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비밀문서로 읽는 한국 현대사 1945~1950 - 우리가 몰랐던 해방·미군정·정부 수립·한국전쟁의 기록
김택곤 지음 / 맥스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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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미국 국립 문서고에 가야만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독재자들은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역사학자들은 역사는 한세대가 지나야 역사로 연구할 수 있다며 당대의 역사를 연구하지도 기록하지도 않았다. 결국,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우리를 바로알기 위해서 남의 나라 문서고를 뒤져야만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한조각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 역사학자들은 남의 나라 문서고를 뒤진다. 이책은 저널리스트 김택곤이 역사학자들이 해야할 작업을 대신했다. 우리에게 우리현대사의 조각난 진실을 찾아 책으로 묶어 냈다. 김택곤은 새로운 진실의 조각을 우리에게 던지며 생각의 파도를 일으켰다. 


  1. 하지 사령관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역사학자들은 하지를 군사적인 능력은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적인 능력은 없는 존재라 평가한다. 타지역에 보내진 장군들은 해당지역에 해박한 이해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능력까지 가졌다. 그러나, 하지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는 친일파와 지주가 많이 있는 한민당인사들이 요직을 장악하도록 했다. 친일파를 등용하고 이승만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며 그들이 정권을 잡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재미있는 것은 하지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밀었던 이승만을 비판하는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1948년 1월 허스트그룹 신문회장인 윌리엄 R. 허스트에게 하지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물론, 하지는 그 편지를 보내지는 않았다. 편지를 보낼 용기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암튼, 허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승만은 아집이 세고 돈을 사랑하며 친일파와 밀착해 있다고 실날하게 비판한다. "그에게 완전 독립 국가로서의 한국에 대한 고려는 없었습니다."(302쪽)라는 말과 함께 이승만은 '신콤플렉스에 사로잡혀있다고까지 표현한다.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밀었던 그가, 왜?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을까? 이승만이 하지를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는 이승만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이다. 그제서야 하지는 이승만의 실체를 깨달았다. 하지 그가 친일파를 등용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주지 않았던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돌고 물신 양면으로 노력한 것도 그가 아닌가? 순진한 군인 하지는 노련한 이승만의 실체를 진정 몰랐단 말인가? 

  이렇게 무능한 하지를 저자 김택곤은 "한국인을 이해하고 도우려했던 우리의 친구였지 않았을까?"(455쪽)라고 평가한다. 미군범죄를 단속하려했고, 한국인을 무시하거나 인종차별하지 말것을 미군에게 당부했던 그의 모습만 본다면 그의 마음이 악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기사에 10명의 미국 흑인 병사가한국 여성을 석유 저장고에 가둬 놓고 밤마다 성폭행했다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소녀가 탈출해서 이 사건을 오빠에게 알렸기에 이사건에 세상에 알려졌다. 물론 미군은 한국인 여성들을 창녀로서 자발적으로 군부대에 왔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410쪽) 전형적인 축소 수사의 냄새가 난다. 이렇게 미군에 의한 범죄가 사회문제였던 당시에 한국인을 존중하고, 미군범죄를 단속하려했던 하지의 노력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 단점은 정치적으로 무능했다는 것이다. 프로이센 군사 격언에 가장 나쁜 지휘관을 무능하면서 부지런한 자라고 했다. 그러한자는 반드시 제거해야한다는 당부도 프로이센 군사 격언은 잊지 않는다. 열심히 친일파를 등용하고 이승만을 물신양면으로 등용했던 그는 부지런하면서도 무능한 지휘관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반도의 운명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2. 지청천 장군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항일무장투쟁사에 큰 족적을 남긴 독립운동가이다.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군용지도와 작전교범을 가지고 일본군을 탈출해서 신흥무관학교에 간 그는 독립군을 양성한다. 1930년대 만주에서 한국독립군을 이끌었으며, 1940년에는 한국 광복군을 창설해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의 삶이 우리 항일 무장 투쟁사의 역사였다. 사선을 넘나들며 조국 광복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던 그에 대한 평가가 상반된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그것도 동일한 인물이 그를 상반되게 평가하고 있다. 

  OSS 이글팀의 실무책임자 싸전트 대위는 지청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광복후 지청천에 대해서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왜일까? 싸전트 대위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지청천 장군이 변한 것일까?

  그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변한 것이었다. 독립운동가 지청천은 광복후 극우파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동청년단을 만들어 극우 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승만을 지지하며 분단을 지지 혹은 방관했다. 저자 김택곤의 글을 읽으며 탄식이 절로 나왔다. 내가 존경했던 인물의 안타까운 이면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는 듯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고포스 일병이 하지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고포스 일병은 한국의 운명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했다. 


