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띄엄띄엄 읽으니 앞 부분에 인상 깊었던 내용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네. 다시 찾아보며, 되새기고 읽고 싶은 책 추가하기.


 

조형근의 글 더 좋은 경쟁논리 대신 반전의 시대정신을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안 난다', '사다리를 걷어차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한들 오를 수 있는 사람만 오른다는 것. 결국 개인의 능력주의, 경쟁의 논리, 신자유주의의 시대정신에 따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윽고 영국의 좌파사상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말을 소개한다. "사다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장치다당신은 사다리를 혼자 올라간다그 결과 노동계급과 공동체의 연대감은 약화되고위계라는 독을 달게 만든다."
신자유주의의 강화 탓에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겼으니 그 사다리를 다시 이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소위 진보 개혁진영의 상식이 되어 있다하지만 사다리의 논리는 어떤 것인가그것은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능력에 따른 개인의 사회적 이동가능성이라는 문제로 대체한다사다리를 타고 오를 기회가 잘 제공되기만 한다면 불평등 자체는 아무리 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러므로 개혁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오를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다누가 그 기회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을까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모두 경쟁의 논리다신자유주의의 시대정신이 바로거기서 숨 쉬고 있다함께 돕고 기대자는 연대의 정신은 거기 없다. - P41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유래를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는 최자영의 글 민중에 의한 권력통제와 분권으로도 흥미롭다.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지만 학교에서 배운(외운) 개념 이외에 민주공화의 의미도 모르고 살았다.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엇인지 더 공부해야 할 문제.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한다민주와공화의 개념을 합쳐놓은 것이다그런데 민주(民主, demokraita)와 공화(共和, res publica)는 기원과 담기는 내용이 서로 같지 않다기원에서전자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정치후자는 로마의 공화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그 내용에서는 전자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을 전제로하는 것이라면후자는 다소간 시민들 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 귀족공화정에서 유래한다. - P51

















미국과 서구의 지원 하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에게 행하는 끔찍한 학살, 인종청소에 대한 아론 마테의 글 이스라엘의 인종청소, 그 기원에 관하여도 더 알아야 할 문제. 이 꼭지를 읽고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을 읽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들 자신이 식민화한 사람들로부터 ‘자기방위를 하고 있다는 논리는이미 오래전부터 이스라엘 상층부가 채택하고 있는 입장이다. 1956년에 가자에서 이스라엘 병사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는데그 장례식에서 이스라엘의 명망 높은 군 지도자 모셰 다얀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늘 (팔레스타인살인자들을 비난하지 맙시다저들이 우리를 지독하게 미워한다고 개탄할 필요는 없습니다저들은 가자의 난민촌에 갇혀서 지난 8년 동안 꼼짝없이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자신들의 눈앞에서 우리가 과거에는 그들의 선조가 거주했던 땅과 마을을 우리 재산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말입니다."

다얀 장군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에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면서 군사작전을 펼쳤던 사람이다그는 자신의 조국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삶터를 빼앗아서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렇다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다얀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로 추방해온 일을 되돌리거나 바로잡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식민화를 더욱 공세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명했다. - P8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나희덕의 대담 생명을 이야기하는 문학을 읽고 그동안 관심만 가졌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읽어야겠다는 결심. 도서관에 대출예약 중.


예술은 인간을 넘어서 모든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문학이 사람을 갑자기 변화시킬 수야 없겠지요. 그래도 문학은 끊임없이 인간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학도 없고, 예술이 없다면 인간은 더욱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질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맥락에서 이 시대 교육과 문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나 문학을 비롯해서 교육과 문화가 타락하면서 인간이 대단히 왜소해졌어요. 잘 먹고 잘 자면 그걸로 만족하고 더이상의 욕구가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뭔가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요. 저는 대중문화가 인간을 작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문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P111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한 정희진의 글 딜레마가 아닌 파국은 가장 먼저 읽은 글. 이 영화를 보고 싶지 않지만.


