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 거대 농축산업과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지정학
롭 월러스 지음, 구정은 외 옮김 / 너머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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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스, 메르스,코로나19로이어지는 새로운 전염병 유행의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그때 그때 창궐하는 새로운 전염병을 두려워할뿐, 예전에는 없었던 전염병이 창궐하는 근본원인을 고민해보지 않았다. 아무런 죄도 없는 돼지, 소, 닭들이 산채로 압매장당하는 모습을 담은 뉴스를 보면서도 그 근본 원인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더 이상 근본원인에 무관심할 수는 없었다. 박쥐의 몸속에 수천년 동안 아무런 탈없이 잠들어 있던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깨운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바이러스를 불러 낼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이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저자 롭 월러스는 비장하게 서문을 써 내려갔다. 미국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쌍둥이 빌딩이 알카에다의 비행기 테러로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바로 그 자리, 그라운드 제로를 언급하며 거대 농축산업과 대결하는 자신의 결의를 다진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9.11 이후로 130만 명을 죽인 이 절대 권력은 자신의 핵심 교리를 모욕하는 자들에게는 더 없이 무자비하다. 그러나 나는 그 결과를 기꺼이 대면할 준비가 되어있다."-19쪽


  막대한 자본을 무기로 세계 식량 산업을 거머쥐고 있는 거대 농축산업과 대결은 가시밭길이다. 그는 과거 수구 정권이 진보 인사를 탄압하듯이 그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장미가 넘치는 서문을 쓸 정도로 그는 인류를 절멸 시킬 수있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바이러스의 숙주인 거대 농축산업과의 싸움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인 문제일까? 거대 농축산업 덕분에 우리는 싼 가격에 고기와 야채를 먹을 수 있지않은가? 공장식 가축 사육은 무엇인 문제인가? 거대 농축산업이 더욱 커진다면 지구상에서 기아를 없앨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거대 농축산업의 팽창은 소규모 자영농을 몰락시킨다. 몰락한 그들은 살기 위해서 임야를 개간하며 야생 동물과 접촉한다. 때로는 살기 위해서 야생 동물을 사냥하다가 그들의 몸속에 있던 바이러스에 감연된다. 병원균으로서는 새로운 숙주를 얻는 행운 에 당첨된 것이다. 거대 농축산업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 수려한 밀림을 밀어내고 자신들의 왕국을 짓는다. 그 왕국에서는 닭이 60일을 살았지만, 이제는 40일을 살게 된다. 가슴살이 비대해지며 스스로의 발로 일어설수 없는 기형의 닭들이 조그만 닭장 속에서 빨리 살이찌고 재빨리 도축된다.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의 몸에서 또다시 새로운 숙주를 만나는 여행이 시작한다. 어린 닭은 면역력이 낮기에 쉽게 집단 감염을 시킬 수 있다. 그러나 빨리 도축되기에 바이러스는 살아남기 위해서 분주히 움직여야한다. 그러는 과정속에서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탄생한다. 한순간에 그들은 닭들과 심지어는 사람까지도 죽음에 이르게한다. 

  놀라운 사실은 바이러스 사이에서, 혹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사이에서 서로 번식을 돕는 놀라운 공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예로 헤르페스 바이러스와 HIV 바이러스가 서로 번식을 도울뿐만 아니라, 심지어 박테리아가 사람이 만들어 놓은 틀 숙에서 섞이고 짝을 이룰수도 있다. 박테리아들 끼리는 서로 유전정보를 주고 받으며 빠른 진화의 과정을 겪는다. 인간이 쫓아가기에는 그들의 진화 속도는 너무도 빠르다. 인류는 그들을 우습게 보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농촌의 마당에서 자라난 가축들은 나름데로 면역력을 가진다. 그리고 그들은 오랜동안 이루어진 진화의 혜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장식 축산업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형적 가축들은 그러한 혜택을 누릴 수 없다. 더욱이 거대 농축산업은 수직적계열화를 통해서 전염병의 세계화를 이룰수도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가 더해지면서 야생 동물이 보유하고 있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유입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항생제로 이를 막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내성을 진화시킨 병원균이 등장하고, 이전에 간염 시키지 못했던 종에게 병원균이 점프하여 감염시키고 있다. 바이러스는 영리하고 재빠르다. 그래서 저자 롭 월러스는 지리학자 제이슨 무어의 말을 빌어 "자본주의적 생산은 그 안에 전염병을 품고 있는게 아니라 그 자체가 전염병이다."(300쪽)라고 일갈한다. 자본은 바이러스를 불러들인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치명적 위협이 될텐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인류를 위협하는 인수공통전염병을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 롭 월러스는 'One Health'를 제안한다. "자연, 인간, 동물의 건겅은 모두 이어져있으므로 인수공통전염병을 막기 위해서 환경과 농업까지 고려해 총체적으로 접근해야한다."(177쪽) 그렇다. 지구도 하나의 거대한 우주이다. 동물과 사람, 동물과 자연, 자연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동물, 자연, 인간을 별개의 통제 그룹으로 보는 인간의 오만함과 이기심을 거두지 않는다면 인류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One Health'를 인정한다면, 인간은 공장식 사육, 유전자 변형 작물 재배 등의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농축산업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깨달을 정도로 자본은 현명하지 않다. 