"한국인 스스로 그들의 정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미국-소련 양국 군대가 동시에 철수하면 남북간 내전이 틀림없이 발발할 것입니다."(414쪽)


  일개 일병조차도 한반도의 내전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분단은 곧 내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백범 김구가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북한에 가서 남북협상을 한 것 아닌가? 분단을 막고, 동족 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 백범이 인생의 마지막 모험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백범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지청천 장군을 어찌 분단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던가!

  철기 이범석 장군도 항일 무장 투쟁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시다. 청산리 대첩의 영웅이며, 한국 광복군 제2지대를 이끌었던 영웅이다. 그러나 그도 광복후에는 이승만을 지지하며 극우파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청천과 이범석은 공산주의자 박상실에게 항일 영웅 김좌진 장군이 안타깝게 암살된 것을 지켜보며 공산주의자에 대한 증오가 불타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광복 후, 그들에게 가장 큰 적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탁월한 군인이지만, 현명한 정치가이지는 못했다. 어디 티없는 옥구슬이 있으랴? 옥구슬의 티마져도 우리가 보듬고 끌어안아야만하지 않을까?


3. 연합국의 지위를 얻기 위한 임시정부의 처절한 투쟁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연합국의 지위를 얻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 한편으로는 보다 치열하게 노력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때가 많다. 그러나, 저자 김택곤이 소개한 임시정부의 처절한 투쟁을 읽으며 그분들도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무모한 이글 프로잭트를 추진했다. 김택곤은 "김구 주석의 마음에는 또 다른 수십명의 윤봉길 의사들이 있었을지 모른다."(101쪽)라고 표현했다. 무슨 뜻일까? 윤봉길 의사는 훙커우 공원에 입장권도 없이 갔다. 윤봉길 의사의 기지로 기념식장에 입장했고, 의거에 성공하고는 저세상으로 갓다. 국내 진공작전 즉, 이글 프로잭트도 이와같았다. 국내에 국내 정진군에 호응할 세력이 없는 상태에서, 구체적인 작전계획도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젊은이들을 무리하게 국내로 보낸다는 것은 죽음의 제단에 그들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렇게해서라도 값진 피를 흘려 연합국의 지위를 얻으려했다. 심지어 광복 직전에는 광복군의 지휘권을 미군에게 넘기는 것을 제안하기도했다. 그렇게해서라도 연합국의 지위를 얻으려했다. 

  둘째, 1945년 8월 18일 국내 진공작전을 추진했다. 광복군 선발대는 미군 C-47 수송기로 미군과 함께 여의도비행장에 착륙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항복 예비 접수' 명목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의 저항으로 중국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셋째, 김구 주석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문을 보냈다. 김구 주석은 도너반 장군에게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임시정부를 승인할 것을 건의했으며, 루즈벨트 대통령이 죽자, 트루먼 대통령에게 임시정부 승인 전문요구 전문을 보냈다. 도너반 장군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건의한 임시정부 승인 요구를 읽으면 감동과 깊은 상념이 든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게 되면 일본과의대결에서 달성하게 되는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919년 한국혁명(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곳곳에 있는 한국인들의 헌신적인 지원을 받으며 한국 국내외에서 대일 파괴 활동과 게릴라전 등 갖가지 대일항전을 벌여왔습니다. 때문에 세계의 다른 어느국가들과 달리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조직은 혁명과 파괴 활동에 대한 경험과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도너반장군의 루즈벨트에게 건의한 임정승인 요구) - P107

 

  만약, 루즈벨트 대통령이 3년만 더 살았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아니, 루즈벨트 대통령이 살았을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했다면 우리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렸단 말인가!


  책은 두껍지만 관련 사진과 큰 활자를 고려한다면 두껍다고 겁낼 필요가 없는 책이다. 술술 잘읽히고 새로운 사실을 안다는 점에서 큰 재미를 주는 책이다. 책을 덮고서 나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프롤로그에 일본계 미국인이 남긴 위안부 보고서였다. 


"위안부는 창녀 이거나 혹은 병사들의 편의를 위해 일본군에 부속되어 부대를 졸졸 따르는 존재일뿐 그 이상은 아닙니다. 위안부라는 단어는 일본인 특유의 것입니다." 37쪽

"낯선 사람 앞에서는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실은 여자만의 제주를 부릴줄 압니다."37쪽


  알렉스 요리치라는 일본계 미국인의 심문 기록은 그도 일본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탄식을 자아낸다. 일본을 위한 변명과 조선인에 대한 멸시가 진하게 묻어난다. 미군의 기록이 제3자의 객관적 기록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 남겨진 수많은 기록은 미국인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서 남겨진 하나의 기록이다. 그 프리즘을 통해서 우리 역사의 다른면을 바라볼 수있다. 진실의 퍼즐을 맞추며 새로운 감동과 깊은 안타까움이 밀려오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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