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 -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김후련 지음 / 책세상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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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하면서, 근대 일본 만들기는 시작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은 사실 근대의 창작물인 경우가 많다.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도 근대의 창작물이었다. 일본 고대와 중세의 작품을 가져다가 근대 민족국가 이데올로기에 알맞도록 다시 창작해낸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합리화했다. 수 많은 일본인들과 동아시아의 수많은 젊은 영혼들이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비극을 겪었다.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라는 책은 일본의 신화가 어떻게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새롭게 태어났는가를 깊이 있는 연구로 밝혀냈다. 저자 김후련의 안내를 받아 일본 천황제의 허상을 뜯어보자.

 

1. '무형의 형태', 신도

  일본의 토착 종교는 '신도'이다. 신의 길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신도는 우리 나라의 무속신앙과는 달리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무속신앙은 외부에서 들어온 불교와 크리스트교, 유교에 짖눌려 종교이기 보다는 '미신'으로 취급받고 있다. 이에 반해서 '신도'는 아직까지 살아남아 일본인들의 삶에 깊숙히 뿌리 내리고 있다. 합격을 기원하며 신사로 향하기도 하며, 결혼식을 신사에서 하는 일본인도 많다. '살아서는 신도, 죽어서는 불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사의 생명력은 강하다. 그 생명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신유습합'과 '신불 습합'에 있었다. 불교이든 유교이든 신도는 이들 사상을 흡수하여 새롭게 태어났다. 불교가 탁월한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각지역의 토착신앙을 흡수하면서 발전했다면, 이러한 이론적 체계가 없었던 신도는 불교 신앙을 받아들여 '신사'를 만들어냈으며, 외세가 침략할 때는 그들만의 '화이'사상을 만들어냈다. 이것을 '무형의 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형의 형'의 무서운 힘은 조선을 강제 병합하면서 다시 발휘된다. 조선 총독 고이소 구니아키(1942~1944)는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신라에 강림했다는 고대 천황신화를 만든다.

 

  "여기 반도 2,500만의 원민족은 틀림없이 스사노오노미코토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렇다고 하면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후손인 내지(일본) 민족과 바로 뿌리가 같고 하나라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생각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오늘날 알 수 있는 역사상으로나 그 후로나 피의 혼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 그런데 명치 43년(1910)의 성대에 아마테르사오미카미의 후손이신 메이지 천황에 의하여 스사노오의 후손인 조선이 병합된 것은 신대 말기의 신사가 더욱 철저히 완성적으로 다시 되풀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42쪽

 

  일본신화에 우리의 단군 신화를 흡수하려하는 조선 총독의 모습에서 그들의 집요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일본의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의 후손이 세운 일본에 의한 아마테라스의 남동생이 세운 조선 병합을 합리화하려는 그들의 모습은, '무형의 형'으로 새로운 외부의 사상을 흡수하는 신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테라스는 신도의 가장 근본적인 신이다. 일본의 신도는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적혀있는 일본 신화를 호출하여 일본의 조선 점령을 합리화하려했다. 신화는 신대의 필요에 따라서 다시 호출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을 오용한다면 그 폐해는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오늘 필요에 따라서 과거를 호출하고, 새롭게 신화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화를 믿으며 침략전쟁을 합리화한다.

  만약, 우리가 일본의 '신화 만들기'에 대항할 문화적 백신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성공했다면 어떠했을까?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영화가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처단이 실패로 끝나서,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이 성공한 미래사회를 그린 영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가공의 영화를 호출할 필요가 없다. 민족 말살 정책이 성공한 실제 나라가 있으니까 말이다. 바로 '류큐'국이다. 일본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류큐'왕국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복속된다. 황국신민화 정책이 조선 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하나의 현으로 일본 영토에 편입된 류큐는 '일본인'으로서 침략전쟁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차별이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류큐 민간인들은 군부에 의해서 '옥쇄'를 강요받았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천황을 위해서 옥쇄를 했지만, 류큐인이 지키려했던 쇼와 천황은 류큐를 미군기지로 사용하도록 미국에 넘긴다. 이때가 1947년이다. 일본으로부터 버림받은 류큐는 미군 기지로 인해서 발생하는 모순에 고통스러워하며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1972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일본사회에서 류큐는 '오키나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차별을 받는다. 단일민족이라는 허상을 믿으며, '오키나와인'과 '아이누인'을 차별하는 야마토인에게 류큐인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일본에 귀속되려는 '류큐인'을 보면서, 일제의 황국 신민화 정책의 위력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스레 절감한다. 문화적 백신이 없는 '류큐'인들은 계모에게 학대받으면서도 계모를 친모로 믿고 사랑을 받으려는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 뿐일까?

