 0 | URL
배경에만 머무는 능력... 저도 갖고 싶어요.
글을 이렇게 길게 쓸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싶구요..
지루하지않게 쓰는 능력도 갖고 싶네요.

이 책!! 꼭 읽어야지!!

양철나무꾼 2010-09-28 23:18   좋아요 0 | URL
배경으로 머무는 능력은 저도 갖고 싶은 건데...잘 안되는 거구요~


전 글을 길게 쓰는 건 오히려 덜 힘들어요.
시처럼 간결하게 써내는 게 힘들어요.
요즘 유머가 대세라는데,저도 유머를 좀 곁들여야 할텐데 말입니다.

그런 의미로 봤을 때,
님의 시 그리움은 시이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범상치 않으시다니까요~^^

감은빛 2010-09-28 22:31   좋아요 0 | URL
일단 글 제목이 예술이고~ 내용은 그야말로 알차기 그지없군요!
이 글 읽고나서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예요!
(이래서 저는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고 싶지 않아요! -_-;;)
결국 보관함에 넣어둡니다. 언젠가는 장바구니에 들어가겠죠. ^^

양철나무꾼 2010-09-28 23:2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의 글들도 제겐 지름신 제대로 거든요~^^

과한 칭찬이지만,기분 좋은걸요...헤~^^

穀雨(곡우) 2010-09-29 09:25   좋아요 0 | URL
리뷰를 써 놓고도 제목이 영 아니올시다인게 전 태반인데,
양철나무꾼님의 세련된 감각에 부러움 가득 안고 갑니다.
간결하게 책을 조망하는 리뷰의 완급도 너무 마음에 듭니다.
보관함이 넘치지만 그래도 담아 봅니다.^^

양철나무꾼 2010-09-29 10:28   좋아요 0 | URL
제목이 중요한 거군요~^^

그동안의 전,내용이 중요하지 제목이 뭐가 되면 어때?
이런 주의였거든요.

앞으로 제목에 더 신경써야겠는걸요.
세련되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듣는 하지만,기분 좋은 칭찬입니다.^^

순오기 2010-09-29 11:32   좋아요 0 | URL
오늘은 도서관에 연체된 책 내러 지금 나가요~ 리뷰는 갔다와서 심야에 볼게요.^^

순오기 2010-09-30 00:57   좋아요 0 | URL
제목도 리뷰도 매력적이네요. 배경이 되어 주는 사람...
아이들 미술선생님께서 당신은 아이들의 배경으로 존재하고 싶다던 문자메시지가 생각나네요.

양철나무꾼 2010-09-30 02:41   좋아요 0 | URL
이렇게 챙겨봐 주시고 감사해요.
누군가가 내 리뷰를 형식적으로가 아닌,
제대로 챙겨봐 준다는 건...묘한 설레임이예요~^^

꿈꾸는섬 2010-09-29 11:43   좋아요 0 | URL
오래전 일기장을 뒤적이는 나무꾼님이 좋아요.^^
참 멋진 리뷰에요.^^

양철나무꾼 2010-09-30 02:42   좋아요 0 | URL
종이로 된 일기장은 아니고,다른 대형포털이요~^^
 
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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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흡족해 하며 배 두들기는 걸 좋아하는 나는...
맛집탐방기,그 맛집의 대표음식을 먹는 법에 관한 책을 사서 읽고 실망한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서울의 유명하다는 설렁탕 집의 경우, 
반 정도는 그냥 국물과 고기 맛을 음미해 가면서 먹고,
반쯤 먹은 연후에 깍두기 국물을 넣어 간을 맞춰 먹으라...뭐,그런 지침이었다.
블로그에서 읽었을 때는 입맛을 다시게 했었는데,
책을 읽고 실제 내가 그의 방식대로 따라해보니, 
나의 취향이나 입맛과는 한참 어긋나 있었다.


추석 연휴기간 동안 읽으려던 일곱권의 책 대신 내가 이 책을 택한 것은,지인의 강요 때문이었다.
"나,이 사람 책 너무 어려워요.알라딘 서재에서 공짜로 볼 수 있던 것들도 머리에 쥐나려고 해서 마다했는데 책으로요?"
"그렇고 그런 인문학 책이 아니고 문학,고전,미술,역사,철학,학술,글쓰기,심지어 다른 사람의 서평도 비판해 놓았는데도...?"

