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의 채근담 강의
한용운 지음, 이성원.이민섭 옮김 / 필맥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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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이라니!! 만해 한용운을 김관호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한용운은 '정선강의 채근담'을 내어주며 이 책을 읽고 다시 오라고 말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인 그가 김관호에게 불교서적도 아니며 시집도 아닌 '정선강의 채근담'을 왜 내주었을까? 아마도 식민지 조선이라는 어둠의 터널을 걸어가며 흔들리지 않고 조국 독립의 길을 갈 수 있는 마음가짐을 채근담을 통해서 얻길 바라지 않았을까? 수많은 채근담 번역서가 있다. 그 중에서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국 독립이라는 뜻을 꺽지 않고 당당히 나아간 한용운의 마음을 채근담을 통해서 만나고 싶다. 


1. 무엇이 그를 채근담으로 이끌었을까?

  고전은 나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고민이 있을 때 접한 한줄기 글귀가 나를 덮고 있는 고민덩어리에서 해탈케한다. 식민의 고통을 겪었던 만해 한용운에게 어떤 채근담의 글귀가 힘과 용기를 주었을까? 

  친일파들이 난동을 벌이고 있다. 매국노들이 나를 일제에 팔아 넘겼다. 을사오적과 일진회 세력이 활개를 치는 그 시대에 만해는 고민했을 것이다.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승려로서 구도자의 삶을 살 것인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 것인가? 현실에 순응하는 소시민으로 살 것인가? 그 때 한용운은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걷어차버린다. 그리고 당당하게 승려이면서 시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독립운동가로서의 소명을 다한다. 아마도 그는 채근담의 다음 구절에서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隨時之內善救時 若和風之消酷暑, 混俗之中能脫俗 似淡月之映輕雲.

(시대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시대를 잘 구제하는 것은 산들바람이 불어와서 무더위를 몰아내는 것과 같다. 세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세속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희미한 달빛이 가벼운 구름을 환히 비추는 것과 같다.) 84쪽


  칠흑같이 어두운 식민의 터널을 걷고 걸어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시대를 잘 구제'하여 독립의 꿈을 이룬다면 이것은 '산들바람이 불어와서 무더위를 몰아내는 것'과 같지 않은가? 일제 강점기 조선을 살면서도 조국 독립을 이루는 것은 '희미한 달빛이 가벼운 구름을 환히 비추는 것'과 같지 않은가? 

  누구는 절망했고, 누구는 변절했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은 현실과 굴복하지 않았다. 풀뿌리를 씹어 먹으면서도 자신의 올곧은 신념을 꺽지 않았다. 친일을 선택한 민족반역자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때 한용운은 총독부가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집을 짓는다. 그리고 집이름을 심우장이라했다. 아이가 소를 찾아 깨달음을 얻듯이 그도 자신이 추구하는 참된 진리를 찾아 긴 여생을 보내며 자신의 집을 심우장이라 지었다. 


貧家淨掃地, 貧女淨梳頭, 景色雖不艶麗, 氣度自是風雅. 士君子一當窮愁寥落, 奈何輒自廢弛哉.

(가난한 집의 마당을 깨끗이 쓸고 가난한 여인의 머리를 곱게 빗으면 외관과 외모가 화려하지는 않아도 기품이 우아할 것이다. 사군자가 가난하고 불행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어찌 스스로 피폐해지고 해이해질 것인가) 290쪽

肝腸煦若春風 雖囊乏一文 還憐煢獨 氣骨淸如秋水 縱家徒四壁 終傲王公.

(마음이 봄바람처럼 따뜻하면 주머니 속에 먼지만 가득해도 오히려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을 동정하며, 기개가 가을 강물처럼 맑으면 사는 집이 사방 벽으로 간신히 바람만 막는 정도라도 왕후장상을 우습게 여긴다.) 118쪽


  비록 가난했지만 한용운의 마음은 풍요로웠다. 창녀의 화려함을 절개 있는 처녀가 부러워할리 없듯이, 친일파의 부귀를 한용운이 부러워할리 없다. '사군자가 가난하고 불행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어찌 스스로 피폐해지고 해이해질 것인가'라는 글귀를 가슴에 새기며, 오히려 변절한 친일파들을 '동정'하였을 것이다. 부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의 신념임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독립운동가의 삶은 순탄할리 없다. 수없이 감옥에 갖히고 죽을 고비를 넘겨야했다. 순탄한 삶을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어떤이는 그만 타협하고 편안한 삶을 살라고 그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때 한용운은 채금담의 이 귀절을 되새겼을 것이다. 


