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쿨 미투‘를 보면서 내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선생님이 하는 행동이 성추행이라고 말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불쾌했지만 국어 선생님과 학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마음속 깊이 응어리로 남아 있다.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스쿨 미투감인데 말이야", 하며 18분간 당시 국어 선생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동시에 용기 있는 후배들이 고맙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던, 아니 그러지 못했던 일인데 후배들이 대신 해주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 내러 돌아온다."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 주치의로 일하면서 30년 동안 332명이 넘는여자 선수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래리 나사르에게 법정에서 피해자가한 말이다. 지금이라도 국어 선생님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 P96

어느 날, 친구를 만나러 외출했다가 시간이 남아 학교 도서관에 들렀다. 신간 코너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이라는책이 눈에 들어왔다. 탈코르셋에 대해 궁금했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책을 빌렸다. 분명 가볍게 빌린 책이었다. 그날 새벽, 푸르스름한 빛이떠오를 무렵에야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남성들이 출근하기 위해 갖추던 기본값, 즉 ‘사람 꼴‘이 자신이 여태까지 갖추던 그것과는 무척 달랐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여성은 ‘사람 꼴’을 갖추기까지 매일같이 일정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 기본값에 직접 다가가야 하는 반면, 남성에게는 ‘사람 꼴이 이미 찾아와 있었다.
이민경,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중(42쪽) - P141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전에는 그저 기분 좋게 들리던 ‘예쁘다‘는 말도 이제는 거북해졌다. 분명 예전에는 재미있던 미국 드라마조차 거슬렸다. 남자가 여자에게 건네는 말은 반말로 번역되고, 여자가 남자에게 건네는 말은 존댓말로 번역되는 게 자꾸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에서 로맨스라는 탈을 쓰고 공공연히 자행하는 데이트 폭력을 볼 때마다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 P155

3월 넷째 주에 겪은 일들은 불과 나의 우정이 단단해지는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다. 이 한 주 동안 우리는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길 위에서 서로 격려했고 걱정했다.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두자며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부담을 덜어주고자 애썼다. 힘들다고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유머 코드가 있었다. 다름 아닌 ‘눈물‘이었는데, 인터뷰 도중 먼저 눈물을 보인 사람을 놀리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온종일 붙어 있다 집에 돌아가 혼자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있으면, 불은 잘 있나, 궁금했다. 불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다. 그때는 서로 ‘사랑해‘ ‘고마워‘란 말을 잠들기 전에 꼭 했더랬다. 추적단 불꽃이 나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 P204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연대를 끊고 싶어요. 우리는 꽃이 아닌 불꽃입니다! - P224

피해자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의 삶을 피해 사실 하나로 재단하지 않고 개인의 삶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다. 우리는 성범죄 피해자가 증언대에 나설 수 있도록 함께 할 것이다. 우리가 걷는 길에 여러분도 동행해주면 좋겠다.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난 가해 형식이 낯설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있는 만큼 디지털 성범죄의 양상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 P249

피해자가 한 행동이 상식에 부합하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성범죄에 한해서는 ‘피해자로서 완벽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 보호하겠다는 인식은 틀렸다. 피해자의 말, 글, 행동을 평가하여 합격 조건을 통과하지 못하면 비난하고 의심한다.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는 인식 때문에 성범죄 피해자는 세상에 쉽게 나서지 못한다. 당할 만해서 당하는 피해자는 없다. 이 부분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하지 못하겠으면(설혹 싫더라도) 그냥 외웠으면 좋겠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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