'내 흥에 겨워 장르소설 나부랭이나 번역하고 살고 싶다는데 심오한 인문학이 왜 필요하냔 말이쥐~ㅠ.ㅠ'
툴툴거리면서 책을 사들고는 내가 봐야한다는 번역 관련 글들만을 발췌하여 읽고 말려고 하였다.
그런데,웬걸...책을 읽다보니 알라딘 서재 페이퍼에서 읽을 때와는 달리 재밌는거다.
그의 오지랖은 웬만한 아즘들의 그것보다 훨씬 넓은데(문학,고전,미술,역사,철학,학술,글쓰기...심지어 다른 사람의 서평 비판까지)...그렇다고 억지스럽지도 않다.
덕분에 지인에게 백만번 쯤의 땡큐를 날려줄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책이라고는 못하겠다.
왜냐하면 자연이건 사람이건 10년이라는 세월이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듯이,
10년이 넘는 동안 써온 그의 글들은 삶의 또 다른 반영이어서 호락호락한 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인문학자의 고뇌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으나 그의 고뇌가 눈물겹다.)

인문이 교양인가 하는 내 나름대로의 고민은 차치해두고,
그는 여느 인문학자들이 인문과학에만 촛점을 맞추느라 등한시 하는 자연교양에도 눈을 돌리고,
환경문제나 사회 공헌 따위도 언급하고 들어간다. 

여기에 '행동'이나 '실생활에 접목'따위의 말들을 첨언하고 싶다. 
우리가 종국에 얘기하야 할 것은 어쩜 자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아직까지는 관심이 인간에게로,거기서 자연에게로 옮겨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정도이다.

그래도'아니면 말고'식의 공자의 유세관이나,'목숨걸고'식의 한비자의 유세관만을 언급하고 지나갔다면(86쪽) 살짝 아쉬웠을텐데...
토정 이지함을 실천적 지식인(87쪽)으로 언급하여 균형을 유지한다.

개인적으론,
'숙취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날 아침에는 잔소리 대신 절인 오이 안주에 보드카 한 잔 따라주는 아내였다.(92쪽)'
라는 인용이 너무 맘에 든다.
나도 이런 아내가 되고 싶다.
<숄로호프 단편선>의<인간의 운명>도,그 책에서 이런 인용을 끄집어 낼 수 있었던 그의 시선도,서평도...다 맘에 든다. 

대증요법:병의 원인을 찾아 없애기 곤란한 상황에서, 겉으로 나타난 병의 증상에 대응하여 처치를 하는 치료법. 열이 높을 때에 얼음주머니를 대거나 해열제를 써서 열을 내리게 하는...(네이버 국어사전) 

127쪽의 대증요법은,291쪽의 '슈퍼노멀'의 경우와 더불어 내게 훅 와닿지 않는다.
단지 '입장바꿔 생각해봐'가 대증요법으로 뭉뚱그려 질 수는 없는 것이고,
형광펜은 돌출을 위해 일부러 사용하는 것이니 엄격히 따지자면 '슈퍼노멀'은 아닐 듯~^^

156쪽,157쪽에 오용이나 남용의 경계에 대해서 얘기하며,
'지나친 겸손은 책임에 대한 방기이다'라고 하는 부분은,
내 삶이랑 관련하여 찬찬히 되짚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아무래도 가장 주의깊게 읽은 건 '번역' 관련 부분인데,
'번역이란 외국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한국어를 바로 세우는 작업(146쪽)'이라는 구절은 내 삶의 경구로 삼고 싶을 정도이다. 

593쪽을 보면,
'번역작업이 홀대받는 환경에서 고생한 역자들에게 지나치게 냉혹하다고 나무라는 분들도 있다'
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그동안 저자가 독서가들을 향하여 기울인 노력은,역자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겠고,그렇다면 같이 나아가자는 채찍임을 모르지 않겠다.

밑줄,형광펜 사용,작은 따옴표 등은 강조와 돌출을 위한 그만의 제스츄어로 노력의 산물이다. 
반어법과,문장의 도치,부사어구의 '살짝' 위치  탈선,감정이 2% 빠진듯한 비유 등도 그만이 구사할 수 있다.
300쪽의,'역자만이 알것이다.',이런 문장은 소름이 돋는다. 

그의 노력의 산물들을 빼고,아름답고 맘 따뜻해 지는 부분을 꼽으라면 김훈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걸까?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걸까? 