<오펜하이머>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오펜하이머의 딜레마와 좌절이다. 자신이 만든 무기로 살릴 수 있는 인류와 죽어야 하는 인류. 그 자신 이후의 과학기술…. 미국이 수소폭탄을 개발하면 소련은 더욱더 강력한 수소폭탄을 개발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인간의 삶은 본디 딜레마와 좌절로 점철되어 있지만, 오펜하이머처럼 지구의사를 좌우하는 경우라면? 그는 모순된 인물이 아니라 엄청난 모순을 감당할 수 없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겠는가. 능력이 책임감이라고 할 때,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 P200



 















현기영의 <제주도우다>에 대한 정우영의 서평을 읽고읽지 않은 책장에 있는 <순이삼촌>을 꺼내어 책상에 올려두었다.


광복의 1945년에서 대한민국 수립의 1948년까지를 흔히 해방공간이라고 하는데, 온 국민이 새 국가 건설의 꿈에 한껏 부풀었던 그때는 불행히도 한국사에 유례없는 무서운 폭력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그 삼 년의 기간을 지나면서 국가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거의 절반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제주도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략) 그당시 청년들을 사로잡았던 열정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그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는지, 삶과 죽음은 무엇이고 인간은 또 무엇인지를 작가는 이 소설에서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3, 361) - P237
































오랜만에 여유로운 토요일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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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2-17 1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정희진쌤 부분만 홀랑 읽고 꽂아두었는데.... 햇살과함께님 글 읽고 반성하면서 책 꺼내둡니다.
잘 읽고 갑니다^^

햇살과함께 2024-02-17 11:33   좋아요 2 | URL
아,,, 저도 녹평은 한꺼번에 읽지 못하고 주말마다 몇 챕터씩 읽고 있어요...
다음 호 오기 전까지 다 읽자 주의 ㅋㅋㅋ

페크pek0501 2024-02-17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녹색평론, 모셔 두고 있어요. 저도 읽어야겠습니다.

햇살과함께 2024-02-17 15:23   좋아요 1 | URL
읽으면서 답답한 현실에 자괴감이 들지만… 알아야하니까요^^
 

이재임 <힐튼 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김호성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

이슬람 사원 짓기_육주원

짐을 버스에 실은 뒤 꼭 안아 주고 돌아가려는데, 버스 기사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빙글빙글 웃으며 "넌 집에 안가니?" 물었다. 거구의 백인 남성의 한쪽 팔에 "영국인이 먼저다(British First)"라는 문신이 보였다. 차별이주는 모멸감, 폭력적 상황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공포는 아무리 여러 번 반복되어도 편안해지지 않는다. 간신히 "내 집 캔리(Canley)인데? 지금 갈 거야."라고 말했다. 그간 비슷한 인종차별적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이불킥을 하던 밤들의 분노를담아 쥐어 짜낸 용기였다. 그러자 징그러울 정도로 빙글거리는 웃음과 다시 돌아온 "아니, 네 진짜 집."이라는 말. "떼끼, 이놈. 내가 너보다 여기서 더 오래 산 영국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니!"라고 호통을 치진 못했다. 떨리는 몸으로 ‘진짜 집이 아닌 내 집‘에 돌아와 맥주 캔을 따며 폴란드 하우스메이트에게 이제 정말 이나라를 뜰 땐가 싶다고 얘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 P98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에서 눈여겨봐야하는 것은 단지 반대 주민들의 엽기적인 혐오만이 아니다. 글로벌 경쟁력 제고라는 목표하에 학생들을 유치한 후 방치하는 국립대, 일부 주민들의 탄원서 한 장으로 무기한 공사를 중지시켜 갈등을 키운 북구청, 행정 소관의 문제를 운운하며 수수방관하는 대구시 등총체적인 국가의 ‘부작위‘가 배제적인 혐오의 집 만들기를 용인하고 있다. 그간 북구청, 경찰 등은 반대 주민들의 인종주의적 텃세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 왔다. 국가 기관이 극단적인 혐오에 눈 감고 그것을 혐오가아니라 국민들이 당하는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순간 반대 주민들의 인종화된 소속감의 정치가 힘을 얻었다. - P105

