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소설가들 - 헨리 제임스, 마르셀 프루스트, 도스토옙스키(191p)
헤밍웨이 - 단편집(205p)
E. M. 포스터 - 하워즈 엔드, 인도로 가는 길(224p)

디킨스나 조지 엘리엇이 사용했던 낡은 장치 중 어떤 것도 더는 위기를 창출하지 못한다. 살인, 강간, 유혹, 갑작스러운 죽음 등은 이 높고 요원한 세계에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섬세한 영향들 -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생각하지만 거의 말하지 않는 것이나,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 내리고 적용하는 판단 같은 것 - 에만 좌우된다. 결과적으로, 이 인물들은 디킨스나 조지 엘리엇의 실질적이고 육중한 세계나 제인 오스틴의 세계를 촘촘히 수놓는 정교한 관습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진공 속에 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생계를 꾸리는 일로부터 완전히 풀려난 사회가 자기 주위에 마냥 둘러치는, 의미의 가장 섬세한 색조로 짜인 고치 안에서 산다. 대번에 우리는 지금까지 잠들 - P178

어 있던 기능들, 말하자면 퍼즐을 풀 때와도 같은 기발한 재주와 정신적 민활함을 사용하고 있다고 느낀다. 우리의 쾌감은 섬세하게 가지 쳐나가며, 덩어리로 우리에게 제공되는 대신 무한히 분화한다.

(헨리 제임스) - P179

프루스트를 읽는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이처럼 부단한 우회에서 온다. 프루스트에게서는 개개의 중심점을 둘러싸고 너무나 동떨어지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물들이 모여들므로, 그런 집적 과정은 점차적이고 복잡다단하며, 그 사물들이 이루는 최종적 관계는 극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것들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이 예상보다 훨씬 더 많다. 관계는 다른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날씨, 음식, 옷, 냄새, 예술, 종교, 과학, 역사, 그 밖에 무수한 다른 영향들과의 관계이니 말이다. - P183

관습이라 할 것이 너무나 적고 경계도 얼마 없으므로(가령 스타브로긴은 사회의 밑바닥에서 꼭대기로 아무렇지 않게 이동한다) 그 복잡성은 더 깊은 곳에 있으며, 한 사람을 신적인 동시에 야수적으로 만드는 이 이상한 모순과 비정상성은 마음속 깊은 데서 서로 겹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악령』의 기이한 정서적 효과는 거기서 비롯된다. 그것은 영혼의 난국과 혼란을 드러내기 위해 가진 재주와 수단을 다할 태세가 된 광인이 쓴 것만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에는 신비주의가 만연하며, 그는 작가로서뿐 아니라 현자로서도 말한다. 길가에 담요를 둘러쓰고 앉아서, 무한한 지식과 무한한 인내로써 말하는 현자 말이다. - P187

하지만 - 학자들을 제외한다면(학문이란 주로 망자들의 작품을 판단하는 데 유용하다) - 비평가는 나머지 우리보다 오히려 더 틀리기 쉽다. 그는 불과 이틀 전에 나온 책, 알에서 갓 깨어나 아직 머리에서 껍질도 떨어지지 않은 책에 대한 자기 의견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독자의 마음에 드리워지는 풍요롭지만 아직 분명하지 않은 감각의 구름에서 벗어나 그것을 구체화하고 요약해야 한다. 십중팔구 그는 때가 무르익기 전에 그 일을 해야 하고, 너무 성급하게, 너무 단정적으로 그 일을 해치우기 마련이다. 〈훌륭한 책이다〉 또는 <나쁜 책이다〉라고 그는 말하지만, 그 자신도 알다시피 그저 읽는 것으로 만족할 때는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다. 그는 - P194

상황의 힘과 또 모종의 인간적 허영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자신을 에워싸던 망설임들과 자신이 <결론>이라 부르기로한 것에 도달하기까지의 우왕좌왕하는 걸음을 숨길 뿐이다. 그리하여 비평가의 견해라는 어설픈 나팔 소리가 시끄럽고 날카롭게 울려 퍼지면, 우리 변변찮은 독자들은 고개 숙여 굴종하는 것이다. - P195