소개하는 책 중에는 읽은 책도 있고 소장하고는 있으나 읽지 않은 책들도 있고,장바구니에 들어있는 책도 있다. 
이 책도 슬픔의 소지는 지니고 있다.
소개하는 책 중 내게 없는건,절판이거나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툴툴거린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어쩜 동년배인지도 모를) 사람이 쓴 책 한권에서 인생을 배운다는 건 좀 웃기니까,닮고 싶다 정도로 바꿔야 되겠다.
나도 무색,무취,무미의 사람이 되고 싶고,그런 글을 쓰고 싶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개입시키지 않고 쓰는 글이라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제대로 된 서평이라고 할 수 있는게 아닐까?

내겐 피카소,조남준이 그렇고,시인 중에는 김사인 정도를 꼽겠다.
 
이들의 그림이나 글을 보고 있으면...지극히 절제됐다는 차원을 넘어서 소박한 느낌마저 든다. 
근데 이건 다다르지 못함이 아니라,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덜어냄이고 비워냄이다.
나도 그런 절제됨을 구사하고 싶지만 나는 아직 그런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기에 갈길이 멀다.

그렇게 그렇게 책을 덮게 되지만,
나는 다시 한번 일독하는 대신 내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보겠다.
그것이 이 책을 읽은 수확이라면 수확이고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여느 서펑집처럼,
반쯤 읽은 후 다소 지루해지니,어떤 책을 끼워넣어 교차읽기를 시도해라...
뭐,이딴 충고를 했다면 난 청개구리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입맛이나 취향을 강요 당하는 일은 좀 불쾌하니까.
(아닌가?아님 말고...나는 그렇다!) 

그도 이제 책을 읽어야 할 의무에서 걸어나와 책을 읽을 자유를 흠뻑 누리고 살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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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9-25 13:13   좋아요 1 | URL
어려울까봐 지레 겁먹은 1인이라 님의 리뷰로 대신하렵니다.^^

양철나무꾼 2010-09-26 12:34   좋아요 1 | URL
겸손하시기는요~
일독하실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요~
서재 대문 어딘가에 이 분의 지젝 강의도 걸려 있는 데,
전 이것도 꽤 괜찮더라구요.

2010-09-25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6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7 0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7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09-25 13:46   좋아요 1 | URL
이 리뷰 읽고 비로소 양철나무꾼님의 서재를 처음부터 꼼꼼히 다 둘러보았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09-26 12:38   좋아요 1 | URL
아웅~쑥스...
저도 남사시려워 안 하는 일을~~~

관전평을 듣고싶습니다~!!!

stella.K 2010-09-25 15:29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으셨군요. 전 전에 로쟈님 첫번째 내신 책이 살짝 어려운 느낌이 들어
그냥 구경만하고 있는데...
제목이 참 훌륭하군요. 물론 리뷰도.^^

양철나무꾼 2010-09-26 12:39   좋아요 1 | URL
전 이 책 읽고,첫번째 찾아 읽기로 마음 먹었는걸요~

언제 장바구니가 불러 주문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땡스 투는 님 리뷰입니다~^^

세실 2010-09-25 16:52   좋아요 1 | URL
저도 문학 편독이 아닌 고전,미술,철학,학술까지도 읽어볼 날이 오겠지요. 음. 언젠가는...
요즘은 문학 읽기도 빠듯해요.

양철나무꾼 2010-09-26 12:42   좋아요 1 | URL
저도 여기저기 덩치로 쌓아놓은 책이 장난이 아닙니다요~

이러다가 저도 '전작주의자의 꿈'을 쓴 누군가처럼,
책은 하나도 안 읽겠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삶이 더 중요하다~
이럴지도 모르겠어요.

프레이야 2010-09-25 19:15   좋아요 1 | URL
리뷰 잘 읽었어요. 꾹!
책을 읽을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느끼는 것이 힘이다! 한 권을 읽어도 뭘 제대로 읽고 느끼고 있나,
생활 속에서 의미있는 확장을 하고 있나, 반성해 봅니다.

양철나무꾼 2010-09-26 12:48   좋아요 1 | URL
님처럼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하고 계신 분이라면...
느낌이 또 다를 수도 있겠네요.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삶 속에서의 의미있는 확장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oren 2010-09-25 20:00   좋아요 1 | URL
이 곳 알라딘에서는 특히 화제의 책인데,
왠지 무거울 것같아 장바구니에조차 담지 못하고 있는데,
나무꾼님의 무척이나 경쾌한 서평글을 읽고 나니,
이 책을 읽어야할 것같은 기분에서 벗어난듯 싶어 마음이 가벼워지는군요.

