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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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검거에 이런 내막이 있을 줄이야! 언론인의 꿈을 가진 ‘한갓‘ 대학생일 뿐인 그들이, 온라인 현장을 그야말로 발로 뛰어 파헤친 이야기. 얼마나 많은 고통과 무력감과 절망과 두려움을 견뎌냈을지 상상이 안된다. 이제 단과 불은 각자의 길을 가지만, 그들에게 연대와 지지와 용기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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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는 자연에서 피난처를 찾는 그 오래된 기술로 자신을 달랬을지도 모른다. - P40

실제로 아가시가 쓴 글을 보면 그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의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 P43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혼돈이라는 막무가내인 힘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말이다.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데크 아래 솔잎들이 쌓인 땅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말했다.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당신 머릿속에 존재하는 위계의 지도를 들여다보느라 아버지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췄다. - P55

아버지가 정확히 저 단어들을 사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거의 20년 뒤 천문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우리는 점 위의 점 위의 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을 때 나는 아버지의 단언과 똑같은 말을 들었다고 느꼈다. - P56

나는 평생 광대 신발을 신은 허무주의자 같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걸으려 노력해왔다. 우리의 무의미함을 직시하고, 그런 무의미함 때문에 오히려 행복을 향해 뒤뚱뒤뚱 나아가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항상 그런 일을 잘했던 건 아니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는 내게 종종 아버지와는 다른 효과를 냈다. - P58

어쩌면 그는 무언가 핵심적인 비결을 찾아냈을지도 몰랐다.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비결 말이다. - P66

다윈은 이렇게 썼다. "이종교배한 종들은 무조건 생식능력이 없다고도, 불임성은 창조주가 부여한 특별한 자질이자 창조의 신호라고도 주장할 수 없다." 이윽고 다윈은 종이, 그리고 사실상 분류학자들이 본질적으로 불변의 것이라 믿었던 그 모든 복잡한 분류 단계(속, 과, 목, 강 등)가 인간의 발명품일 뿐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끊임없이 진행되는 진화의 흐름 주위에 인간이 우리 편리하자고 유용하지만 자의적인 선들을 그었다는 것이다. 그는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이라고 썼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 - P67

데이비드는 이렇게 썼다. "나는 아이에게 꼬리를 붙들려 카펫 위로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진화론자들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 P68

아가시는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그 시점에 이는 과학적으로 바보라는 표시였다), 자연에 위계가 있다는 믿음을 동력으로 과학사에서 가장 큰 혐오를 담고 있고 가장 파괴적인 오류 중 하나를 주창했다. - P82

나라면 이 지점에서 포기했을 것이다. 신성이 훼손되고, 꿈이 박살 났으며, 수십 년 동안 끈기 있게 해온 일이 헛수고로 돌아갔다면, 나라면 지하실로 내려가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다. - P113

"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학문이다. 아무런 노동이나 수고 없이도 습득할 수 있으며, 정신에 우울함이 스며들지 못하게 해주니 말이다." - P125

그는 갈수록 더욱더 내 아버지와 비슷한 소리를 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매번 숨 쉴 때마다 자신의 무의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거기서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 P125

마침내 나는 가장 유의미한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손에 넣었다. 그것은 《절망의 철학》이라는 제목의 작고 검은 책이다. 그 책에서 데이비드는 과학적 세계관이 골치 아픈 점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그 세계관이 보여주는 것은 허망함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우리가 붙인 불은 숯을 남기고 죽는다. 우리가 지은 성들은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다. 강은 바닥을 드러내고 사막의 모래만 남긴다. (…)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리든 생명의 과정을 묘사하려면 기운빠지게 하는 은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 P126

그리하여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은 몇 차례에 걸쳐 수정되었다. 몇 가지는 건강하지 않은 특징들 항목에서 건강한 특징들 항목으로 옮겨졌다. ‘기만‘이라는 용어는 ‘긍정적 착각‘이라는 중립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말에 이르자 약간의 자기기만은 강한 정신력에 더 유익하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 P139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 P141

로빈스와 비어는 그들이 스스로 실망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즉 "단기적으로 혜택을 얻는 대신 장기적으로 비용을 치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서 기만은 나중에라도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장밋빛 렌즈의 힘에는 한계가 수반된다. 그리고 그 힘이 떨어지면 자신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정말로 따끔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 P148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이렇게 썼다. "쉽게 말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 거창한 자기상을 확인받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판당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자기를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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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다. - P15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 P18

것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죄악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 P19

"작은 것들은 아름답지는 않아도, 단 한 종류의 큰 꽃 백 송이보다 내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미적 관심과 구별되는 과학적 관심을 보여주는 특별한 증거는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다." - P28

