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漁港)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통영 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북쪽에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다름이 없이 대부분의 집들이 송이버섯처럼 들앉은 지세는 빈약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연 어업에, 혹은 어업과 관련된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면 통영은 해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통영 근처에서 포획하는 해산물이 그 수에 있어 많기도 하거니와 고래로 그 맛이 각별하다 하여 외지 시장에서도 비싸게 호가되고 있으니 일찍부터 항구는 번영하였고, 주민들의 기질도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하였다.

 

(85-86)

큰딸 용숙은 열일곱 때 출가를 시켰으나 과부가 되었고 지금 나이가 스물네 살이다. 둘째가 용빈이, 셋째가 용란이다. 그는 열아홉이며 그 다음이 용옥이, 막내가 열두 살짜리 용혜다. 고모할머니 봉희가 살아 있을 때 용혜는 봉룡이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돌아갈 날을 몰라 칠월 백중에 제사를 모실 때도 고모할머니는 용혜를 보고 언짢게 혀를 끌끌 차곤 했다. 그러나 김약국은 용혜를 두고 연순을 연상하였다. 입 밖에 말을 내지는 않았으나 어떤 때는 심한 착각을 일으키는 일까지 있었다. 김약국은 연순이가 어릴 때 봉제 영감이 그랬듯이 용혜를 노랭이라 부르며 사랑하였다. 다른 딸들은 모두 머리털이 칠빛처럼 검었는데 용혜만은 밤색 머리칼이었다.

 

(206)

논쟁에는 흥미가 없다. 하여간 너는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어. 너의 그 크나큰 사상과 이상은 영웅들에게나 맡겨둬라. 네가 항상 말하는 그 영웅들에게 말이다. 너는 네 분수에 넘는 망상에 사로잡힌 환자다. 너의 행위는 일보의 전진커녕 백보의 후퇴가 아니냐 말이다. 바로 이번 일이 그 표본이다. 넌 대체 뭘 했냐 말이다. 쓸데없이 아가리 놀린 것밖에 더 있었나? 그 아가리 놀린 것으로 누구 한 사람이 구제됐는가? 바늘귀 떨어진 것만큼이라도 조선의 자주성에 도움이 되었단 말인가? 너는 매만 맞고 집안을 시끄럽게 했을 뿐이지 일본 놈의 통치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207)

나를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과소평가를 하는군. 허지만 난 언제나 걸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부딪칠 것입니다. 반드시 무엇에 부딪칠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형과 같이 안일하게 산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니고 죽은 겁니다. 역사는 없을 겁니다.”

역사가 없음 어떠냐? 역사는 곰팡내 나는 기록이지, 사람은 어떤 입지적 조건이나 생활양식 속에서도 그 당대를 살게 마련이니까.”

교묘한 회피군요. 물론 나도 역사는 그 당대에서 끝나는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끝나면 다시 시작되죠. 마치 사람이 죽고 또 사람이 태어나듯이……”

되풀이되는 건 없으니만 못하다.”

왜 되풀이되는 거요. 진화하는 거죠.”

 

(302)

새터 아침장은 언제나 활기가 왕성한 곳이다. 무더기로 쏟아놓은 갓잡은 생선이 파닥거리는 것처럼 싱싱하고 향기롭다. 삶의 의욕이 넘치는 규환(叫喚) 속에 옥색 서린 아침, 휴식을 거친 신선한 얼굴들이 흘러간다. 새벽별은 밝고 축림, 전화도, 장대 방면에서는 호박, 고구마, 야채 등을 이고 지고 북문 안을 넘어서는 촌부들, 안뒤산 큰개, 작은개에서는 조개를 이고 충렬사를 지나오는 아낙들, 발개와 첫개에는 어장 배에서 생선을 받아가지고 판데굴을 지나오는 장사꾼들, 삼면 바다에서는 기관선으로부터 통구멩이까지 해초, 생선을 실은 어부들이 바다의 새벽을 뚫는다. 아니 그뿐이야. 통영 읍내에서도 비단 장수, 화장품 장수, 실 장수, 과일 장수, 본시장의 모든 장가꾼들은 서둔다. 이 무수한 움직임과 발소리들은 새터로 향하는 것이다. 새벽이 걷히고 옥색 아침이 서리면 읍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거리에 나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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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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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아빠가 소개해 줄 책은 이정모 님의 <찬란한 멸종>이라는 책이란다. 제목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감이 잡히는 책이었단다. 현재 진행중인 여섯 번째 대멸종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거라고 생각했어. 지은이는 이정모님으로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오랫동안 활동하신 분이야. 아빠가 과학 교양서에 관해 관심이 많아서, 과학 교양서를 많이 출간하신 이정모 님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었단다. 그런데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아빠의 눈에 확 띄는 책이 없었는지 이정모 님의 책들을 읽어본 적이 없었구나. 가끔 과학 유튜브에 출현하시는 것들을 본 적이 있던 것 같구나.

그렇다고 이번에 출간한 <찬란한 멸종>이 아빠의 눈에 확 띄어 읽게 된 것은 아니란다. 이미 아빠는 여섯 번째 대멸종에 관한 책들을 읽었고, 영상으로도 많이 접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도 읽은 이유는 엄마가 이 책 혹시 아냐면서 너희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서 사게 된 것이란다. 바쁜 너희들 대신해서 아빠가 먼저 읽어보았단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있었던 과거 다섯 번째 대멸종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단다. 최대한 쉽고 읽기 편하게 쓰려고 노력하신 것이 보였어. 지은이의 시점이 아닌 다른 객체의 시점을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갔단다. 예를 들어 인류가 멸망한 2150년의 인공지능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하거나 범고래나 삼엽충의 일인칭 시점이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단다.

책 속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아빠가 그 전에 읽은 <멸종>이라는 책과 <인류세>라는 책과 <최종 경고 : 6도의 멸종>에서 봤던 내용들과 많이 겹쳤단다. 그리고 아빠가 정기적으로 읽는 <녹색평론>에서도 대멸종에 대해 가끔 실려서 그 책 이야기를 할 때도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 준 것 같구나. 우리는 이미 여섯 번째 대멸종 시대를 살고 있는데 이번 대멸종 시대와 다른 것은 불가항력인 원인이 아닌 인위로 만들어진 이유로 멸종이 되고 있다는 거야. 과거 대멸종은 대화산, 운석 충돌 등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지구의 기후가 급격히 변화되면서 대멸종이 찾아왔다면 지금의 대멸종은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탄소 사용량의 급격히 늘어나면서 기후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멸종 시대가 찾아왔다는 것이야.

불가항력적인 원인이 아니라 인위적인 원인이기 때문에, 즉 원인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충분히 막을 수도 있는 거야. 중요한 것은 시간이란다. 이미 많이 늦었어. 지금이라도 이 흐름을 막지 못한다면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불과 100여 년 후인 2150년에는 이 지구상에 인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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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2150년에는 과연 인류가 살고 있을까요? 물론 저는 그때도 인류가 살아남았기를 기대합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은 지금도 있으니까요.하지만 우리가 바뀌지 않고 지금처럼 산다면, 그래서 지구가 꾸준히 더워진다면 2150년 지구에는 인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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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도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되었는데, 그 기록은 곧 깨지게 되고, 얼마 뒤면 매년 그 기록이 깨질 수도 있을 거야. 이젠 진짜 불똥이 발등에 떨어진 상황이야. 더 뒤로 미루고 생각할 것도 없단다. 인류 전체가 합심해서 노력해야 할 시기란다. 그런데 어떻게 합치지? 국가들은 여전히 경제 성장에 목을 매고 있는데…. 그리고 이런 환경 문제에 가장 관심 없는 분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으니 또한 걱정이구나.

 

1.

