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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 9.11 테러 10년과 달라진 이슬람 세계
이희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대학을 다니면서 무하마드 깐수라는 교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슬람 사람이래", "이슬람 사람이 한국말을 잘한데"라는 선배들의 말에, 무하마드 깐수 라는 교수가 궁금해졌다. 그는 무슨 이유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왔는가? 동서문화 교류가 그의 전공이었다. 대학 도서관 서가에서 그의 책 머릿글을 읽었다. "한국은 하늘도 아름답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2천년전 신라의 땅에 왔던 어느 무슬림의 말같이 들리기도 했다. 그와 대화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어떠한 감상을 갖고 있는지 직접 묻고 싶어졌다.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날, "반납 완료되었습니다."라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발길을 돌리던 그 교수의 수업 '아시아지역사'를 수강신청했다. 그리고 그와 강의실에서 만나 진솔한 동서문화 교류의 역사를 배우고 토론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기숙사에서 신문을 펼쳤다. "단국대학교 무하마드 깐수 간첩으로 드러나"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겉으로 보아도 무슬림으로 보이는 그 사람이 간첩이었다니... 더욱이 북한에도 아내가 있고 남한에도 아내가 있었다. 설마하는 생각과 속았다는 생각이 교차해다. 나에게 이슬람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사람은 나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나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세월을 흘렀다. 대학에서 기나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나의 진로를 두고 수많은 고민으로 눈물을 흘리며 밤을 세웠다. 그리고 역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역사를 가까이에서 계속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역사관련 직업을 얻기 위해서 취업재수를 하면서 부단히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시험을 보았다. "이슬람의 대표적인 여행가로 '여행기'를 남긴 사람의 이름은?"이라는 시험문제가 나왔다. 정답은 이븐 바투타였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코폴로'라고 답을 섰다. 이슬람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이 문제로 많은 사람들의 당락이 결정되었다. 서구의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알아도, 이슬람의 유명한 여행가 이븐바투타는 모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시험에 합격하고 신문을 펴들었다. 오래된 기사속에서 '정수일 세계에서 2번째로 '이븐바투타 여행기'를 완역하다'라는 기사가 눈에 띄였다. 시험문제에 '이븐 바투타'가 나온 이유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동서 문화는 대립의 역사가 아니라 교류의 역사이다. 시대적 소명을 이루고 싶다.'라는 정수일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뮤엘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에서 이슬람 문명과 크리스트교 문명을 대립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면, 그는 문명을 교류의 역사로 바라보있다.
사회에 나와서 이슬람에 대한 강의와 이슬람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 그리고 9.11테러가 일어나고 파리 테러가 일어나면서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하늘을 치솟았다. 나에게 이슬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슬람과 한반도의 기나긴 교류의 역사 처럼, 나와 이슬람과의 인연은 좁은 실개천이지만,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다. 이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내가 이슬람에 대해서 올바른 시각을 주변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이것이 '문명의 충돌'에서 '문명의 교류'로 이행할 수 있는 첩경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은 이슬람에 대한 개설서라고 하면 딱 좋을 책이다. 내가 과거에 읽었던 책들이 주로 이슬람의 역사와 관련된 책이었다면, 이책은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슬람과 우리와의 교류, 종교 분쟁의 원인과 치유책 에 대한 종합 보고서와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을 내려 놓는 순간 나에게 밀려든 이슬람에 대한 이산은 '슬픈 이슬람'이라는 단어다. 한때 너무도 찬란한 역사를 이룩하였던 머나먼 문명 '이슬람'! 그러나 지금은 서세 동점의 시기에 제국주의 서구에게 철저히 짖밟히고, 억눌리며 20세기를 보내야했다. 특히 유대인들은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받았던 수모와 박해를 팔레스타인의 주인들에게 앙갚은 하듯이 폭력으로 짓밟고 있다.
'슬픈 이슬람' 지금의 파리 테러는 슬픈 자들의 추악하고 처절한 절규이다.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죄없는 영혼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슬픈 이슬람'의 눈물을 닦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시 악의 구렁텅이로 우리를 끌고 갈 것이다. 종교의 대립과 반목속에서 자신의 종교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타 종교에 배타적인 종교인들은, 이슬람이 과거 보여주었던 '관용'의 모습을 떠올리며, '슬픈 이슬람의' 눈물을 닦아 주길 바란다.
피의 보복은 또 다른 피의 보복을 가져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깨닫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