『여자 없는 남자들』에는 여러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인생이 더 길다면야 한 번쯤 다시 읽어 보고 싶을 만한 것들이다. 그 대부분이 실로 능숙하고 효과적인 데다 군더더기라고는 없으므로, 왜 더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지 의아해하게 된다. 아내를 여읜 소령의 비극적인 이야기인 「또 다른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라든가, 기차간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씁쓸한 이야기인 딸을 위한 카나리아A Canaryfor One」, 또는 「패배하지 않는 자The Undefeated」나 「5만달러Fifty Grand」처럼 투우와 권투의 땀내와 영웅주의로 가득 찬 이야기들 - 이 모두가 간결하고 강렬하게 폐부를 찌르는 잘된 작품들이다. 만일 체호프나 메리메, 모파상 같은작가들의 망령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분명 탄복할 만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뭔가 다른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찾지 못하고, 은전을 카운터에 떨어뜨려 그 소리를 들어 보는 해묵은 관습으로 돌아가 대체 뭐가 잘못되었는지 묻게 되니 이상한 일이다. - P203

하지만 누구보다도 소설가에게 근본적인 한 가지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조합하는 능력, 즉 통합된 비전을 이룩하는 힘이다. 걸작의 성공은 결함의 부재보다는 - 우리는 걸작에 대해서는 더없이 중대한 결함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 자신이 선택한 시계(視界)를 총괄하는 정신의 엄청난 설득력에 있다. - P212

그리하여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포스터 씨의 노선을 보여주는 단서를 찾게 된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속해 있는 양대 진영 중 어느 쪽인가 하는 말이다. 대체로 말해 소설가들은 톨스토이나 디킨스 같은 설교자 내지 교사 진영과 제인 오스틴이나 투르게네프 같은 순수 예술가 진영으로 갈라진다. 포스터 씨는 동시에 양진영에 속하려 하는 듯하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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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 2003년 제3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서른 즈음에‘를 들을 때처럼, 아련하고 쓸쓸하고 너무 일찍 말하여진 잊혀진 ‘청춘‘ 같은 단편이다. 이 책 덕분에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잠시 돌아가 보았지만, 작가님처럼 ‘행복한 경우가 더 많았‘는지는 모르겠다. 생경한 우리말로 살려낸 문장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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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기싱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기> (149p)
토마스 하디 <이름 없는 주드> (170p)

이것은 일종의 자유이다.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충만하기 때문에, 누구나 바랄 만하다. 그러므로 이 책의 매력은 그런 힘이 이미 존재할 뿐 아니라 우리 대부분의 손닿는 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 주는 데 있다. 책, 펜, 작은 시골집, 그러면 세상이 그대 발밑에 있다. - P140

밧세바가 짐마차에 실린 화초들 사이에서 작은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어여쁜 모습에 미소 지을 때, 우리는 이미 그녀가 얼마나 심한 괴로움을 겪을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괴로움을 주게 될지 알아차리거니와, 이렇게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 하디의 능력을 입증해 준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인생의 모든 신선함과 아름다움이 들어 있다. 매번 그런 식이다. 그의 인물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그에게 무한히 매력적인 존재들로 보인다. 그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을 더 친절하게 배려하며, 그녀들에게 어쩌면 더 깊은 관심을 갖는 듯하다.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헛되고 운명은 가혹할지언정, 그녀들 안에 삶의 열기가 남아 있는 한 그녀들의 걸음은 활달하고 웃음소리는 감미롭다. 그녀들에게는 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의 장엄한 침묵 가운데 잠겨드는, 또는 일어나서 구름의 움직임과 꽃피는 숲속의 싱그러움과 하나가 되는 힘이 있다. 남성들은 여성들과는 달리 다른 인간존재에 대한 의존 때문이 아니라 운명과의 갈등 때문에 고통당하는데, 그것이 우리의 더 엄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P160

우리는 그의 인물들을 상호 관계 속에서 알 수 없는 대신, 세월과 죽음과 숙명에 대한 관계에서 안다. 도회지의 조명과 군중 가운데서 분투하는 그들을 볼 수 없는 대신, 대지와 폭풍우와 계절과 드잡이하는 그들을 본다. 우리는 인류가 직면할 수 있는 가장 엄청난 문제들 중 몇몇을 마주하는 그들의 태도를 안다. 그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실제 인간보다 훨씬 거대한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 우리는 그들의 세세한 특징이 아니라 위엄있게 확대된 모습을 본다. 우리는 테스가 잠옷 바람으로 <거의 제왕과 같은 위엄을 가지고서> 세례 예식문을 읽는 것을 본다. 우리는 마티 사우스가 <추상적인 인류애라는 고상한 가치를 위해 자기 성의 속성을 무심히 거부한 존재>와도 같이 윈터본의 무덤 위에 꽃을 놓는 것을 본다. 그들이 하는 말에는 성서적인 위엄과 시정이 있다. 그들에게는 정의할 수 없는 힘, 사랑이나 증오의 힘이 있으니, 그것은 남자들에게서는 삶에 대한 반항의 원인이 되고 여성들에게서는 고통을 겪는 무제한적인 능력이 되는 힘이다. - P164