이 책의 제목을 <찬란한 멸종>이라고 한 것은, 반어적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멸종 뒤에는 새로운 종의 출현이 있어왔기 때문에 지은이는 찬란한멸종이라고 했다는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멸종의 원인은 지구 기후의 급격한 변화였단다. 그리고 기후의 급격한 변화의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온실 가스란다. 그러니까 온실 가스를 제대로 제어를 하면 기후의 급변화를 막을 수 있어. 온실 가스 중에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이산화탄소이고이 이산화탄소량이 산업화 이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단다. 그래서 이미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고 있고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사라지고 있는 소식을 접하고 있잖니.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개체도 줄어들고 있고 말이야. 그런 뉴스를 보면서 우리들은 저 동물들 불쌍해서 어쩌지? 이러는데 정작 자신들 걱정은 하지 않고 있단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면 다음 차례는 곧 인간이 될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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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인간들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말할 때마다 빙하가 녹아서 굶주리게 된 동물들을 걱정한다. 참 재밌다. 펭귄 걱정해 주고, 바다표범과 우리 범고래 걱정을 해준다. 고맙다, 그런데 우리는 당신들이 더 걱정이다. 빙하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이게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인간은 조금은 별난 존재다. 최고 포식자이면서도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명. 자연사에서 유일한 존재다. 아마 당신들은 우리보다 조금 더 버틸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도 영원할 수는 없다. 끝이 바로 앞이다. 나를 주연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준 인류에 대한 내 마지막 경고이자 애정 표현이다. 우리가 사라지면, 펭귄과 바다표범과 범고래가 사라지면 그 다음은 당신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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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잡는 포경 산업도 기후 위기에 영향을 준다고 했어. 고래의 똥이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고 있는 줄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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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포경으로 고래가 사라지자 철분을 이동시키는 펌프로 망가진 셈이 된 것이다. 고래 똥이 사라지면 바다의 생산력이 감소한다. 수염고래는 매년 똥을 통해 약 1200톤의 철분을 바다에 공급했다. 이건 펭귄이 공급하는 521톤의 두 배가 넘는 양이다. 수염고래와 펭귄의 똥이 사라지면 결국 식물성 플랑크톤도 급격히 줄어든다.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끊어질 뿐만 아니라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량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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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식물성 플랑크톤이 줄어들면 이산화탄소의 양이 증가하여 문제가 되지만 산소의 양도 줄어들게 된다고 하는구나.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만들어내는 산소의 양이 무려 전체 산소의 3분의 2나 된다고 하는구나. 공기 중에 산소가 약 20%를 차지하고 그로 인해 우리는 숨 쉬는데 아무 문제 없지만 그 농도가 줄어든다면 계속 가쁜 숨을 쉬어야 할 수도 있다는 거야. 점점 무서워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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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해안선이 줄고 해수면이 낮아지면 해양생물에게는 재앙이 닥쳐 온다. 바다가 넓은 것 같아 보여도 대부분의 해양생물은 깊이 200미터의 대륙붕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사실 산소의 3분의 2는 바다에서 만들어진다. 숲이 아무리 많아봤자 그 넓은 바다에서 활동하는 시아노박테리아와 식물성 플랑크톤의 맹활약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래저래 산소 농도는 줄 수밖에 없다.

======================

 

2.

그렇다면 이 많은 이산화탄소는 어디서 왔을까? 산업화 이후 석탄과 석유의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이산화탄소가 늘었고, 그 이후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빙하가 녹는 등 이런 저런 이유에 의해서 더 늘어나게 되었다고 했단다. 석탄은 과거 고생대 석탄기라는 지질시대가 있었어. 당시 지구상에 엄청난 양의 숲이 생성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숲이 많다는 이야기는 나무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고 그 나무들이 광합성을 해대는 바람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양이 줄어들기 시작했대. 오늘날 현상과 반대 현상이 일어나게 된 거지.

그럼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양이 줄어들면 지구의 온도는 어떻게 될까? 그래, 내려가게 되는 거야. 그래서 빙하기가 찾아왔다는구나. 이렇게 찾아온 빙하기로 인해 지구상에는 또한번 멸종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고, 그 많은 나무들도 광합성으로 얻은 탄소를 품에 안고 땅속에 묻히게 된단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땅속에 있으면서 석탄과 석유로 변한 것이란다. 그것을 산업화 이후 인류들이 사용하게 된 거야. 먼 과거 빙하기를 만들 정도로 지구의 열을 저장한 것이 바로 석탄과 석유이고, 그 열을 오늘날 인간들이 사용하여 다시 대기에 뿜어내고 있는 거야. 지구 입장에서 보면 저장해 두었던 열을 다시 사용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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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석탄기가 남긴 유산은 역시 석탄이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인간이 제일 잘 안다. 오죽하면 우리 시대의 이름을 석탄기라고 지었겠는가? 하지만 인간들이 애써 모른 척하려는 게 있다. 석탄이랑 우리가 누려야 할 열이 땅속에 갇힌 결과다. 이 열을 3억 년 후에 인간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들이 등장했을 때는 대기에 없던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흘러들어간다. 우리는 더운 세상이 좋았지만 인간들에게도 그럴 거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보통 자신이 출현한 그 환경이 유지되는 게 생존에 가장 좋다. 그 환경에 적합해서 선택되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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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지구상에 출현했던 그 어떤 생명체들보다 지능이 높단다. 그 높은 지능 때문에 3억년 전에 숨겨진 열까지 찾아내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란다. 그리고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알고 심지어 그 원인도 알고 있단다. 또 심지어 그 해결 방법도 알고 있단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면 되는 거야. 숲을 울창하게 하던지 식물성 플랑크톤을 보호하던지 정책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단다. 줄이기 어렵다면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니 증가하는 속도라도 늦추는 노력을 해야 한단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구나. 우리의 후세들에게 욕 먹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무엇인가 해야 하는 것이 옳단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좀더 경각심들 가졌으면 좋겠구나. 지금은 다른 나라와 싸울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와 싸워야 할 시간. 이 책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멸종뿐만 아니라 과거 다섯 번의 대멸종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것은 이전에도 다른 책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서 오늘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해보았단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나는 인간 없는 지구를 꿈꿉니다.”

책의 끝 문장: 막이 내린다.



직립은 커다란 뇌, 넓은 시야와 더불어 인류에게 한 가지 선물을 더 주었다. 바로 자유로워진 손이다. 걷는 데는 두 발이면 충분했고, 더 이상 나무에 매달라는 데 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손이 자유로워졌다. 예민한 감각이 모여 있는 손은 물건을 쥐고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자유로운 손은 노동을 탄생시켰다.
인간으로서의 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뇌의 변화라기보다는 노동이며, 노동은 직립보행의 결과 손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똑바로 선 인간은 자유를 얻었고, 자유를 얻은 인간은 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노동은 다시 인간의 진화를 촉진해 마침내 ‘슬기 인간(Home sapiens)’으로 발전시켰다.
- P32

참, 인간들이 왜 우리의 하인 노릇을 그렇게 열심히 할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아이러니가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기후변화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기후변화는 누군가에게는 위기이고 누군가에게는 기회입니다. 뭐, 현대인들이 그걸 아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들이 잘 버텨야 우리도 편히 오래 살 텐데 걱정이네요. 요즘 하는 걸 보면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어쩌면 우리 펠리스 카투스도 선배님의 길을 따라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에잇, 잘 좀 하지! - P175

지구에서 일어난 멸종 사건 가운데 세 번째 대멸종처럼 처참한 사건은 전무후무하다. 이때 생명의 95퍼센트가 멸종했다. 95퍼센트가 멸종했다는 뜻은 100마리 가운데 95마리가 사라졌다는 게 아니다. 100종의 생명이 살고 있었다면 이 가운데 95종은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조리 싹 다 죽어 사라졌으며, 나머지 5종만 살아남았는데 잘 살아남은 게 아니라 겨우 몇 개체씩만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학교에 100개 학습이 있다면 95개 학급은 모두 전학하고 5개 학급만 남았는데 온전히 남은 게 아니라 한 반에 두어 명만 남은 상태다. - P249

