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 &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강윤철 옮김 / 스타북스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니체! 내가 니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서점에서 였다. 그때 돈으로 천원이면 작은 책한권을 살 수 있었다. 시중의 책을 글자 폰트를 작게하고 얇게 만들어 돈이 부족한 나에게는 참으로 좋은 책이었다. 그 책들 중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그 책을 샀다. 그러나, 5장을 읽고는 다시 책장을 덮었다. 너무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서 팟캐스트를 통해서 니체에 대한 다양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니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책을 꺼내 들었다.

 

1. 불친절한 니체씨!!

  니체는 불친절하다. 자신의 사상을 독자가 알기 쉽게 풀어써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책의 출판사는 니체 만큼이나 불친절하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책을 마틴 하이데거가 왜? 썼는지, 그리고 이러한 구성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독자에게 말해주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출판사는 이러한 설명도 없이 독자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한다. 1,2,3부를 읽으며, 이해가 되지 않으면 두번씩 읽으며, 4부의 마틴 하이데거의 '신은 죽었다. '라는 논문을 읽으면 니체에게 성큼 다가서리라 믿었다. 그런데, 아뿔싸!! 니체의 사상을 잘 이해하라고 구성한 4부가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니체의 사상에 대한 해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이해해야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이책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4부였다. 불친절한 니체씨 만큼이나, 하이데거도 불친절했고, 이들을 뛰어넘는 출판사의 불친절함은 나를 감탄하게 했다.

 

2. 여혐 니체!!

  니체라는 이름은 강한 느낌을 준다. 중세의 기나긴 시간동안 인간을 억압해왔던 종교에 맞서서, 당당히 신은 죽었다. 라고 외쳤던 니체!! 당당한 이미지의 니체가 여성 혐오자였다는 사실을 이책을 통해서 알았다. 믿겨지지 않았다. 니체를 연구하는 여자 학자도 있는데, 그 여성학자는 니체의 이러한 여혐론에 대해서 어떠한 기분이 들었을까?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지 못하며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저없이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복수와 사랑에서 여성은 보다 야만적이다."

"여자를 만든 것이 신의 두번째 실수였다."

"여자는 깊이 있는 척하는 껍데기이다."

 

  왜? 이리도 니체는 여성 혐오자가 되었을까? 니체가 강하게 여성을 비하하고 열등한 존재로 규정할 수록, 니체가 측은해지는 것은 왜일까? 그 정답은 그의 인생을 통해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니체는 아버지가 5살에 돌아가셨기에, 어머니를 비롯한 3명의 고모와 엘리자베트라는 여동생에 둘러싸여 살아야했다. 그는 여성의 옷을 입도록 강요받았다. 이러한 삶이 내면에 침잠하여 여성 혐오로 표출되지 않았을까? 니체가 '힘의 의지'를 추구 한 것도, 강한자가 되어 여성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니체의 '힘의 의지'는 단순히 '폭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적 불굴의 신념'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성성을 강요받던 니체는 이 강요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내적 불굴의 신념'이 필요했을 것이다.

 

"성적인 사랑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그러한 기대를 갖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처음부터 여자를 보는 눈을 망쳐 놓는다."

"늘 깜짝할 사이의 많은 어리석은 행동에 대하여 그대들은 연애라고 부른다."

"결혼하기 전 당신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라. 즉 나는 이 여자와 늙어서도 여전히 대화를 잘 나눌 수 있을까? 결혼생활은 긴 대화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니체가 결혼에 대해서, 연애에 대해서 이렇게 깊이 있는 말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뿐이 아니다. 여성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말들을 쏟아낸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심리학자 황상민이 한말이 있다. '그들이 하는 말을 거꾸로 생각하며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 여성에 대한 혐오와 결혼에 대한 많은 심오한 격언들은 그만큼 니체가 연애와 결혼을 하고 싶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루 살로메와 연애하고 싶었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루 살로메는 니체를 거부했다. 루 살로메는 니체와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는 싶었지만, 그와 잠자리를 같이하기는 싫었다. 여성으로부터 버림받고, 좌절받은 남자의 상처는 깊다.  2011년 오슬로 북서쪽 30Km에 위치한 노동당 청년캠프 행사장(우퇴위아 섬)에서 극우 청년에 의해서 테러가 일어났다. 그 청년의 말중에서 '나도 여자를 사귈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또한 극우 청년으로, 여성혐오증을 가지고 있으며, 모범적 단일민족 국가로 한국을 뽑았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사랑은 분노로 폭발한다. 니체와 노르웨이의 극우청년의 경우, 여성에게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었으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폭력적 말이나 행동으로 이것이 표출된 것은 아닐까?

