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사는 법을 익힐 만큼 충분히 아프지는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자주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는지 묻는 대신, 또 사회나 조직의 요구보다는 사람들의 필요에 맞추고 있는지 묻는 대신, 이력서에서 무엇이 중요하냐에 따라 선택을 가늠한다.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질환과 고통에 두려움을 느낀다. 다시 그들처럼 될까 봐 두려울 뿐 아니라, 하던 일을 멈추고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할까 봐 두렵다. 고통도 무섭지만 속도를 늦추는 것도 무섭다.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느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광기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속도가 늦어질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며, 이들은 조직이라는 생산 기계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겁낸다. - P188
질병의 궁극적인 가치는, 질병이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아픈 사람들은 동정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멀고 먼 별자리에선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하늘 한구석의 죽음이겠지"라고 폴 사이먼은 노래했다. 멀고 먼 별에서, 우리는 한 번 깜빡이고는 사라지는 빛처럼 보일 것이다. 빛이 사라지는 순간에 우리는 빛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일 자체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죽음은 삶의 적敵이 아니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삶의 가치를 다시 확인한다. 또 질병을 계기로, 삶을 당연시하며 상실했던 균형 감각을 되찾는다. - P190
아픈 사람들의 책임이 낫는 일이 아니라면 그들의 진정한 책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고통을 목격하고 경험을 표현하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아픈 사람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반드시 배우고자 해야 한다. 아픈 사람들은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은 보고 듣는 것, 이는 사회 안에서 양측 모두의 책임이다. - P195
아픈 사람들은 이미 아픔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 문제는 나머지 사람들이 질병이 무엇인지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책임감이 있느냐다. 이는 결국 삶이 무엇인지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책임감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에는 이중의 책임이 따른다. 살아 있는 이들은 인간이 공유하는 취약함에 책임이 있는 한편 인간이 창조하는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 인간이 취약하기에 창조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아픈 사람들은 표현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듣는 쌍방의 책임을 이해할 수 있다. 질병이 없는 인생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 역설적이지만, 질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는 이들에게도 질병은 똑같이 고통스러워야 한다. - P202
사람들에게 내 존재는 두 가지 의미를 띠게 됐다. 내가 여기에 살아 있다는 사실은 암이 언제나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뜻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암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생존을 먼저 보고 위험은 작게 보며 또 어떤 이들은 위험만 본다. 나 자신도 날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생존이 더 크게 보이고 어떤 날은 위험이 더 크게 보인다. - P211
나는 다시 달린다. 전만큼 멀리, 전만큼 빨리 달리지는 않지만 더 큰 기쁨을 느끼며 달린다. 오래 달리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흘러오듯 내게 온다. 어떤 날엔 내 죽음에 생각이 가닿기도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잘 살았다고 느끼기 위해선 어떻게 죽어야 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은 바뀌곤 하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편안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P213
절반의 선택을 하는 절반의 희생자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회복사회remission society‘에 속한 동료 시민들이다. 내 질병 경험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는 내가 회복사회, 즉 ‘계속 회복 중인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 P219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질병은 일상적인 것을 소중히 하며 사는 기회도 준다. 여기서 나는 다시 ‘덤으로 얻은 삶’이라는 생각으로 돌아가게 된다. 삶을 덤으로 받았다고 여길 때 우리는 건강이나 질병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질병에 대한 공포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건강만을 원하는 욕망 또한 넘어설 수 있다. 이런 태도는 질병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질병이 가져오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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