미래를 생각하면 앞으로 또 어떤 놀라운 진화가 일어날지 궁금하다. 눈의 진화는 생명의 긴 여정에서 한 단계에 불과할 것이다. 생물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동안 또 어떤 혁신이 등장할까? 미래의 생명체는 계속해서 감각을 개선해 주변 환경에 더욱 잘 적응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유형의 눈이 발달해 더 선명한 시야를 제공하거나 다양한 빛이 닿지 않는 심해를 탐험하며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도록 진화하는 생물도 있을 것이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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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1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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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유명한 사건이 있단다. 아주 짧게 이야기를 하자면, 19세기 프랑스에서 프랑스군 장교 드레퓌스가 스파이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그가 진범이 아니었어. 증거들도 누가 봐도 조작한 것처럼 보였어. 드레퓌스가 유대인이었는데, 당시 유럽은 반유대인 정서가 강했기 때문에 드레퓌스가 무죄라는 정황이 있었음에도 조작된 증거들이 인정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단다. 이때 양심 있는 지식인들이 하나둘 드레퓌스가  무죄라고 용기 있게 이야기를 했단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에밀 졸라로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기고했단다. 이 일로 오히려 에밀 졸라는 프랑스 극우파들로부터 비난과 협박을 받아서 영국으로 망명까기 가게 되었어. 이후 드레퓌스의 무혐의가 확정된 뒤 에밀 졸라는 프랑스로 돌아왔지만 극우파의 비난은 계속 되었어. 그런 와중에 그가 자는 동안에 가스 중독으로 죽었는데 사고가 아니고 누군가 고의로 굴뚝을 막아서 죽인 것이라고도 하더구나. 드레퓌스 사건의 전환점을 만들었던 에밀 졸라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아이콘이 되었어.

아빠는 에밀 졸라가 프랑스의 유명한 지식으로 알고 있었어. 그런데 간혹 세계문학 시리즈에 에밀 졸라의 책들이 보였단다. 에밀 졸라가 소설도 지었나 싶었는데, 이번에 에밀 졸라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니 엄청난 양의 소설을 썼다는 것을 알았단다. 특히 20권에 다다르는 루공 마카르 총서는 당대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고 하더구나.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려고 하는 <패주>도 루공 마카르 총서의 한 권인데 문학 상식이 낮은 아빠는 루공 마카르 총서의 존재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단다. 루공 마카르 총소는 에밀 졸라가 1871년부터 1893년까지 발간한 총 20권짜리 이야기란다. 등장 인물 중에 아델라이드 푸크의 첫 번째 남편이 루공이고 아델라이드 푸크의 동거남이 마카르이고 루공과 마카르의 자손들까지 이어지는 이야기하고 해서 루공 마카르 총서라고 부르게 되었나 봐. 20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연관성이 있지만 이야기는 독립적이라서 한 작품씩 읽어도 된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루공 마카르 총서가 모두 번역되지 않아서 모두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겠구나.

아빠가 이번에 읽은 <패주>는 루공 마카르 총서의 19번째 작품이었어. 아빠는 이런 시리즈를 읽을 때 1권부터 차례대로 읽곤 하는데, 20권 다 번역도 안되었고, 한 권씩 읽어도 무방하다고 하고, <패주>의 배경 지식을 알기 위해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을 읽었는데 <패주>를 뒤로 미뤄서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 그냥 읽기로 했단다.

 

1.

주인공은 장 마카르와 모리스 르바쇠르가 주인공이란다. 장 마카르는 서른아홉 살이고, 루공 마카르 총서의 또다른 소설 <대지>의 주인공이기도 했대. 그 소설에서 땅과 아내를 모두 잃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대지>를 읽어봐야겠구나. 1870년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이 일어나서 장은 군대에 재입대하여 하사 계급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단다. 그가 속한 부대는 106연대이고 장 마카르의 상사로는 보위앵 대위, 로샤 중위가 있었고 장의 후임 분대원으로는 모리스, 오노레, 고드, 라풀, 파슈 등이 있었어. 그들은 뮐루즈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전방부대의 패전 소식과 함께 후퇴 명령을 받았어.

일단 패전 소식에 충격을 받았단다. 그들은 나폴레옹의 후예로 프랑스 군대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변방의 프로이센에게 졌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말이야. 아침밥을 준비하던 분대원들은 밥도 못 먹고 퇴각해야 했단다. 프로이센 적군은 보이지 않는데 계속 퇴각해야 했어. 그래서 장군 등 지휘관들이 겁쟁이라고 욕하는 병사들도 있었단다. 군대가 그렇게 후퇴를 하고 있으니, 민간인들도 덩달아 피난길에 나서면서 군대와 민간인들이 섞여 대혼란을 이루었단다.

장은 하사로써 분대원들을 잘 대해주었어. 모리스는 학교를 다니지 않은 농민 출신의 하사인 장을 무시하곤 했단다. 모리스 자신은 파리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나름 가방 끈 긴 사람이었거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장의 책임감과 후임병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마음에 조금씩 바뀌었단다. 그러다가 모리스가 발 부상을 당했을 때 장이 옆에서 계속 챙겨주고 치료를 해주는 모습을 보고 장을 완전히 신뢰하여 호칭도 이라고 불렀어.

그들은 계속 퇴각을 하는데 여전이 프로이센의 군대는 보이지 않았어. 지휘관들은 우유부단한 모습을 계속 보였고 적군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어. 어디로 퇴각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였고리더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란다. 그들은 스당까지 퇴각해서 진지를 구축하려고 했단다. 그들의 퇴각길에는 황제도 같이 했는데 군인들은 황제에 대한 불만도 컸단다. 황제와 그의 무리들의 이동은 이동 속도도 느렸고, 군인들은 며칠씩 굶고 있는데 황제와 측근들은 잘 먹고 있었으니 말이야. 지금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인데 말이야.

퇴각하는 길에 분대원 중에 한 명인 오노레의 집이 있어서 장의 분대원들은 그곳에서 하룻밤 묵었단다. 오노레와 모리스는 친척이었어. 오노레의 아버지가 모리스의 외삼촌이었어. 그런데 오노레에게 가슴 아픈 사연이 하나 있었단다. 오노레는 자신의 집 하녀인 실빈과 사랑에 빠졌었는데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했어. 그러다가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되었어. 그 사이 살빈은 외지에서 온 골리아트와 정을 통하고 임신까지 하게 되었단다. 실빈은 자신의 순간적인 실수를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단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골리아트가 프로이센의 첩자였던 거야. 그는 정보를 얻고 나서 다시 프로이센으로 도망을 갔단다. 실빈은 아이를 낳고 혼자 기르고 있었단다. 오노레는 그런 실빈과 재회를 했단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이 실빈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실빈을 용서하고 전쟁을 마치면 결혼하자는 약속을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단다.

퇴각길은 쉽지 않았어. 굶주림과 수면부족과 피로로 장병들은 하나둘 쓰러졌단다. 장과 분대원은 이번에는 모리스의 쌍둥이 누가 앙리에트와 남편 바이스의 집에서 하룻밤 묵기도 했단다.

 

2.

그들의 패주는 한 달 넘게 이어졌어. 여전히 프랑스는 우왕좌왕 오합지졸이었고 작전도 없이 프로이센 공격에 임시응변으로 대응을 했단다. 지역의 전문가들이 군 지휘관에게 지형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었지만, 지휘관은 그들의 말을 무시했단다. 망하는 군대의 전형적인 리더의 모습. 회사도 저런 리더가 있으면 회사가 곧 망할 텐데.. 주변에 그런 리더들이 보여서 걱정이구나.

모리스의 쌍둥이 누나 앙리에트의 남편 바이스는 민간인이지만 전투 상황이 어떤가 도움이 될 만 한 것은 없나 하는 생각으로 전쟁터로 향했단다. 이에 앙리에트는 남편 걱정으로 안절부절. 직접 남편을 만나러 바제유란 곳으로 가는데바제유는 이미 프로이센 군들이 많이 진격하여 무척 위험한 곳이야. 군인들도 앙리에트를 만류했단다. 한편 바이스는 전쟁터에서 군인들을 도와 프로이센 군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으나, 프로이센 군에 역부족이었어. 바이스와 저격수 한 명만 생포되고 나머지는 모두 죽었단다. 생포되었지만 그들도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지. 그런데 그때 앙리에트가 바제유를 도착을 했고, 바이스가 죽게 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어. 바이스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결국 바이스는 프로이센에게 처형당했단다.

..

