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 파티
캐서린 맨스필드 지음, 홍한별 옮김 / 강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캐서린 맨스필드의 소설이 '별로'라는 그런 리뷰를 어딘가의 글에서 먼저 보아버린 나...

하필 왜 그런 리뷰를 먼저 읽어버린 거였을까? 그랬다면 편견 따위 가지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 하지 않았던 작가였다. 세상엔 읽을 책이 무궁무진한데 굳이 별로라는데 읽으려 애쓸 게 뭐람 하면서 작가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내려져 있든, 영미 문학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든 관심이 없었다. 평소의 나의 습관대로 작가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는 거다. 





이 단편집의 초,중반 몇 몇 단편을 읽을 때까지도 "단편 소설의 정수"라고? 정말? 그 정도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 이렇게 의심하면서 내 맘대로 되지도 않을 평가를 내려버리는 우愚를 범하고야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뒤로 가면서 한 편, 한 편이 점점 재미있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을 읽고 나서는 다른 작품을 찾아 읽어보고 싶을 만큼 좋아졌다! 세상에는 내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뛰어난 작가가 어딘가에 숨어있다 뿅 하고 나타나 나를 뒤흔들고 어지럽게 빙빙 돌리면서 가지고 놀다가 너 어디 맛 좀 봐라 에잇! 하면서 좁아터진 나의 세계관을 주욱 찢어발기고 어때? 하고 놀리기도 하고 옛다! 하면서 작가만의 고유한 무언갈 던져주고 가기도 한다. 그러니까 난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거다. 내가 경험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잘 모르면서 왜 잘난 척을 해서 이런 낭패스러운 기분을 갖고 마는 것인지 내 스스로도 왜 학습이 안되고 이런 사태를 자꾸 반복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뭔가! 하지만 작품이 좋았고 쓰고 싶다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다고 해서 다 된 게 아니다. 단편집의 리뷰를 쓰는 일은 정말 또 별개의 일이라 난 단편집 리뷰 쓰는 것이 세상 제일 난감하더라는...ㅠㅠ  





이 단편집에는 총 1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우연한 계기로 지금쯤은 - 설사 별로라고 알고 있었어도 여기저기서 자꾸 나타나는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이 작가의 작품을 - 읽어봐도 크게 손해날 건 없겠지 싶기도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를 도서관에서 찾아보았는데 그때 든 생각으로는 이왕 읽을 거라면 이 한 권으로 끝날지도 모르니 수록 작품이 많을수록 좋겠다는 판단이 섰고 그래서 이 책을 대출 받아 온 거였다. 1922년 발표된 《가든파티》는 맨스필드의 최고의 작품집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발표 당시 수록된 작품은 <대령의 딸들>,

<미스 브릴>, <마 파커의 인생>,<신식 결혼생활>, <가든 파티>,<만에서>의 6개 단편이었다. 나머지 단편 7편 중 <레만 식당>은 초기 작품집인 《독일 하숙에서》, <심리>, <영화>, <딜 피클>, <어린 가정교사>는 《환희》에 실렸었고, 남편이 편집자로 있었던 아방 가르드 잡지 『리듬』에 발표했던 <가겟집 여자>, 생전에 발표되지 않았던 <인형의 집>이 있다. <인형의 집>과 마지막 단편인 <만에서At the Bay>는 연작 단편이다. 그래서 짦은 중편 정도의 분량이라 난 더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단편에서 여성 화자의 감정의 변화에 주목하여 전개가 되고 있고, 주제도 다양해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부각한다든가 ,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성들, 계급의식, 그리고 부르주아의 위선과 허위 의식 등을 짦은 단편 속에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에는 여성작가로서 폄하되고  동 시대 남성 작가들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점은 캐서린 맨스필드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여성의 심리와 감정의 섬세한 변화를 잘 표현해낸 단편 <딜 피클>이나 <심리>와 같은 작품을 남성들이 과연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남성 작가들을 비롯해서 일반 남성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여성의 "미묘한" 심리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평가절하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또한 가부장제의 속박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다룬 <대령의 딸들>과 <만에서> 등의 작품에 나타난 남성, 아버지, 남편의 모습은 권위주의적이고 여성들을 옭아매듯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고만 하는 "야만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의 여성들은 그냥 참고만 있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맘에 들어~~! <대령의 딸들>에서는 권위주의의 화신이자 억압적인 아버지였던 대령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결혼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두 딸들이 이제는 아버지라는 유령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용기를 내었고, 역시 <만에서>의 여성들은 남편의 권위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행동과 말을 은근히 무시하고 따돌리고 있으며 남편이자 형부, 사위인 남성이 흥분해서 체신 머리 없이 하는 행동에 훨씬 품위 있고 당당하며 차분하게 대처한다. 완전히 대비되는 남성과 여성의 행동에 웃음이 나고 재밌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