이슬람 사원 갈등을 취재해 단편 영화를 만들었던 경북대 학생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사원에 대해듣고 싶어 왔다는 그에게 어쩌다 관심을 갖게 됐냐고묻자 해 준 이야기다. 경북대 편입생인 그는 어느 날 자취하는 골목에 걸린 혐오표현 현수막을 보고 큰 충격 - P108

을 받았다.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게 버젓이 걸려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자 그 현수막 앞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자 카메라를 들었다. 혐오가 나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문제는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내 일이 아닐 때는 쉽게 참아 넘길 수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배타적이고 위계적인 집만들기, 텃세 부리기도 어느 순간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혐오가 집이 되어 버리기 전에 상호 공존과이해의 집을 만들어 가는, 우리 안 국경을 허무는 실천이 절실하다. - P109

후쿠시마의 주민들_오은정

타라치네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피폭된 벨라루스 사람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사람은 자기가 직접 당하지 않으면 그 심정을 잘 모르잖아요. 방사선이라는 것도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않고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몰라요. 마음을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런데벨라루스 사람들이 왔을 때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나누면서 입장이 비슷하다는 것이 얼마나 서로 간의공통감각을 만들어 내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 주는 것, 동료들을 만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지요. - P126

집이 없어, 하지만!_지수

제너레이션 렌트(generation rent)[2]라는 말이 있다. 평생 세입자로 살아가게 되는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땅에 머무는 이들 10명 중 4명은 세입자다. 이들은 소유하지 않았으나 점유한 공간에서 잠을 자고밥을 먹고 쉰다. 다양한 공간에서 서로의 노동과 돌봄을 주고받으며 관계 맺는다. 곳곳을 공유하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입자들의 머무름이 도시를 구성한다. 세입자의 머무름 없이는 현재를 말할 수 없고, 이 사회E SUAS PR의 존속을 말할 수 없다. - P161

쪽방의 장례식_이재임

이런 현실에서 이웃의 안녕을 함께 고민해 온 사람들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된다. 소유주의 재산권이주민의 주거권에 우선한다는 이 사회의 공식을 뒤엎고자 하는 사람들, ‘내 집‘ 말고 ‘우리 집‘을 그리는 사람들, 소수의 일확천금이 아니라 나와 이웃들의 공동의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이 동자동에 있다.
김정호의 장례식은 동자동의 한 교회에서 치러졌다. 동료들과 쪽방 주민들, 사회운동단체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장례식에서 나는 임대주택이 지어져 쪽방을 모두 떠나는 날 쪽방의 장례식을 치르는 상상을 했다. 이웃의 부고가 아니라 낡고 열악한 집의 부고를 알리는 모습을, 더 이상 방에서 죽어 간 이웃의 부고를 듣지 않아도 될 미래를 그렸다. 쪽방 모양 상여를 함께 들고, 우리는 이 도시에서 말끔히 지워지지 않으리라 말하고 싶었다. - P182

마지막 둥지를 찾아서_김호성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말기란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 없이 증상이 악화되어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큰 시기를 의미한다. 이러한 말기에 대다수의 사람은 돌봄을 받고,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평소 ‘편안하다고 생각한장소‘를 꼽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응답자의 약60퍼센트는 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40퍼센트나 된다. [6]집은 어떤 사람에게는 편안한 장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의 장소다. 말기 돌봄을 받는 사람의 질병의종류, 돌봄의 사정, 경제적 상태, 주거의 형태에 따라각기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 P199

예를 들어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혼자 작성한 것으로 말기 돌봄 계획은 끝나지 않는다. 그 계획은 단순한 문서 작성이 아니라, 말기 돌봄 주체를 정하고 소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생의 끝에 자율적이고 존엄한 삶을영위하기를 바란다. 이는 바람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말기 이전까지는 환자 스스로가 삶의 주도권을 갖지만 그 후로는 다른 이와의 관계성 속에서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환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 속도와 방향을 제시하는 이들이 있어야환자의 마지막 이야기가 올곧게 쓰일 수 있다. 마지막둥지는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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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제인 라자르 <분노와 애정>
질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
장자크 루소
영화 그래비티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에코페미니즘>