 

2. 일본의 신화 만들기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있었던 여러 이유중에서,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믿는 능력을 꼽았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신과 신화를 만들어 내고, 이를 진실로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엄청난 수의 사피엔스를 하나로 뭉치게 만든다.

  일본은 유발 하라리가 말한 '사피엔스'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민족이다. 일본의 신화 만들기는 고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서기'에는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천손이 규슈의 휴가에 강림했는데, 천손이 강림한 구지후루타케는 가야국의 수로왕이 강림한 구지봉에 해당한다. 김후련을 비롯한 많은 신화학자들이 지적했듯이, '구지후루'는 '구지'의 발음과 유사하며, '다케'는 구지봉의 '봉'에 해당하기에 일본신화의 천손강림과 가야의 김수로왕 강림신화는 같은 계열의 신화라 할 수 있다. 한반도인이 일본에 건너가 국가를 세웠다는 주장을 할수도 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 기록을 외면한다. 일본 신화학자는 그들의 입맞에 맞는 기록만을 선택해서 호출한다.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 이야기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들 천황가의 뿌리가 한반도 일 수도 있다는 기록은 애써 왜면한다.

  '일본서기'와 '고사기'가 저술되던 시기 그들의 일본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일본은 신화를 다시 정리한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동생인 스사노 미코토는 이즈모 전승에 따른다면, 일게 지방신이었다. 절대 황조신 아마테라스의 남동생이 아니었다. 제우스가 바람둥이인 이유가 해당 지역의 토착신과 그 후손들이 제우스와 연결시키려다 보니, 제우스를 바람둥이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는 연구결과를 떠올린다면, 일본서기를 집필할 당시, 천황가의 일본지배를 합리화하려는 목적에서 신화가 다시 정리되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더욱 재미 있는 것은 일본서기 편찬시기 천황가의 일본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정리된 일본 신화가 근대시기에 다시 재해석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외팔주 사관'이다.

 

  "국토 창조 신화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면 일본은 세계를 축소해 놓은 것이라는 '외팔주사관'으로 재생산된다. (중략)외팔주사관은 기무라 다카타로가 주장한 것으로 (중략) 고대 세계사의 인명과 지명에 일본의 그것을 조합시켜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에 군림하는 거대 국가 일본을 창조해낸 것이다.기무라의 주장에 따르면 태고의 일본은 결코 극동의 작은 섬이 아니었으며, 현재의 일본은 옛날에 세계 전체에 걸쳐 있었던 일본의 지리를 세밀하게 축소해 일본 열도에 투영시킨 것이다."-33쪽

 

  군국주의 시대, 일본의 침략주의를 합리화하려는 목적에서 탄생한 주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신화를 다시 정리하고 새롭게 해석해오고 있다. 문제는 이를 진실로 믿는다는 것이다. 일본 천황가가 중요시 여기는 '삼종신기'라는 것이 있다. 천황가가 하늘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옥과 청동검, 거울을 뜻한다. 그러나, 남북조시기 삼종신기 일부는 사라졌다. 엄밀히 말하면 삼종신기는 중세에 다시 말들어진 것이다. 더욱이 '삼종시기'라는 말은 에도시대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삼종신기'는 중세의 신국 사상과 근세의 국학과 미토학, 근대 천황제 국가의 이데올로기로서 끊임 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말이 있다. 전통은 필요에 의해서 근대에 만들어진 산물이다. 만들어진 전통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화에 의해서 인간이 노예가 되어 죽어가는 비극을 우리는 직시해야한다.

