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 해리엇 테일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월리엄 고드윈

길은 일찍부터 나 있었지요. 패니 버니, 애프라 벤, 해리엇 마티노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같은 많은 유명한 여성들과 이름 없이 잊혀 간 훨씬 더많은 여성들이 나보다 오래전에 그 길을 평탄하게 닦아 내 걸음을 순조롭게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내가 글을 쓰게 되었을 때 내 앞길에 실질적인 장애물은 별로 없었습니다. 글쓰기는 점잖고 무해한 일거리지요. 펜을 긁적인다고 해서 집안의 평화가 깨지지도 않고, 가계에 부담이 되지도 않으니까요. 10실링 6펜스어치 종이만 사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전부 쓰기에 충분합니다.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지요. 작가에게는 피아노도, 모델도, 파리, 빈, 베를린으로의 유학도, 스승도 필요치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종잇값이 싸다는 것이 여성이 다른 어떤 직업에서보다 먼저 작가로서 성공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 P12

잡지에 글을 쓰고 그렇게 번 돈으로 페르시아고양이를 사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 있을까요? 하지만, 잠깐만요. 그런 글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라야 하지요. 그때 내가 쓴 글은 어느 유명한 남성의 소설에 대한 것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서평을 쓰던 중에, 나는 만일 계속해서 서평을 쓰고자 한다면 모종의 유령과 싸울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유령은 여자였고, 그녀를 좀 더 알게 되었을 때 나 - P13

는 그녀에게 — 유명한 시의 여주인공을 따라ㅡ<집 안의 천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내가 서평을 쓰고 있었을 때 나와 종이 사이에 끼어들곤 하던 것이 바로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나를 귀찮게 하고 내 시간을 허비하고 나를 하도 괴롭혔으므로, 마침내 나는 그녀를 죽여 버렸습니다. - P14

말하자면 내가 어느 유명한 남자의 소설을 평하려고 손에 펜을 들라치면, 그녀가 내 등 뒤에 살며시 나타나 소곤대는 것이었습니다. <이봐요, 당신은 젊은 여성이에요. 그런데 지금 당신은 남자가 쓴 책에 대해 글을 쓰려 하는군요. 다정하고 상냥하게 굴어요. 아첨하고 적당히 비위를 맞추는 거예요. 우리 여성의 모든 술수와 책략을 쓰도록 해요. 당신에게 당신만의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해요. 무엇보다도, 정숙하세요.> 그러면서 그녀는 내 펜을 인도할 태세였습니다. 나는 여기서 스스로 공치사를 해도 좋을만한 행위 하나를 기록해 둡니다(물론 그 공은 내게 얼마간의 돈을 ㅡ 연수 5백 파운드라고 해둘까요? ㅡ 물려준 몇몇 훌륭한 선조들에게 돌리는 것이 옳겠지만요. 그 돈 덕분에 나는 생계를 위해 매력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나는 몸을 돌려 그녀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그녀를 죽였습니다. 만일 내가 법정에 서게 된다면, 나는 그것이 정당방위였다고 변명할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를 죽였을 테니까요. - P15

이상과 같은 두 가지는 내가 실제로 경험한 것입니다. 내직업 생활에 있었던 두 가지 모험이지요. 나는 그 첫 번째 -<집 안의 천사> 죽이기는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ㅡ 육체로서의 나 자신의 경험에 대해 솔직히 말하기는 해결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어떤 여성도 해결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녀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여전히 막강하고, 그러면서도 분명히 파악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겉보기에는, 책을 쓰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겉보기에는, 글을 쓰는 데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장애가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그녀는 여전히 많은 유령과 싸워야 하고, 많은 편견을 극복해야 합니다. 여성이 죽여 버려야 할 유령이나 깨뜨려 버려야 할 암초를 만나지않고 그저 앉아서 글을 쓰기까지는, 정말이지 앞으로도 오랜시간이 걸리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성에게 가장 개방된 직업인 문학에서 이러하다면, 여러분이 처음으로 진입하려 하는 새로운 직업들에서는 어떻겠습니까? - P20

우리 모두 동의하리라 생각되는 사실은, 아주 이른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인구 전체를 낳은 것은 여성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많은 시간과 수고를 요구합니다. 또한 이 일이야말로 여성을 남성에게 - P39

종속시켜 왔고, 그러면서 그녀들 안에 인류의 가장 사랑스럽고 훌륭한 자질을 함양해 왔습니다. 나와 <상냥한 매>가 다른 것은 그가 현재 남녀의 지적 평등성을 부정한다는 점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베넷 씨와 더불어 여성의 정신은 교육이나 자유를 누려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여성의 정신은 최고의 성취를 이룩할 수 없다고, 여성의 정신은 지금과 같은 처지에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 P40

하지만 필요한 것은 교육만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경험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들과 다를 때(나는 여성과 남성이 사실상 같다는 <상냥한매>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의 차이를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신의 모든 활동이 장려되어, 남성들만큼이나 자유롭게 그리고 조롱당하거나 얕보일 우려 없이 생각하고 발명하고 상상하고 창조하는 여성들의 핵심적인 활동이 항상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이런 조건들이 <상냥한 매>나 베넷 씨 같은 이들의 주장으로 인해 저해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남성은 여성보다 자신의 견해를 알리고 존중받 - P40