이 책의 제목 또한 너무 강한 역설로 다가와 부담스러웠는데,
나무꾼님 말씀처럼, 그리고 저자의 바램처럼,
'누구든지' 책을 읽을 자유를 흠뻑 누리며 살기를 바래봅니다.

마녀고양이 2010-09-26 10:34   좋아요 1 | URL
저도 오렌님과 비슷한 느낌을 가졌는데,
대신 말씀해주시네요....... ^^

양철나무꾼 2010-09-26 12:52   좋아요 1 | URL
oren님,더 두껍고 어려운 책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 겸손하시기는요~
일독의 가치 충분히 있는 책입니다.

마고님,이렇게 묻어 가시다뇨~
마고님의 의견을 피력해 주십사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여~^^

꿈꾸는섬 2010-09-26 17:32   좋아요 1 | URL
ㅎㅎ아는 것이 힘이다...느끼는 것이 힘이다...ㅋㅋ
뭘 알아야 그 느낌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같아요.^^
로쟈님 서재, 어려워서 잘 안 가게 되더라구요. 서재글과 책은 좀 다르긴 할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0-09-27 10:22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편견을 갖고 있었다니까요~^^

요번 책 괜찮습디다~~~

2010-09-27 12:53   좋아요 1 | URL
아, 글방이 환하고 아늑하네요. 글방주인의 마음이 따뜻하셔서 그런가봅니다. 저도 책이 나오자마자 구해서 틈나는대로 읽고 있어요. 로쟈선생에게 늘 감사할 따름이죠.

양철나무꾼 2010-09-27 22:04   좋아요 1 | URL
주인 혼자 따뜻해서 되겠어요?
따뜻함은 전달이 빠르잖아요~
저도 님들에게 전염됐나 봐요~^^

네,저도 로쟈선생께 '때때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장소] 2017-08-30 03:50   좋아요 1 | URL
무려 2010년에 쓴 리뷰였네요 . 이분 글은 이따금 기고한 글로 만나게 되던데 ( 인터넷에서 신문에 실린 평론 ?) ..

아는 것보단 느끼는 것이 ... 끄덕끄덕 ~ !!!
날이 급 추워졌어요 . 그새 손이 곱아지는 날씨라니 웃기지 뭡니까 ... 낮엔 더워서 땀으로 샤월 해대면서.. ㅎㅎㅎ 건강하시길!^^

2017-09-05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7-09-05 16:54   좋아요 0 | URL
별고 없이 잘 지내고 계셨나요? 댓글보니 반가움이 와락 밀려옵니다~

직장이래봐야 임시직입니다 . 저야말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발등의 불 끄러 나선 셈이고요 . 밤을 걷는 선비가 대낮에 나오기 위해 특수한 겉옷을 입듯 저도 , 낮에 철판이란 것을 두르고 부끄럽게 살아있습니다 . ^^

알라딘엔 늘 빚진 마음입니다 . 여기가 친정인데 , 할 도리를 다 못하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
책을 통해 서재 이웃분들과 소통하는 기회의 문을 열어준 곳이 바로 여기인데 ... 정작 이곳엔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 올렸던 리뷰도 잠가놔야하는 상황이 되버렸구요 .

9월부턴 좀 자유로워지니 , 자주 리뷰로 찾아 뵐게요 . ^^

아 , 전 이현우 ㅡ로쟈 라는 분을 잘 알지 못해서 좋다 , 싫다 ~ 할 처지가 못되니 팬도 아니고 몰매도 안드립니다 . ^^ ㅎㅎㅎ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 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의 독서잡설
최성각 지음 / 동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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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글을 아주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장르소설을 주로 읽기는 하지만,
내 독서취향은 잡식성에 가까워서,
가끔  잘 알려지지 않은...하지만 아주 좋은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럴때는 내가 아주 매력적인 글쓰기가 가능해서,
내 리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거품 물고 칭찬하는 책들을 좀 같이 읽고 공감해 주었으면 좋겠다. 

