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짐 히크메트의 시 ‘진정한 여행‘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어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가끔 중년의 나이를 실감하게 될 때면 생각나는 글귀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여행과 같아서 언제까지나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 P51

스마트폰은 물론 휴대전화도 없이 사는 선배가 있어 답답하지 않으냐고 물어봤다. "복잡한 세상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스마트폰을 없애라"고 말한다. 굳이 무인도에 가거나 우주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충분히 고독해질 수 있단다. 그 선배는 "연락이 안 돼 답답한 건 상대방이지 내가 아니다" 라고도 했다. 참 속 편한 사람이다 싶었다.

그 선배 말 중에 적어도 한 가지는 공감할 수 있었다. "두꺼운 사진첩을 들춰보거나 잉크 냄새 맡아가며 신문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재미가 스마트폰보다 훨씬 쏠쏠하다"는 말이었다. - P99

지켜보던 식당 주인이 철지난 개그로 끼어든다. "세상에 못된 견이 두 마리 있어요. 하나는 선입견이요, 하나는 편견이지요. 그걸 다 물리칠 수 있는 견이 바로 백문이 불여일견이구요."
선어회 식당을 하면서 답답한 일이 많다며 푸념을 섞는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처음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얼핏 선입견을 갖게 될 때가 많다. 서로를 좀 알게 되었을 때 자리가 편하다. 오랜 친구가 좋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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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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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없는(?) 스포일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애정하는 겨울서점의 작년 연말 실시간 라이브 방송 이었던가. 가물가물한데. 겨울님이 12월말에 이 책을 읽고, 2021년 올해의 책이 바뀌었다는(또는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더랬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렇지만 응? 물고기? 하고 그냥 지나갔다. 그리고 2월인가 다시 해당 책에 대한 추천 영상. 그러나 책을 추천하는데 책에 대한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책 추천 영상으로. 그냥 믿고 끝까지읽어보라는(이때라도 읽었어야 한다). 1개월 뒤에 스포일러를 포함한 영상을 다시 올리겠다는 얘기와 함께.


그리고 북플의 라로님, 다락방님, 잠자냥님, scott님 등등의 추천, 리뷰. 이러니 읽지 않을 수 없으나 그때 이미 나는 스포일드된 상태. 책 내용도, 리뷰도 보지 않았으나, 이러 저러한 믿는 분들이 이렇게 강추한다는 사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절대 미리 책 정보를 보지 말라는 충고, 중반을 넘어가야 이 책의 진가를 알게 된다는 강조, 반전이 있다는 언급 등등으로 책 내용은 1도 모르지만, - 아니, 어떤 남자 물고기 학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알았지만 - 이미 이러한 상황만으로 상당히스포일드된 상태였다.


그러므로 나의 기대감이 천정부지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그러므로 먼저 읽으신 분들보다 감동이 못미칠 것은 읽기 전부터, 아니 책을 사기 전부터도 뻔했고,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읽거나 아예 읽지 않거나.


그러므로 반전이나 감동에 대해서는 스포일드되어 충분히 전하지 못하겠고(민들레는 지하철에서 읽으면 안 된다, 과알못에게 마지막 반전은 상당한 충격이다), 확실한 것은 룰루 밀러는 정말 정말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것이다. 에세이를 이렇게 쓰는 책을 이전에 읽어본 적이 없다. 마치 잘 짜여진 한편의 추리소설, 스릴러소설을 읽은 것 같다. 에세이에 반전이라니. 작가가 굉장히 섬세하게 책의 전체 구조를 짜고 앞에서 밑밥을 깔고 뒤에서 하나씩 수거해 나가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한 것이다. 사랑의 상실에서 출발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집착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의 그 목적성, 동기부여의 측면이 나에게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이런 구조의 허점인지, 작가의 의도적 설정인지 잘 모르겠다.


룰루 밀러라는 멋진 작가를 알게 된 것으로도 큰 수확이다. 다음 책도 기다려진다. 곱슬머리 남자에서 현재의 배우자로 이어지는 룰루 밀러의 다음 이야기도 더 듣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다윈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에 종의 기원을 추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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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4-11 19: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 제 이름이!!!^^;;
저도요!! 저도 이 책 읽고 다윈의 종의 기원을 꼭 읽어야지 했어요. 어쩄든 저 책 추천 잘 안 하는데 이 책은 그냥 하게 되더라구요.^^;; 리뷰를 읽어 내려오면서 이 책에 대한 분석(?)을 잘 해주셔서 자연스럽게 다시 기억이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04-12 09:2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라로님 책 취향이 저랑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라로님 읽는 책들에 계속 관심 중입니다 ㅎㅎ

mini74 2022-04-12 15: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북플님들 추천으로 읽게됐고 움 역시!하며 읽었어요 *^**

고양이라디오 2022-04-12 18:19   좋아요 2 | URL
저도요^^!

