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생트의 정원> 뱀과 별
‘반바지 입은 나귀‘가 계속 등장한다. 주인도 없이 혼자 어딘가를 향해 간다. 궁금하다.
작가의 전작인 <반바지 당나귀>를 읽어야 하나...

갑자기 나타난 이 순수하고 우아한 청년은 누구란 말인가. 이아생트와 관련이 있을테지..!





...그 연기는 금단의 지역에서 올라왔기 때문인데, 그곳에는 나이 든 마법사, 섬에서흘러왔다는 과객이 산다. 그는 무슨 주문을 건 건지 나무들과 과일들을 키워냈다. 그 주문은 짐승들까지 홀렸고 물도불도 바람마저도 복종했다. 그는 혼자서 구릉들을 지나 제갈 길 가는 마법의 당나귀를 한 마리 갖고 있었다. 한데 이당나귀는 가끔 활짝 핀 금작화를 가득, 아니면 아몬드 나뭇가지를 일요일 아침 성당 앞에 가져다 놓았다. 축일이면 본당 신부님은 이 꽃다발을 동정 성모님 제단에 올려놓았다.
비록 그 꽃이 마법사에게서 온 선물이라 할지라도. 정말이지 마을 사람들의 의견으로는, 주는 사람이 마법을 부린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겨울이면 괴상하게 의장을 갖춘 나귀, 즉 반바지 입은 나귀가 모는 사람도 없이, 사려깊은 기색으로 이 고장 들판을 혼자서 밟아갈 수 있었으랴. - P286

사람이 기억하는 한, 이토록 지혜로운 나귀는 없었던거다. 나귀의 주인에 대해선 그가 혼자 산중에 살고, 마을에는 결코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었다. 늙었다고들 했다. 아침과 저녁이면 바람에 저 푸르스름한 연기를 실어 보냈지만,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실제 저위에 올라가서 무슨 나무로 불을 피운 건지 알아볼 염을 내지 않았다. 오직 신부님만이 거기 한번 올라갔으나 방문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 P287

우리는 이렇듯 평화롭게 일주일을 지냈다. 손님은 얌전하고 눈에 띄지 않았다. 거의 마주치지도 않았다.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왔고, 가끔은 식사에 응하면서 말수는 적었다. 무엇보다 단순하고 다정했으나 속내를 쉬 꺼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아르뷔스틴과 낡은 별채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거기 홀로 기거하게 내버려 두었다. 이런 적당한 거리감을 그는 기꺼워했다. 시도니가 그의 거처를 청소해주었으나,
우리끼리 그에 대해선 일상 용건 외에는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아침이면 그의 가벼운 발걸음이 들렸다. 아이 발걸음 같았다. 그는 숲으로 가곤 했다.  - P379

그와 함께 있을 때는 그를 정색하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자리를 뜨면 그의 모습을 잘 되짚어볼 수 있었다. 그의 순수함은 놀라웠다. 맹하니 순진하거나 무지하게나 억지 부리는 순수가 아니었다. 그는 기민한 감각과 정확한 눈썰미와 풍부한 기억의 소유자였고, 잠시 그 시선에 어떤 불길이 이는 때도 있었다. 그래도 막 유년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어떤 점에서 그가 이토록 부드러웠던 건지, 집어내 말할 수는 없었다. 반듯한 윤곽이 가끔 굳어지면서 넓은어깨에서는 청년의 기상이 느껴졌다. 그러나 머리에서부터발끝에 이르기까지 수줍은 우아함이 맴돌고 있었다. 이 우아함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 P380

나는 그가 일어나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정말이지 그러지 못했다. 그는 크게 애를 쓰다가 압도된 듯 다시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을 하듯이, 나보다 더 부드럽게 내처 불렀다.
"이아생트......"
이아생트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나를 향해 떨리고 약간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 콩스탕탱 글로리오입니다."
그가 이아생트를 향해 걸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어렵사리단 한 걸음을 뗄 수 있었을 뿐이다.
이아생트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가만
있었다.
하지만 심연의 침잠된 고요를 뒤흔드는 생명력이 그녀의 두눈에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보았다. 내가 거기 있었다. -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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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5-21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로는....<반바지 당나귀>-<이아생트>-<이아생트 정원> 순으로 읽어야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은하수 2024-05-21 13:40   좋아요 0 | URL
전 마지막부터....ㅎㅎ
<반바지 당나귀>로 돌아가긴 가야겠네요.
읽다보니 이 작품이 환상소설인가??? 싶어져서 약간 실망했는데
그래도 매력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