보통 때의 나는 각양각색의 사람 수 만큼이나 취향의 독특함을 알기 때문에,
취향이 나랑 비슷하면 좋고 아니어도 존중해 줄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해선 내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 책은 '한때 나와 같은 선입견을 가졌던 사람이 어떻게 선입견에서 걸어나올 수 있었는지'부터가 시작이다. 
그는 '내가 몰라도 되는 영역으로 간주하고 손사래부터 치는 게 멋인줄로 알'았다고 했는데,
내겐 '경제'말고도 인문이나 환경 따위가 그랬었다.
계기가 있어 내가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좀 해야 되겠다 싶었을 때...마땅한 책이 없었고,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물론 이 동네에도 '인문학'을 하시는,인문학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리시는 아주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그 분들의 글은 나같은 초보자가 보고 이해하기에는 어렵고도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최성각님의<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이 책은 내게 등대나 나침반 같았다. 
이 책이 좋은 것은,딱 나보다 세상을 몇발자국 앞서간 선배의 조언이나 충고같이 느껴져서이다. 
충고가 뾰족하지만,뾰족해서 고고하고 아름답다. 

물론 이분은 사상가 일뿐만 아니라 행동가여서,
이분을 닮고 싶다고 마음 먹은 이상 내 몸이 좀 고달플 각오는 하여야 한다. 

이분은 정도를 걷고 있고,
힘들다고 하여 곁길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더디더라도 그렇게 그렇게 한발자국 한발자국 밟아 나가는 법을 가르친다.

좋은 책을 만나면 두루두루 소개해서 읽게 하고 싶어하고
그게 원서이면 상업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번역하고 읽히고 싶어하였다.
그래서 출판사를 차려볼까 고민했다는 게 이 책에서만도 꽤 여러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위안이 된 건,
읽은 책이 몇권은 됐다는 거고,가지고 있는 것은 조금 더 됐다.
한가지 곤란한 것은,추천하신 것 중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은 거의 고서이거나 절판본이어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내용 중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 부분이 여러곳 있었는데, 

심지어 최근 어떤 출판인이 "지금 시대는 내용보다는 디자인이에요.디자인으로 승부를 내야 합니다,"어쩌구 했을 때에는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어떻게 책이라 불리는 書物이 거기 담긴 애용이 아니라 디자인으로 승부를 내야 할,단지 상품에 불과하단 말인가.(48쪽)

이 부분은 내 경험에 미루어 반쯤 이해가 되었는데,
내용이 좋으면 디자인 따위는 궁시렁거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지만, 
내용이 별로이면 디자인을 가지고도 궁시렁 거리게 되고,
내용이 너무 좋으면 다른 것들을 트집잡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이분의 글솜씨야말로 매력적이어서,처음 이분을 찾아 읽기까지가 문제지 그 후는 걱정할 바가 아니다.
하나 같이 훌륭하여 다 좋았지만,가장 큰 울림을 준 건 '피터드러커'의 <방관자의 시대>관련 글이 아니었나 싶다. 

'좋은 책이라면 마땅히 독자의 이마를 쪼개고,심장을 도려내고,무방비 상태의 몸과 영혼을 위축시키거나 달뜨게 만들 것인데,이 책이 바로 그랬다.'(64쪽)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피터드러커'가 소개하는 '칼 폴라니'의 일화는 너무 감동적이다. 

캘빈과 카스텔리오의 상반되는 묘사 또한  인상적이었다.
캘빈과 숙명적인 대결을 했어야만 했던 카스텔리오를, 
온화한 공자를 닮았고,에코의 윌리엄수사를 닮았다고 한 부분은 멋졌다.

채식은 과연 만병통치에 '아름다운 미래의 열쇠'인가 하고 묻는 글이 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의외였다.
'건강한 잡식이 자연에는 더 어울리는 일'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이쯤에서 나는 두손 들고 순순히 이분에게 홀릭되기로 했다.
이 나이쯤 되면 생각이나 견해가 고착되어 다른 사람들이나 새로나온 견해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받아들임과 수긍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놀랐고,놀라움은 존경으로까지 이어졌다. 

김용철의 <삼성을 해석한다>에 대한 이 분의 해석 또한 재미있다.
'정의로운 자들만이 정의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부분은 경제,인문에 걸친 전반적인 내용이었다면, 
중후반으로 갈수록,환경이나 생태문제,4대강에 관한 내용들이 집중 되고 있다.
기실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고 사상가이면서 실천가인 그가 그런 전철을 밟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자신의 화두가 장르소설에서 자꾸만 이쪽으로 바뀌어 가는 것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자연스러운 일인가?) 

