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감염된 문장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J. 힐리스 밀러가 말했듯이 이런 비평가들은 문학작품이 ‘이전 작품들의 현존, 메아리, 인유, 손님, 유령이라는 기생체의 거주지‘가 되는 방식을 연구한다.
밀러도 말했듯 최초이자 최고의 문학 심리사 연구가는 해럴드 블룸이었다. 블룸은 프로이트의 구조를 문학 계보학에 적용하면서 작가의 ‘영향에 대한 불안‘, 즉 자신이 자신의 창조자가 아니고 선배들의 작품이 이미 자신을 넘어서서 존재하며 자신의 작품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할 것이라는 불안에서 문학사의 역동성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 P141

블룸의 역사 개념은 우리 목적에 유용하다. 그의 개념은 그처럼 많은 서구 문학을 탄생시킨 가부장적 성의 심리적 맥락을 규정하고 정의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여성 작가의 불안과 업적을 남성 작가의 그것과 구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 P143

따라서 남성 시인들이 경험하는 ‘영향에 대한 불안‘은 여성 시인에게 오히려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자신은 창조할 수 없다는 불안, 자신은 결코 ‘선배‘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글 쓰는 행위는 자신을 소외시키거나 파괴할 것이라는 근본적인 불안)으로 다가온다. - P145

따라서 여성 예술가의 고독, 여성 선배와 후배에 대한 갈증과 남성 선배로부터의소외감, 남성 독자의 반감을 사는 일에 대한 두려움, 여성 독자에 대한 절박한 갈구, 문화적 조건 안의 자아를 극화시킬 때 튀어나오는 소심함, 예술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두려움, 여성창조의 부적절함에 대한 불안 등등 이 모든 ‘열등화‘ 현상은 여성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정립하려는 분투의 표식이며, 자아 창조를 위한 그녀의 노력을 남성 작가와 구분해주는 현상이다. - P147

그것은 불편함, 적어도 불만, 방해, 불신 등 여러 가지 세균이다. 세균은 많은 여성문학의 구조와 문체, 특히 이 책에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20세기 이전 여성문학 전반에 얼룩처럼 퍼져 있다. - P148

구두를 거부하고 천사같은 마카리에가 되는 것이 여자를 병들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두를 신는 여왕이 되는 것 역시 여자를 병들게 한다. - P156

여성 작가는 질병의 이미지, 질병의 전통, 질병과 불편함의 권유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자기 본성의 불안을 비추는 많은 거울을 들고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감염된 문장이 새끼를 친다‘는 개념은 여성 문인에게 너무도 잘 들어맞는 진실이다. - P158

따라서 ‘감염된 문장‘이 여성들 사이에 ‘새끼를 쳐나가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어떻게 질병을 통해 예술적 건강을 획득해내는가를 배우기 위해서도 ‘영향에 대한 불안‘이라는 블룸의 중요한 정의를 재정의해야 한다. - P161

‘여성은 박쥐나 올빼미처럼 [어둠 속에] 살고, 짐승처럼 일하며, 벌레처럼 죽는다‘고 캐번디시가 쓴 것은 자기 자신과 절망이 대결하는 쏜살같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그녀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그녀의 마차 주위에 몰려들었다. 왜냐하면 ‘미친 공작 부인이 영리한 소녀들을 놀라게 하는 악귀가 되었기 때문이다. - P167

그리하여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여성 작가는 당황스러운 이중의 속박에 갇혀 있었다. 여성 문인은 자신이 ‘단지 여자‘일 뿐임을 인정하거나 ‘남자만큼 훌륭하다‘고 저항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같은 불안감을 조장하는 선택에 직면한 여자들이 문학작품을 창조하자 그들의 작품에는 제한된 선택에 대한 강박적 관심뿐 아니라 예외 없이 강박적 감금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나타난다. - P169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에서 신랄하게 보여주었듯이, 여성 소설가가 자신을 백설공주와 동일시하면 로맨틱한 유리 관은 죽음의 침대처럼 느껴진다. 반면 여왕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여성은 사회에서 추방한다는 암울한 사실은, 여성 문인에게 비극적이고 장엄한 이야기의 영감이기보다 늘 불안의 원천이 되었다. 고귀한 자는 결국 맥베스이고 레이디 맥베스는 괴물이다. 마찬가지로 오이디푸스는 영웅이지만, 메데이아는 마녀일 뿐이다. 리어의 광기는 거룩하고 보편적이지만, 오필리아의 광기는 그저 측은할 따름이다. - P175