장과 모리스는 서로 도와가면서 그 험난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단다. 프로이센의 계속된 공격과 프랑스의 반격이 있었는데 소설 속에서 전투 장면을 무척 사실적으로 묘사했단다. 전쟁의 잔혹함과 무서움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구나. 장과 모리스는 앙리에트를 만나고 바이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장의 분대원들 중에도 살아 남은 사람이 적었어. 죽은 사람 중에는 앞서 아빠가 이야기했던 오노레라는 사람도 있었단다. 전쟁이 끝나면 실빈과 결혼하기로 했었는데 말이야. 실빈도 오노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시신을 눈으로 확인하겠다면서 전쟁터로 향했단다. 버려진 오노레의 시신. 실빈은 오노레의 시신을 마차에 태우고 고향 땅으로 돌아왔단다.

전쟁은 프랑스의 항복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어. 장과 모리스는 결국 프로이센 군에 붙잡혀 수용소에 수감되었단다. 수용소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어. 굶주림과 병마가 그들을 괴롭혔어. 빵을 빼앗으려고 살인 사선도 일어나고 수용소를 탈출하려다가 죽은 이들도 많았어. 하지만 생지옥 같은 수용소에 있다가는 그냥 죽을 것 같아서 장과 모리스도 수용소 탈출을 시도했단다. 장이 다리에 총상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탈출에 성공했단다. 장은 모리스의 외삼촌 푸샤르의 집, 그러니까 오노레의 집에서 숨어 지내면서 치료를 받고 있었단다. 모리스는 파리로 가겠다고 했어. 파리는 프로이센에 항복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앙리에트는 군병원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기도 했었는데 장이 부상당해 숨어 있는 것을 알고 날마다 와서 장을 치료하고 말동무도 되어주었단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는 애틋한 감정이 싹트기도 했어.

 

3.

실빈이 낳은 아이의 아버지 기억나니? 프로이센의 첩자였던 골리아트. 그가 다시 찾아와서 실빈에게 자신을 따라 오라고 했어. 그렇지 않으면 장을 비롯하여 푸샤르의 집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프로이센에 넘기겠다고 했어. 실빈은 자신의 아이의 아버지를 죽여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대의를 위해서 결단을 내리기로 했어. 실빈은 민병대에게 골리아트가 다시 오기로 한 시간을 알려주었고, 민병대는 푸샤르의 집에 숨어 있다가 골리아트를 죽였단다.

장은 몸이 회복되어 다시 군대에 가기로 했어. 장은 당연히 정부가 조직한 군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프로이센에게 항복 선언을 한 정부가 조직한 군대인데 그쪽으로 가는게 맞나 싶구나. 더욱이 모리스는 파리로 갔는데파리에는 파리 코뮌 중심으로 국민자위대가 만들어져 프로이센에 항전을 하고 있었고 말이야. 그런데 이 국민자위대를 진압하려고 보르도 회의는 정부군을 파리로 보냈단다. 프랑스 정부군과 국민자위대는 서로 총칼을 겨누면서 싸웠단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거라 그들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파리가 불타고 서로 잔인하게 죽였단다. 1 2천여 명이 죽었다고 했어. 정부군 소속이었던 장도 어떨 수 없이 국민자위대와 싸웠는데 그가 어떤 적군을 칼로 찔렀는데, 뒤늦게 모리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 깊은 탄식과 후회가 밀려왔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것. 그때부터 장은 군대도 전쟁도 다 때려치우고 오직 모리스를 살리는 데만 힘썼단다.  장은 부상당한 모리스를 데리고 피신하고 몰래 숨기면서 치료를 했단다. 그곳에 앙리에트가 찾아와 앙리에트도 모리스 치료에 도움을 주었어. 다행히 모리스가 점점 회복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물어가던 상처게 안에서 터져서 그만 질식사로 죽고 말았어.

갑작스럽게 찾아온 황망한 죽음이란다. 장은 죄책감에 어떻게 살아가라고장과 앙리에트 둘이 달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모리스가 죽었으니 그것도 쉽지 않았을 거야. 앙리에트는 장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자신의 길을 떠났고, 장도 자신의 길을 떠났단다. 지은이는 전쟁에는 해피엔딩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가.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났단다.

에밀 졸라의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사실적인 묘사로 느리지만 꽉 차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좋았단다. 그의 다른 소설들도 더 찾아보게 될 것 같구나. 루공 마카르 총서를 중심으로 해서 말이야. 아빠가 이 책 읽기 전에 배경 지식을 쌓기 위해서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을 읽었다고 했잖아. 그건 너무 잘 한 선택인 것 같구나. 그 책을 읽고 에밀 졸라의 <패주>를 읽었더니 소설을 이해하기가 더 쉬웠단다. 그리고 앞서 읽은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을 복습하는 느낌도 들었어. 누군가에게 이 책 <패주>를 추천하게 될 일이 있으면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도 함께 추천을 해야겠구나. ..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뮐루즈에서 라인강 쪽으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기름진 평원에 야영지가 구축되었다.

책의 끝 문장: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겸허한 사내인 장은 프랑스를 재건할 힘겹고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문득 높다란 황색 담장에 쓰인 "나폴레옹 만세!"라는 글귀가 꿈을 꾸는 듯 멍한 모리스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참을 수 없는 좌절감과 가슴이 찢기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전설적인 승리를 구가하며 전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스가 안중에도 없었던 약소국의 일격에 쓰러졌다는 게 사실일까? 반세기 만에 세상천지가 변했다. 뼈저린 패배감이 영원한 승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모리스는 매형 바이스가 일전에 뮐루즈 앞에서 고통스럽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 오직 그만이 사태를 통찰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를 서서히 약화시킨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있었고, 젊음과 활력이 담긴 새로운 바람이 독일에서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패권 시대가 끝나고 또다른 패권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뜻할까? 하기야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나라에서 불행이 닥치고, 미래를 향해 가는 나라, 가장 합리적이고 건강하고 강고한 나라가 승리하는 게 당연하잖아! - P82

모두가 울화통을 터뜨렸다. 병사들을 재미삼아 이리저리 돌리는 놈들이 세상천지에 어디에 있나! 헐벗은 들판에 펼쳐진 주름진 대지를 통해 병사들은 길 양쪽 가장자리로 열을 지어 걸었고, 장교들이 두 대열 사이로 지나갔다. 랭스에서 야영한 다음날 샹파뉴에서 병사들이 했던 즐거운 행군, 농담과 노래로 떠들썩했던 행군, 프로이센군을 따라잡아 격퇴하리라는 희망 속에서 배낭을 가볍게 들어올렸던 행군과는 전혀 달랐다. 이제 분노와 침묵 속에서 그들은 어깨를 짓누르는 소총과 배낭을 저주했고, 지휘부를 더 이상 믿지 않았으며, 절망에 사로잡힌 채 채찍질을 두려워하는 가축떼처럼 천근만근 발을 그저 앞으로 옮길 뿐이었다. 이 가련한 군대는 자기들의 십자가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 P152

그러나 많이 배운 모리스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전쟁이 삶 자체요,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이라고 생각했다. 정의와 평화의 개념을 도립한 자는 불쌍하고 유약한 존재가 아닐까? 어차피 냉혹한 자연이란 끝없는 살육의 장일 뿐이니까. - P227

스당에서는, 황제의 거추장스러운 짐이 주민들의 저주와 비난이 이는 가운데 군청 정원의 라일락 뒤에 놓여 있었다. 비참한 고초를 겪는 불쌍한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그것을 어디로 치우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짐에 어린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운, 그 짐이 자극하는 뼈아픈 패배의 기억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둠이 깊은 어느 밤이었다. 수많은 은냄비, 꼬치 회전기, 고급 포도주 바구니와 함께 말들, 마차들, 화물 마차들이 극비리에 스당에서 빠져나갔고, 도둑질할 때처럼 살금살금 불안한 걸음으로 캄캄한 도로를 통해 벨기에로 넘어갔다. - P456

그때 장은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땅거미가 지는 이 시각. 불타는 도시 위로 서광이 비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가차없는 운명과 감당하기 힘든 재앙 속에서 분명 모든 것이 종말을 맞이했다. 프랑스는 그처럼 엄청난 불행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잇따른 패전, 지방 영토의 상실, 수십억 프랑의 배상금, 피로 물든 참혹한 내전, 사방에 널린 시체와 파괴의 잔해물, 돈도 명예도 없는 궁핍, 한마디로 다시 건설해야 할 하나의 세계! 그 자신도 찢기는 가슴을 거기에 묻었다. 그가 사랑한 모리스도 알이에트도,그가 꿈꾸었던 행복한 내일의 삶도 폭풍우에 휩쓸려갔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글거리는 맹화 너머로,싱그러운 희망이 더없이 맑고 고요한 하늘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영원한 자연,영원한 인류의 신선한 소생이었다.그것은 희망을 품고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새로운 청춘이었다. 그것은 수액이 오염되어 잎을 노랗게 물들이는 썩은 가지를 잘랐을 때 푸르른 줄기를 힘차게 내뻗는 생나무였다. - P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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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11-02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패주>로 에밀 졸라를 처음
읽었습니다.