 

3. 만들어진 '신화'가 인간을 잡아 먹고...

  SF영화에는 인간이 만든 바이러스 혹은 생명체, AI가 인간을 지배하거나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설정이 흔히 있다.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 도리어 인간을 해친다는 설정은 SF영화에서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이 만든 '신화'가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일이 인류 역사에서는 실제로 발생했으니까 말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 군국주의 광기에 휩싸인 '카미카제 특공대'를 떠올리며,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카미카제 특공대'가 태어나기 위해서 일본은 중세 시기부터 준비를 했다. 하야시 라잔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타고나지도 않은 부귀와 수명을 바라는 것은 이에 어긋난다. .... 이루어지지도 않은 소원을 꾀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소행이다. 그런 자는 돼먹지 못한 일을 생각해내고 도리에 어긋난 일을 행하여 죄를 지음으로써 결국에는 몸을 망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라서는 안 될 도리가 되는 까닭이다."-(삼덕초)1643년 이후-하야시라잔

 

  '바라서는 안될 도리'라는 말은, 각자 자신의 신분에 맞게 행동해야한다는 것이다. 한번도 왕조교체가 일어나지 않은 나라 '일본'은 각자 자신의 신분에서,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했다. 우리처럼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서 상승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만세일계'라는 신화는 일본의 안정성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정체된 사회 모습을 보여준다. 하야시 라잔이 말했듯이, 자신의 신분에 벗어나서 '바라서는 안될 도리'를 바라지 않았다.

  근대에는 니토베 이나조에 의해서 '일본의 영혼, 무사도'라는 책이 씌여진다. 서구인들에게 일본을 소개하기 위해서 영어로 씌여진 이 책을 통해서, 일본인들은 새로운 신화를 만든다. 주군의 명령에 목숨을 내놓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무사도'라 포장하고, 생명력이 가득한 '핀사쿠라'의 모습이 아닌, 천황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죽음으로 뛰어드는 '지는 사쿠라'로 행동하길 강요받는다. 그리고 수 많은 일본인들을 '지는 사쿠라'가 되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광기에 미토학의 국체론이 한몫한다. 후지타 도코(1806~1855)는 "세번 죽음을 각오하면 죽지 않는다."라고 시작하는 '회천시사'를 남긴다. 이 시는 막부말기 지사들이 즐겨 낭송했으며, 태평양 전쟁 시기 '회천(가이텐)'이라 불렸던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에게 전승된다.

  군국주의 광기는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군국주의 광기를 만들려는 자들에 의해서 과거의 불행한 유산들이 소환된다. 여기에 시류에 영합하며, 순응하는 일본의 국민성이 더해진다. 여기에 신공화후 신화와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신화가 다시 등장하여 침략전쟁에 힘을 불어 넣는다. 국가 통치권의 주체는 국가자체이고 천황은 국가의 최고기관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할 권능을 갖는 것에 불과하다는 미노베 다쓰기치의 천황기관설 마져도 불경죄로 여겨졌고, 급기야는 우익인사의 통탄을 맞기도 했다. 이것이 일본의 광기에 부레이크를 사라지게 했다. 단테의 '신국론'-지옥편에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에게 예약되어 있다."  (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times of great moral crisis, maintain their neutrality).”라는 말을 우리는 되새겨야한다. 수많은 젊은이 들이 사람을 죽이기 위한 전쟁에 내몰렸다. 잘못된 방향으로 돌진하는 일제를 바로잡지 못한 댓가는 일본의 시민과 동아시아의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으로 막을 내렸다.

 

4. 광기를 죽이는 방법

  아베내각이 한국에 대한 경제적 침략에 날을 세우고 있다. 아베는 그의 외할아버지인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가 되고 싶은 지도 모른다. 일본의 광기를 죽이는 방법이 없을까?

