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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헨리 앨프리드 키신저 지음, 이현주 옮김, 최형익 감수 / 민음사 / 2016년 7월
평점 :
외교의 귀재 헨리 키신저!! 닉슨 정부에서 중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서 파키스탄을 통해서 중국으로 건너간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냉전의 시대를 건너 데탕트 시대로 이행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미국의 외교 천재 헨리 키신저의 세계관을 접하고 싶어 그의 책을 펼쳤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외교자문을 했던 그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1. 베스트팔렌 체제 신봉
독일 땅에서 시작한 30년 전쟁은 유럽의 많은 국가가 참여하면서 국력을 소진했다.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친 국가들은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한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다양성을 체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제 더 이상 로마 가톨릭과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단일한 세계 질서는 유지될 수 없었다. 헨리 키신저는 베스트팔렌 체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에서 수립된 구조물은 합의된 규칙과 제한을 기초로 국제 질서를 제도화하고 지배적인 한 국가가 아니라 다수의 강대국들을 기초로 해서 국제 질서를 세우려던 최초의 시도였음을 보여주었다." -42쪽
지배적인 한 국가가 패권을 장악하기 보다는 '다수의 강대국'들이 세력균형을 이루며 평화적 국제 질서를 세우는 것이 헨리 키신저가 생각하는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외교의 이상이다. 다수의 강대국이 현실적인 외교를 펼치다보니 가톨릭 국가 프랑스의 리슐리외 추기경은 신교편에서 30년 전쟁에 참전했다. 가톨릭 추기경인 그는 자신의 행동을 이렇게 합리화한다.
"인간은 죽지 않는다. 인간은 사후에 구원된다. 국가에게는 불멸성이 없다. 국가의 구원은 지금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34쪽
리슐리외가 신교편에 서서 종교 전쟁에 참전한 결과 전쟁은 30년을 끌게 되었다. 독일은 비참한 전쟁터가 되었다. 그리고 리슐리외가 뿌린 악의 씨앗은 비스마르크에 의해서 프랑스 고립화 정책으로 돌아왔다. 비스마르크는 베스사유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독일황제 대관식을 거행한다.
다원성, 실리주의, 세력균형으로 요약할 수 있는 베스트팔렌 체제를 헨리 키신저는 매우 이상적인 외교 정책으로 파악했다. 그랫기에 헨리 키신저는 빈체제를 긍정적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빈체제를 보수반동 체제로 규정했다. 나폴레옹 전쟁에 의해서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 전파되어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열기가 치솟았다. 이를 억압하려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가 중심이 되어 빈체제를 수립했다. 각국의 자유주의 운동의 빈체제에 의해서 억압당했다.
그런데, 헨리 키신저는 빈체제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았다. 4국 동맹, 신성동맹, 강대국의 협조체제 성립으로 빈체제 이후 1차 세계 대전까지 평화가 계속되었다며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강대국의 협조체제는 1820년 나폴리 혁명, 1820년~1823년 스페인 혁명, 1820년 ~ 1823년 그리스 독립 혁명에서 빛을 보았다고 서술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헨리 키신저에게 강한 역겨움이 일었다. 자유주의 민족주의 운동을 짓밟고 있는 구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빈체제 이후 1차 세계 대전 시기까지 큰 전쟁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제 밑에서 신음하며 자유를 갈망하던 수많은 민중들의 아우성에 헨리 키신저는 귀를 닫고 있었다. 힘없는 민중들이 강대국의 힘의 논리앞에 자유를 억압받아도 된다는 그의 생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소국 국민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무서운 논리로 다가온다.
2. 헨리 키신저의 미국 대통령 평가
헨리 키신저는 현대 외교가 나아가야할 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세계 질서는 홀로 행동하는 한 국가에 의해서는 달성될 수 없다. (중략) 이 질서 개념은 어떤 지역이나 국가의 관점과 이상을 초월한다. 역사의 순간에서 그것은 당대의 현실에 영향을 받은 베스트팔렌 체제의 현대화일 것이다." -416쪽
'베스트팔렌 체제의 현대화'를 현대 외교가 나아갈 길로 제시한 헨리 키신저는 기존의 고립주의 외교 정책에서 탈피해서 국제 사회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러일 전쟁을 중재한 시어도어 루스밸트 대통령 뿐만 아니라, 민족 자결주의를 제창하고 국제 연맹을 제안하여 1차 세계대전 이후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한 윌슨 대통령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윌슨은 학자 출신 답게 세계평화가 항구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은 고립주의로 회귀했고, 미국은 국제연맹에 참여하지 않았다. 평화 정착을 위한 그의 노력도 제2차 세계 대전을 막아내지 못했다. 현실 정치에서 윌슨의 이상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이상을 그후의 대통령들이 계승했다. 특히 닉슨은 백악관 각의실에 윌슨의 초상화를 걸어 놓았다. 현대에 실시되는 여론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꾸준히 꼽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윌슨은 살아 있다. 현실에서 패배했음에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 영원히 살아있는 자가 윌슨이었다.
