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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3 - 가볍게 친해지는 서양 현대미술 ㅣ 방구석 미술관 3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5년 4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조원재 님의 방구석 미술관 시리즈가
새로 나왔단다. 지난 <방구석 미술관> 1권과 2권을 재미있게 읽고 지은이 조원재 님의 다른 책도
찾아 읽었는데, <방구석 미술관> 3권이 새로
출간되어 기뻤단다. 1권에서는 서양 화가들을, 2권에서는
한국 화가들을 이야기해주었는데, 3권에서는 ‘가볍게 친해지는
서양 현대미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단다. 현대미술은 정말이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장르로, 감상하는 사람이 그 의미를 찾아 해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단다. 그래서 사람마다 해석도 제각각이고 말이지. 정답이 없다는 것이 서양미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과적 감성으로 충만한 아빠는 그런 서양미술은 크게 관심이 없단다.
이 책에는 여섯 명의 미술가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 네 명은 알고 있는 사람이고, 두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이란다. 이 여섯 명 중에 그래도 한 명을 고르라고 하면, 아빠는 단연코 살바도르 달리를 뽑겠다. 인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작품만으로 뽑은 것이란다. 살바도르 달리는 비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사실적인 그림을 고의적으로 비틀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신비감이
가득한 그림을 그렸거든. 물론 이 책에 나오지 않는 작가들도 모두 포함하라고 하면, 달리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잘 모르겠구나. 다른 미술가들도 물론
평론가들이 극찬을 하지만 아빠의 취향은 아닌 것 같구나.
1.
첫 번째 소개된 작가는 미술작품을
보면 화가를 곧바로 알 수 있는 몬드리안이란다.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화가 중에 한 명이지. 몬드리안은 네덜란드 사람인데, 아버지는 부업으로 석판화를 제작했고, 어린 몬드리안은 그 일을 도와주었단다. 삼촌도 화가였기 때문에 몬드리안은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접할 수 있었고, 그림, 특히 풍경화에
빠져 살았다고 하는구나. 당시 모더니즘 미술이 유행을 해서, 몬드리안도
모더니즘 미술가인 뭉크와 마티스의 영향을 받았대. 그리고 이후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을 접하고 그림을
입체주의와 다시 점으로 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시선을 만나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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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그렇습니다. 그림을 꼭 사진 찍은 것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똑같이 그려야 하는 절대적 이유가 있을까요? 그 고정관념을 제거하면, 그림은 평면 위에 화가가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장이 됩니다. 이렇게 유럽의 회화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회화는 눈에 보이는 것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고 벗어납니다. 즉,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화가가 더 자유롭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바로 이것이 피카소와
브라크가 20세기 초에 활짝 연 현대미술 혁명의 요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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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몬드리안도 자신이 그려야
할 그림은 추상주의와 입체주의라고 생각을 하고, 그의 그림은 점점 추상적으로 진화해 갔어. 당시 파리에서 약 2년간 그림을 공부하고 그렸는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네덜란드로 돌아왔단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5년 동안 네달란드에서 입체주의 그림의 연구해서
그의 그림은 점점 발전, 아니 진화하게 되었단다. 1919년
다시 파리로 돌아왔는데, 피카소 등 파리의 화가들의 그림은 여전히 5년
전의 그림에 머무르고 있었고, 몬드리안은 이제 그들을 벗어나서 자시만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으니, 그 그림들이 요즘에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파랑, 빨강, 노랑 등 원색 위주의 단순화된 사각형 그림들이란다. 누구나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그런 독창적인 그림을 처음 그리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었다는 데 높은 점수를
주어야겠구나.