<100분 토론> 관련 감상은 격하게 공감을 표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그러므로,나는 어차피 내 신념에 바탕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듣고 공감하고,내 의견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열심히 경청이야 하지만,때로는 저항감을,때로는 분노를,때로는 욕설이 나온다.나는 공감하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라도 그 말에 절박함이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면 불쾌해진다.어쩔 수 없는 편견과 선입견을 스스로 어느 정도는 통제하려고 애쓴다는 이야기다.그러나 4대강 같은 주제는 그 견해가 명백하게 대비되어서 내 이성적 통제를 요긴하게 작동시킬 필요가 없었다.163쪽)' 
"이런 대규모 국책사업의 결과에 대해서는 평균치를 드러낼 게 아니라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는게 옳다고 본다."(165쪽)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완상에게 했다는 말을 주워가진 것도 횡재다.

"한박사,당신은 학자니까 자꾸 그런 말을 하는데,나는 현실 정치인임을 잊지 마세요."(188쪽)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게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라 담벼락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이를 어찌 거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196쪽) 

하지만,뭐니뭐니 해더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깨달음은... 
좋은 책은 시간과 세대에 구애받지 않고 영원하다는 거다. 

그가 소개하는 책들을 보면 3,40년 된 책들도 수두룩하고. 
번역본의 경우도 기획,번역 얘기부터 결과물로 나오기까지 몇 년,길게는 9,10년 정도이다. 

책의 영속성이야 예전부터 많이 회자되던 거지만,이분의 무던함과 진득함도 보통은 아니다. 

책이나 이 분 말고 무던함과 진득함을 얘기할 수 있는 건 자연 밖에 없다. 
책을 읽으면서 터득했으니(터득하려고 노력했으니) 이제는 실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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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방 2010-09-16 17:57   좋아요 0 | URL
오늘.. 글을 아주 잘 쓰셨는걸요.
벌써 이 책이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으니까요..^^
그리고 <방관자의 시대>도 중고등록알림SMS신청 해놨구요..^^

전 독서경력이 짧다보니 특별히 독서취향 같은 건 없어요.
그래서 다른분들의 리뷰에 크게 의지하는 편이랍니다.
그러다보면 제 취향도 생기고 리뷰도 멋지게 올릴 날이 오겠죠 뭐..^^

양철나무꾼 2010-09-17 00:28   좋아요 0 | URL
흐흐,감사합니다~
좀 옆구리 찔러 절 받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이 책은 그렇게라도 여기저기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왜 걍 그럴 때 있잖아요.
<방관자의 시대>구하면 귀뜸해 주세요.
저도 많이 궁금한 책이랍니다~^^

실은 책가방님의 얘기가 제 얘기이기도 하지만,
암튼 우리 같이 홧팅 하자구요~^^

마녀고양이 2010-09-16 19:26   좋아요 0 | URL
아! 나두 사고 싶다...

2010-09-16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09-17 00:29   좋아요 0 | URL
이 책 죽음이예요~
쥐약이기도 하구...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고 싶은 책이 넘 많아서~^^

2010-09-17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7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7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0-09-16 20:38   좋아요 0 | URL
긴 리뷰가 참 멋지네요
이렇게 잘쓰시면서 웬 그런 바람을.

양철나무꾼 2010-09-17 00:40   좋아요 0 | URL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여~^^
몇가지 문제점들이 있죠.
일단 맞춤법,띄어쓰기는 패쓰하고라도~
긴 내용을 극도로 응축시키는 힘이 부족한 것 같아요.
설익었다고 해야 할까?

한창 바쁘실텐데...이곳까지 찾아주시고 감사합니다.

하늘바람 2010-09-17 07:02   좋아요 0 | URL
님 댓글을 못달아서 그렇지 자주 왔답니다

양철나무꾼 2010-09-17 11:19   좋아요 0 | URL
아핫,감사~!

꿈꾸는섬 2010-09-16 20:55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글 정말 잘 쓰시거든요. 제가 맨날 부러워하고 있다구요. 게다가 올리시는 책들마다 사고 싶다구요.ㅎㅎ 이 책 읽고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0-09-17 00:41   좋아요 0 | URL
마고님께도 얘기했지만,이책 죽음이기도 하고 쥐약이기도 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들이 너무 많아요~^^

2010-09-16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7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7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7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0-09-17 06:52   좋아요 0 | URL
딱 호기심을 가지게끔 글을 잘 쓰셨는데요.
이 책 서점에서 한번 쓱 들춰보긴 했는데,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 분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아주 크게 실망한 일이 있어서요.(환경운동할 때 얘기예요.)