기가 훨씬 더 쉬우니까요. 만일 장래에도 그런 견해가 횡행한다면, 우리는 반쯤 문명화된 야만 가운데 남게 되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편의 영원한 지배와 다른 한편의 영원한 예속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정의합니다. 왜냐하면 노예 상태로의 타락과 맞먹는 것은 주인 노릇으로의 타락밖에 없으니까요. - P41

사실상 여성의 욕망,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려 하고 이제껏 부과되던 행동의 제약들을 극복하려는 욕망은 그녀의 삶이 가사 노동에 덜 매이게 되는 순간 태어났다. 한두세대 전만 해도 그런 노동이 항시 그녀의 주의를 사로잡고 온 힘을 소모시켰던 것이다. 물레바퀴와 바늘과 방추, 잼과 피클을 만드는 것, 양초와 비누를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여성들을 묶어 두지 못한다. 해묵은 가사 노동이 사라지자, 장차 신여성이 될 여성은 자기 안에서 보고 생각하고 판단할 여유가, 자신과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는 것을 느낀다.
- 레오니 빌라르 - P47

〈내게는 여자의 느낌들이 있어요. 하지만 남자의 언어밖에 없어요〉라고 [성난 무리를 멀리 떠나]의 밧세바는 말한다. 그 딜레마로부터 무한한 혼돈과 착종이 생겨난다. 에너지는 해방되었지만, 어떤 형식으로 흘러들어 갈 것인가? 기존 형식들을 시도해보고, 맞지 않는 것은 버리고, 좀 더 잘 맞는 다른 것을 창조하는 것은 자유와 성취의 선결 조건이다. 나아가, 여성이라는 존재가 1860년에 처음으로 창조되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그녀의 에너지의 대부분은 이미 충분히 사용되고 고도로 개발되어 있다. 그런 여분의 에너지를 한 방울도 허투루 흘리지 말고 새로운 형식에 쏟아붓는 것은 남성들의 동시적 발전과 해방으로써만 풀 수 있는 어려운 문제이다. - P48

비범한 여성은 평범한 여성을 기반으로 한다. 평균적인 여성의 삶의 여건들이 어떠했는지 - 자녀를 몇이나 두었는지, 자기 몫의 돈이 있었는지, 자기만의 방이 있었는지, 가족을 돌보는 데 도와주는 이가 있었는지, 하인들이 있었는지, 가사 노동의 일부를 담당했는지 ㅡ 를 알 때, 평범한 여성에게 가능한 생활 방식과 삶의 경험을 측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작가가 된 비범한 여성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 P51

그러므로 19세기 초 영국에서 비범한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법과 관습과 풍속에서 무수한 작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말해 준다. 19세기 여성은 약간의 여가와 교육을 누렸다. 중류층과 상류층 여성이 자기 의사로 남편을 택하는 것은 더 이상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다. 네 명의 위대한 여성작가들 -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 - 중에서 아무도 자식을 낳지 않았고, 두 명은 아예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 P53

19세기에도 여성은 거의 전적으로 집에서, 자신의 감정속에서만 살았다. 19세기 소설들은 그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쓴 여성들이 자신의 성별 때문에 어떤 종류의 경험들에서는 배제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작가의 경험이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가령 콘래드의 소설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만일 그가 선원이 될 수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또는 톨스토이에게서 그가 군인으로서 전쟁에 대해 아는 것, 부유한 청년으로서 교육을 받고 온갖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인생과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을 제거한다면, 『전쟁과 평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질 것이다. - P54

하지만 여기서도 여성들은 통념으로부터 점차 독립하고 있다. 그녀들은 자신의 가치 감각을 존중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 때문에 여성 소설은 주제에서 모종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여성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해지는 대신, 다른 여성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는다. 19세기 초의 여성 소설은 대개 자전적이었다. 여성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한 동기 중 하나는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고 자기 입장을 항변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욕망이 더 이상 긴박하지 않게 되자, 여성들은 자신들의 성을 탐사하고 전에 묘사된 적이 없는 방식으로 자신들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문학에서 여성들은 남성 작가의 창조물이었으니 말이다. - P59

예언하건대, 여성은 장차 소설은 덜 쓰되 더 훌륭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뿐 아니라 시와 비평과 역사를 쓸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것도, 여성이 자신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거부되었던 것, 즉 여가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는 황금시대, 저 전설적인 시대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 P63

11 10대의 울스턴크래프트는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어머니를 지키기위해 종종 어머니의 침실 앞 층계참에서 잤다고 한다. - P97