  니체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철학자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단지 소크라테스가 실수를 했을 뿐이라고 한다. 이는 결혼하지 못한 니체 자신에 대한 변명으로 들린다. '나도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다!! 천재인 내가 무엇인 못나서 여성이 없겠는가?'라는 니체의 절규가 나의 귓가에 들린다. "모든 위대한 사랑은 동정의 단계를 초월해 있다." 진정한 사랑은 동정이 아니며, 상대를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하나의 인간! 하나의 인격체로 사랑한다. 악마가 "신은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 때문에 죽었다."라는 말을 했다는 말도 결국 동정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다. 니체는 여성에게 동정의 대상이고 싶지 않았다. 한남자로서,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루 쌀로메에게 니체는 동정의 대상! 그 이상은 아니었나 보다. 니체를 알면 알수록 그가 더욱 측은해지는 것은 왜일까?

 

3. 크리스찬 가정에서 자란 니체!!

 니체를 공부하면서 도올 김용옥 선생이 떠오른다. 크리스찬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현실 교회를 가장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렇다고 그가 예수님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니체와 도올은 예수를 성인으로 인정한다. 가장 독실한 크리스찬이었기에 예수의 말과 달리살며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에 쓴 소리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신의 자식으로서 누구든다 동등하다. 그런데 예수를 영웅으로 만들어 놓다니!'라고 소리친다. 이 말은 '도마복음'에서 예수를 인간으로 표현한 것과 유사하다. 예수와 인간이 동등하다는 니체의 주장은 크리스찬들에게는 엄청난 발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나는 신에게 영예를 돌려 신을 악의 아버지로 생각"한다는 니체의 말을 가히 충격적이다. 더 큰 폭탄발언을 소개할까? "형제들이여, 내가 지어낸 이 신은 다른 신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람들의 작품에 불과하며 망상에 불과하다.' 니체의 이 말은 자신을 전투적 무신론자로 규정한 니챠드 도킨슨을 떠올리게 한다. 크리스찬 가정의 엄격함이 니체를 이렇게 급진적인 철학자로 키웠던 것일까?

  "저 도덕이야 말로 위협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라면?"이라 주장하며 '도덕'에 대한 의심을 한다.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 기독교 윤리에 대한 의심은 보통 용기있는 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니체의 말이 타당해 보이기도 하다. 한사회에서의 도덕이 다른 사회에서는 부도덕한 것으로 규정된다.(공간의 차이) 또한 한시대의 도덕이 다른 시대의 부도덕일 수도 있다.(시간의 차이) 남편이 죽으면 부인이 따라죽는 사티라는 인도의 풍습 과거에는 도덕적인 행동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시대 인도를 벗어나면 사티는 부도덕한 일이 된다. 그리고 오늘날 사티는 법으로 해서는 안되는 악습으로 규정되어 있다. 현실의 그 어떤 철창도 부수려했던 망치의 철학자 니체!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억압을 부수려했다.

  니체를 대표하는 사상중에 하나가 '니힐리즘'이다. 허무주의!! 니체의 니힐리즘은 '최고 가치들이 가치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를 하이데거는 '종래의 가치들에 대한 부정은 새로운 가치 선정에 대한 긍정'이라고 말했다. 서구 기독교 도덕에 대한 '니힐리즘'은 새로운 시대의 도덕을 세우기 위한 창조적 파괴일지도 모른다.

 

4. 고통속에 철학을 꽃피운 니체!!