사놓은 책들은 많은데 막상 시작
하고 읽다 말고 읽다 말고를 거듭
하고 있네요.

루공-마카르 시리즈는 시간을 두
고서라도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

요즘 역전다방에서 보불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책 읽는데 참고가
많이 되었습니다.

bookholic 2024-11-03 12:43   좋아요 0 | URL
저도 틈틈이 루공-마카르 총서를 읽어보겠습니다...^^
<역전다방>이라는 프로그램은 처음 들어봤는데,
꼭 찾아서 봐야겠군요..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일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129)

하지만 해리, 수학은 인간이 발견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학문이잖아요. 하나가 나오면 거기에 뒤따라 또 하나가 나오는 식이죠. 게다가 원리가 개념이 모두 다 발견되잖아요. 수학은…… 수학은…… 모든 내용이 하나로 조화되어 있지요. 하지만 역사학은 달라요. 역사학은 수천조에 달하는 인류의 생각과 행위를 다루는 학문이에요. 따라서 역사학자는 골라잡을 수밖에 없어요.

 

(294)

모든 인류가 모여 살던 하나의 행성. 나중에 다른 유인 행성도 생겨나긴 했지만 우리 행성이 최초의 유인 행성이었어요. 하늘은 열려있어 푸름을 맘껏 뽐내고 모든 사람이 생활할 공간과 들판은 드넓었으며 다정한 가정과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곳. 우리는 그곳에서 수천 년 동안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방랑해야 했어요. 그러다가 동적 일부가 트랜터 한구석에 정착해 식량을 재배하면서 약간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곳 트랜터에서 우리의 관습과 우리의 꿈을 가꾸며 살 수 있게 된 거예요.”

 

(498)

첫째, 은하계 역사에 전제 지배를 무너뜨리려는 수많은 혁명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개별 행성에서, 때로는 행성군에서, 또 때로는 제국자체에서, 또는 제국 시대 이전 지방 정부에서도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혁명은 종종 전제를 또 다른 전제로 바꾸는 것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 결국 하나의 지배계급이다. 다른 지배계급으로 대치되고만 것이지요. 그리고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억압당한 채로 남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이전보다 더욱 상태가 악화하기도 했지요.”

 

(574-575)

그렇다면 좋습니다. 어떤 전쟁도 치르지 않고 은하제국이 붕괴하여 파편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트랜터를 장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효과적으로 통치하기에 충분히 작은 영역에 제가 강력한 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은하계의 그 나머지 세계에 대해서는 자유를 부여하고 각자 독자적인 관습과 문화에 따라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렇게 되면 은하계는 무역, 관광, 통신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을 통해 다시 새롭게 작동하는 전체가 될 것입니다. 또 가까스로 뭉쳐 있는 현재의 통치하에서는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붕괴라는 비참한 운명을 피하게 될 것입니다. 제 희망은 사실 건전한 겁니다. 말하자면 수백만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 전쟁이 아니라 평화, 노예제가 아니라 자유를 원하니까요. 잘 생각해 보시고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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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노명식 지음 / 책과함께 / 201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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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이란 책이란다. 아빠가 프랑스 혁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찾아보다가 알게 되어 구입했던 책이란다. 파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인 프랑스 혁명과 파리 코뮌의 이야기라서 관심이 갔고 책의 평점도 좋아서 구입하게 되었단다. 당연히 외국 작가의 책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지은이가 노명식이라는 우리나라 역사가시더구나. 이 책을 처음 쓴 것도 지금으로부터 40년에 쓰셨다고 했어. 그리고 아빠가 읽은 책은 2011년 개간본이란다. 인터넷 검색을 보니 노명식 님은 2012년에 고인이 되셨더구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을 번역 없이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구나.

이 책이 우리나라에 나온 1980년이라고 하는구나. 우리나라 1980년은 또 다른 군사 독재가 시작되던 해로 정치적 혼동으로 시위가 끊이지 않던 시기였단다. 마친 프랑스혁명 전후에 시위가 끊이지 않았던 시기와 비슷하게 말이야. 결국 1987년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이끌어내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 동안 끊임없는 국민들의 항쟁의 결과였단다. 그런 유사한 상황 때문에 1980년대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느낌이 달랐을 것 같구나. 2024년 또다른 정치적 혼란이 일고 있단다. 역대 최악의 친일파 정권에 나라 살림은 손 놓고 있어서 고삐 풀린 황소 같은 상황민심은 80년대 만큼 들끓고 있지만 아직은 다들 각자도생 하느라 거리로 나서지는 않는 것 같구나. 그를 찍은 사람들이 원망스럽구나.

아빠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을 많지는 않지만 몇 권 읽어봤는데, 오늘 이야기할 <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라는 책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 누군가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을 추천한다고 하면 이 책을 추천할 것 같구나. 사실 이 책을 이번에 읽으려던 책은 이 책이 아니었단다. 아빠가 에밀 졸라의 <패주>라는 소설을 읽으려고 폈거든그런데 에밀 졸라의 <패주>라는 책이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과 파리 코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책을 읽기 전에 배경 지식을 좀 쌓고 읽으려고 <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을 먼저 읽게 된 것이란다. 그런데 이 책 참 보물 같은 책이로구나. 이 책이 품절되지 않고 계속 판매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란다.

 

1.

프랑스 혁명은 너희들도 알고 있는 것처럼 1789년에 일어났단다. 그 이전의 프랑스는 어떠했는가?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나? 먼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가 있었단다. 1715년 프랑스의 인구는 1500만명 정도였는데, 1789년에는 2400만명에서 2600만명이었대. 불과 몇 십 년 만에 1000만명 정도가 늘어난 거지.. 그렇게 인구가 갑자기 급증했는데, 물자의 증가는 따라가지 못했어. 그래서 물가가 급등해서 살기가 어려워졌다는구나.

모든 사람이 살기 어려워졌을까? 오늘날도 물가가 상승하면 서민들부터 힘들어지는 것처럼 당시에도 신분이 낮은 사람들부터 힘들어졌단다. 당시 프랑스에는 3개로 나뉘어진 신분제도가 있었는데, 1신분은 성직자들이었고, 2신분은 귀족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3신분으로 가장 많이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3신분 중에는 대다수가 농민들이었고, 소수의 부르주아들이 있었단다. 농민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힘이 없었어. 세금도 이중 삼중 과제로 내어 수입의 80~90%를 내고 있었어. 영주에 세금을 내고, 교회에 세금을 내고, 나라에 세금을 내고 그랬지.

그런데 부르주아들은 좀 여유가 있었단다.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상업이 발달하였는데, 부르주아들은 큰 돈을 벌게 되었거든. 비록 3신분이지만 큰 돈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그들은 3신분이다 보니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단다. 그런 것이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어. 지은이 노명식 님은 부자들의 불만이 쌓일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공감이 가더구나.