그러니까 프랑스 혁명은 그녀의 외부에서 일어난 일개 사건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핏속에 있는 활성제였다. 그녀는 평생 항거했다 - 폭정에 대해, 법에 대해, 인습에 대해. 그녀의 내부에는 개혁가다운 인류애가 끓어올랐으며, 그것은 사랑만큼이나 증오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발발은 그녀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이론과 신념이 일부 표출된 것이었으니, 그녀는 그 특별한 순간의 열기 속에서 두권의 웅변적이고 과감한 책 『버크에 대한 답변』과 『여성의 권리 옹호』를 내놓았다. 이 책들은 너무나 지당한 내용이라 지금 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그 독창성은 우리의 상식이 되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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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한국 사회는 이 비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김승섭 지음 / 난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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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 양극단의 갈등을 대표하는 천안함과 세월호 참사의 교차를 통해, 비극의 피해자 관점에서 천안함 생존장병들의 PTSD에 대해 말한다. 진보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한국보수는 되지 말자는 1인으로 부끄럽게도 세월호에 비해 천안함 생존장병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천안함 음모론에 기울어진 진영논리에 빠져 확증편향을 가졌던 나를 반성하게 한다. 그동안 몰랐던 최원일 함장 및 생존장병의 이야기와 인터뷰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늘 외면하지 않고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김승섭 교수님 이런 책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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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2-09-12 23: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천안함사건에 자기검열 기제가 심하게 작동했던 1인이었는데, 알릴레오북스에서 이 책 방송 듣고 좋아서 사두고 기대만 하고 있네요!ㅎ 저자의 아픔이 길이되려면도 참 좋더라구요!ㅎ
연휴 후 시작되는 한주 즐겁고 행복하시구요!ㅎ

햇살과함께 2022-09-13 08:31   좋아요 1 | URL
막시무스님 이 책 사두셨군요! 저는 <오롯한 당신> 좋아서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렸고 <아픔이 길이 되려면> 사두었네요. 계속 읽어야겠습니다. 한주 시작 화이팅입니다!

기억의집 2022-09-12 23: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천안함에 타고 있던 분들 대부분이 이십대 초반일텐데.. 다 같은 어린 학생, 청년이었는데 그걸 왜 깨닫지 못했을까요. 그래도 천안함 참사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께서 언제나 가셨던 거 기억 합니다… 저도 반성하게 되네요!

햇살과함께 2022-09-13 08:36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보기 전에 생존장병 생각을 전혀 안했다는.. 내가 가진 생각에 동조하는, 보고 싶은 기사, 정보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기억의집 2022-09-13 08:40   좋아요 2 | URL
참 씁쓸한 게 제가 햇살님 글 읽고 인스타와 유튭에 천안함 검색해서 찾아보니… 정치 성향이 극우시더라고요. 지난 십년간 그들을 그렇게 변하게 만든 거겠죠….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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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개인적 질병 서사를 관통하는 사유를 통해 질환과 질병, 통증과 상실, 의료진과 돌봄,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아파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 느끼는 것, 알게되는 것.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죽기 전에 우리는 언젠가 아프다. 표지 그림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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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2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2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디스 허먼 <트라우마>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킴 닐슨 <장애의 역사>
고든 올포트 <편견>
피우진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 저희 이야기, 그러니까 전 안 괜찮다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다들 몰라요. 모르는 게 맞아요.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서다 포장해놨으니까. 취직할 때도 괜찮은 척할 수밖에 없어. 괜찮은 척 되게 잘하게 되는 거야. 제가 천안함 생존자라고 하면 이젠 괜찮냐고 이야기해요. 괜찮다고 대답해요. 그럼 대단하다고, 실은 괜찮은 척하는 거야. 다들 똑같을 거야. 다들. (생존장병 C) - P8

그렇게 지지부진한 시간을 보내다가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았습니다.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낸 후, 밤늦은 시간 이렇게 4월 16일을 보내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다가 갑자기 어떤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2016년 4월 세월호 생존학생과 참사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형제자매가 증언을 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때 참사로 오빠를 잃은 한 여학생이 소극장에서 관객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저희 오빠가 죽은 거잖아요. 여러분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꼭 용기를 내주세요." - P13

저는 천안함 사건이 폭침 당일의 사건에 한정된 용어가 아니라, 그 이후 천안함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를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외면하는 현재의 상황을 넘어설 수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 저는 천안함 사건이라는 렌즈로 한국사회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우리의 취약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드러내며 쉽게 답할 수 없지만 중요한 질문을 만나게 해줍니다. 저는 우리가 그 예민한 질문들을 직시할 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P16

당시 언론보도에서 생존장병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렵습니다. 관련 기사가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병원과 군대에 격리되어 있던 생존장병을 기자들이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병원을 찾아가 생존장병을 취재하려고 했던 기자들도 ‘천안함 폭침과 관련된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서 생존장병을 생각했을 뿐 사건 이후 그들이 생존자이자 피해자로서 겪어야 하는 트라우마와 상처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 P24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천안함 생존장병은 보이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수와 함미가 갈라져 가라앉은 배와 ‘천안함 46 용사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그 침몰하는 배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그 이후의 시간을 계속 살아가야 했던 생존자의 고통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생존장병에게 2010년 3월 26일은 폭침으로 자신들에게 생활관이자 근무지였던 천안함이 무너지고, 함께 생활하고 근무했던 전우들을 잃은 날이었습니다.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는 사건이었지요. 생존장병은 사건 이후 군대에서는 조직 차원의 작전 · 정보 실패를 현장 장병들의 경계 실패로 돌리며 만들어진 패잔병 낙인으로 고통받았고, 전역 후에는 자신의 상처를 악화시키는 음모론과 악성 댓글에 노출되어 살아가야 했습니다. - P25