이와 동시에 자신의 여성성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플롯이나 시학의 가부장적인 성격에 정면으로 맞서는 여자는 장르와 젠더의 화해할수 없는 대립에 아연실색할 것이다. 마거릿 풀러의 일기는 이 문제를 깔끔하게 요약했다.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생의 모든 물결을 느끼면서도, 나의생각을 형식으로 주조하려고 할 때면 나는 입이 딱 붙고 무력해 - P179

진다. 옛날 것은 어떤 것도 나에게 맞지 않는다. 내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나는 창조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무언가를 쓸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여자인 게 정말 좋다. 그러나지금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나‘의 영역을 제한한다. 어떤 때는 진정으로 여자로서 살지만, 또 어떤 때는 숨이 막힌다. 내가 예술가 역할을 할 때 마비되는 것처럼. - P180

물론 이 작가들은 자신들의 반항적 충동을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미치거나 괴물 같은 (소설이나 시 속에서 적절하게 벌을 받는) 여자에게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자아분열, 즉 가부장적 사회의 억압을 수용하고자 하는 욕망과 거부하고자 하는 욕망을 동시에 극화한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성문학에 등장한 미친 여자가 남성 문학과 달리 단순히 여자 주인공의 적대자거나 들러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친 여자는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분신이고 작가 자신의 불안과 분노의 이미지다. 실제로 여성이 쓴 많은 소설과 시에는 미친 여자가 출현한다. - P189

따라서 이 미친 분신은 샬럿과 에밀리 브론테의 한층 반항적인 이야기에서 중요하듯 제인 오스틴이나 조지 엘리엇의 지극히 온건한 소설에서도 중요하다. 고딕 작가와 반 고딕 작가 두부류는 모두 선택받은 수녀와 저주받은 마녀 사이에 있는 에밀리 디킨슨처럼, 또는 고상하고 비판적인 과학자와 분노에 찬 어린애 같은 괴물 사이에 있는 메리 셸리처럼, 자신을 분열된 자아로 재현했다. 여성 작가의 이런 정신분열은 지극히 중요하다. 그것이 19세기 작가들을 (자신을 댈러웨이 부인과 미친 셉티머스 워런 스미스 둘 다에게 투사하는) 버지니아 울프, (자신을 분별 있는 마사 헤세와 미친 린다 콜리지 사이에서 분열시키는) 도리스 레싱) (자신을 석고로 만들어진 성자이자 위험한 ‘늙은 황색‘ 괴물로 본) 실비아 플라스 같은 20세기의 후배 작가들과 연결해주기 때문이다. - P190

가장 잘 알려진 최근의 몇몇 여성 시는 페미니즘을 위해 그런 패러디를 공공연하게 사용했다. 키르케, 레다, 카산드라, 메두사, 헬레네, 페르세포네 같은가부장적 신화의 전통적인 여성 인물들은 모두 최근에 여성창조자의 이미지로 재창조되었고, 이들 인물에 바친 각각의 시는 그녀의 원래 이야기를 재창조했다. - P192

「누런 벽지가 출판되었을 때 길먼은 이 작품을 위어 미첼에게 보냈는데, 미첼은 그녀가 신경쇠약에 걸렸을 때 글 쓰는 것을 금지시켜 그녀의 병을 악화시켰던 장본인이다. 몇 년 후 ‘그가’ 길먼의 이야기를 ‘읽은 뒤 자신의 신경쇠약 치료법을 바꾸었다‘는 소식을 듣고 길먼은 매우 기뻐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나는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말이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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