…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에서 태어났단다. 살바도르는 ‘구현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대. 달리는 어려서부터 괴짜로 엽기적인 장난도 많이 했다는구나. 대학에 가서도 거만하고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고, 시험 보기를
거절해서 퇴학 당하기도 했대. 괴팍한 천재 기질을 보였나 보구나. 그림도
인상주의, 입체주의 등을 따라 그렸는데 그 실력이 대단했어. 그러다가도
어느 때는 사실적인 고전풍의 그림도 그렸는데, 진짜처럼 정말 잘 그렸단다. 그러다가 프로이트의 무의식 사상을 영향을 받고, 그림도 무의식이나
꿈을 그려내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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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29)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폭발 이미지에서 크나큰 충격을 받은 달리. 이제 달리의 관심사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원자의 세계가 되었죠. 그는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원자 속 세계가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흥분합니다. 그는 물질세계의 본질을 회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해답이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에 있다고 여기며
원자물리학, 양자역학 공부에 빠져듭니다. 프로이트보다 하이젠베르크와
아인슈타인을 신봉하기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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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도 난해하기 시작했지. 그런데 다른 현대 미술가들과 달리 달리는 고전주의를 지키면서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시계를 흐물흐물하게 그린 <기억의 지속> 같은 작품이 그의 미술 세계를 나타내는 좋은 작품이었어.
달리는 사랑도 범상치 않게 했단다. 친구의 부인 갈라와 사랑에 빠져 둘은 파리로 도망을 갔단다. 파리
남부 시골 마을에 오두막에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갔어. 달리는 그림에만 전념하고 갈라는 돈을 벌어와서
달리를 지원했단다.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드디어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었어. 전시회에서 미국의 화상 줄리앙 레비가 그의 작품을 눈 여겨보고 미국에 소개를 했어. 그러면서 미국에서 포텐이 완전히 터져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단다. 1934년
그의 조국 스페인의 국내 상황이 좋지 않아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지내다가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이후에는 미국에서 지냈단다.
달리와 갈라는 엄청난 돈을 벌여들였는데, 달리는 돈을 엄청 밝힌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어. 갈라도 옛 가난한
시절은 다 잊고 사치의 대명사가 되었단다. 전쟁이 끝나서 스페인으로 돌아왔지만 당시 스페인은 내전이
끝나고 프랭코 군사 독재 시절이었어. 달리는 독재를 지지한다고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어. 갈라도 젊은 남자들과 바람을 피는 등 달리와 갈라의 불화는 심해졌단다. 그의
작품은 훌륭하나 그의 인성과 삶의 태도는 본받지 못하겠구나.
2.
세 번째 소개한 미술가는 알베르토
자코메티라는 스위스 사람인데, 미술에 문외한인 아빠는 처음 보는 사람이야. 현대 미술의 입체주의를 조각에 적용시켰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구나. 아빠는
그의 관한 글을 읽어보고, 책에 실린 그의 작품들을 봤지만 그 작품들이 왜 훌륭한지 아직 이해를 하지
못했단다. 조각 작품이니 사진이 아닌 공간에서 실제로 보면 좀 이해하려나?
…
네 번째 미술가는 그 유명한
잭슨 폴록이란다. 그의 그림 또한 아빠는 높은 점수를 주지 못하겠구나.
아빠의 관점에서 그의 훌륭한 점이라고 하면, 그림이라는 것이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닌 물감을
뿌려서도 그릴 수 있다는 창의성을 보였다는 점 정도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의 창의적인 작품보다
그가 망나니 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구나. 망나니라는 표현은 아빠가 한 것이 아니고, 지은이가 표현한 것인데 그 사례를 들어주었는데, 정말 망나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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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205)
제가
현대미술사에 기록되는 ‘위대한’ 예술가를 ‘망나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살펴보면 아마 고개가 끄덕여질 겁니다. (정말 쓸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잭슨 폴록의 진짜 면모를 허례허식 없이 전하기 위해) 한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보자면, 폴록은 자신을 아껴준 스승 벤턴의
아내 리카와 불륜을 저지릅니다. 한술 더 떠 25세 폴록은
술에 찌든 상태로 리타로 찾아가 청혼까지 하지만 리카는 거절하죠. 그녀의 거절에 화를 주체할 수 없었던
폴록은 벤턴을 찾아가 “빌어먹을 놈, 내가 너보다 더 유명해지고
말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역사에 기록하는 ‘위대한 인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역사에 기록될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과 인간성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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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 중에 괴짜 DNA를 가지고 있는 들이 간혹 있는데, 잭슨 폴록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구나. 성공한 이후에 그에게는 겸손이라는 것은 없고 자만만 가득 차 있었단다. 거기에 알코올중독자도 유명해져 나중에는 미술계에서도 몰락의 길을 걷고 그의 작품들에도 혹평이 쏟아지게 되었단다. 폴록이 성공하는데 많은 도움으로 주고 지지했던 아내 크래스너도 결국 폴록을 떠났단다. 폴록은 결국 술 먹고 난폭 운전을 하다가 나무를 들이박고 죽고 말았단다. 그의
나이 고작 44세였단다. 미술에서 큰 성공이 결국 그를 일찍
가게 한 것 같구나. 그의 창의성만 높이 사야겠구나.