  자본은 현명하지 못하지만, 교활하다. 정치도 자본의 힘에 종속되어 있다. 교활한 자본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 사람이 돼지에게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도 정부는 그 돼지를 검사하려면 소유자의 허락을 받아야한다. 그뿐만 아니다. 돼지 바이러스 검사 결과가 연구자에게 제공되지도 않는다. 자본의 힘에 종속되고 그들에게 휘둘리는 정치권을 보면서 우리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의문이든다. 

  정치는 자본의 힘에 굴복할 뿐만아니라, 스스로 체제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서 과학의 논리를 외면한다. 중국만이아니다. 인도네시아도 H5N1의 쌤플제공을 고부했다. 미국도 정치적 이유로 과학적 연구 결과를 왜곡한다. 저자는 '나프타 독감'이라는 용어를 창조했다. NAFTA 체결로 인해서 악성 바이러스는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급속한 전파가 가능해졌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유행이 가능한 것은 소규모 농장의 몰락과 다국적 거대 농축산업의 융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 권력은 이러한 진실에 눈을 감고 있다. '너희 나라의 잘못'이라며 팬데믹의 원인을 호도하며 자신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바이러스 사육은 보지 못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중국이 보여준 모습은 다른 국가에게서도 관찰되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가장 역겨운 사실은 "시스템의 실패가 오히려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242쪽) 즉, 공장식 대규모 가축 사육 시스템이 맹독성 바이러스의 진화를 촉발시키고 이것이 위생규정 강화로 이어진다. 강화된 위생규정을 갖추기 힘든 소규모 농가는 몰락하고 맹독성 바이러스의 천국인 대규모 가축 사육 시스템은 더욱 강하게 확장한다. 거대 농축산업의 교활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거대 농축산업과 바이러스의 공생관계를 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절망감이 밀려온다. 


  이 책을 읽으며 거대 농축산업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있을까?, 바이러스와 싸워서 인류는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절망적인 질문이 밀려왔다. 거대 농축산업과의 대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저자는 콕번의 말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헤시오도스와 오비디우스가 탄식했던 '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다. 상황을 바꾸면 풍요가 있다. 세상은 뒤집힐 수 있다.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다. 우리가 어디를 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안다면 황금 시대는 우리 안에 있다."-345쪽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어디를 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려면 나 혼자만 어디를 보고 무엇을 생각해야하는지 알아서는 부족하다. 내 이웃과 함께 할 때만이 '황금 시대는 우리 안에 있다.' 만일 내 이웃과 함께 진실에 눈뜨지 않는다면, 남북전쟁 이전 쓰레기 장에서 7블럭 떨어진 곳에서 노예가 길어온 물을 마시고 죽은 3명의 미대통령(제임스 포크, 재커리 테일러, 윌리엄 헨리 해리슨)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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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6-28 0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강나루님 리뷰 반갑습니다. 이 책 언제 읽었던지...가물랑 하려던 참에 강나루님 리뷰도 다시 리마인드.
저는 롭 윌리스가 꽤 강한 기질(그걸 반항심이라하면 그의 저항정신을 가볍게 표현한 것 같고....)을 가진 학자구나 하며 흥미로웠던 기억이 나요.

‘황금시대는 내 이웃과 함께 할 때만....‘그런 대목이 있었군요. 메시지를 다시 확인하고 접수해갑니다. 덕분입니다

강나루 2022-06-28 04: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학문의 세계는 진실이 지배하는 세계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롭 윌리스의 책을 통해서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 진실과 대면하는 용기는 정치인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