  이책 곳곳에 '병자', '고통',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단어들이 자주 그의 글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이 '질병', '고통',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니체가 매독을 앓기 시작했으며, 결국은 이 매독균이 뇌에 침투하여 그를 미치게 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어느 팟캐스트에서는 뇌종양이 그를 괴롭혔고 이것이 그를 죽음으로 인도했다는 주장을 했다. 매독과 뇌종양 중에서 한가지만이 니체를 괴롭혔다기 보다는 이 모두가 니체를 괴롭혔을 것이다.  

 

"괴로움이 철학을 낳는다면 만약에 생각 자체가 병으로 부터 압력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우리 철학가들 역시 우리가 병이 났을 때는 우리의 몸과 영혼은 병에게 맡기고 우리 자신들로부터 눈을 감아버린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전혀하지 않은 것을 보는 것은 나에게는 무거운 일이다."

 

니체는 괴로웠을 것이다. 매독은 잠시 발생했다가 치료를 중단하면 잠복기에 들어가고 이 매독이 재발할 경우 척수에도 침투할 수도 있고, 뇌에 침투할 수 있다. 뇌에 침투할 경우, 매독성 치매로 진행된다.그 고통 속에서 니체는 고통과 죽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니체는 이 고통에 무릎꿇지 않았다. 니체는 '그들에게 있어 삶에 대한 생각이 몇백배나 더 생각할 만큼 가치있는 것이 되도록'하겠다며 당당히 고통과 죽음에 맞선다.

  혹시 니체의 좌우명이 무엇인지 아는가?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힘이 회복된다."는 그의 좌우명은 고통에 좌절하지 않겠다는 그의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그는 '모든 경우가 하나의 행운이다. 무엇보다도 전쟁이 그렇다.'며 고통의 극단인 전쟁을 찬미하는 어리석은 모습까지 보인다. 그만큼 그는 절실했다. 고통에 무릎꿇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그러면서 희망을 노래했다. '철학은 고작 신체의 해설과 신체에 대한 오해'라고 말하며, '지금까지 행해진 모든 철학의 목표는 진리가 아닌 다른것 '건강, 미래, 성장, 힘, 생명'이라고 말한다. 신체! 아니 건강한 신체를 그는 희구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통을 승화했다.

 

"내가 심하게 아팠던 시절에 얻은 이득을 난 아직도 다 소모하지 못했다."

"삶이란 또한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모든 것이다."

"오직 거대한 고통만이 영혼의 최종적인 해방자인 것이다."

 

  니체는 고통속에서도 철학을 했다.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많은 주옥같은 명언들을 쏟아낸다. "가장 강한자로서 가장 정신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파멸을 보는 곳에서 행복을 발견한다."라는 그의 말은 병으로 무너져가고 있는 자신은 그 질병을 통해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며, 고통과는 상관 없이 행복하다는 신념을 말하고 있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떠오른다. 힘든 감옥속에서도 자신의 자유와 신념을 지키려는 지식인의 불굴의 신념이 떠오른다. 20여년을 감옥에서 보내며 인생과 고전의 지혜를 갈고 닦은 신영복이 생각난다. 니체에게 고통은 감옥이었다. 그러나 그 고통이라는 감옥에 굴하지 않고, 신영복이 고전의 지혜를 갈고 닦았듯이, 니체는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철학을 더욱 날카롭게 벼렸다.

  Amorfati(운명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서서히 죽어가는 니체는 절규한다. "적어도 나는 언젠가 반드시 하나의 긍정자가 되고 싶다."이 말은 지금은 긍정자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병마와 싸우며 긍정자가 되기 위해서 니체는 노력한다. "오늘 가장 좋게 웃는 자는 역시 최후에도 웃을 것이다." 지금 당장 웃는다면, 그는 죽을 때도 웃을 것이다. '영원회귀'라는 말을 이때 사용해야되지 않을까? '고통'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긍정자로 살기 위해서 노력한 니체!! 그는 초인을 찾는다. '초인이란 필요한 일을 견디어 나아갈 뿐아니라 그 고난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고통을 견디어 나갈 뿐만 아니라, 고통을 사랑하려하는 니체의 모습이 느껴진다. 세상에 고통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더 나아가 상대방의 아픔까지 사랑하는 자가 있을까? 있다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일 것이다. 사랑할때 우리는 고통을 인내하며 상대방의 고통까지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할때 초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자랑스럽게 사는 것이 그 이상 가능하지 않을 때, 사람은 자랑스럽게 죽어야 한다."