===============

(30)

번영하고 발전하는 18세기 프랑스에서 바로 그러한 계급 사이의 불균형이 날카롭게 의식되었다. 혁명은 가난한 사람들이 일으키지 않는다. 부유해진 사람들이 자신의 실력이 무시되고 멸시당한다고 느낄 때 모순된 제도를 타도하기 위하여 혁명을 일으킨다. 바르나브(Antoine Barnave)가 열렬한 혁명가가 된 동기는, 일곱 살 때 어머니와 함께 극장에 갔을 때 클레르몽 통네르라는 귀족에게 자기들의 좌석을 내주어야 했던 억울하고 불쾌한 기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많은 부르주아들이 품고 있었던 불평불만과 자존심의 훼손이 그들로 하여금 앙시랭레짐을 미워하게 하고 그것을 없애버리는 혁명으로 치닫게 하였던 것이다.

===============

1775년 흉작이 일어나면서 농민들은 더욱 가난해졌고, 물가는 더욱 치솟았단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라는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단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말이야.

당시 인쇄술 보급과 함께 루소의 사회계약설 등을 비롯한 여러 계몽 사상이 퍼지게 되었어. 특히 부르주아들의 자녀들이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계몽 사상을 쉽게 접할 수 있었지. 그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어.

부르주아들이 3신분이긴 하지만 경제력이 있다 보니 군대 등 국가의 일부 고위직을 갖고 있었는데,  2신분 귀족들이 이것에 불만을 품고 법을 바뀌어 고위직은 모두 귀족들이 갖게 되었단다. 어찌 보면 귀족들의 횡포이니 왕이 나서서 중재를 해야 하지만 왕은 무능했단다. 귀족들이 무능한 왕을 이용한 것이지. 귀족이 고위직을 다 차지하게 되자 왕권도 약화되었단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나라 빚은 점점 늘어가는데 1신분과 2신분은 세금을 안내고 있었어. 자꾸 오늘날 우리나라 현실과 오버랩이 되는구나. 세손 부족이 늘어나는데 부자감세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비슷해.

각 신분의 대표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삼부회가 1789 5월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렸어. 3신분도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2신분은 3신분 대표들을 멸시하고 굴욕을 주었단다. 이에 불만을 품은 3신분은 독립적인 또 다른 의회인 국민의회를 창설했단다. 1신분들 중에도 국민의회에 합류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찬반 투표가 이루어졌고 근소한 표차로 국민의회에 참석하게 되었단다. 배신을 느낀 루이 16세는 회의장 문을 잠그고 그들을 회의장 안으로 못 들어오게 했어.

그래서 국민의회는 베르사유 궁전 안 테니스 코트로 가서 회의를 했단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테니스 코트의 서약이 선언된단다. 헌법 제정을 요구하고 국민의회가 공식적인 국민의 대표회의체로 인정하라는 것이었어. 1789 7월 더욱 거세지는 혁명의 물결. 나라에서는 국민의회를 인정하지 않고 탄압하려고 하자 파리 시민들은 결국 7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하였단다. 그렇게 국민의회 세력은 권력을 잡게 된단다. 1789 8월 봉건제 폐지를 선언했어. 농노는 바로 해방이 되었지만 토지 처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면서 매매를 통해 정리하기로 했는데 그것이 4년이나 걸렸다고 하는구나. 실책 중에 하나였지. 그리고 인권 선언도 발표되었는데, 내용을 읽어보면 오늘날 헌법에 적용해도 좋을 만큼 선진적이었단다. 교회 재산 및 토지 반환에 대한 갈등도 심했는데 11월 국민의회의 표결을 통해 국가에 반환되었다고 하는구나. 갑작스레 권력을 잡긴 했지만 여전히 계층간의 대립은 심했어. 그리고 혁명파 내부에서도 부르주아와 민중들 사이의 혁명에 대한 온도차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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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바스티유를 함락시킨 지 2 2개월 사이에 프랑스 국민은 새 국민으로 변하였다. 그 새 국민의 마음속에 지난 6월 이후 3개월 사이에 갑자기 분노와 불만이 쌓였다. 지금까지 왕당파를 노려보던 프랑스 민중의 눈은 혁명을 반역하고 민중을 배신한 푀양파로 돌려지고 있었다. 민중의 분노와 불만은 막 제정된 결함투성이의 헌법을 그대로 두지 않을 태세였다. 그 헌법을 진정한 민주주의 헌법으로 새로 만들고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는 데는 앞으로 1년이면 족하였다. 혈통의 특권적 지배를 무너뜨린 민중은 이제 돈의 특권적 지배를 오래 참고 견딜 생각이 없었다. 푀양파와 같은 보수적 부르주아는 헌법의 제정으로 혁명은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민중은 혁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혁명은 계속 민중의 힘에 의해 추진되어 갔다.

===============

한편 루이 16세도 외국 세력과 손잡고 반전을 노리고 있었어. 심지어 프랑스를 탈출하려는 시도도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단다. 이 장면은 앙투아네트 이야기할 때 해주었는데 기억나지?

 

2.

1791년 헌법이 제정되면서 프랑스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했단다. 입헌군주제는 왕은 있지만 헌법 체제 안에서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제도였어. 그렇다 보니 왕의 권한은 대폭 축소되어 독자적인 권한은 거의 없었단다. 입법의회가 생겼는데 입법의회는 부르주아들과 일부 귀족들로 구성되었어. 그런데 농민의 권리를 너무 주지 않았단다. 선거권도 없었대. 농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폭동도 일어났다는구나. 그래서 입헌군주제는 1년만에 폐지하고 파리 시의회인 파리 코뮌이 주도적으로 행정을 이끄는 시대라 되었단다. 이 시의회의 리더는 법무장관 당통이 이끌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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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파리 코뮌이란 무엇일까? 그 뜻은 파리 시의회(City Council)라는 뜻이었다. 파리는 본래 행정구역이 60구로 나뉘어 있었는데, 1790 5월에 48개의 섹시옹(section)으로 개편되었다. 섹이옹마다 1800명 정도의 능동 시민이 있었는데, 그들의 대표자들이 시 코뮌을 구성하는 반혁명 세력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런데 8 10일 사건을 계기로 각 섹시옹이, 특히 노동자들의 섹시옹이 그들의 코뮌 대표자들을 수동 시민으로 교체하여 코뮌의 능동 시민을 압도하게 되었다. 수동 시민은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없었으므로 압력에 의하여 능동 시민과 수동 시민의 차별을 없애고 보통선거에 의하여 새 국회인 국민공회 소집을 가결하였으므로 코뮌의 불법성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합법성의 기분은 이미 개정하기로 선포한 낡은 헌법의 원리에 의하여 측정될 것이 아니라 새 헌법의 원리에 의하여 측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 헌법의 원리에 보통선거의 원리였다. 그런데 이 보통선거의 원리를 입법회의로 하여금 승인케 한 것은 파리 코뮌이었으니, 입법회의는 파리 코뮌의 실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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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의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었어. 여러 계파가 다양한 이유로 전쟁을 지지하고 있었는데,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 중심의 일부만 반대 의견을 냈단다. 그렇게 되자 자코뱅 당은 분열하게 되었단다. 로베스피에르 중심의 산악파는 부르주아를 비판하고 민중을 옹호하였고, 자코뱅 클럽을 결성했단다. 온건 진영은 지롱드파로 모이게 되었어. 지롱드 파가 좀더 우세한 조직이었지. 이런 상황에서 왕정을 공식으로 폐지하고 공화정을 출범하게 되었단다. 그러면서 루이 16세에 대한 처형 여부 결정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거의 50 50으로 양분되었어. 아슬아슬한 표차로 루이 16세 처형이 결정되어 삶을 마감하고 말았어.

공화정이 출범하긴 했지만 순탄치 않았단다. 각 계파들의 알력 다툼은 점점 심해지고 반대파들을 꼬투리 잡아서 단두대로 보내기 일쑤였어. 프랑스 혁명의 유력 인사들의 많은 이들의 삶이 단두대에서 마감했단다. 산악파가 권력을 잡게 되면서 그들 간에도 내부 분열이 일어났고, 산악파에서 관용파로 분류되면 당통도 제거되고 마라도 암살당했단다. 그러면서 로베스피에르가 거의 독재를 하다시피 했어. 공안위원회를 만들면서 공포 정치를 시행했지.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죽을지 몰랐어. 로베스피에르의 입장에서는 민중을 위한다고 했지만 너무 과격했어. 로베스피에르의 위협을 느낀 반대파들도 결국 헌법을 이용하여 로베스피에르도 단두대로 보냈단다. 이 부분은 아빠가 몇 달 전에 이야기해 준 <조제프 푸세>에서 자세히 이야기했었지. 로베스피에르를 죽인 것이 혁명력 테르미도르에 죽였기 때문에 그들을 테르미도르파로 불렀다고 하는구나. 혁명력이란 혁명이 성공하고 나서 달력을 새로 만든 것이란다.