  일본의 침략적 망언들을 들을 때 마다, 우리는 정부가 강하게 일본에 대응해주기를 바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을 때,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우리 땅 독도에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 김후련은 이것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왜? 일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천황이 한국에 오려면 과거사에 사죄하라'라는 내용의 말을 한적이 있다. 김후련의 지적에 따르면 이는 쇼와 천황과 헤이세이 천황을 구분하지 못하고, 일본의 극우들이 준동할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고 한다. 즉, 헤이세이 천황은 '천황가의 혈통에 백제 왕가의 피가 흐르고 있어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고 밝힌 사람이다. 헤이세이 천황을 한국에 초대하고 그로 하여금 서대문 형무소에 참배하게 하는 노련한 외교력을 발휘했다면 한일관계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우경화에 반대하는 그를 비난함으로써, 우리의 우군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을 적군으로 돌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일본인 모두를 적으로 삼지 않고, 일본의 양심있는 시민과 연대하여 일본사회의 광기를 누그러 뜨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다.

 "NO Japan"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는, 아베를 중심으로한 일본 극우파를 우리의 적으로 삼고, 일본 시민을 적으로 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일본인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과거의 행동방식으로는 일본의 광기를 없앨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성숙된 대처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김후련은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시기,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자, 야스쿠니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던 일본인들이 야스쿠니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의 망언과 망령된 행동에 우리가 과도하게 대응한다면 결과적으로 일본 극우세력에게 힘이 된다는 주장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극한 분노가 일본극우를 살찌운다는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한국의 언론은 외교의 장과 학문의 장에서 논리적이고 냉철하게 다룰수 있도록 비켜나 있어야 한다." - 51쪽

 

 일본 정치가들의 말령된 행동을 한국인들에게 알리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책무이다. 적절한 시기에 망언을 하고, 이를 통해서 주변국의 반반을 유도하여 일본내의 극우파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효과를 얻는 그들을 상대하려면 우리는 그들보다 더욱 성숙해야한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논리적이면서도 냉철하게 일본에 대응해야한다. 극도의 자제력이 필요한 장기전에 대비할 준비가 우리는 되어 있는가? 스스로 자문해 본다.

 

 

  헤이안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천황은 일본을 직접다스렸다. 그러나, 막부시대가 개막되면서 천황은 막부의 등살에 기를 펴지 못했다. 특히 에도 막부시기가 되면, 천황은 황궁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다이묘가 직접 천황을 만날 수 없었으며, 정치에는 일체 관여할 수 없었다. 천황의 세력은 날로 약화되어 즉위식 조차 제대로 치룰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마치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이 아내의 친구를 비롯한 주변인과의 관계를 끊어 놓가 고립시키듯이, 막부의 쇼군은 천황을 세상과 단절시켜 놓았다.

  고립된 천황을 다시 세상밖으로 끌어낸 것이 사쓰마번과 죠슈번의 사무라이들이었다. 그들은 천황이라는 신화를 다시 소환하여 동아시아를 전쟁의 광기로 몰아 넣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갓다. 천황제를 지키기 위해서 오키나와에서는 옥같이 부서지라는 '옥쇄'작전이 전개되었다. 오키나와의 히메유리 위령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우리 본토 일본인이 오키나와에 가면 꼭 히메유리 탑을 찾아 머리를 조아리는 까닭은 오키나와가 본토를 위해 산화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 피해의 궁국적인 모습을 거기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중략)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그것은 자신의 '무죄증명'이며 용서의 장소이고 감미롭고 감상적인 장소, 이제는 평화의 눈물을 흘리 수 있는 장소이다."-418쪽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천황제의 광기 속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전쟁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볼 뿐, 가해자로 직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후련은 강연이 끝날 때마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일본은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진심으로 과거사를 직시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한국은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의연하게 과거사를 털어내고 한일의 미래를 향해 일보 앞으로 전진하기 바란다."-552쪽

 

 

 김후련의 말에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이다. 김후련의 말이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후련하게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해결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기에 우리는 그녀의 말에 귀기울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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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20-06-07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후련의 말을 다시 읽어봅니다. 아쉽게도 의연함과 냉정함을 요구하는 이들이 불매운동을 자제력 없는 감정 대응으로 치부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강나루 2020-06-07 17:45   좋아요 1 | URL
냉정과 열정 사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네요
암튼 노재펜은 냉정하고도 의연한 대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