…
다섯 번째 미술가는 마크 로스코라는
추상표현주의라는 장르를 하는 사람이란다. 러시아 출신 유대인으로 본명은 마르쿠스 코스코비치인데, 미국으로 건너와 크게 성공을 하게 된단다. 그런데 그 또한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해줄지 걱정이라고 했대. 그래도 걱정은 해주셨네. 아빠도 그의 작품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마크 로스코는
우울증을 앓게 되어 나이 들수록 색채가 점점 어두워졌다고 하는구나. 당시 미국의 미술계는 밝은 계통의
팝아트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어두워진 로스코의 작품들은 점점 인기가 시들어졌어. 결국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삶은 안타까운 삶이로구나.
…
마지막 여섯 번째 미술가는 앤디
워홀이란다. 앞서 이야기한 팝아트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지. 체코
이미자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빈민가에서 힘들게 지냈단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지원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어. 앤디 워홀은 만화를 모방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것도 과연 미술작품이 될 수 있냐는 논란을 만들었대. 그런데 이렇게 만화를 모방하여 그림을 그린 것이 워홀이 처음이 아니고, 리히텐슈타인이
먼저 시도를 했다는구나.
그래서 워홀은 또 다른 것을
시도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일명 ‘복붙’이란다. 복사해서 붙여 넣는 기법인데, 그런 반복 속에 조금씩 다름으로 가미하는 거야. 그냥 모든 것을
똑같이 복사했다면 작품이라고 하기 뭐할 텐데, 워홀은 그런 반복 속의 조금의 다름을 추가하였단다. 그렇게 생겨난 작품들이 워홀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작품이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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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를 다른 시각으로 관찰하면, ‘복제의 시대’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미디어에서 텍스트, 이미지, 영상이 무한히 반복적으로 복제되고 있고, 이제는 그 영향이 오프라인까지 범람하며 ‘무엇이 원본이고 복제본인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죠. 이런 현대 사회의 특징을 (일찍이)
1960년대에 예리하게 간파해 예술에 절묘하게 녹인 예술가가 바로 앤디 워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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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화 감독으로도 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 또한 범상치 않은 영화들이었단다. 처음부터
끝까지 런닝 타임 5시간 21분 동안 잠자는 모습만 보여주는 <잠>이라는 영화를 비롯하여 <이발>, <먹기>,
<키스>라는 작품들 남겼다고 하는구나. <잠> 이외에 작품들도 제목에 나오는 행위로 런닝 타임을 채웠다고 하는구나. 이
정도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소유자라면 인정해야겠구나. 그는 망상에 빠진 솔라니스라는 여성에게 총격을 당하여
사망진단까지 받은 적이 있어. 그런데 의사들은 그가 앤디 워홀이라는 것을 알고 5시간 동안 큰 수술 끝에 살려냈다고 하는구나. 이후 앤디 워홀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잡지사, TV 프로그램에서 많은 활동을 했대. 하지만
총격 사건의 후유증으로 58세에 삶을 마감했단다. 아빠가
오늘 독서 편지를 시작하면서 이 책에 소개된 미술가 중에 한 명을 뽑으라고 하면 달리를 뽑겠다고 했는데, 한
명 더 뽑으라고 하면 워홀을 뽑을 것 같구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미술의 영역을 더욱 넓힌 것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
…
아빠는 미술에 완벽한 문외한이란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고, 감상할 줄도 모른단다. 그런 아빠가 당대 손꼽히는 미술가를 논한다는 것이 말도 안되지만, 너희들에게는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았단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피카소까지는 알겠다.
