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 - 호메이니의 삶을 통해 본 이란 현대사
유달승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미국에 대항한 국가는 비극을 면치 못한다. 세계 초강대국 앞에서 무력하기만한 약소국들을 바라보며 냉혹한 국제질서의 무자비함에 직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대국 미국에 대항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미국 대통령 아들 부시가 '악의 축(Axis of evil)'의 나라들이 대표적이다. 이중 이라크는 미국의 공격으로 친미 국가가 세워졌다. 북한은 미국과 종전 선언을하고 평화협정을 맺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지막 이란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도 자존심하나를 내세우며 미국과 날선 대립을 하고 있다. 세계사 교과서에도 이란의 역사는 너무도 소략하게 기술되어 있고, 시험에도 잘 출제되지 않는다. 세계사 교과서만으로는 이란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제대로 가르칠 수도 없다. 이란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현대 이란을 만든 호메이니를 통해서 이란 현대사를 살펴보는 '이슬람 혁명의 아머지 호메이니'라는 책은 그래서 나의 관심을 끌었다. 호메이니를 통해서 이란의 역사를 살펴보자.


1. 서울에 테해란로가 있는 이유는?

  서울과 테해란은 자매도시이다. 이란에는 '서울로'와 '서울 공원'이 있고, 수도 서울에는 '테해란'로가 있다. 멀고 먼 나라 나라로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은 너무도 가까웠던 나라가 이란과 한국이었다. 그렇다면, 서울에 테해란로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디나-아케메네스 페르시아-파르티아-사산왕조 페르시아사파비왕조는 이란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이란인의 조상이 세운 왕조이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서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을 때, 이란을 통치하고 있었던 카자르왕조는 너무도 부패했고 무능했다. 1891년 담배 이권을 영국에 넘긴 것에 분노한 이란인들은 담배 불매운동을 전개한다. 담배 불매 운동이 성공하는데 성직자의 역할이 컸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바탕이 이미 이때부터 마련되고 있었다. 

  1921년 레자 칸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1925년 팔레비왕조를 창건한다. 팔레비 왕조는 근대화에 박차를 가한다. 그러나 근대화의 방식은 너무도 폭력적이었고 급진적이었다.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근대교육제도를 실시했고, 여성의 베일 착용을 금지시켰다. 이는 종교인들의 반발을 가져왔다. 이어 모사데크 수상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석유국유화 조치를 이행한다. 결국 파레비왕조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진다. 이때 미국이 팔레비왕조를 도와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어 일명 '백색혁명'으로 불리는 친미 노선을 견지하자, 자주의식이 강한 이란인들의 강한 저항을 얻게된다. 미군의 치외 법권과 미군주둔, 서구화정책은 수많은 시위를 불러 일으켰고 이에 팔레비 왕조는 유혈진압을 했다. 인권 외교를 펼쳤던 카터 행정부는 인권탄압을 하고 있는 팔레비왕조를 열열히 지지했다. 이란은 '중동의 헌병'이라 불리며 충실한 친미국가로 거듭났다. 

  서아시아에 이란이 있다면, 동아시아에는 한국이 있지않은가! 모함마드 레자 샤가 폭력을 사용하여 반정부 시위를 짓밟았다면, 박정희 정권도 자신의 반대파를 잔인한 고문으로 짓밟았다. 이 두 정권이 친해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서울에 '테해란로'가 생긴것도, 테해란에 '서울로'와 '서울 공원'이 있는 것도 이러한 국제정세의 산물이었다. 

  이란과 한국과의 좋은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팔레비왕조의 폭압 통치에 반대하는 민중시위가 계속된다. 민중시위의 핵인 호메이니를 터키로, 이라크로 보냈다. 호메이니는 이라크에 있는 동안 이슬람 공화국에 대한 정치 이론을 완성했다. 호메이니의 사상은 이란으로 흘러들어왔다. 무함마드 레자 샤는 그를 멀리 프랑스로 보냈다. 호메이니의 영향력은 파리에서 세계 언론을 통해서 더욱 커졌다. 결국, 무함마드 레자 샤는 망명길에 올랐고 이란 혁명은 성공하였다. 이란은 호메이니가 제시한 이슬람 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팔레비왕조가 친미정권이었기에 호메이니는 미국을 좋아할리 없다. 1979년 11월 4일에 발생한 미대사관 인질 사태는 이란과 미국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이란은 반미노선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989년 하메이니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으며, '조선-이란 친선주간'이 설정되기도 했다. 이란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란과 남한이 친선관계를 맺었다면, 이란에 반미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과 이란의 관계가 좋아졌다. 

  요동치는 국제 정세에 따라서 이란과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좋아지기도 했고 나빠지기도 했다. 남한은 박정희 군사정권이 몰락하고 민주화정권이 들어섰지만, 이란은 아직까지 호메이니를 이맘으로 여기는 이슬람 공화국이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이란은 얼마전 우리의 배를 환경오염을 시켰다는 이유로 나포했다. 이란의 속마음은 미국의 제재로 한국에 동결된 원화자금을 사용하지 못한것에 대한 항의적 성격이 농후하다. 과연 이란과 한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2. 미국과 이란과의 관계는 나쁘기만할까?