‘루퍼스가 죽은 이후 데이비드의 일기장은 색채들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들꽃, 고사리, 아이비, 나무딸기 등 이 세계에서 뜯어올 수 있는 자연의 모든 파편을 꼼꼼하게 스케치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림의 기교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 그림들은 문질러 번진 연필 얼룩, 잉크 자국, 지우개 자국, 지나치게 열심히 그리려다흘린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그 미숙함 속에는 그의 집착과 필사적인 마음, 자신도 모르는 것들의 형상을 붙잡아두기 위해 근육의 온 힘을 동원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 P30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뮌스터버거가 지적하듯, 유일한 위험은 여느 강박과 마찬가지로 수집 습관이 "신나는 일"에서 "파멸적인 일"로 바뀌는 어떤 지점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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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열일곱에 이어 열아홉, 최관의 선생님의 십대 시절 3번째 이야기다최관의 선생님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돈을 벌어야 했지만, 허름한 판자집에 살면서도 믿음과 지지를 보내는 부모님과 서로 배려하는 가족들학교 밖 세상에서 도움과 깨닫음을 주는 어른들과 친구들 덕분에,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고민과 방황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자기 길을 묵묵히 찾아간다. '아이들이 실컷 헛걸음도 하며 자기 삶을 찾아가면 좋겠다'고 하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헛걸음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인데, 우리 현실에서는 허락되지 않아 안타깝다. 다음 책은 선생님이 되어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이야기일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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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05 19: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 과정에도 박수를 쳐주면 좋겠어요~~

햇살과함께 2022-04-05 19:49   좋아요 3 | URL
10대 때 삽질의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에요~

책읽는나무 2022-04-05 2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책 재밌겠는데요?^^

수이 2022-04-05 21:27   좋아요 2 | URL
저도 소리내어 오 재밌겠는데 했어요. 읽어야겠어요!!!

햇살과함께 2022-04-05 23:17   좋아요 1 | URL
재밌어요~ 최관의 선생님의 어머니 정말 멋지신 분이에요^^
 

요즘 ‘스쿨 미투‘를 보면서 내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선생님이 하는 행동이 성추행이라고 말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불쾌했지만 국어 선생님과 학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마음속 깊이 응어리로 남아 있다.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스쿨 미투감인데 말이야", 하며 18분간 당시 국어 선생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동시에 용기 있는 후배들이 고맙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던, 아니 그러지 못했던 일인데 후배들이 대신 해주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 내러 돌아온다."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 주치의로 일하면서 30년 동안 332명이 넘는여자 선수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래리 나사르에게 법정에서 피해자가한 말이다. 지금이라도 국어 선생님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 P96

어느 날, 친구를 만나러 외출했다가 시간이 남아 학교 도서관에 들렀다. 신간 코너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이라는책이 눈에 들어왔다. 탈코르셋에 대해 궁금했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책을 빌렸다. 분명 가볍게 빌린 책이었다. 그날 새벽, 푸르스름한 빛이떠오를 무렵에야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남성들이 출근하기 위해 갖추던 기본값, 즉 ‘사람 꼴‘이 자신이 여태까지 갖추던 그것과는 무척 달랐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여성은 ‘사람 꼴’을 갖추기까지 매일같이 일정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 기본값에 직접 다가가야 하는 반면, 남성에게는 ‘사람 꼴이 이미 찾아와 있었다.
이민경,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중(42쪽) - P141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전에는 그저 기분 좋게 들리던 ‘예쁘다‘는 말도 이제는 거북해졌다. 분명 예전에는 재미있던 미국 드라마조차 거슬렸다. 남자가 여자에게 건네는 말은 반말로 번역되고, 여자가 남자에게 건네는 말은 존댓말로 번역되는 게 자꾸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에서 로맨스라는 탈을 쓰고 공공연히 자행하는 데이트 폭력을 볼 때마다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 P155

3월 넷째 주에 겪은 일들은 불과 나의 우정이 단단해지는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다. 이 한 주 동안 우리는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길 위에서 서로 격려했고 걱정했다.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두자며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부담을 덜어주고자 애썼다. 힘들다고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유머 코드가 있었다. 다름 아닌 ‘눈물‘이었는데, 인터뷰 도중 먼저 눈물을 보인 사람을 놀리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온종일 붙어 있다 집에 돌아가 혼자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있으면, 불은 잘 있나, 궁금했다. 불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다. 그때는 서로 ‘사랑해‘ ‘고마워‘란 말을 잠들기 전에 꼭 했더랬다. 추적단 불꽃이 나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 P204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연대를 끊고 싶어요. 우리는 꽃이 아닌 불꽃입니다! - P224

피해자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의 삶을 피해 사실 하나로 재단하지 않고 개인의 삶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다. 우리는 성범죄 피해자가 증언대에 나설 수 있도록 함께 할 것이다. 우리가 걷는 길에 여러분도 동행해주면 좋겠다.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난 가해 형식이 낯설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있는 만큼 디지털 성범죄의 양상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 P249

피해자가 한 행동이 상식에 부합하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성범죄에 한해서는 ‘피해자로서 완벽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 보호하겠다는 인식은 틀렸다. 피해자의 말, 글, 행동을 평가하여 합격 조건을 통과하지 못하면 비난하고 의심한다.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는 인식 때문에 성범죄 피해자는 세상에 쉽게 나서지 못한다. 당할 만해서 당하는 피해자는 없다. 이 부분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하지 못하겠으면(설혹 싫더라도) 그냥 외웠으면 좋겠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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