책의 끝 문장: ‘예술가로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추상미술 앞에서 난해함을 느끼며 갸우뚱할지라도,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미 추상적 이미지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상품은 추상적으로 디자인되어 있고, 우리는 그 추상적 이미지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낍니다. 주변의 모든 건축물은 추상적으로 디자인된 공간을 무척 좋아하고, 심지어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휴식을 취하고 있죠. 21세기에 와서는 누구나 좋아하는 미적 취향이 된 ‘기하학적 추상’. 기하학적 추상에 숨겨져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미적 매력을 누구보다 앞서 또렷이 느낄 수 있는 심미안을 갖췄던 사람.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떳떳이 예술가. 그가 바로 몬드리안입니다. - P18
그렇다면, 몬드리안은 고작 십자 모양(+)으로 어떻게 미의 진리를 회화에 표현한 것일까? 그는 하얀 캔버스 평면 위에 ‘여러 개’의 수직선과 수평선을 직각 대립시켜 그렸을 때 ‘자연스럽게’ 사각형 평명(ㅁ)이 생성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수직선과 수평선을 많이 사용할수록 사각형 평면(ㅁ)의 수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더불어, 그 사각형 평면들이 놓인 ‘위치’와 ‘크기’ 모두 제각각임을 발견합니다. 몬드리안 화면 전체에 평형상태를 만들기 위해 수직선과 수평선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며, 사각형 평면(ㅁ)의 ‘위치 관계’와 ‘크기 관계’를 조율합니다. 그 목적은 캔버스 화면 전체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평화로운, 즉 평형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해 필요하다면 사각형 평면(ㅁ)에 빨강, 파랑, 노랑, 흰색, 회색 등을 채워 ‘사각형 색 평면’을 만들어 ‘색채 관계’를 조율합니다. - P69
수업이 트렌드에 매우 뒤처져 있다고 여긴 달리가 대학 울타리 안에서 고분고분할 리 만무했습니다. 교수보다 전위적이며 다른 학생보다 훨씬 뛰어난 그림을 그린다고 자신한 나르시시스트 달리는 반바지에 망토를 걸치고 다니며 괴짜 짓을 일삼기 시작합니다. 신임 교수 취임식에서 교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취임식장을 박차고 나사 1년 정학 처분을 받습니다. 그 이후에도 괴짜 기질을 참지 못한 달리는 대학 미술사 시험 도중 심사위원인 교수들에게 "심사위원들을 합쳐놓은 것보다 내가 더 똑똑하고, 주어진 문제를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심사받기를 거부"한다고 말하며 퇴학당합니다. 이렇게 착실히 학교 다녀 교수가 되리라 믿은 달리 아버지의 꿈은 산산조각이 됩니다. - P89
세상이 돕는 이런 긍정적 상황에서 예술가로서 체면을 차리고 작업도 더욱 열심히 할 만했지만, 우리의 폴록은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벽화> 작업으로 창작의 고통을 느낀 것이 치유하기 어려운 큰 상처가 되었는지 알코올 중독과 그로 인한 난폭함은 점점 커져만 갔죠. 만취해 술집의 기물을 부수며 난동을 부리는 건 기본. 사람들과 싸우는 것도 예삿일. 급기야 술집에서 폴록의 출입을 제한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렇게 뉴욕 술집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는 눈이 오면 취한 채 도로를 나뒹굴며 차량의 통행을 방해하고, 눈 위에 오줌을 흩뿌리며 전 세계에 오줌을 싸겠다고 고성방가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보통 망나니라고 부르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위대한 예술가상과는 꽤 다른 모습입니다. - P227
"내가 젊은 청년이었을 때 예술은 고독한 작업이었습니다. 갤러리도, 수집가도, 평론가도, 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황금기였습니다. 우리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대신 비전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다." 비관적인 연설. 모든 것을 가졌기에 잃을 일만 남아서일까?" 66세의 로스코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비전만이 찬란히 넘쳐흐르던 젊은 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심리 속 로스코의 내면에 남겨진 색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오직 검정과 회색뿐이었습니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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