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소설가들 - 헨리 제임스, 마르셀 프루스트, 도스토옙스키(191p)
헤밍웨이 - 단편집(205p)
E. M. 포스터 - 하워즈 엔드, 인도로 가는 길(224p)

디킨스나 조지 엘리엇이 사용했던 낡은 장치 중 어떤 것도 더는 위기를 창출하지 못한다. 살인, 강간, 유혹, 갑작스러운 죽음 등은 이 높고 요원한 세계에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섬세한 영향들 -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생각하지만 거의 말하지 않는 것이나,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 내리고 적용하는 판단 같은 것 - 에만 좌우된다. 결과적으로, 이 인물들은 디킨스나 조지 엘리엇의 실질적이고 육중한 세계나 제인 오스틴의 세계를 촘촘히 수놓는 정교한 관습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진공 속에 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생계를 꾸리는 일로부터 완전히 풀려난 사회가 자기 주위에 마냥 둘러치는, 의미의 가장 섬세한 색조로 짜인 고치 안에서 산다. 대번에 우리는 지금까지 잠들 - P178

어 있던 기능들, 말하자면 퍼즐을 풀 때와도 같은 기발한 재주와 정신적 민활함을 사용하고 있다고 느낀다. 우리의 쾌감은 섬세하게 가지 쳐나가며, 덩어리로 우리에게 제공되는 대신 무한히 분화한다.

(헨리 제임스) - P179

프루스트를 읽는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이처럼 부단한 우회에서 온다. 프루스트에게서는 개개의 중심점을 둘러싸고 너무나 동떨어지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물들이 모여들므로, 그런 집적 과정은 점차적이고 복잡다단하며, 그 사물들이 이루는 최종적 관계는 극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것들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이 예상보다 훨씬 더 많다. 관계는 다른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날씨, 음식, 옷, 냄새, 예술, 종교, 과학, 역사, 그 밖에 무수한 다른 영향들과의 관계이니 말이다. - P183

관습이라 할 것이 너무나 적고 경계도 얼마 없으므로(가령 스타브로긴은 사회의 밑바닥에서 꼭대기로 아무렇지 않게 이동한다) 그 복잡성은 더 깊은 곳에 있으며, 한 사람을 신적인 동시에 야수적으로 만드는 이 이상한 모순과 비정상성은 마음속 깊은 데서 서로 겹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악령』의 기이한 정서적 효과는 거기서 비롯된다. 그것은 영혼의 난국과 혼란을 드러내기 위해 가진 재주와 수단을 다할 태세가 된 광인이 쓴 것만 같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에는 신비주의가 만연하며, 그는 작가로서뿐 아니라 현자로서도 말한다. 길가에 담요를 둘러쓰고 앉아서, 무한한 지식과 무한한 인내로써 말하는 현자 말이다. - P187

하지만 - 학자들을 제외한다면(학문이란 주로 망자들의 작품을 판단하는 데 유용하다) - 비평가는 나머지 우리보다 오히려 더 틀리기 쉽다. 그는 불과 이틀 전에 나온 책, 알에서 갓 깨어나 아직 머리에서 껍질도 떨어지지 않은 책에 대한 자기 의견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독자의 마음에 드리워지는 풍요롭지만 아직 분명하지 않은 감각의 구름에서 벗어나 그것을 구체화하고 요약해야 한다. 십중팔구 그는 때가 무르익기 전에 그 일을 해야 하고, 너무 성급하게, 너무 단정적으로 그 일을 해치우기 마련이다. 〈훌륭한 책이다〉 또는 <나쁜 책이다〉라고 그는 말하지만, 그 자신도 알다시피 그저 읽는 것으로 만족할 때는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다. 그는 - P194

상황의 힘과 또 모종의 인간적 허영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자신을 에워싸던 망설임들과 자신이 <결론>이라 부르기로한 것에 도달하기까지의 우왕좌왕하는 걸음을 숨길 뿐이다. 그리하여 비평가의 견해라는 어설픈 나팔 소리가 시끄럽고 날카롭게 울려 퍼지면, 우리 변변찮은 독자들은 고개 숙여 굴종하는 것이다. - P195

『여자 없는 남자들』에는 여러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인생이 더 길다면야 한 번쯤 다시 읽어 보고 싶을 만한 것들이다. 그 대부분이 실로 능숙하고 효과적인 데다 군더더기라고는 없으므로, 왜 더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지 의아해하게 된다. 아내를 여읜 소령의 비극적인 이야기인 「또 다른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라든가, 기차간의 대화로 이루어지는 씁쓸한 이야기인 딸을 위한 카나리아A Canaryfor One」, 또는 「패배하지 않는 자The Undefeated」나 「5만달러Fifty Grand」처럼 투우와 권투의 땀내와 영웅주의로 가득 찬 이야기들 - 이 모두가 간결하고 강렬하게 폐부를 찌르는 잘된 작품들이다. 만일 체호프나 메리메, 모파상 같은작가들의 망령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분명 탄복할 만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뭔가 다른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찾지 못하고, 은전을 카운터에 떨어뜨려 그 소리를 들어 보는 해묵은 관습으로 돌아가 대체 뭐가 잘못되었는지 묻게 되니 이상한 일이다. - P203

하지만 누구보다도 소설가에게 근본적인 한 가지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조합하는 능력, 즉 통합된 비전을 이룩하는 힘이다. 걸작의 성공은 결함의 부재보다는 - 우리는 걸작에 대해서는 더없이 중대한 결함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 자신이 선택한 시계(視界)를 총괄하는 정신의 엄청난 설득력에 있다. - P212

그리하여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포스터 씨의 노선을 보여주는 단서를 찾게 된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속해 있는 양대 진영 중 어느 쪽인가 하는 말이다. 대체로 말해 소설가들은 톨스토이나 디킨스 같은 설교자 내지 교사 진영과 제인 오스틴이나 투르게네프 같은 순수 예술가 진영으로 갈라진다. 포스터 씨는 동시에 양진영에 속하려 하는 듯하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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