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ㅣ 정희진의 글쓰기 1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즐겨 찾는 알라딘 북플에서 알게 된 정희진 님의 책을
읽었단다. 정희진이라는 분의 글쓰기 시리즈 중 첫 번째인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현재까지 출간된 책이 세 권이라서 이 시리즈가 모두 세 권인 줄
알았는데, 책 소개를 보니 모두 5권까지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구나. 지은이 정희진 님의 책은 아빠가 처음이야. 이름은
익숙한데 읽어본 책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인터넷 서점에 들락거리다가 본 것 같구나.
정희진 님을 검색해 보면 여성학을 전공하신 여성학자로 이면서, 여러 여성조직 등에서 자문위원을 하셨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전공
관련된 여러 책들을 내시기도 한 작가이기도 하고, 노동운동이나 시민단체에서도 활동을 많이 하신 분이야. 책 제목 또한 멋지구나.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그래, 무슨 일이든 나쁜 사람에게 지면 안 되지. 정희진 님은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우선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 그렇게 자기 자신을 검열을 하면서 생활을 했다고 하니, 대단하신 분인 것 같구나. 아빠 같으면 이런 책 제목을 지으려면
찔리는 부분이 많아서 못했을 것 같은데 말이야.
============================
(16)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 ‘나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정치학과 미학은 이 몸부림 과정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사람마다 행로가 다르기 때문에, 이른바 독특한
글(콘텐츠)이 나올 수밖에 없다. 흔히,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말의 의미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군자의
비현실적인 말이 아니라, 과정에서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괴로운
과정에서 ‘최선의 올바름’, 아름다운 문장이 나온다.
============================
…
정희진의 글쓰기는 솔직해서 좋았단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있는 경우도 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적으셨어.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평가도 몇몇 실려 있었는데, 아래 글을 읽어보고 정희진 님은 우리 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
(39)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책을 읽다가 ‘노무현’과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적 약자(야권)의 ‘자발적 무지’, 강자의 정체성 정치(지역주의)와 약자의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인 민주당 분당 사건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 같은 인물은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의 캐릭터는 우리 사회의 가능성이었다. 노무현의 당선은 일본의
진보 세력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들은 “한국은 미래가 있는
나라”라며 부러워했다. 연주 없는 고졸 대통령. 일본은 지방의원부터 국회의원, 총리까지 몇몇 가문이 독점하는 철저한
세습 사회다. 그들은 아버지로부터 자금, 지명도, 후원회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
1.
이 책은 대부분이 서평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각 서평을 깊게 분석한 것이 아니고, 당시 시대상이나 지은이의 생각을
짧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스포일러도 거의 없으면서도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그런 서평들이었단다. 그런데 그 책들이 오래된 고전이나 명작들이 아닌, 최근에 출간된
책들도 많아서 더 좋았단다. 김영하 님의 책이나 유시민 님의 책도 있고 말이야. 고전으로는 아빠가 너무 좋게 읽었던, 법정 스님이 옮기신 <숫타니파타>도 소개해 주었단다. 그 밖에 녹색평론도 소개하는 등 아빠가 읽은 책들도 있어서 반가웠어. 그리고
읽으려고 계획했던 책들도 있어서 도움이 될 것 같구나.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새로 알게 되어, 아빠의 리스트에 추가된 책들도 있단다. <지젝이 만난 레닌>, <기형도 산문집>,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등등….
…
이 책이 출간된 것은
2020년이지만, 이 책의 바탕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신문에 기고했던 서평이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단다. 어느덧 그 사건이 일어난 지
7년이 흘렀구나. 아빠도 초창기에는 그 사건을 절대 잊지 말자고 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누군가 그 사건을 이야기할 때만 떠오르는구나. 그
때의 아이들의 고통들… 그렇게 만든 사람들… 요즘도 어떤
사고가 나면 세월호와 비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어떤 사건사고를 그에 비교할 수 있을까 싶구나. 아물고 있는 상처를 다시 터뜨리는 행동과 말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가. 세월호는
상식적으로만 대처했어도 일어나지 말아야 사건인데, 당시 정부에는 비상식적인 사람들만 똘똘 뭉쳐 있었거든. 그런데 그 때 그 시절의 사람들이 다시 정권을 잡겠다고 떠들썩한데, 그런
일이 일어날까 두렵구나.
국민들이 선거를 할 때 제발 상식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 최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차선을 선택해야지, 최악을 선택하면 안되고
말이야. 앞으로도 정희진 님의 글쓰기 시리즈를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PS:
책의 첫 문장: 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금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 프란츠 파농
책의 끝 문장: 어쩌면 이 질문만이 유일한 사실(史實)일지도 모른다.
"왜 쓰는가"와 "왜 사는가"는 같은 표현이다. 사실, 이 물음은-누구나 작가인 시대지만-작가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이 아니다. "왜 사는가"를 고민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특히 어려운 시대, 어려운 상황에 처음 이들일수록 그렇다. 삶은 행위의 연속이다. 모든 행위는 침묵이든 폭력이든 놀이든 노동이든 인간관계든, 그리고 죽음의 방식까지 자신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다. 이러한 표현은 기호(signs), 즉 말과 글로 이루어진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이 그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표현은 자기만의 사유(특정한 렌즈)를 거치므로 각자의 몸을 통과해 ‘걸러진’ 재현(re-presentation)이다. 표현이 아니라 재현이 맞는 말이다. - P10
환경운동 구호 중에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원전에 반대한다.", "인간은 후대로부터 지구를 잠시 빌린 것이니 지구를 완전히 부숴버리지는 말자(‘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오역됨)."는 논리는 틀렸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고 현재 나를 위해 원전에 반대해야 한다. 이 구호는 여전히 인간의 것이 아닌데 누가 누구에게 지구를 ‘물려주고 말고’ 한단 말인가. - P53
노년 담론 중 흔히 회자되는 논리가 ‘곱게 늙기’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나이듦은 ‘곱지 않다’는 전제가 있다. 또한 ‘내면의 아름다움’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곱게 늙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왜 노인에게만 곱게 살라고 하는가! - P82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인 동시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 ‘희망찬 인생’은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의 볼모가 된다. 희망은 욕망의 포로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조종하는 벗어나기 어려운 권력이다. - P95
‘이야기’는 곧 읽기와 쓰기다. 반응하지 않는, 감정 이입 없는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그러지 않아야 더 잘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뇌는 진공 상태다. 글이란 자기 생각을 외부로 물질화하는 일인데, 생각이 없다면? 생각 없는 글쓰기가 가능하고 심지어 널리 읽히는 세상이다. - P149
우주에서 보면 인간은 하루를 사는 곤충이나 길가의 이름 모를 풀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가 아니라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 산다. 이름을 얻으려고 발광하다가 타인까지 질식시키는 이들이 있는 하면, 드물지만 흔적을 지워 가며 사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미숙한 범죄자처럼 가는 곳마다 뭔가를 흘리고 다니지만, 나는 욕망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는 삶은. - P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