헨리 키신저의 닉슨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후하다. 어떤이는 닉슨을 거짓말을 잘하는 저열한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그렇지만 헨리 키신저의 생각은 다르다.
"정상적인 시기였다면 닉슨의 다양한 정책들은 미국의 새로운 장기 전략으로 통합되었을 것이다. 닉슨은 희망과 현실이 결합된 약속된 땅을 어렴풋하게 보았다. 그 땅에서는 냉전을 끝내고 대서양 동맹을 다시 정의하며, 중국과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고, 중동 평화가 다가가는 중대한 진전을 이루며, 러시아를 국제 질서로 다시 통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그러나 그에게는 자신의 지정학적 비전과 그 기회를 하나로 합칠 시간이없었다." -344쪽
사람을 만나기 보다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는 외교 부분에서 가장 훌륭하게 준비된 되통령이었다고 키신저는 평가한다. 닉슨의 밑에서 중국과 외교를 성공적으로 시작했기에 키신저의 가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고 데탕트시대의 문을 열었으니 헨리 키신저로서는 그의 생에 가장 화려한 시기였다. 그리고 그는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는 영광을 누렸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어떤이는 미국 민주주의의 승리로 평가하고, 어떤이는 FBI 국장과 닉슨의 파워게임에서 닉슨이 패배한 사건이라 말한다. 어느 관점에서 닉슨을 평가하더라도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기에 탁월한 외교적 업적을 남겼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헨리 키신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대단히 후하다.
"나는 불안한 시대에 용기와 위엄과 확신으로 미국을 이끌어간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여전히 존경하고 개인적으로좋아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그의 목적과 헌신이 때로는 미국의 정치적 주기 내에서 달성할 수없는 것으로 드러났더라도 그것은 그의 조국에 영예를 안겨 주었다. 부시가 대통령직어세 물러난 지금도 그 결정을 추구하고 있고 댈러스에 있는 대통령 도서관의 핵심 주제로 그 결정을 삼았다는 점은 자유의 일정에 그가 얼마나 헌신했느지를 보여준다." -363쪽
조지 W. 부시는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사람이다. 9.11 사건이라는 초유의 테러 사건에 대해서 초강경 자세를 취했다. 북한도 9.11 테러를 비판하는 성명을 낼 정도로 세계의 어러 나라들은 미국을 두려워했다. 조지 W. 부시는 이라크 침공을 결정한다. 이라크가 생화학 무기를 지니고 테러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제대로된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이라크를 침공했음에도 사담 후세인이 생화학 무기를 제조하고 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명백한 침공이다. 그가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 '악의 축 발언'은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했다. 사담 후세인 밑에 있었던 수니 과벽파의 일부는 IS가 되어 테러를 하며 세계를 테러의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이러한 조지 W. 부시를 헨리 키신저는 '존경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한다'고 밝혔다.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다. 헨리 키신저의 이해할 수 없는 조지 W. 부시에 대한 사랑이 나의 머리를 휘감았다. 그때 영국의 파머스턴이 했던 격언이 생각났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할 뿐이며, 그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19쪽
그렇다. 헨리 키신저에게는 미국의 이익만이 영원할 뿐이었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서 30년 전쟁에 신교편에 가담했듯이,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이다. 이것이 베스타팔렌 체제의 속성중에 하나였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외교정책의 임무는 미국만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게 아니라 공동의 원칙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중략) 미국의 비전은 유럽식의 세력균형체제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원칙의 확산을 통해 평화를 달성하는데 달려있기 때문이다." -14쪽
그러나, 키신저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수행하고 조언하면서 '공동의 원칙들을 추구'하였는가? '민주원칙의 확산을 통해 평화를 달성'하겠다는 미명아래 약소국의 내정에 간섭한 것은아닌가? 특히,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유럽과 중국, 아시아, 미국으로 나누어 세계 외교의 역사를 살피고 있다. 그런데, '세계 질서'라는 제목에 어울지 않게 아메리카 대륙, 그중에서도 남아메리카에 대한 서술은 없다. 남아메리카를 독자적인 세력을 보기 보다는 자신의 뒷마당으로 생각하는 미국의 입장을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외교 일선에 있으면서 남아메리카 정부의 군사 쿠데타를 지원한 정책이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기 싫어서 남아메리카에 대한 서술을 하지 않은 것일까?
3. 헨리 키신저, 그가 남긴 오류
헨리 키신져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렇다보니, 역사적 사실에 오류가 많다. 퀴즈식으로 '헨리 키신져의 세계질서' 속 오류를 찾아 보자.