하지만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와 책에 대한 관심은 또 다른 영역인 듯.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뭐라고 썼는지 궁금해서 읽고 싶어지더군요.

양철나무꾼 2010-09-17 11:33   좋아요 0 | URL
저 이분도,감은빛님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이해하겠다는 거창한 말은 할 수 없지만서도...ㅠ.ㅠ)

근데,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좋은거라니까요~^^

머큐리 2010-09-17 08:43   좋아요 0 | URL
추석 연휴때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아시려나??

양철나무꾼 2010-09-17 11:34   좋아요 0 | URL
누굴까요?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이 하나 같이 주옥같아요.
절판본이 너무 많아 너무 아쉽다는~ㅠ.ㅠ

stella.K 2010-09-17 11:13   좋아요 0 | URL
이 책 전에 글샘님이 리뷰 쓰신 책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 모르겠어요.
아직 제 기억이 쓸만한데 문제는 내 기억을 내가 확신할 수 없을 때가
많다는 거죠.
그게 맞다면 글샘님 이책은 너무 좋은데 오타가 많다고 툴툴거리셨던 것도 맞을 겁니다.흐흐

2010-09-17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0-09-17 16:34   좋아요 0 | URL
아~악! 실수했어요. 글샘님은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만 행복했다>였는데...비슷해서리.ㅜ

책 디자인을 굳이 따질 필요는 없는데,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건지,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는 하지만 제가 볼 땐 디자인도 좋은 책이 내용이 좋은 경우가 많기도 하더라구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예를들면 민음사의 세계문학 시리즈 같은 경우 디자인은 별로거든요. 그렇다고 내용이 나쁜 건 아니죠.^^

양철나무꾼 2010-09-18 00:18   좋아요 0 | URL
그쵸?
어?글샘님 글이라면 저도 관심갖고 보는데...블라인드 처리를 해 놓으셨나 했죠.

더우기 <동녘>출판사 편집 교정은 훌륭한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저도 세계문학 시리즈 같은 것도 좀 읽어봐야 할텐데 말이죠,불끈~^^

따라쟁이 2010-09-17 13:50   좋아요 0 | URL
이미.. 쫌 잘쓰시는거 아닌가요?

양철나무꾼 2010-09-18 00:20   좋아요 0 | URL
정말요?
따라님의 칭찬을 받으니 우쭐해지는 걸요,감사~!!!

2010-09-18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8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8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9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0-09-25 23:00   좋아요 0 | URL
피터드러커의 <방관자의 시대>는 80년대 초에 읽었던 책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네요. (하긴 오늘 동네 도서관의 열람실에서 내가 사두고 읽던 책을 보다가, 나중에 도서실로 내려가서 이리저리 책 구경을 하다가 몽테뉴의 '수상록'이 눈에 띄길래 한참이나 뒤적거려 봤는데, 그리스·로마시대 시인들의 시가 그렇게나 풍성하게 많이 담겨 있었던가 싶어서 놀랬답니다.)

피터 드러커의 말을 들으니 독서명언 100선 가운데 두 가지가 떠오르네요.
**************
우리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 Franz kafka(1883~1929)

어떤 책이 좋은지 판단하는 기준은,
그 책이 얼마나 강한 펀치를 당신에게 날리는가 하는 점이다.
- Gustave Flaubert (1821~1880)

양철나무꾼 2010-09-27 10:27   좋아요 0 | URL
댓글을 이제 봤네요,지송~ㅠ.ㅠ

두번째 독서명언이 제겐 더 강한 펀치가 되는걸요~^^

곰곰이 2010-09-30 17:35   좋아요 0 | URL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좋앗어요.. 분명하고 예리한것 두루뭉수리 하지 않은 점 개인적으로 군데군데 한국문학을 마뜩찮아 하는 점이 인상적이엇어요.. 할말을 딱대신 해주는 느낌.. 소개된 책들 꼽아논것만 십여권 다 읽을 거예요.. 성각님이 추천하는 거라면 ^^ 개인사와 잘 맞물려 있는 감동적인 책이야기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 ! 최성각 짱!!

양철나무꾼 2010-09-30 23:5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곰곰이님.
같은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전 늘'행동하는 양심'인지는 퀘션마크이지만요,암튼...최성각 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