작가의 의식적인 의도를 넘어서서 그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을 더 깊은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도 알아내야 한다. 하디 자신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소설이란 <인상이지 논증이 아니다>라고 그는 우리에게 경고했고, 또 이렇게 말했다. 〈정돈되지 않은 인상들에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진정한 삶의 철학에 이르는 길은 우연과 변화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상들에 대한 다양한 독해를 겸손하게 기록하는데 있을 것이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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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감염된 문장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J. 힐리스 밀러가 말했듯이 이런 비평가들은 문학작품이 ‘이전 작품들의 현존, 메아리, 인유, 손님, 유령이라는 기생체의 거주지‘가 되는 방식을 연구한다.
밀러도 말했듯 최초이자 최고의 문학 심리사 연구가는 해럴드 블룸이었다. 블룸은 프로이트의 구조를 문학 계보학에 적용하면서 작가의 ‘영향에 대한 불안‘, 즉 자신이 자신의 창조자가 아니고 선배들의 작품이 이미 자신을 넘어서서 존재하며 자신의 작품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할 것이라는 불안에서 문학사의 역동성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 P141

블룸의 역사 개념은 우리 목적에 유용하다. 그의 개념은 그처럼 많은 서구 문학을 탄생시킨 가부장적 성의 심리적 맥락을 규정하고 정의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여성 작가의 불안과 업적을 남성 작가의 그것과 구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 P143

따라서 남성 시인들이 경험하는 ‘영향에 대한 불안‘은 여성 시인에게 오히려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자신은 창조할 수 없다는 불안, 자신은 결코 ‘선배‘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글 쓰는 행위는 자신을 소외시키거나 파괴할 것이라는 근본적인 불안)으로 다가온다. - P145

따라서 여성 예술가의 고독, 여성 선배와 후배에 대한 갈증과 남성 선배로부터의소외감, 남성 독자의 반감을 사는 일에 대한 두려움, 여성 독자에 대한 절박한 갈구, 문화적 조건 안의 자아를 극화시킬 때 튀어나오는 소심함, 예술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두려움, 여성창조의 부적절함에 대한 불안 등등 이 모든 ‘열등화‘ 현상은 여성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정립하려는 분투의 표식이며, 자아 창조를 위한 그녀의 노력을 남성 작가와 구분해주는 현상이다. - P147

그것은 불편함, 적어도 불만, 방해, 불신 등 여러 가지 세균이다. 세균은 많은 여성문학의 구조와 문체, 특히 이 책에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20세기 이전 여성문학 전반에 얼룩처럼 퍼져 있다. - P148

구두를 거부하고 천사같은 마카리에가 되는 것이 여자를 병들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두를 신는 여왕이 되는 것 역시 여자를 병들게 한다. - P156

여성 작가는 질병의 이미지, 질병의 전통, 질병과 불편함의 권유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자기 본성의 불안을 비추는 많은 거울을 들고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감염된 문장이 새끼를 친다‘는 개념은 여성 문인에게 너무도 잘 들어맞는 진실이다. - P158

따라서 ‘감염된 문장‘이 여성들 사이에 ‘새끼를 쳐나가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어떻게 질병을 통해 예술적 건강을 획득해내는가를 배우기 위해서도 ‘영향에 대한 불안‘이라는 블룸의 중요한 정의를 재정의해야 한다. - P161

‘여성은 박쥐나 올빼미처럼 [어둠 속에] 살고, 짐승처럼 일하며, 벌레처럼 죽는다‘고 캐번디시가 쓴 것은 자기 자신과 절망이 대결하는 쏜살같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그녀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그녀의 마차 주위에 몰려들었다. 왜냐하면 ‘미친 공작 부인이 영리한 소녀들을 놀라게 하는 악귀가 되었기 때문이다. - P167

그리하여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여성 작가는 당황스러운 이중의 속박에 갇혀 있었다. 여성 문인은 자신이 ‘단지 여자‘일 뿐임을 인정하거나 ‘남자만큼 훌륭하다‘고 저항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같은 불안감을 조장하는 선택에 직면한 여자들이 문학작품을 창조하자 그들의 작품에는 제한된 선택에 대한 강박적 관심뿐 아니라 예외 없이 강박적 감금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나타난다. - P169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에서 신랄하게 보여주었듯이, 여성 소설가가 자신을 백설공주와 동일시하면 로맨틱한 유리 관은 죽음의 침대처럼 느껴진다. 반면 여왕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여성은 사회에서 추방한다는 암울한 사실은, 여성 문인에게 비극적이고 장엄한 이야기의 영감이기보다 늘 불안의 원천이 되었다. 고귀한 자는 결국 맥베스이고 레이디 맥베스는 괴물이다. 마찬가지로 오이디푸스는 영웅이지만, 메데이아는 마녀일 뿐이다. 리어의 광기는 거룩하고 보편적이지만, 오필리아의 광기는 그저 측은할 따름이다. - P175