 

  니체는 자랑스럽게 살고 싶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러나 니체의 이 소망을 이뤄지지 않는다. 1889년 투린에서 마부의 채찍을 맞는 말을 감싸 앉으며 그는 쓰러진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뛰어 넘어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려했던 초인은 그렇게 쓰러졌다. 그리고 10여년을 병실에서 살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사망한다. 그때가 8월 25일이었다.

 

5. 니체가 들려주는 아포리즘!!

  니체의 글은 문학적이며 많은 명언들로 가득차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명언들이 나의 가슴을 울리게 한다. 그 명언중에 일부를 소개해본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그 법칙을 획득해 낸 윤리 이외의 어떤 윤리도 알지 못한다."

  '그 법칙을 획득해낸 윤리'란 무엇일까? 외부에서 강요되거나 맹목적 복종을 요구하는 윤리를 구체적 '삶의 문답'으로 해부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노예의 윤리를 거부하고 당당히 자신의 윤리로 살면서 주인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만이 웃음을 고안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깊이 괴로워하고 있다."

  동물중에서 '우울증'을 알고,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혹은 과로사를 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지 않을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가장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니체의 탁월한 지적은 한국의 현실에서 너무도 유효하다.

 

"아무것도 버릴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모든 것은 댓가를 필요로한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것도 버리고 싶어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한다. 희생없이 댓가만을 바란다면 그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사랑하는 여성을 원한다면 시간과 돈과 사랑을 한여성에게 쏟아야하듯이....

 

"알맞은 정도라면 소유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도를 넘어서면 소유가 주인이 되고 소유하는 자가 노예가 된다."

  황금만능의 시대! 감질! 금수저가 활개치는 시대! 우리사회에 적절한 니체의 명언이다. 회사원들을 자신의 기쁨조로 여기며 갑질을 해대는 재벌 2세와 3세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부로 인해서 물질의 노예가 되었다.

 

"진리는 힘이 필요로 한다."

  '정의는 힘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치환가능하다. 정의도 진리도, 진실도 힘이 있어야 정의일 수 있고 진리일 수 있다. 세월호의 진실은 촛불혁명이라는 힘을 필요로했고, 그 진실에 다가설 수 있었다.

 

 

   니체는  "그 같은 자유정신은 존재하고 있지도, 전에 존재해 본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 '자유정신에 대한 부정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몸이 약하고 지독한 고통속에서 살아야했던 니체에게 '자유정신'은 부정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것이 건강한 육체에 대한 희구로 이어졌을 것이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책을 읽으며, 나는 강한 니체의 모습이 떠오르기 보다는 아프고 고뇌하는 인간 니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 고통속에서 완성된 철학을 나의 지식으로 단시일내에 정복하기란 너무도 힘들다. "산맥 중에서 가장 가깝게 가는 길은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까지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긴 다리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그의 명언을 읽기 위해서는 긴다리가 필요했다. 나에게 긴다리가 없다면 긴 장대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어린시절 기다란 장대를 개울에다 짚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던 일이 생각난다. 스타북스 출판사에서 만약 니체를 이해할 수 있는 장대를 이책의 곳곳에 배치했다면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책을 읽기에 좀더 수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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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fkstk 2020-09-0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길어 앞에 조금 봤는데 시간이 많으신가 보네요. 저 같으면 리뷰 안 쓰고 책 한권이라도 더 볼 듯^^;;

강나루 2020-09-03 21:25   좋아요 0 | URL
독서 초보는 책을 읽고 독서를 좀한 사람은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독서 고수는 자신의 책을 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