로베스피에르를 죽이긴 했는데 테르미도르파는 뛰어난 리더도 없고 노선도 애매했어. 지은이께서 이야기하시기로는 왕이 없는 입헌군주제 노선이라고 했어. 정말 애매하구나. 그렇다 보니 이때가 기회가 싶어 왕당파들도 재건의 움직임을 보였는데 테르미도르파에 의해 진압되었단다. 그러면서 등장한 것이 총재정부라는 정부 형태였단다. 이때가 1795 1월이었어. 총재 정부는 5명의 총재가 공동으로 국가 행정을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일각에서는 부르주아 공화국이라고도 불렀어. 이런 정부 형태를 민중들이 좋아하겠니? 당연히 싫어하겠지. 그래서 또 여기저기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인 세력들이 등장하였는데 이때 나폴레옹도 처음 역사에 등장하게 된단다. 강력한 리더가 없어서 그런지 좌파와 우파간에도 계속 쿠데타를 일어났는데, 총재 중 한명인 시에예스가 나폴레옹과 손잡고 쿠데라를 일으켜 성공하게 된단다. 그리고 총재 정부를 끝내고 통령 정부를 세우게 된단다.

 

3.

통령 정부는 3명의 통령이 공동으로 정부를 이끌어가고 임기는 10년이라고 했어. 그런데 나폴레옹은 법을 바꾸어 1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고 2통령과 3통령의 권한을 축소했단다. 자신이 1통령인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이후 또 법을 바꾸고 임기를 없애 종신 통령이 되었단다. 그러면서 반대파인 왕당파와 공화파의 세력을 제거해 나갔어. 결국 헌법을 한차례 더 개정하여 그는 황제가 되었단다. 왕이 아니고 황제가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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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나폴레옹이 왕이 아니라 황제간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르봉 왕가의 왕족들이 루이 16세의 어린 아들을 루이 17세라고 칭하였고, 그가 일찍 죽자 루이 16세의 큰 동생 프로방스 백작이 루이 18세라고 자칭하면서 왕정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 판국에, 그들의 왕정을 부정하면서 다른 왕정을 창업한다는 것은 논리상 모순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스스로 혁명의 아들로 자처하고 있었는데, 혁명이 낳은 왕이란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역사상 프랑스인 최초의 군인 황제인 샤를마뉴의 정통 계승자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아헨에 있는 샤를마뉴의 사당을 참배했을 뿐만 아니라 샤를마뉴처럼 가톨릭교회의 성별을 필요로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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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교황에게 부탁해서 대관식까지 했단다. 교황도 자신의 입지를 키우는데 나쁘지 않다고 대관식에 응했단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진행되었는데, 나폴레옹은 관을 받아 자신이 직접 위에 얹었다고 하는구나. 황제를 불러들이긴 했지만 스스로 관을 쓰면서 자신의 힘에 의해서 황제가 되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했어. 그렇게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전쟁을 통해서 주변국을 점령하고 동맹국으로 만들었단다. 그리고 그 나라에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들을 왕에 세우는 족벌 정치를 했어. 그렇게 국토를 넓혀나갔지만 주변국에서 반기를 들기도 했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반기를 든 것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등 동부에서도 독립 투쟁을 했단다. 그 때마다 진격해서 진압을 하였지만 프랑스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단다.

그 와중에 무리한 러시아 원정이 독이 되었어. 러시아 원정은 추위와 병으로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러시아 전술에 속아서 많은 군인들이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단다.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을 갔지만 약 10만명만이 돌아올 수 있었어. 그렇게 되자 나폴레옹은 1814년 실각하고 말았단다. 나폴레옹이 실각되었지만 여전히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이었단다. 프랑스 내에서는 부르주아는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하였어. 하지만 극빈자들도 여전히 많았어. 노동자들 중에도 극빈자들이 많아서 불만이 쌓여갔지.

나폴레옹이 실각된 이후 백성들의 지지에 의해 루이 16세의 동생 프로방스 백작이 루이 18세가 되어 왕이 되었단다. 정부 조직은 1789년 이념을 기초로 구성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1815년 엘바섬을 떠난 나폴레옹이 3 20일 파리에 입성하면서 위협하자 루이 18세는 파리를 탈출하였단다. 나폴레옹이 다시 권력을 잡나 싶었으나 그의 권력은 100일로 끝이 나고 말았지.

그는 다시 실각되었고 루이 18세는 돌아왔단다. 루이 18세가 프랑스 혁명 이후 계속 외국에서만 지내서 프랑스 사정을 잘 모르고 민심도 잘 몰랐대. 그리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망명 귀족들을 데리고 와서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었어. 이렇게 하니 국민들의 불만이 또 쌓일 수밖에 없지. 거기에 나폴레옹이 100일 천하 동안 일으킨 전쟁에서 연합국에 패한 것에 대한 제2차 파리조약이 이루어졌어.

나폴레옹이 첫 실각 당시 맺어진 1차 파리조약에서는 아무런 배상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2차 파리조약에서는 참을 수 없었지. 연합국은 프랑스 땅의 2/3를 차지하게 되었고 전쟁 배상금도 내야 했으며 프랑스 정치도 감시 받는 상황이 되었단다. 루이 18세도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의회와 손을 잡고 노력을 했으나 1824년 루이 18세는 죽고 샤를 10세가 왕위에 올랐단다.

 

4.

샤를 10세는 꼴통 왕당파로 왕당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어. 샤를 10세는 돌아온 망명 귀족들의 옛 재산을 찾아주기까지 했단다. 시민들의 불만은 점점 치솟았어. 그 불만이 쌓이고 쌓여 1830 7월 혁명이 일어나고 샤를 10세는 쫓겨났어. 그리고 루이 필리프가 왕위에 올랐는데 루이 필리프는 프랑스 혁명 초기에 혁명군 진영에 있던 사람으로 역시 혁명파였던 오를레앙 공의 아들이었어. 7월 혁명 이후 왕정을 시작해서 그들은 7월 왕정이라고 불렀어. 여전히 노동자의 생활은 열악했고 국민의 분열은 계속되었는데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어. 노동자 시위가 계속 일어나고 정부는 무력 진압하게 되었어. 노동자들은 이제 7월왕정에 불신을 가지고 공화파를 지지했단다.

그런데 1840, 7월 왕정의 실책이 또 나왔어. 나폴레옹의 유해를 파리로 이장했고 나폴레옹을 영웅화했단다. 1840년대 내내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시민들은 불만이 계속되었고 곡물이 대흉작이 되면서 물가는 치솟고 주식은 곤두박질치면서 경제 사정까지 악화되었어. 다시 시위와 폭동이 증가하였고 무력 봉기까지 일어났단다. 1848년 공화파 주도로 2월혁명이 일어나고 결국 루이 필리프는 퇴위했단다. 공화파 주도로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되었는데 의외의 인물이 당선되었단다. 나폴레옹의 조카인 샤를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이 대통령이 된 거야. 나폴레옹의 향수를 자극해서 말이지.

나폴레옹 3세는 가톨릭교회를 중시하였어. 그는 직권 이후 언론을 탄압하고 자유를 탄압했고 대통령이 된 지 1년 뒤에는 황제가 되었단다. 국내 정치에서는 이렇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었지만 대외적으로는 성과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영국과 동맹을 맺어 러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이탈리아 전쟁에 관여하여 이탈리아 통일에도 기여를 했대. 그런데 오히려 이건 독이 되었다는구나.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거대란 견제 세력이 생긴 거야.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교황의 힘도 세지면서 프랑스와 대립하게 되었어.