PTSD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정신과 질환입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같이 생명이 위협받는 극심한 외상을 경험한 이후 생겨날 수 있는 불안장애 중 하나이지요. PTSD 환자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반복적으로 트라우마 사건이 생각나서 계속 정신적으로 재경험하게 됩니다. 그 고통스러운 회상의 경험을 피하려 트라우마 사건을 연상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회피하게 되고, 그런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감각해집니다. 그 과정에서 자율신경계가 과도하게 각성되어 잠을 자지 못하고 쉽게 놀라는 것과 같은 불안 상태가 계속되지요. - P37

PTSD의 역사를 논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생존자들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경험하는 폭력들은 ‘사생활‘이라는 이름하에 묻혀 그 경험이 공적인 세상에 드러날 수 없었습니다. 강간, 가정폭력,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말하기 위해서는 수치심과 두려움 그리고 사회가 부여한 낙인과 싸워야 했으니까요. 이러한 싸움은 1970년대부터 활발히 진행된 여성해방운동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그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던 여성주의 의학자들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성폭력 생존자의 상태를 ‘강간 외상 중후군‘이라고 정의하고 관찰했고, 그 심리적 증상이 참전 군인에게 나타나는 PTSD 증상과 같다는 점을 밝혀냅니다. - P41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주디스 허먼은 역작 『트라우마]에서 말합니다. "강간과 구타를 비롯한 여러 형태의 성폭력과 가정 폭력은 여성의 삶에서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험의 범주 바깥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요. PTSD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신이 감당할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모든 이에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었던 것입니다. - P42

연구를 하면서 처음에 당황스러웠던 지점 중 하나는 장병들 중에서 천안함 청소를 하겠다고 자원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동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남긴 그 배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이는 천안함이라는 배가 생존장병에게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 P47

천안함 직후 최원일 함장은 한 장군으로부터 "너희 때문에 우리 부서가 매일 야근한다. (제2연평해전 때) 참수리 357함은 (생존장병에게) 배 청소도 시켰다. 너희는 다행인 줄 알아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제2연평해전의 한 생존장병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배를 청소했던 경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침몰된 지 53일 만에 참수리 357호정에 다른 생존장병 10명과 함께 투입되어 배 구석구석을 물로 씻어내는 작업을 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썩은 흙 때문에 피부병이 생길 정도였지만 희생 동료의 유품과 마주치는 것이 더 큰 고통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 P49

폭침을 경험한 생존장병 중 40.9%(9명/22명)는 함수와 함미가 폭파로 나뉜 상태에서 인양된 천안함으로 다시 들어가 유품을 찾으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안함 폭침 시신을 감별하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생존장병 역시 27.3%(6명/22명)에 달했습니다. 생존장병들이 사망한 장병들과 함께 천안함에서 생활했던 만큼, 배의 구조도 잘 알고 유품에 대해서도 잘 알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사건 직후의 이런 명령이 생존장병을 처벌하기 위한 악의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진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군 지휘부 입장에서는 이게 유품을 찾기 위한 가장 손쉽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단순하게 사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P50

또한 PTSD 치료에서 트라우마 사건을 경험한 직후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당사자에게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트라우마는 삶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어버린 경험이기에, 그 회복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안정을 취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 P51

이 조사가 생존장병에게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트라우마를 겪고 나서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조사에 임해야 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천안함 사건 즉시 최원일 함장은 ‘어뢰에 의한 피격‘이라고 보고를 올렸지만 해군작전사령부를 거치며 이 내용은 삭제되었고 청와대에는 ‘선체 파공으로 침몰‘로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당시 조사단은 생존장병들을 의심하고 있었고 피의자처럼 다루기도 했습니다. - P56

주디스 허먼은 트라우마 생존자마다 다른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뒤 그 치료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안정입니다. 폭력과 죽음을 직접 맞닥뜨리고 생명이 위협받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에게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주고 또 느끼게해주는 것이지요. 삶의 통제권을 빼앗겼던 경험을 한 생존자에게 더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안정의 단계는 치유를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 이후에야 비 - P60

로소 다음 단계인 트라우마의 기억을 다시 탐색하고, 최종적으로 그기억을 현재 삶 속으로 통합시켜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 P61

많은 장병에게 군대는 자기 고통을 편히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모두가 고생하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데, 자신만 아프다는 말을 하기 어려우니까요. 특히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어려움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수전 손택은 에이즈와 그 은유에서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생존장병 중 71.4%가 ‘신체적 외상이 없어서 군의관이 내 고통을 엄살로 생각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라고 말했으며, 76.2%가 ‘신체적 외상이 없어서 동료가 내 고통을 엄살로 생각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병들 중 68.2%는 ‘정신과에 가면 관심병사로 찍힐 것 같아서 진료를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 P63