"우리가 집안의 구석에
몸을 피하고 있을 때,
스스로 잘 숨겨져 있다고 믿는
우리의 몸 주위에 하나의
상상적인 방이 건조된다.
이 부동성의 공간은
존재의 공간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 P3

13호를 펴내며_이한솔(편집자)

엄마가 되고 나서는 혼란이 내 기본 상태다. (짧은 순간 벅차게 느끼는 엄청난 고양감과 행복 (하루의 대다수) 어느 것 하나 제 - P6

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기 부정과 죄책감 사이에서 몸도 정신도 쪼개진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 네가 아이 봐주는날이잖아. 하지만 아침에 애들을 두고 나가는 게 힘들어.‘ 우리는언제나 말이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배웠다. 두 번째 문장은 첫 번째 문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일관성이 있다. 우리가 양가성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제인 라자르, 『분노와 애정』)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 일찍 아이 옆에서 잠들어야 하는 중력과 새벽 알람에 총 맞은 것처럼 집을 나서기. 나도 아는 것을찾으려 자꾸 문장을 뒤진다. "저처럼 우울한 엄마들이 진짜 있나궁금해서 왔어요."(수미,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하지만 읽으면 무엇이 달라지나? 다른 엄마들과는 진짜 통하는지? 비혼인 친구, 아이가 없는 동료들, 그리고 아이가 있는 남자들에게 말하는 게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주 사적인, 집에서일어난 이 엄청난 일들을 못 참고 터뜨리듯 말한다. 난 친구와 동료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걸까? 그런데 이런 얘기를 집 밖에 해도 될까? 모든 걸 엎지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홀로 난망함과 수치심에 빠진다. - P7

내 영역_영이

택배 상자를 집 안에 들여놓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이물감을 느꼈지만 내 몸을 향해 겨누어진 칼날은 전혀위험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최소한 호르몬 대체 요법을 통해 몸을 자아의 일부로 인식하기 전까지는 내 영역에 내 몸이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신체 보존 의식을 느끼게 해 준 이 트랜지션 과정이란, 어쩌면 내 영역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이물을 내 것으로 빚어내는 과정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 P26

결속하는 동시에 배제하는 무리 동물의 습성에서 벗어나 단독자들 각자가 집과 집 사이 경계에서 만나는 세계를 상상한다. 결국 단독자들 간의 접촉이 모두의 모두를 향한 영원한 적대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단독자들 각자에게 충분히 집이, 신체의 주권이, ‘어머니‘의 영역이 보장되어야만 할 것이다. - P33

장자크 루소, 집 없는 아이_김영욱

루소는 18세기식 부랑아다. 우선 그는 계몽주의의 철학자로서 여러 측면에서 집과 가족을 고찰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인류학, 『사회계약론』의 정치학, 『에밀』의 교육학, 그리고 곧 다시 말할 『신 엘로이즈』의 정념론을 보라. 그는 집 혹은 가족이라는 소우주의 발생, 기능, 한계,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따진다. 그러고서 『고백』에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까지 자전적 문학을 통해 자신이 평생 편력한 집들을 문학사의주제로 제안할 것이다. 그에게는 집이 없었다. 다시 말해 집이 많았다. 제네바에서 보낸 유년기의 집들, 보호자이자 애인이었던 바랑 부인과 누린 짧은 행복의 거처 샤르메트, 세상의 비난과 공격으로부터 그를 잠시보호해 주었던 생피에르 섬의 외딴집, 그가 마지막 몽상의 나날을 보낸 영국식 정원의 은신처 등에는 지금도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P41