"프리드리히는 예카테리나 2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오래 전부터 프리드리히를 숭배해온 새로운 러시아 황제는 전쟁에서 철수했다." -49쪽
위의 문장에서 어떤 오류가 있을까? 윗글에서 '새로운 러시아 황제'는 표트르 3세를 뜻한다. 표트르 3세의 부인이 예카테리나 2세이다. 독일 출신의 예카테리나 2세는 표트르 3세에게 시집왔으나, 표트르 3세는 예카테리나 2세에게 관심이 없었다. 결국, 귀족과 결탁한 예카테리나 2세는 남편을 없애고 러시아의 황제가 된다. 그렇다면, 윗글에 '프리드리히는 예카테리나 2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라는 표현은 잘못된 문장임을 알 수 있다. 즉, '예카테리나 2세'를 예카테리나 2세의 딸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로 수정해야한다.
한국인이다 보니, 헨리 키신져가 한국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이 있으면 반가운 마음으로 유심히 읽었다. 그런데, 연거푸 오류가 발발했다.
"소련이 한반도 북쪽을, 미국이 한반도 남쪽을 점령했다. 양측은 점령 지역 철수를 앞두고 각각 1948년과 1949년에 자기들 식의 정부를 세웠다."-323쪽
"50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몇 달 뒤인 1951년 6월부터 전쟁이 시작된 38선 근처에서 전선이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 중국은 협상을 제안했고, 미국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328쪽
당신도 어이없지 않은가? 남한이 1948년 8월 15일에 정부수립을 했고, 같은 해 9월 9일 북한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런데, 연도도 틀릴뿐만 아니라, 남북한 어느 정권이 먼저 수립되었는지도 모르고 있다.
두번째 글은 더욱 황당하다. 헨리 키신저가 몸담고 있는 미국과 관련된 역사 아닌가! 그런데, 6.25 전쟁의 휴전 협상은 중국이 제안한 것이 아니라, 소련이 UN을 통해서 제의했다. 미국 외교 실무를 담당한분이 이런 실수를 하면 안되지 않을까?
대한민국과 관련한 오류는 그래도 애교수준이다. 그런데, 미국과 총뿌리를 서로 겨누었던 베트남에 대해서는 경멸적인 인상이 짙은 오류가 있다.
"1세기에 걸쳐 식민지로 지낸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러한 제도들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특히 남베트남의 경우에는 역사상 한 번도 국가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 -334쪽
베트남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북베트남 지역에서 시작한 베트남의 역사는 남진을 하면서 베트남 남부를 자신의 영토로 만들었다. 물론, 남베트남 지역에는 '참파'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무시하고 '남베트남의 경우에는 역사상 한 번도 국가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라고 단정적으로 서술한 것은 베트남인들에게는 대단힌 모욕적인 표현이다. 헨리 키신저가 적국의 역사를, 지금은 친구가된 베트남의 역사를 관심을 갖고 찬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제는 고인이 되어 그렇게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여기까지는 역사 학자가 아니라서 오류 발생할 수 있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음의 오류는 역사와는 거리가 먼 상식이다.
"뉴턴의 거대한 시계 장치로 간주되던 18세기 유럽 질서는 다윈의 적자생존의 세계로 대체되었다." -91쪽
어느 부분이 오류인지 알지요? '다윈의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오류이다. 다윈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말하지 않았다. '자연선택'과 '성선택'을 말했을 뿐이다. 강한자만이 생존하고 약한자가 강한자에게 잡아 먹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지구는 공룡이 지배하고 있어야한다. 그러나, 공룡은 자연에 적응하지 못해서 처절하게 멸종했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제국주의를 합리화한 사람은 사회 진화론을 만든 스펜서이다. 유대인들은 상식이 풍부하다고 하던데, 헨리 키신저의 책에는 오류도 풍부하다.
헨리 키신저가 탁월한 외교관이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냉혈한 모습을 많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냉혈한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미국의 국익이라는 입장에서 생각하며 그는 탁월한 외교관이다. 그건 그가 이 책에서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조언을 남겨 놓았다.
"질서를 유지하려면 자제력, 힘, 정당성이 늘 미묘하게 균형을 이루어야한다. 아시아의 질서는 세력균형과 동반자 개념을 결합시켜야한다. (중략) 지혜로운 정치가라면 그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한다. 그 균형을 벗어나면 재앙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265쪽
요즘 한반도가 불안하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제력, 힘, 정당성'이 균형을 이루어야한다고 키신저는 조언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수장은 자제력과 힘, 정당성이 과연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묻고 싶다. 외교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국가의 생존이다. 친미, 친일 일변도의 종미, 종일 외교정책이 한반도의 평화에 과연 도움이 될 것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