햇살과함께 2022-04-12 21:58   좋아요 2 | URL
왜 개미지옥에서 맛있는 먹이 나눠먹는 개미가 생각나죠? ㅎㅎ
 

보이니츠키 이 비가 지나가면 만물이 생기를 되찾고 가벼운 숨을 쉬겠지요. 그런데 오로지 나에게만은 이 소나기가 생기를 가져다주지 않을 것 같네요. 내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허비되었다는 생각이 마치 유령처럼 낮이고 밤이고 내 숨통을 조여 와요. 내 과거는 없어요. 그것은 하잘것없는 일에 헛되이 낭비되고 말았지요. 그리고 현재는 끔찍스럽게 무의미해요. - P138

옐레나 안드레예브나 그럼, 물론이지. 나는 사실이 무엇이 됐건 간에 애매한 상태보다는 덜 끔찍하다고 생각해. 나에게 맡겨요, 아가씨.
소냐 맞아, 맞아……. 가서 자기가 그 도면을 보고 싶어 한다고 말할게. (나가다가 문가에 서서) 아니, 애매한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러면 최소한 희망이라도 있으니까…. - P161

아스트로프 따분한 농담이야. 자네는 미친 게 아니라 그냥 괴짜일뿐이야. 어릿광대지. 예전에 나는 괴짜들을 모두 환자나 비정상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괴짜야말로 정상적인 인간의 상태라는 거야. 자네는 완전히 정상일세. - P186

아스트로프 (화가 나서 소리 지른다.) 그만해! (진정하며) 우리가 가고 나서 백 년이나 2백 년 뒤에 살게 될 사람들은, 우리가 이 토록 어리석고 따분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았다는 걸 알고 우릴 경멸할 거야. 그들은 아마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겠지. 하지만 우리는 …… 자네나 나나 한 가지 희망밖에는 없어. 나중에 우리가 관 속에서 잠을 잘 때, 어떤 환상이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른다는 희망 말일세. 그게 즐거운 환상이면 더 좋고, (한숨을 쉬고) 그래, 친구. 우리 군 전체를 통틀어 정신이 제대로 박힌, 지적인 인간은 자네와 나, 둘밖에 없었어. - P187

소냐 주세요. 왜 우리를 겁주세요? (부드럽게) 주세요, 바냐 삼촌! 난 삼촌 못지않게 불행하지만, 그래도 좌절하지는 않을 거예요. 내 생명이 스스로 다할 때까지 나는 참고 또 참을 거예요………. 그러니 삼촌도 참아요. - P189

아스트로프 에이! (재촉하는 시늉을 하며) 제발 부탁이니 가지 말아요. 솔직해지세요. 이 세상에 당신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고, 당신에겐 아무런 인생의 목적도 없으며, 관심을 둘 만한 일도 없어요. 그러니 이르는 늦든 당신은 자신의 감정에 어차피 굴복하게 될 겁니다. 이건 피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 일은 하리코프나 쿠르스크 같은 곳이 아니라, 여기, 자연의 품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더 낫지요. 최소한 시적이라는 장점이 있잖아요. 마침 가을 경치도 아름답고…… 여기에 보호림도 있고, 투르게네프 취향의 다 쓰러져 가는 저택들도 있고 하니………. - P191

보이니츠키 (소냐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우리 아기, 난 너무 힘들구나! 오, 넌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를 거야!
소냐 그래도 어쩌겠어요, 살아야지!

사이.

바냐 삼촌, 우리는 살아갈 거예요. 길고 긴 낮과 밤들을 살아갈 거예요. 운명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이 시련을 꾹 참고 견뎌낼 거예요. 우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도, 그리고 늙어서도 안식을 잊은 채 일할 거예요. 그러다 언젠가 우리의 때가 닥치면 불평 없이 죽어 갈 거예요. 그리고 우리 무덤 위에서 이렇게 말하겠지요. 우리는 고통을 겪었고, 눈물을 흘렸고, 괴로워했노라고, 그러면 하느님은 우릴 가엾게 여기시겠죠. 나는 착한 우리 삼촌과 함께 아름답고 찬란하고 멋진 삶을 보게 될 거예요. 우리는 기뻐하면서 지금의 불행을 감격과 미소 속에서 돌아볼 거예요. 그리고 우린 쉴 거예요. 삼촌, 난 믿어요. 뜨겁게, 간절하게 믿어요……. (바냐 앞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그의 손에 머리를 올려놓는다. 지친 목소리로) 우리는 쉴 거예요!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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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레나 안드레예브나 오늘 날씨 좋네요………. 덥지도 않고.

사이.

보이니츠키 목매달기 딱 좋은 날씨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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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이 들 때면 무덤에 가 보라. 그곳에서 생의 참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한 줌의 흙이리니." - P299

육신의 감옥에 갇혀 고통을 사생(寫生)과 글로 승화한 그를 보면 웃음은 최고로 비통한 사람이 발명했듯 긍정은 최고로 절망스러운 사람이 발명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만다. 그리고 꼼짝없이, 내게 주어진 시간에 숙연해진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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