이와 동시에 자신의 여성성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플롯이나 시학의 가부장적인 성격에 정면으로 맞서는 여자는 장르와 젠더의 화해할수 없는 대립에 아연실색할 것이다. 마거릿 풀러의 일기는 이 문제를 깔끔하게 요약했다.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생의 모든 물결을 느끼면서도, 나의생각을 형식으로 주조하려고 할 때면 나는 입이 딱 붙고 무력해 - P179

진다. 옛날 것은 어떤 것도 나에게 맞지 않는다. 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나는 창조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무언가를 쓸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여자인 게 정말 좋다. 그러나지금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나‘의 영역을 제한한다. 어떤 때는 진정으로 여자로서 살지만, 또 어떤 때는 숨이 막힌다. 내가 예술가 역할을 할 때 마비되는 것처럼. - P180

물론 이 작가들은 자신들의 반항적 충동을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미치거나 괴물 같은 (소설이나 시 속에서 적절하게 벌을 받는) 여자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자아분열, 즉 가부장적 사회의 억압을 수용하고자 하는 욕망과 거부하고자 하는 욕망을 동시에 극화한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성문학에 등장한 미친 여자가 남성 문학과 달리 단순히 여자 주인공의 적대자거나 들러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친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분신이고 작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의 이미지다. 실제로 여성이 쓴 많은 소설과 시에는 미친 여자가 출현한다. - P189

따라서 이 미친 분신은 샬럿과 에밀리 브론테의 한층 반항적인 이야기에서 중요하듯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의 지극히 온건한 소설에서도 중요하다. 고딕 작가와 반 고딕 작가 두부류는 모두 선택받은 수녀와 저주받은 마녀 사이에 있는 에밀리 디킨슨처럼, 또는 고상하고 비판적인 과학자와 분노에 찬 어린애 같은 괴물 사이에 있는 메리 셸리처럼, 자신을 분열된 자아로 재현했다. 여성 작가의 이런 정신분열은 지극히 중요하다. 그것이 19세기 작가들을 (자신을 댈러웨이 부인과 미친 셉티머스 워런 스미스 둘 다에게 투사하는) 버지니아 울프, (자신을 분별 있는 마사 헤세와 미친 린다 콜리지 사이에서 분열시키는) 도리스 레싱) (자신을 석고로 만들어진 성자이자 위험한 ‘늙은 황색‘ 괴물로 본) 실비아 플라스 같은 20세기의 후배 작가들과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 P190

가장 잘 알려진 최근의 몇몇 여성 시는 페미니즘을 위해 그런 패러디를 공공연하게 사용했다. 키르케, 레다, 카산드라, 메두사, 헬레네, 페르세포네 같은가부장적 신화의 전통적인 여성 인물들은 모두 최근에 여성창조자의 이미지로 재창조되었고, 이들 인물에 바친 각각의 시는 그녀의 원래 이야기를 재창조했다. - P192

「누런 벽지가 출판되었을 때 길먼은 이 작품을 위어 미첼에게 보냈는데, 미첼은 그녀가 신경쇠약에 걸렸을 때 글 쓰는 것을 금지시켜 그녀의 병을 악화시켰던 장본인이다. 몇 년 후 ‘그가’ 길먼의 이야기를 ‘읽은 뒤 자신의 신경쇠약 치료법을 바꾸었다‘는 소식을 듣고 길먼은 매우 기뻐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나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말이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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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안더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첫 남편.