단편 집을 구성하는 작품 중의 한 편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훌륭한 하나의 작품으로서 기능할 때 모든 단편들이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아름답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들이어서 내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던 미스 브릴과 미스 모스(단편 <영화>)에게도 희망의 소식이 들려오기를. 또 <마 파커의 인생>에서는 세상에 하나뿐인 예쁘고 소중한 손자를 잃고 마지막 희망마저 놓아버린 마 파커 할머니와 이에 대비되는 마 파커 할머니가 일을 해주는 집 주인 소설가 양반의 무감각한 가슴이 부디 좀 말랑말랑해지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인간적인 위로까지는 아녀도 공감은 해 줄 수 있을텐데. 돈 많은 양반이면 뭐하고 소설가인데 돈만 많으면 뭐하나 싶었고 그 계급 의식은 대체 뭐에다 쓰는 건가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도 싫어하지만 최소한 이 소설가 양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도 좀 실천해줬으면 오죽 좋았을까 싶었다. 정말 무심하기가 이를 데 없어 내가 신이라면 머리통을 한 대 날려버렸을 거다! 

 




표제작인 <가든파티>의 주제를 굳이 논하자면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 허위 의식 등을 고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마 파커의 인생>에서의 소설가 선생보다 더한 무신경하고 예의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든'에서 파티를 열 정도이니 돈도 많고 집도 으리으리 멋진 건 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 날씨까지 도와주니 금상첨화 아닐런지... 오죽하면 첫 문장이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가든 파티에 적당한 날씨를 미리 주문한다고 하더라도 이보다 더 완벽한 날씨를 구하진 못했을 거다."(p231) 이 문장에 대해서라면 '로쟈'님의 탐구 정신이 빛나는, 《가든파티》의 리뷰 글이 있더라구요!)."라고 했을까! 정원사가 새벽부터 일어나 잔디를 깎고 비질을 해서 정원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정원의 장미는 하룻밤 사이에 수백 송이가 피어나 아름다움을 뽐낸다. 아침부터 인부들이 차양을 치러 오고 엄마와 딸들은 파티를 위해 치장을 하느라 바쁘다. 

다른 꽃들은 하나도 없고 "큼직한 분홍색 꽃들이 활짝 피어 핏빛 줄기 위에서 무서울 정도로 싱싱하게 빛나는" 칸나 화분이 배달되어 오고 여러 가지 맛난 파티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데 여기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길 하나 건너 대문 맞은 편 가난한 오두막집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 발생한 죽음. 배달꾼의 말을 빌자면  "거기 스코트라고 짐마차 모는 젊은 사람이 살거든요. 오늘 아침 호크 거리 길모퉁이에서 말이 견인기관차를 피하려고 휙 도는 바람에 머리부터 길바닥으로 떨어졌어요. 그러곤 죽었죠."(p247) 아내하고 아이 다섯이 있다는데... 


이 집에서 유일하게 막내딸 '로라'만이 파티를 취소하라고 말한다. "당연히 파티는 못하는 거죠? 그렇죠? 악단도 오고 사람들이 몰려올 텐데. 소리가 다 들릴 거예요. 이웃이나 다름없잖아요."(p249)  하지만 모든 가족들은 그것이 우연히 일어난 사고라고 말하고 파티는 계속 된다. 정말 "몰인정"한 사람들이다. 거기다 더 가관인 건 파티가 끝나고 남은 음식이 아까워 그것을 바구니에 챙겨 파티복을 갈아입히지도 않고 최소한의 예의도 차리지 않은 채 막내딸인 로라에게 들려 죽은 짐마차꾼의 집으로 조문을 보낸다는 거다. 하... 정말...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지키라고 있는 건 아닐 텐데 해도 해도 너무했다. 로라가 파티복을 입은 채 음식이 든 바구니를 들고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 짐마차꾼의 집으로 걸어가는 그 때, 로라는 문득 깨닫는다. 

"...코트라도 입고 왔으면. 드레스가 번쩍거리는 것 같아! 벨벳 리본이 늘어진 커다란 모자까지...... 모자라도 다른 것을 쓰고 올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을까? 그렇겠지.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잘못이란 걸 알았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p256)


깨달음의 순간, 그리고 지금까지 평온하던 삶의 균형이 깨지는 파열의 순간! 이 깨달음이 로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지만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맨스필드가 로라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은 그녀가 비록 어린 여성이지만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충실히 쌓아가는 인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여성들의 자각을 보여주는 주인공이 사실은 이 단편집에 여럿 등장한다. 호색한으로 무뢰한으로 폭군으로 권위적으로 무개념적인 남성상들에 대비되면서 근대적인 시각을 가진 여성 인물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이런 여성들을 만나는 재미가 남달랐던 단편집이었다. 강추합니다.





혼자 있을 때 삶을 생각하면 언제나 슬프기 마련이다. 흥분감 같은 것은 사라져버리고, 고요함 속에서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부르고, 처음으로 내 이름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만에서> 중에서,
p347

작은 구름이 달을 가로질러 고요하게 흘러갔다. 그 암흑의 순간, 바다는 괴로운 듯 깊은 신음 소리를 냈다. 구름이 흘러가고, 막 음산한 꿈에서 깨어난 듯 희미하게 살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 세상이 고요했다. <만에서>의 마지막 문장,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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