자신이 세운 계획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단원고에 처음 들어갈 때 이 정도 팀이면 6개월에 20명은 완치될 것이라 생각했다. 순전히 일방적인 내 계획이었고 오판이었다. 많은 사람이 아직 치료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고, 사회 상황이 당사자들을 힘들게 했다. 의사가 원한다고 환자가 낫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같은 관점에서 피해자 기록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생존학생 가운데 몇 명이 우울증인지, 몇명이 PTSD인지 알려달라는 언론과 정부기관의 요구를 많이 받았다. 다른 기관에서 아이들 기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 P77

천안함 사건 이후 두 생존장병이 배 위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한 상사가 지나가듯 말했습니다. "너네는 둘이 붙어서 이야기하지 마. 배 또 가라앉는다"라고요. 표5에서 보듯, 생존장병 중 59.1%가 ‘생존자라는 이유로 함께 있기 께름칙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패잔병이라는 낙인으로 생존장병의 몸을 함께 전장에서 싸우기에 불안하고 위험한 ‘재수없는‘ 몸으로 만들었습니다. - P90

앞의 표에서 보듯 연구에 참여한 생존장병 모두가 ‘폭침의 책임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라고 답했으며, 그중 95.5%가 군에서 ‘패잔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배를 타고 있다가 사망한 46명의 장병들은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영웅적으로 산화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 시간 같은 배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다가 살아남은 58명의 장병은 낙인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 P93

첫번째 질문은 "당시 천안함의 장비로 적(敵) 잠수정과 어뢰 탐지가 가능했는가?" 입니다. 천안함은 해상 경비를 주목적으로 하는 배수량이 1,200톤인 초계함이었습니다. 초계함은 배수량을 기준으로 분류했을 때, 고속정을 제외하고는 수상 전투함 중 가장 작은 크기의 함정입니다. 천안함은 적군의 잠수함을 탐지하고 대응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배가 아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고 두 달 뒤 한 라디오 방송에서 사회자가 "전문가들은 잠수정은 몰라도 어뢰는 탐지할 수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고 말했습니다. 천안함이 경계에 실패하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지요. 이에 방송에 출연한 국방부 대 - P94

변인은 80년대에 만들어진 천안함이 보유한 소나는 직주어뢰를 탐지하기에 적합한지라 그 주파수가 9~13kHz에 청음을 하게 되어있고, 지금 현재 북한이 쓰는 "유도어뢰는 어뢰 주파수가 3~8kHz"여서 어뢰를 인지할 수 없었다고 답합니다. 즉 천안함 장병들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 경계를 섰더라도 장비의 한계로 어뢰 탐지는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 P95

그렇다면 이제 다시 논의해보지요. 서해는 두 차례의 연평해전(1999, 2002년)과 대청해전(2009년)을 비롯한 군사적 충돌이 계속해서 일어났던 지역입니다. 천안함이 가진 장비로는 잠수정과 어뢰를 포착하는 게 불가능했고 장병들이 아무리 철저히 경계를 선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힘만으로 이 사건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사건을 막을 수 있는 힘을 가졌던 군 지휘부는 사건 전에는 기무사령관의 ‘수중 침투‘ 사전 징후 보고를 무시했고, 사건 후에는 현장 함장이 직접 지시해 보고한 ‘어뢰 공격‘ 내용을 누락시켰습니다. 최원함장이 천안함 이후 군의 대응을 두고 "정보와 작전의 실패를 천안함의 경계 실패로 몰아갔다고 말하며 "우리 승조원들은 패잔병이 아니라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과정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 P97

사회적 고립을 겪을 때 신체적 통증을 느낄 때와 동일한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이 연구 결과는 어느 조직보다 집단적 성격이 강한 군대에서 다른 구성원들에 의해 비난받으며 심리적 적대감을 경험한 시간들이 생존장병의 몸에 남긴 상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 P103

무엇보다 생존장병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천안함 사건을 함께 경험한 다른 생존장병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그들을 다독이며 오늘날까지 버텨온 사람은 최원일 함장이었습니다. 인터 - P109

뷰에 응한 생존장병들은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함장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아달라. 그분은 부하를 잃고 자기만 살아서 나온 사람이 아니다. 57명을 살려서 데리고 나온 지휘관이다"라고요.
자신이 죽지 않는 이유를 말하며 한 장병은 이야기합니다. "전우 유가족분들을 만났기에 자식을 잃은 부모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안다. 그리고 함장님을 생각하면 죽을 수가 없었다. 그 양반은 위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모욕을 다 감당하면서도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근데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냐"라고요.
2021년 5월 저는 당시 국방부 앞에서 시위중인 최원일 함장을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강한 군인이어도 누가 욕하고 때리면 아픈 인간일 텐데, 도대체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틴 거냐"라고요. 생존장병들이 발령지에서 상사로부터 "함장이 죽었어야 니들이 보상금을 받는데, 걔가 살아 있어서 니들이 못 받는 거다" 같은 말을 듣는 그 모욕적인 상황을 어떻게 견뎠는지 물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최원일 함장이 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배와 함께 죽지 않아 다행이다. 앞뒤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내가 죽었다면 아마 사고 처리를 해버렸을 것 같다. 그럼 우리 생존장병들은 얼마나 억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겠나. 살아남았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P110