그러니까 관건은 방사능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이다. 그러나 국제원자력위원회(IAEA)는 물론이고, 일반적으로 꽤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세계보건기구(WHO)조차도 방사능 문제에 있어서는 일관되게 거짓정보를 생산·유포하는 데 협력해왔다. 예를 들어, 1959년에 맺어진IAEA와 WHO 사이의 협약은 WHO라는 유엔 기구가 국제 원자력 추진세력 앞에서 얼마나 허약한지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 협약은 방사능에 관한 한, WHO의 독자적인 조사·평가와 그 연구결과의 공개를 일절금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예를 들어, WHO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피해상황에 대한 학술대회를 두 차례나 개최하고도 그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못한 채 그냥 앵무새처럼 IAEA의 견해를 되풀이하여, 체르노빌 사고 피해자가 수천명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믿기 어려운 WHO의 굴종적인 행태는 관계된 관료·과학자들의 왜소함뿐만 아니라, ‘원자력체제‘가 얼마나 가공할 반생명·비윤리성에 기반하고 있는가를 암시해주고 있다. - P251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슬로건 밑에서 시작된 원자력발전 시스템은, 핵무기에 못지않게 생명과 평화에 위협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없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본적으로 원자력발전과 핵무기는 일란성쌍생아라는 사실이다. 이번 호에 전재 · 소개된 인터뷰 기사에서 일본의평론가 가라타니 고진(行人)이 "원전은 핵무기 개발을 전제로 한 산업이기 때문에 핵무기를 꿈꾸는 국가는 원전을 결코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지만, 이것은 약간의 과장이 있을지 몰라도 핵심을 찌르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 P251

그러나 원자력발전 시스템의 존속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될 제일 절박한 이유는, 이것이 현재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서 미래세대의 삶의 토대를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극히 비윤리적인 시스템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P252

핵에 대한 무관심 · 무감각의 결과는 반드시 묵시록적 상황을 낳는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한나 아렌트의 첫 남편이기도 했던 독일철학자 귄터 안더스가 생전에 한 말이다. 그는 핵에 대한 무관심·무감각은 무엇보다도 현대인에게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사회는 경제성장과 효율성의 원리에 압도적으로 지배되면서 세계 자체가 거대한 기계로 변했고, 인간은 한갓 그 기계의 부품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양심과 책임과 윤리의식, 즉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 P252

상상력의 결여는 현대인의 숙명이 되었다- 이것이 안더스의 비관적인결론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죽을 때까지 핵 없는 세상을 위해서 열심히 싸웠다. - P253

<녹색평론> 독자들 중에는 ‘평론‘이라는 이름에 위화감을 느끼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평론‘이라고 굳이 고집해온 까닭이 없지 않다.
그것은 이 잡지 창간의 주요 목적이 ‘저항’에 있었기 때문이다. ‘평론‘
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상을 상대화하면서 철저히 의심하고, 질문하는 행위, 따라서 근원적인 의미의 저항을 뜻한다. 처음부터 《녹색평론》이 의도한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한국사회와 세계 전체가 직면한 위기에 맞서서, 이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올바른 질문을 통해서만 올바른 방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실로 다양한 의견-현실에 대한 분석과 진단, 해법들이 개진되고 있다. 우리가 묻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분석, 진단, 해법들이 과연 안심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좌우의 이념과 논리를 가지고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정당하게 설명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는 판단 밑에서 작업해왔다. - P256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성장을 통해서 극복한다는 방법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다. ‘복지국가‘ 시스템을 통한 극복이라는 것도, 그것이 불가피하게 더 많은 성장을 전제로 하는 시스템인이상, 역시 지속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산업사회의 주류였던 방법, 즉 대규모 산업시스템 속에서 일자리와 생계를 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소규모 지역중심, 자립적 생산·생활 협동체들을 광범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틀 속에서 태양에너지에 기반을 둔 순환경제를 구축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과 확산을 가로막는 기득권 세력의 방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민주주의의 확립, 즉 보편적 이성이 존중을 받고, 합리적 상식이 통할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확보하는 게 관건인 것이다. - P261

그런 만큼 독일의 자세는 단연 돋보인다. 특히 주목할 것은 메르켈 독일 수상이 원전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안전위원회’와 함께 ‘윤리위원회‘를 구성했다는 것, 그리고 윤리위원회 위원장에 자신의 정치적 적수를 임명함으로써 정파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공정한 결론을 원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단지 양심적인 행위라기보다 매우 합리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자면 비판적인 관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 ‘윤리위원회‘에는 원자력에 관여하고 있는 전문가·관계자는 단 한 사람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리위원회 구성 멤버는 가톨릭의 추기경, 프로테스탄트 목사,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을 포함한 몇몇 학자, 소비자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 등열일곱 명이었다. 이 위원회에 참여했던 베를린자유대학 교수 미란다슈라즈는 지난 6월 일본에서 행한 강연에서, 윤리위원회가 이렇게 구성이유는 "어떠한 에너지를 사용할 것인가는 전력회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정책을 이른바 관계 당국이나 기업 혹은 전문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생활하는 주체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지만, 이 당연한 논리가 새삼 극히 신선하게 들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 오랫동안 비이성과 몰상식이 활개를 치는 사회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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