21세기 우주인의 귀향_이지선

"우주는 나의 휴식이요 나태다. 결코 사유가 아니다." 그것은 과학적 인식에 적합한 대상과는 다른 하나의 관념, 아니 차라리이미지, 상상과 몽상의 대상이다. 바슐라르는 특히 우주에 관한 상상이 집에서 출발해 집으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그에게 집이란 지하실, 다락방, 서랍처럼 집안의은밀한 공간 그리고 내밀한 세계 또는 장소의 집합으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가까운 공간이다. 그런데이것이 곧 우주다. "왜냐하면 집은 우리의 작은 세계이기 때문이다. 집은ㅡ흔히들 말하는 것처럼ㅡ우리의 최초의 우주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코스모스다."
사실 집으로서의 우주 이미지는 동북아 한자 문화권에서 낯설지 않다. 더욱이 우주가 ‘집 우(宇)’와 ‘집 주()의 합성어라는 점은 집이 우주와 관련해 가장 친숙한, 적어도 가장 근원적인 심상임을 전한다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우주(宇宙)는 천지(天地)와 더불어 천자문(千字文)』의 첫 구절을 장식한다. - P64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은 더는 큰 문제가 아니다. 중심이 어디에도 없거나 아예 어디에나 있으며 또한 경계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 새로운 문제다. 그리하여 우주 안의 모든 대상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것(universal)이 우주적인 것(cosmic)을 대체하게 되었다. - P67

나의 깨끗한 집 만들기_박진영

과학기술과 그로 인한 사회문제와 갈등, 피해를 연구하는 나는 DDT, 글리포세이트, PHMG와CMIT/MIT와 같은 화학물질이 공장과 집 안팎에서 일으킨 피해를 수없이 보고 듣고 읽어왔다. 하지만집에 돌아와서는 그런 일들은 다 모르겠고 다만 집의더러움을 간편하고 빠르게 없애고 싶었다. 편의점에서, 마트에서, 인터넷 장보기에서 익히 들어 온 상표의제품은 과연 편리하고 효과가 좋았다. 생활화학제품이눈앞의 더러움을 없애는 동안 내가 할 일은 마스크를끼고 환기를 잘 시키는 것 정도였다. - P78

유한양행은 긴 글에서 사용자가 화학물질과 위험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안전하게 사용해야 함을 여러 번 강조했다. 화학물질에 있어서 ‘당연한 상식‘은 안전하게 사용했는데 위험한 물질은 없다는 것, 이와 동시에 위험하게 사용해도 안전한 물질이 없다는 것이다. 사용자와 소비자는 이 상식을 늘 기억해 두고 있어야 할 터였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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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제주도우다>

서평 정우영

현기영 <제주도우다>

광복의 1945년에서 대한민국 수립의 1948년까지를 흔히 해방공간이라고 하는데, 온 국민이 새 국가 건설의 꿈에 한껏 부풀었던 그때는 불행히도 한국사에 유례없는 무서운 폭력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그 삼 년의 기간을 지나면서 국가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거의 절반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제주도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략) 그당시 청년들을 사로잡았던 열정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그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는지, 삶과 죽음은 무엇이고 인간은또 무엇인지를 작가는 이 소설에서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3권, 361쪽) - P237

서평 온수진

역시 배신이야말로 달콤한 것. 이 책은 보고서가 아니었다. 아니, 보고서에 부합하는 내용도 조금은 있고, 오충현 교수(동국대)의 자세한 학문적 설명도 부연되어 있다. 하나 이 책은 마음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고 보니 주 저자인 김성란 님은 마음을 다듬는 ‘평화의 씨앗‘ 활동가다. "씨앗부터 키우려면 씨앗부터 키우는 행위와 씨앗부터 키울 수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마음을 다듬지 않고 하는 행위와 행위를 동반하지 않는 마음 다듬기는 어느 쪽이든 빈 수레가 되기 쉽다. 건강한 숲을위해 씨앗부터 키우는 노을공원시민모임과 행위에 담긴 인식을 살펴마음을 다듬는 ‘평화의 씨앗‘이 손을 잡은 이유다." 즉, 행위에 집중하기보다 행위에 따라 움직이는 마음에, 나아가 행위와 마음이 순환하고 연결되는 것에 집중한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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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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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고 찜한 책. 사전에 진심인 사람들. 사전에 관심없던 사람도 사전에, 말에 애정을 갖게 만드는 그들이 15년, 아니 반평생 동안 사전이라는 배를 엮는 이야기. 일본 특유의 오타쿠스러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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