一念錯 便覺百行皆非 防之當如渡海浮囊 勿容一針之罅漏.

(한 생각이 잘못되면 백 가지 행동이 잘못된다. 이것을 예방할 때는 바다를 건널 때 쓰는 부낭에 바늘구멍만한 틈도 없게 하듯이 해야한다.) 18쪽

欲做精金美玉的人品 定從烈火中鍛來 思立欣天揭地的事功 須向簿氷上履過.

(순금이나 좋은 옥과 같은 인품을 만들기를 원한다면 뜨거운 불 속에 단련되어야한다. 천지를 들었다 놓을 만한 업적을 이루기를 생각한다면 살얼음 위를 걷듯 해야 한다.) 16쪽


 조금의 타협도 용납할 수 없다. 식민의 바다를 건너는데 '부낭'에 '바늘구멍만한 틈'이 생긴다면 이는 곧 친일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순금을 '뜨거운 불 속에 단련'하듯이 자신의 이 고통도 자신을 단련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만해는 다음과 같은 해설을 남긴다. 


  역사상 위대한 충국의 열사와 절개 있는 사람은 칼날을 밟고 뜨거운 피를 뿌리는 외롭고 고통스럽고 험난한 환경에서 나오고, 세상에 드문 영웅과 호걸은 구사일생의 어려움 속에서 생깁니다." 17쪽


  한용운은 앞으로 자신의 삶을 예견하듯이 해설을 달아 놓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칼날을 밟고 떠거운 피를 뿌리는 외롭고 고통스럽고 험난한 환경'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결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 


若果一念淸明, 淡然無欲, 天地也不能轉動我, 鬼神也不能役使我, 況一切區區事物乎! 

(생각이 청명하여 담당하고 욕심이 없으면 천지도 나를 흔들지 못하고 귀신도 나를 부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모든 사소한 사물이야 오죽하겠는가.) 160쪽


  그렇다. 조국 독립에 대한 '생각이 청명하여 담당하고 욕심이' 없기에 '천지도 나를 흔들지 못하고 귀신도 나를 부리지 못'한다. 그 누가 나의 곧은 지조를 꺽겠는가? 한용운의 피맷힌 포효가 느껴진다. 


2. 우리는 채근담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채근담이 만해 한용운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데 일조했다면, 우리의 마음도 단단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채근담에는 우리마음을 단단하게 해주는 주옥같은 글귀가 많다. 그 중에서 몇가지를 꼽아보자.


紅顏失志 空貽皓首之悲傷.

(젊어서 뜻을 잃으면 늙어서 슬픔만 남는다.) 44쪽


  청소년기에 수많은 고민에 휩싸인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자신의 능력에 회의를 품기도한다. 힘들어하는 이땅의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귀이다. '젊어서 뜻을 잃으면 늙어서 슬픔만 남는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마라. 정면대결이 힘들다면 우회로를 생각해 보라. 

  패기가 있고 도전정신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적 경험이 적어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이러한 청년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귀가 있다. 


欺人者非福, 而受人欺者遇一番橫逆便長一番器宇, 可以轉禍而爲福.

(남을 속이는 것은 복 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속임을 당한 사람은 한 번 속을 때마다 한 번 더 자신의 도량을 키워 화를 바꾸어 복으로 만든다.) 136쪽


  현명한 자는 실수로 부터 배우고, 멍청한 자는 실수를 반복한다. 타인에게 속임을 당했다면 그것으로부터 배워야한다. 그래야 다시는 같은 이유로 속임을 당하지 않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할 때 잡상인에게 영어 교재를 강제 구매 당한적이 있다.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라서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어리석은 일로부터 배워야한다. 그러한 배움이 쌓이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굳건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사회에 나아가서 여러사람을 만나다보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士君子之涉世, 於人不可輕爲喜怒 喜怒輕 則心腹肝膽 皆爲人所窺, 於物不可重爲愛憎 愛憎重 則意氣精神 悉爲物所制.