무엇보다 피우진은 여군을 장식물처럼 취급하는 폭력적인 군 문화에 가장 치열하게 맞서 싸운 사람입니다. 피우진이 군대 내 성희롱과 성차별에 맞서 싸운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이야기는 1988년의 사건입니다. 당시 대위였던 피우진은 여군 부사관을 나이트클럽에서 열린 사령관의 술자리에 내보내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피우진은 그 사령관이 여군 부사관을 술자리에 불러내는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여군이 아프다는 이유를 댄 뒤 외출 승인을 내주지 않았고, 그러자 사령관 참모가 전화로 욕을 하며 "빨리 보내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고민 끝에 피우진은 그 여군에게 전투복을 입힌 채 나가도록 합니다. 그 여군은 곧바로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피우진은 이 일로 꼬투리가 잡혀 보직에서 해임됩니다. - P115

변희수 하사의 등장은 제 시야의 협소함을 확인하는 동시에 연구자가 타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 P123

변희수하는 자신의 문제를 소속부대의 상사인 군단장, 여단장과 상의합니다. 그 일로 국군수도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되고 치료목적으로 성전환 수술을 권유받습니다. 변희수 하사는 소속 부대와 상의 후 수술을 위한 국외 휴가 승인을 얻어 태국으로 갔고 그곳에 도착한 이후에도 소속부대 지휘관과 긴밀하게 소통합니다. - P124

현재 미국, 영국, 캐나다, 브라질을 포함한 20여 개국 이상에서 성전환자의 군복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변희수 하사같이 복무중인 군인이 성전환을 원할 경우 군대에서 의료비를 지원해주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1년 현재 캐나다에서는 복무중인 군인이 성전환을 원한다면 수술과 호르몬 치료 비용 일체를 군대에서 부담하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징병제 국가인 이스라엘에서는 수술과 호르몬 치료 비용뿐만 아니라 성형 수술 비용까지 지원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 사회가 트랜스젠더를 존엄한 시민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삶에서 성전환이 얼마나 필수적이고 절실한지를 이해하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 P127

피우진과 변희수는 모두 군인으로서 삶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자긍심을 가진 이들이었고 군대를 마음 깊이 사랑한 이들이었습니다. 유방암 수술을 받아 유방을 제거했다는 이유로, 성전환 수술을 받으며 고환과 음경을 제거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실제 업무 수행 능력과 무관하게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군인의 길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 둘은 모두 군대에서 규정한 성별이분법에 뿌리박은 남성 중심적인 ‘능력 있는 몸‘에서 일탈한 존재로 취급받았고, 심신 장애로 강제 전역을 통보받았습니다. - P128

피우진의 소송으로 2007년 군인사법의 시행규칙이 개정됩니다. 그 이전에는 직업군인이 질병이나 사고로 심신장애 1~7급을 받으면 무조건 전역해야 했지만 당사자가 계속 근무를 원할 경우에는 전역심사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근무가 가능한 상태인지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판단하도록 한 것이지요. 당시 한 신문은 피우진의 고통스러운 싸움으로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그리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2020년 전역심사회원회는 심사를 통해 변희수 하사의 성전환 수술을 ‘고의적인 신체 훼손‘으로 규정하며 강제 전역을 결정했으니까요. - P129

물론 세월호와 천안함은 사건 원인도 사회적 대응도 달랐던 별개의 사건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둘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양극단에 놓여 있습니다. 2010년의 천안함 사건을 두고서는 보수 진영이 목소리를 높였고 2014년의 세월호 참사를 두고서는 진보 진영이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함께했지요. 지금까지도 전자는 보수, 후자는 진보의 사안으로 여겨지며 한국 사회에서 이 두 사건에 대한 입장은 보수와 진보 정치인을 구분하는 리트머스지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 P137

이러한 상황에서 실태조사에 응했던 한 생존장병의 말을 빌리면 "보수는 이용하고 진보는 외면"했습니다. 보수 언론은 매년 3월이면 생존장병을 찾았지만 그 목적은 이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천안함 사건의 정치적 성격을 부각시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3월이 지난 이후에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 P140

경남도민일보는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8일이 지난 4월 24일 ‘한국 언론의 밑바닥을 보여준 세월호 보도‘라는 제목의 표를 게시했습니다. 그중 4월 16일 참사 당일만 살펴보도록 하지요. 그날 문제가 된 기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지금도 뚜렷이 남아 있는 ‘승객 전원 구조‘라는 오보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날 TV조선과 MBC는 각기 사망보험금과 인명 피해 배상금을 계산해 보여주었고, SBS는 세월호에서 홀로 살아남은 6세 아이를 인터뷰했으며, JTBC는 생존학생에게 ‘친구 사망을 알고 있냐‘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잔혹한 보도뿐 아니라 수많은 오보와 루머를 생산해냈습니다. 그 속에서 피해 유가족은 물론이고 생존자들은 더욱 고립되고 세상에 신뢰를 잃어갔습니다. - P142