프랑스 내부에서는 나폴레옹 3세에 대한 국민여론이 안 좋아지고 그것은 공화파의 의회 의석수가 늘어나는 결과를 냈단다. 나폴레옹 3세는 대의동맹을 맺어서 위기 타개를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어. 그 와중에 나폴레옹 3세는 멕시코 원정에서 실패를 했고, 프로에센은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승리를 하면서 프랑스도 넘보려고 했어. 1869년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을 하면서 황제의 권력은 많이 약화되었단다. 그리고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 결국 전쟁이 일어났는데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이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 말았단다. 그러면서 나폴레옹 3세는 퇴위하게 되었고 다시 제정 시대가 끝이 났단다.

1870 9월혁명으로 프랑스는 다시 공화정으로 돌아섰어. 프로이센은 전쟁에서 이긴 후 계속 프랑스로 진격하여 파리를 포위했단다. 포위를 뚫는 시도를 잇달아 했지만 실패하고 고립된 파리는 물가가 폭등하면서 궁핍한 생활이 이어졌어. 4800여명의 파리 시민이 사망을 했다는구나. 파리 고립이 길어지면서 파리 내부에서도 항복하자는 의견과 항전하자는 의견으로 양분되었어. 파리 시민들의 시위대와 이를 진압하던 수비대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총격전이 벌어져서 50여명이 사상자가 발생했어. 당시 프랑스 정부의 파브로라는 사람이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와 비밀리에 휴전 협정을 했고 보르도에 의회를 만들게 되었단다.

이 소식을 들은 파리의 국민방위대는 반박을 했어. 휴전 협정 내용은 파리 시민을 더욱 열받게 했단다. 알자스 지방과 로렌 지방을 독일에 넘기기로 했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고, 프로이센 군대가 파리를 48시간 동안 점령하기도 했다는구나. 이런 굴욕적인 조건을 어떤 파리 시민이 받아들이겠는가. 파리 국민방위대 중심으로 저항을 했단다. 그리고 파리 내부에서 또다른 의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파리 코뮌이란다. 이미 파리 코뮌은 프랑스 혁명 초기 때 있었던 파리 시의회인데 이를 부활한다는 의미였어. 보르도 의회는 베르사유로 이동했고, 파리 코뮌의 국민방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을 파리로 보냈단다.

그렇게 정부군과 국민방위대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단다. 같은 동족끼리 총을 겨누는 상황이 벌어진 거야. 72일간 이어졌는데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 없었단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유서 깊은 건물들이 많이 불타고 말았대. 이 내전을 역사는 파리 코뮌 사건이라고 하는데 몇몇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에 의해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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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432)

파리 코뮌 기간 중 벌어진 공전의 참변은 프랑스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럽 문화와 현대 문명의 중심지 파리에서 어떻게 하여 그런 끔찍하고 야만스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코뮌 직후부터 거기에 대한 갖가지 해석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역사학의 생명은 해석에 있다고 하지만 파리 코뮌에 대한 해석만큼 오늘날까지 극심한 대립을 보이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파리 코뮌의 해석이 처음부터 유달리 현저한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농후하게 띠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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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루브르 궁전도 이때 화재가 일어나 서쪽 건물이 완전히 무너졌고 그때의 잘못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복원하지 않고 무너진 상태 그래도 두었다고 하는구나. 여기까지가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본 것이란다. 길게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맥락이 잘 안 이어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구나. 그건 아빠의 역량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니 양해 바란다. 그리고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이 책은 꼭 읽었으면 좋겠구나. , 이제 에밀 졸라의 <패주>를 읽어야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태양왕 루이 14세가 죽은 1715년 당시 프랑스의 인구는 1,400만에서 1,500만으로 추산되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에는 2,400만 내지 2,600만으로 추산된다.

책의 끝 문장: 끝으로 코뮌은 제3공화국의 불행한 서장으로, 코뮌이 없었더라면 제3공화국의 탄생이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루이는 흔히 말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에는 유능하다든가 흑백이 분명하다든가 의지가 꿋꿋하다든가 책임감이 강하다든가 혹은 믿음직하다든가 하는 따위의 뜻은 들어 있지 않다. 루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뚱뚱한 몸집에 어디로 보나 호인형 남자였다. 미식가이고 무도회와 사냥을 즐기고 특히 열쇠를 만드는 취미가 있었다. 취미를 취미 삼아 즐기는 정도라면 골치 아픈 정무에 휴식을 제공하는 오락거리쯤으로 생각하겠지만, 루이는 골치 아픈 정치는 아예 질색이고 사냥과 열쇠 만들기에만 전념하는 편이었다. 그는 국왕 참의회에서 골치 아픈 일이 논의되면 곧 피곤해져서 회의석상에서도 졸곤 했다고 한다. 그러한 인물이었으니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한들 무슨 유익한 일을 과단성 있게 해낼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에 직면하여 어찌 일을 제대로 판단하여 책임성 있게 처리할 수 있었겠는가? - P52

따라서 자코뱅의 세 번째 전통은 참 민주주의의 이상이었다. 평등주의적 민주의의이며, 진정한 자유에 대한 갈망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자코뱅이 제정한 1793년 헌법의 제5조는 "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면 봉기는 인민 전체에게도, 인민 각자에게도 가장 신성하고 불가결한 의무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유 수호의 최후 수단으로서의 민중 봉기를 국민의 권리를 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코뱅의 자유에 대한 사랑과 민주주의의 이상이 어느 정도의 것이었던가를 말해 주는 단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P179

나폴레옹 제국은 족벌 제국이었다. 황제의 형제들과 친척 및 부장들을 위성국가의 통치자로 봉하였다. 그러한 그가 1810년에는 가장 사랑하는 막내 동생 루이를 네덜란드 왕위에서 몰아내고 네덜란드를 프랑스에 합병하였다. 루이가 네덜란드의 밀무역을 철저히 단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륙봉쇄의 성패가 나폴레옹의 운명을 좌우하고 나폴레옹 제국의 모든 정책은 대륙봉쇄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해안 지역들을 프랑스에 합병하게 된 이유도 거기 있었고, 심지어 교황령이나 일리리아 지방까지도 무리하게 합병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그런데 영국해에 접해 있는 가장 중요한 네덜란드에서 밀무역을 막지 못한다면 대륙봉쇄의 운명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 P258

샤를도 형 루이처럼 67세의 홀아비였으나 형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활동적이고 정렬적이고 명쾌한 성격만이 형과 다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력과 사상도 매우 달랐다. 샤를은 왕당파의 두목으로서 헌장을 우습게 여기고, 프랑스 혁명을 악마의 장난으로 믿고, 왕권신수설을 진심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이 이제 왕권신수설을 부정한 헌장을 준수해야 하는 입헌군주가 되었으니 과연 그가 얼마나 헌장에 충실한 것이며 정당정치의 군주로서의 임무에 성실할 것인가는 매우 의심스러웠다. - P305

그런데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산업혁명을 경험한 선진 산업국가들은 빈부의 격차가 생기는 원인을 미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누구의 눈에도 명백히 나타난 빈부의 격차를 어떤 방법으로든지 줄이긴 해야 했다. 이런 생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실천에 옮기려는 운동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는데, 이를 사회주의라고 하고 그 운동을 사회주의운동이라 한다.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은 갖가지 이론과 형태로 19세기 선진 산업국가들의 역사를 색칠한다. 특히 19세기 프랑스의 역사가 그렇다. - P329

이제 국민은 공화정을 확정할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는 1815년 이래 한번은 보수적인 또 한번은 자유주의적인 입헌주정을 시도했으나 두 번 다 실패하고 말았다. 전자는 프랑스 혁명 자체를 부정하려다가 실패하고, 후자는 프랑스 혁명은 인정하였으나 상층 및 중층 부르주아의 이익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실패하였다. 오를레앙 왕가는 프랑스 혁명이 내세운 국민주권의 원리를 시인하면서도 신흥 부르주아에 의한 권력 독점을 위해 지나친 제한선거를 고집하다가 무너졌다. 복고 왕정은 정통파를 만들어내고, 7월왕정은 오를레앙파를 만들어내어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정치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지만, 그들이 프랑스의 정치 무대를 차지하는 일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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