(사군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들에게 기쁨과 노여움을 쉽게 품지 말아야 한다. 기쁨과 노여움을 쉽게 품으면 남이 속마음을 샅샅이 엿보게 된다. 외부 사물에 지나친 애증을 품지 말아야 한다. 애증이 지나치면 의기와 정신이 모두 외부 사물의 지배를 받게 된다.) 64쪽


  나는 사회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나의 감정을 얼굴에 쉽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을 얼굴에 분명히 드러내어 대인관계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채근담에서는 나의 기쁨과 노여움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에게 기쁨과 노여움을 쉽게 품지 말아야'하며, '외부 사물에 지나친 애증을 품지 말아야'한다. 이것은 인생을 현명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 가짐이다. 

  때로는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하늘이 운이 따르지 않을 때가 있다. 


 天薄我以福, 吾厚吾德, 以迓之  天勞我以形, 吾逸吾心, 以補之  天阨我以遇,吾亨吾道, 以通之  天且我奈何哉 

(하늘이 나에게 복을 박하게 주면 나는 나의 덕을 두텁게 하여 박한 복을 맞아들이고, 하늘이 내 몸을 힘들게하면 나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힘든 육체를 돕고, 하늘이 나에게 액운을 내리면 나는 나의 도를 형통하게 해서 앞길을 열리니 하늘인들 나를 어찌하겠는가)- 296쪽


  운명론적 삶을 거부하라! 채근담은 말한다. 사회의 일부 지도층 사이에서 역술인에 의존하는 자가 있다. 부적을 차고 다니고, 무속인이 쓴 글자를 손에 적고 다닌다. 자신의 삶이 떳떳하지 않거나, 자신의 마음가짐이 단단하지 않을 수록 역술에 의존하게 된다. 하늘이 나아게 나에게 복을 박하게 주면 나는 덕을 두텁게하고, 하늘이 몸을 힘들게하면 나는 마음을 편하게 할 것이며, 하늘이 액운을 주면 나는 도를 형통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인들 나를 어찌하겠는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 말인가! 운명에 나의 모든 것을 내 맡기기 보다는 나의 운명을 내가 만들어가자.

  내가 사회적 리더가 되었을 때는 어떠한 마음 가짐을 가져야할까? 채근담은 이렇게 말한다. 


我果爲洪爐大冶 何患頑金鈍鐵之不可陶鎔 我果爲巨海長江 何患橫流汚瀆之不能容納
(내가 큰 화로와 거대한 대장간이 되면 단단한 쇠를 녹이지 못할까를 어찌 걱정하며, 내가 큰 바다와 긴 강이 되면 내가 제멋대로 흐르거나 더러워진 강물을 용납하지 못할까를 어찌 걱정하리오.)


  리더가 될 사람은 그릇을 키워야한다. 그릇이 크지 않은자가 큰척한다면 마음에 큰 상처를 얻을 것이다. 나의 마음을 거대한 대장간으로 만들고, 커다란 바다와 긴 강으로 만든다면 때로는 치기 어린 아랫사람도 품어 안을 수 있다. 우리 자존감의 그릇을 키우자.

  나에게는 세상을 사는 젊은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현실 정치에 혐오감을 느끼더라도 절대 현실정치에 무관심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를 채근담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居軒冕之中,  不可無山林的氣味. 處林泉之下,  須要懷廊廟的經綸

(관직에 있어도 산림 속에 사는 듯한 기질과 취미를 버리지 말아야 하고, 산속 샘가에 살더라도 반드시 조정에 있는 듯이 경륜을 품어야 한다.) 224쪽


  자연인으로 산다 할지라도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정치는 우리의 삶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기를 바라는 자는 바로 독재자들이다. 로마의 황제들이 빵과 써커스 정책을 펼치면서 로마 시민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 않도록했다. 너의 눈과 귀, 그리고 배를 채워줄테니 황제의 독재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우민화 정책은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이어졌다. 성과 영화, 스포츠을 보면서 즐기면서 전두환 독재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기를 그들은 바랬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관직에 있으면서도 산림 속에 사는 기질을 버리지 말아야하듯이, 산속에 살더라도 반드시 나랏일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이것은 홍자성이 살았던 명나라 시기만의 교훈은 아닐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단순한 독립운독가가 아니다. 만해는 '고려대장경'을 낱낱히 열람하여 1000권을 선정하고 그 중 중요한 구절을 정선하여 번역했다.(1914)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정선 강의 채근담'을 집필했다. 그는 보통의 승려 이상의 능력과 실천력을 가진 분이시다. 중학교 시절, '님의 침묵'을 읽고 30여년이 지나서 그가 강의한 채근담을 읽었다. 채근담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가짐을 가다듬었을 만해의 뜨거운 열정이 나의 가슴속에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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