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이 넘는 기간 동안 띄엄띄엄 읽으니 앞 부분에 인상
깊었던 내용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네. 다시 찾아보며, 되새기고 읽고 싶은 책 추가하기.
조형근의 글 ‘더 좋은 경쟁논리 대신 반전의 시대정신을’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안 난다', '사다리를 걷어차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한들 오를 수 있는 사람만 오른다는 것. 결국 개인의 능력주의, 경쟁의 논리, 신자유주의의 시대정신에 따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윽고 영국의 좌파사상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말을 소개한다. "사다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장치다. 당신은 사다리를 혼자 올라간다. 그 결과 노동계급과 공동체의 연대감은 약화되고, 위계라는 독을 달게 만든다."
신자유주의의 강화 탓에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겼으니 그 사다리를 다시 이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소위 진보 개혁진영의 상식이 되어 있다. 하지만 사다리의 논리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능력에 따른 개인의 사회적 이동가능성이라는 문제로 대체한다. 사다리를 타고 오를 기회가 잘 제공되기만 한다면 불평등 자체는 아무리 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오를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누가 그 기회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을까?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모두 경쟁의 논리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정신이 바로거기서 숨 쉬고 있다. 함께 돕고 기대자는 연대의 정신은 거기 없다. - P41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유래를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는 최자영의 글 ‘민중에
의한 권력통제와 분권으로’도 흥미롭다.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지만 학교에서 배운(외운)
개념 이외에 ‘민주’와 ‘공화’의 의미도 모르고 살았다.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엇인지 더 공부해야 할
문제.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한다. 민주와공화의 개념을 합쳐놓은 것이다. 그런데 민주(民主, demokraita)와 공화(共和, res publica)는 기원과 담기는 내용이 서로 같지 않다. 기원에서, 전자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정치, 후자는 로마의 공화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내용에서는 전자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을 전제로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다소간 시민들 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 귀족공화정에서 유래한다. - P51
미국과 서구의 지원 하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에게 행하는 끔찍한 학살, 인종청소에 대한 아론 마테의 글 ‘이스라엘의 인종청소, 그 기원에 관하여’도 더 알아야 할 문제. 이 꼭지를 읽고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을 읽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들 자신이 식민화한 사람들로부터 ‘자기방위를 하고 있다‘는 논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스라엘 상층부가 채택하고 있는 입장이다. 1956년에 가자에서 이스라엘 병사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 장례식에서 이스라엘의 명망 높은 군 지도자 모셰 다얀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늘 (팔레스타인) 살인자들을 비난하지 맙시다. 저들이 우리를 지독하게 미워한다고 개탄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들은 가자의 난민촌에 갇혀서 지난 8년 동안 꼼짝없이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우리가 과거에는 그들의 선조가 거주했던 땅과 마을을 우리 재산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말입니다."
다얀 장군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에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면서 군사작전을 펼쳤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조국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들의 삶터를 빼앗아서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얀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로 추방해온 일을 되돌리거나 바로잡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식민화를 더욱 공세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명했다. - P8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나희덕의 대담 ‘생명을 이야기하는 문학’을 읽고 그동안 관심만 가졌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읽어야겠다는 결심. 도서관에
대출예약 중.
예술은 인간을 넘어서 모든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문학이 사람을 갑자기 변화시킬 수야 없겠지요. 그래도 문학은 끊임없이 인간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문학도 없고, 예술이 없다면 인간은 더욱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질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맥락에서 이 시대 교육과 문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오늘날 세계 어디에서나 문학을 비롯해서 교육과 문화가 타락하면서 인간이 대단히 왜소해졌어요. 잘 먹고 잘 자면 그걸로 만족하고 더이상의 욕구가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뭔가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요. 저는 대중문화가 인간을 작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문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P111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한 정희진의 글 ‘딜레마가 아닌 파국’은 가장 먼저 읽은
글. 이 영화를 보고 싶지 않지만.
<오펜하이머>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오펜하이머의
딜레마와 좌절이다. 자신이 만든 무기로 살릴 수 있는 인류와 죽어야 하는 인류. 그 자신 이후의 과학기술…. 미국이 수소폭탄을 개발하면 소련은 더욱더
강력한 수소폭탄을 개발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정확했다. 인간의 삶은 본디 딜레마와 좌절로 점철되어
있지만, 오펜하이머처럼 지구의사를 좌우하는 경우라면? 그는
모순된 인물이 아니라 엄청난 모순을 감당할 수 없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겠는가. 능력이 책임감이라고 할 때,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 P200
현기영의 <제주도우다>에 대한 정우영의 서평을 읽고, 읽지 않은 책장에 있는 <순이삼촌>을 꺼내어 책상에 올려두었다.
광복의 1945년에서 대한민국 수립의
1948년까지를 흔히 해방공간이라고 하는데, 온 국민이 새 국가 건설의 꿈에 한껏 부풀었던
그때는 불행히도 한국사에 유례없는 무서운 폭력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그 삼 년의 기간을
지나면서 국가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거의 절반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제주도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략) 그당시 청년들을 사로잡았던 열정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그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는지, 삶과 죽음은 무엇이고 인간은 또 무엇인지를 작가는 이 소설에서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3권, 361쪽) - P237
오랜만에 여유로운 토요일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