생존자와 사망자에 대한 차등적 인식 및 지원은 세월호보다 천안함 사건에서 더 심각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과 그 가족은 사망자 유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고통스러운 사람‘ 혹은 피해자로서 인정을 받기에는 자격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받았지만 천안함 사건의 사망자와 생존자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 P149

이러한 상대 진영에 대한 모욕과 혐오는 그 감정을 논리적으로 합리화하는 확증편향과 함께 진행됩니다. 확증편향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결론이 있을 때 그 결론을 지지하는 정보를 선별적으로구하고 그런 정보를 더 타당하다고 평가하고 해석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논쟁적인 주제에 대한 의견 차이를 한층 심화시키며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 P158

하지만 저는 피해자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저열한 비난을 하는 사람 자체는 소수였을지 몰라도, 우리 편의 고통만을 선택적으로 공감하고 우리 편에 유리한 근거만을 선택적으로 취합하는 성향이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사람들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두가지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 첫째는 여러 입장의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이해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그 정보들을 접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직관이나 감각에 의존하지 말고 그 정보의 가치와 타당성을 충분한 사고과정을 거쳐 판단하는 일이지요. 그런데, 과연 이 두 원칙을 지키면 우리는 진영 논리를 넘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 P168

데이터 분석 결과 놀랍게도 인지숙고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사람일수록 이데올로기적 양극화에 기여하는 확증편향이 가장 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정치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상대 진영의 사람들을 보며 종종 "도대체 생각이라는 걸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 연구 결과는 뛰어난 인지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오히려 확증편향에 더 능하고 정치적 양극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인지 능력이 자신의 진영이 지지하는 결론이 실은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열린 태도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기보다는,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활용하여 자신의 진영이 다툼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 P171

저는 자신이 이러한 성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믿는 이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진 입장은 더 타당한 근거가 등장하면 바뀔 수 있는 임시적인 가설이 아니라 어떤 역경에도 바뀌어서는 안 되는 단단한 신념이 됩니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배웠던 교훈 중 하나는 "흐름 속에 있는 것은 단지 사건만이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속에 있다"라는 격언이었습니다. - P172

비참함이 피해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사회는 사회적 폭력을 대할 때 가해자의 행동을 따져 묻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진짜 ‘피해자’인지 확인하는 데 더 큰 관심을 쏟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피해자의 말과 행동이 동정하기 적당한 모습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곤 했지요. 세월호 유가족시 ‘불쌍한 피해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진상 규명을 외치자 비난받기 시작했습니다. - P187

천안함은 산업재해 사건입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군인들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고 다친 일이니까요. 행정적으로 공무원인 군인의 산업재해는 공무상 순직이나 공무상 재해라는 별개의 용어로 부르지만, 일하다 발생한 사건 - P194

으로 노동자가 고통받게 되었다는 본질은 같습니다. 천안함을 산업재해 사건이라고 부르게 되면 우리는 그 피해를 입은 당사자 군인의 삶을 중심에 두고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 P195

공공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일에 종사하다 다치게 되었을 때 조직이 나의 고통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천안함 생존장병을 관심사병 취급하며 패잔병이라고 부르던 군대의 모습은일하다 다친 소방공무원을 두고서 ‘조금 더 조심하지, 왜 일하다 다치고 그러느냐‘라고 개인을 탓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친 소방공무원들이 공상 신청하는 법을 몰라 신청 자체를 포기하거나 혹은 조직에 공상 신청 담당 직원이 부재해 개인이 인터넷을 검색하며 서류를 준비하던 것 역시 천안함 생존장병이 국가유공자 신청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유사합니다. - P228

"얼핏 보기에 무재해 운동은 노동자를 산업재해로부터 보호하는바람직한 사업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2018년 이 무재해 운동을 39년 만에 폐기하기로 결정합니다. 무재해운동이 재해 발생 자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재해 발생 보고를 줄이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노동자가 일하다 다쳐도 산업재해를 은폐하고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실제 산업재해 규모는압도적으로 축소 보고되고 제대로 된 통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정책은 실행되기 어려웠습니다. - P230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생존장병의 국가유공자 인정과 관련해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8년 7월 저희 연구팀의 실태조사가 발표된 이후 2021년 7월까지 7명의 생존장병이 추가로 PTSD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게 되었던 것이지요. 아직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생존장병들이 계속해서 싸우고 있지만 이 중요한 변화에 저희 연구도 작게나마 기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는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지난 10여 년의 시간을 견디며 포기하지 않고 또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로써 향후 군인들이 PTSD를 비롯한 정신 질환으로 국가유공자를 받는 길이 조금 더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P233