  호메이니는 미국을 너무도 싫어한다. 자신을 핍박했던 팔래비왕조를 지지했고, 이란을 떠난 무함마드 레자 샤의 입국을 미국이 허락하자, 미국에 대한 적개심은 하늘을 찔렀고, 젊은이들은 분노하여 이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점령하고 인질극을 벌였다. 그런데, 미국과 이란과의 관계가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미국과 이란과의 관계가 가장 좋았을 시기는 친미정권 팔레비왕조시기였다. `1978년 이드 알 피트르의 시위에서 잘레 광장의 출굴르 막고 탱크와 헬기 사격으로 2000명을 사망시킨 무자비한 사건이 발생했다. 무함마드 레자 샤의 어리석은 광기가 빛을 발한 이 사건을 인권 외교를 내세운 미국의 카터 행정부는 비난했을까? 카터 대통령의 인권외교에 기대를 걸었다면, 우리는 너무도 순진하거나 어리석은 것이다. 미국을 방문한 레자 샤의 환영회 만찬 자리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이란을 "국민들이 샤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안정의 섬"이라고 불렀다. 자국의 이익에 인권은 없었다. 오직 실리만이 있을 뿐이다.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에서 '이란 콘트라 사건'이 발생했다. NSC에서 이라크를 상태로 전쟁하던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대금 일부를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에 제공했다. 이란과 미국의 중간 무역을 이스라엘이 담당했다. 이란과 미국, 이란과 이스라엘은 견원지간이다. 철천지 원수들 사이에 이러한 밀거래가 행해졌다. 

  이란 콘트라 사건이 벌어지던 시기 이란은 이라크를 상대로 전재을 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란의 적국인 이라크를 지지했다. 미국은 팔래비왕조가 이란을 지배했을 시기에는 이라크를 테러지원국가로 규정했다. 그러나 미대사관 인질 사건 이후,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자,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모든 조치를 반대했다. 이어서 이라크를 테러지원국가에서 삭제했으며, 미국의 무기를 이라크에 보내주었다. 

  자신의 적의 적을 친구로 삼는 것은 냉혹한 국제 사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자신이 지원하고 있는 이라크의 적국에게 다시 무기를 판매하는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이라크와 이란이 전쟁을 하는 사이에 양쪽에 무기를 팔아서 미국이 엄청난 이익을 얻는 모습은 세계 대전 시기 미국이 연합군과 추축국에게 했었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미국의 선택적 정의에 실망하고, 국제 사회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오직 영원한 실리만이 있을 뿐이다.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라는 책은 이란 현대사와 냉혹한 국제질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과연 호메이니를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팔레비왕조의 폭압정치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정치 형태를 탄생시킨 혁명가이자 정치가로 그를 평가해야할까? 아니면, 카자르왕조와 팔래비 왕조에서 부족하지만 진행되었던 근대화를 '문화혁명'을 통해서 무효로 만들고, 아직도 차도르와 터번을 두루고 다니는 중세시기로 시간을 되돌린 인물로 평가해야할까? 

  나는 호메이니를 나쁘게만 평가할 수 없다. 이책의 들어가는 글에 저자 유달승은 이란사회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도서관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저자에게 몸이 불편하면 사원에 가서 자라고 친구가 제안한다. 사원에 가서 잠을자라? 신성한 사원에서 잠을 자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사원은 힘들때 쉬는 곳"이기에 사원에서 낮잠을 자기도하고 아이들이 놀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과장에게 청소원이 당당히 자신의 보조를 채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이를 관철한다. 학과장도 청소원에게 예의를 표하고 정당한 요구를 받아준다. 신 아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를 생활속에서 실천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호메이니에 대한 평가는 좀더 시간을 두고 내려야겠다. 호메이니가 제시하고 성립시킨 '이슬람 공화국' 이란의 실험이 어떠한 결과를 만드는가에 따라서 호메이니는 탁월한 성직자이자 정치가, 혁명가로 평가될 수도 있으며, 헛된 실험으로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사람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호메이니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이란인들이 어떠한 역사를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부디, 호메이니가 탁월한 정치가이나 성직자미염 혁명가로 평가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ps.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사산'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사산'은 조로아스터교의 사제였던 '사산'을 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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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13 0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는 호메이니가 무슨 악마처럼 묘사되지만 이란인들의 입장에서는 분명 영웅적인 인물이겠죠? 하지만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또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면서 종교적 지배의 과거로 회귀시킨 인물이기도 하고 참.... 선악의 개념으로 인물이나 역사를 볼 수 없다는게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강나루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강나루 2021-02-13 07:18   좋아요 0 | URL
한인물을 무자르듯이 말할 수 없네요 바람돌이님 말처럼 선악의 개념으로 호메이니를 평가하기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