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임 <힐튼 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김호성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

이슬람 사원 짓기_육주원

짐을 버스에 실은 뒤 꼭 안아 주고 돌아가려는데, 버스 기사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빙글빙글 웃으며 "넌 집에 안가니?" 물었다. 거구의 백인 남성의 한쪽 팔에 "영국인이 먼저다(British First)"라는 문신이 보였다. 차별이주는 모멸감, 폭력적 상황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공포는 아무리 여러 번 반복되어도 편안해지지 않는다. 간신히 "내 집 캔리(Canley)인데? 지금 갈 거야."라고 말했다. 그간 비슷한 인종차별적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이불킥을 하던 밤들의 분노를담아 쥐어 짜낸 용기였다. 그러자 징그러울 정도로 빙글거리는 웃음과 다시 돌아온 "아니, 네 진짜 집."이라는 말. "떼끼, 이놈. 내가 너보다 여기서 더 오래 산 영국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니!"라고 호통을 치진 못했다. 떨리는 몸으로 ‘진짜 집이 아닌 내 집‘에 돌아와 맥주 캔을 따며 폴란드 하우스메이트에게 이제 정말 이나라를 뜰 땐가 싶다고 얘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 P98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에서 눈여겨봐야하는 것은 단지 반대 주민들의 엽기적인 혐오만이 아니다. 글로벌 경쟁력 제고라는 목표하에 학생들을 유치한 후 방치하는 국립대, 일부 주민들의 탄원서 한 장으로 무기한 공사를 중지시켜 갈등을 키운 북구청, 행정 소관의 문제를 운운하며 수수방관하는 대구시 등총체적인 국가의 ‘부작위‘가 배제적인 혐오의 집 만들기를 용인하고 있다. 그간 북구청, 경찰 등은 반대 주민들의 인종주의적 텃세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 왔다. 국가 기관이 극단적인 혐오에 눈 감고 그것을 혐오가아니라 국민들이 당하는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순간 반대 주민들의 인종화된 소속감의 정치가 힘을 얻었다. - P105

이슬람 사원 갈등을 취재해 단편 영화를 만들었던 경북대 학생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사원에 대해듣고 싶어 왔다는 그에게 어쩌다 관심을 갖게 됐냐고묻자 해 준 이야기다. 경북대 편입생인 그는 어느 날 자취하는 골목에 걸린 혐오표현 현수막을 보고 큰 충격 - P108

을 받았다.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게 버젓이 걸려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자 그 현수막 앞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자 카메라를 들었다. 혐오가 나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문제는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내 일이 아닐 때는 쉽게 참아 넘길 수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배타적이고 위계적인 집만들기, 텃세 부리기도 어느 순간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혐오가 집이 되어 버리기 전에 상호 공존과이해의 집을 만들어 가는, 우리 안 국경을 허무는 실천이 절실하다. - P109

후쿠시마의 주민들_오은정

타라치네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피폭된 벨라루스 사람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사람은 자기가 직접 당하지 않으면 그 심정을 잘 모르잖아요. 방사선이라는 것도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않고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몰라요. 마음을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런데벨라루스 사람들이 왔을 때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나누면서 입장이 비슷하다는 것이 얼마나 서로 간의공통감각을 만들어 내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 주는 것, 동료들을 만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지요. - P126

집이 없어, 하지만!_지수

제너레이션 렌트(generation rent)[2]라는 말이 있다. 평생 세입자로 살아가게 되는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땅에 머무는 이들 10명 중 4명은 세입자다. 이들은 소유하지 않았으나 점유한 공간에서 잠을 자고밥을 먹고 쉰다. 다양한 공간에서 서로의 노동과 돌봄을 주고받으며 관계 맺는다. 곳곳을 공유하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입자들의 머무름이 도시를 구성한다. 세입자의 머무름 없이는 현재를 말할 수 없고, 이 사회E SUAS PR의 존속을 말할 수 없다. - P161

쪽방의 장례식_이재임

이런 현실에서 이웃의 안녕을 함께 고민해 온 사람들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된다. 소유주의 재산권이주민의 주거권에 우선한다는 이 사회의 공식을 뒤엎고자 하는 사람들, ‘내 집‘ 말고 ‘우리 집‘을 그리는 사람들, 소수의 일확천금이 아니라 나와 이웃들의 공동의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이 동자동에 있다.
김정호의 장례식은 동자동의 한 교회에서 치러졌다. 동료들과 쪽방 주민들, 사회운동단체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장례식에서 나는 임대주택이 지어져 쪽방을 모두 떠나는 날 쪽방의 장례식을 치르는 상상을 했다. 이웃의 부고가 아니라 낡고 열악한 집의 부고를 알리는 모습을, 더 이상 방에서 죽어 간 이웃의 부고를 듣지 않아도 될 미래를 그렸다. 쪽방 모양 상여를 함께 들고, 우리는 이 도시에서 말끔히 지워지지 않으리라 말하고 싶었다. - P182

마지막 둥지를 찾아서_김호성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말기란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 없이 증상이 악화되어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큰 시기를 의미한다. 이러한 말기에 대다수의 사람은 돌봄을 받고,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평소 ‘편안하다고 생각한장소‘를 꼽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응답자의 약60퍼센트는 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40퍼센트나 된다. [6]집은 어떤 사람에게는 편안한 장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의 장소다. 말기 돌봄을 받는 사람의 질병의종류, 돌봄의 사정, 경제적 상태, 주거의 형태에 따라각기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 P199

예를 들어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혼자 작성한 것으로 말기 돌봄 계획은 끝나지 않는다. 그 계획은 단순한 문서 작성이 아니라, 말기 돌봄 주체를 정하고 소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생의 끝에 자율적이고 존엄한 삶을영위하기를 바란다. 이는 바람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말기 이전까지는 환자 스스로가 삶의 주도권을 갖지만 그 후로는 다른 이와의 관계성 속에서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환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 속도와 방향을 제시하는 이들이 있어야환자의 마지막 이야기가 올곧게 쓰일 수 있다. 마지막둥지는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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