의과대학 졸업반이던 때였습니다. 밤늦은 시간 산업재해를 당한 당사자이자 활동가인 분과 술잔을 기울이며, 제가 내년부터 병원에서 일하게 되면 더이상 이런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저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미안하다는 마음을 가지지 말아라. 그런 마음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빨리 지치고 떠나는 걸 계속 봤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에게 갑자기 누가 큰 돈을 이유 없이 주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냐 아니다. 그렇게 생겨난 돈은 오히려 삶을 망친다. 그나마 애쓰면서 살아오던 삶이 무너지는 거다. 미안해하지 말고 너는 너의 일을 하면 된다.’ 곰곰이 생각해보건데, 그 말은 경제적 지원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한 인간이 타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가르침이었지요. - P254

트라우마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답해주고 그 고통을 비하하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싸워주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생존자의 몸속에서 고통의 에너지로 머물던 사건은 언어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 P259

천안함 생존장병의 트라우마에 대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제게 다가왔지만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과 베트남 군인들이 영웅신화에 갇혀 자신의 고통을 말하지 못했던 시간 동안 그 옆에서 실은 그보다 오래 침묵을 강요당했던 사람들, 한국 군인이 가해자였던 강간 생존자인 베트남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아직까지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국군의 베트남 여성 성폭행은 한국의 군사법정 기록에도 남아 있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 P261

한국에는 아직까지 군 내부의 성희롱, 성폭행과 관련해 제대로 된 통계 자료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군대에서 성폭력 사건을 신고하면 생존자는 고립과 비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전우애를 망쳤다"라는 식으로 생존자를 비난하고 지휘 책임을 피하려 합의를 종용하지요. 특히 상사에 의한 성폭력을 신고하면 군사 경찰은 봐주기 수사를 하고 군대 조직은 가해자 처벌보다는 성폭력 생존자 비난에 열중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군대가 방치되는 동안, 2021년 5월과 8월 한국 사회는 성추행 피해 생존자인 2명의 여성 부사관을 잃었습니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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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사는 법을 익힐 만큼 충분히 아프지는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자주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는지 묻는 대신, 또 사회나 조직의 요구보다는 사람들의 필요에 맞추고 있는지 묻는 대신, 이력서에서 무엇이 중요하냐에 따라 선택을 가늠한다.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질환과 고통에 두려움을 느낀다. 다시 그들처럼 될까 봐 두려울 뿐 아니라, 하던 일을 멈추고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할까 봐 두렵다. 고통도 무섭지만 속도를 늦추는 것도 무섭다.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느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광기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속도가 늦어질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며, 이들은 조직이라는 생산 기계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겁낸다. - P188

질병의 궁극적인 가치는, 질병이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아픈 사람들은 동정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멀고 먼 별자리에선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하늘 한구석의 죽음이겠지"라고 폴 사이먼은 노래했다. 멀고 먼 별에서, 우리는 한 번 깜빡이고는 사라지는 빛처럼 보일 것이다. 빛이 사라지는 순간에 우리는 빛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일 자체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죽음은 삶의 적敵이 아니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삶의 가치를 다시 확인한다. 또 질병을 계기로, 삶을 당연시하며 상실했던 균형 감각을 되찾는다. - P190

아픈 사람들의 책임이 낫는 일이 아니라면 그들의 진정한 책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고통을 목격하고 경험을 표현하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아픈 사람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반드시 배우고자 해야 한다. 아픈 사람들은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은 보고 듣는 것, 이는 사회 안에서 양측 모두의 책임이다. - P195

아픈 사람들은 이미 아픔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 문제는 나머지 사람들이 질병이 무엇인지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책임감이 있느냐다. 이는 결국 삶이 무엇인지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책임감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에는 이중의 책임이 따른다. 살아 있는 이들은 인간이 공유하는 취약함에 책임이 있는 한편 인간이 창조하는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 인간이 취약하기에 창조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아픈 사람들은 표현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듣는 쌍방의 책임을 이해할 수 있다. 질병이 없는 인생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 역설적이지만, 질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는 이들에게도 질병은 똑같이 고통스러워야 한다. - P202

사람들에게 내 존재는 두 가지 의미를 띠게 됐다. 내가 여기에 살아 있다는 사실은 암이 언제나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뜻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암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생존을 먼저 보고 위험은 작게 보며 또 어떤 이들은 위험만 본다. 나 자신도 날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생존이 더 크게 보이고 어떤 날은 위험이 더 크게 보인다. - P211

나는 다시 달린다. 전만큼 멀리, 전만큼 빨리 달리지는 않지만 더 큰 기쁨을 느끼며 달린다. 오래 달리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흘러오듯 내게 온다. 어떤 날엔 내 죽음에 생각이 가닿기도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잘 살았다고 느끼기 위해선 어떻게 죽어야 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은 바뀌곤 하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편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P213

절반의 선택을 하는 절반의 희생자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회복사회remission society‘에 속한 동료 시민들이다. 내 질병 경험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는 내가 회복사회, 즉 ‘계속 회복 중인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 P219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질병은 일상적인 것을 소중히 하며 사는 기회도 준다. 여기서 나는 다시 ‘덤으로 얻은 삶’이라는 생각으로 돌아가게 된다. 삶을 덤으로 받았다고 여길 때 우리는 건강이나 질병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질병에 대한 공포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건강만을 원하는 욕망 또한 넘어설 수 있다. 이런 태도는 질병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질병이 가져오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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