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람이 신문이라도 들고 찾아와 유니스에게 건네주면, 그는 작게 인쇄된 활자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읽지. 이 아이 눈을 망가뜨릴 셈이야?" 유니스의 좁은 인간 관계 내에서는 그녀가 시력이 나쁘다고 알려져 있었고, 교육을 받지 못한 문맹으로서 글을 아는 척할 때 이러한 해결책을 유용하게 사용하곤 했다.
"못 읽는다고요? 글씨가 안 보인다는 말이죠?"
그녀는 어린 시절에는 글을 읽는 법을 배우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점차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글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가르쳐 줄 사람을 구하는 행위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 빌미를 제공할 뿐이었다. 그녀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 열중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을피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이런 식으로 남을 피하거나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동은 습관처럼 굳어졌다. 그녀가 인간을 혐오하게 된 근원적인 이유는 반쯤 잊힌 채.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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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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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루키가 50대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며 쓴 에세이다.

달리기와 함께하는 살아감에 대한 이야기, 늙어감에 대한 이야기, 소설 쓰기에 대한 이야기.

젋은 시절에 쓴 에세이가 아니어서, 30대의 왕성한 체력으로 매년 풀코스 마라톤과 울트라 마라톤을 겁 없이 도전하던 때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이미 몸의 절정기를 지나서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바로 나!)에게 더욱 좋았던 이야기.

30대만큼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빨리 회복되지도 못하는, 노력하지 않으면 보상받지 못하는, 나이 들어가는 몸으로 달리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

하루키가 30대가 아닌 50대에 이 책을 써서 좋았고, 내가 30대가 아닌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이 책을 읽어서 더 좋았다.


하루키 소설을 최소한 7~8권은 읽었으니 적게 읽은 것도 아닌데(물론 하루키 팬들에 비하면 적지만 7~8권이라면 한 작가의 책으로 이렇게 읽은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셜록 홈즈 같은 추리소설 작가가 아니라면 거의 없을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은 도무지 좋아지지 않는다. 작년에 다시 읽은(100자평도 썼지만) <노르웨이 숲>, 그 이전 가장 최근에 읽은 <기사단장 죽이기>.


하루키의 소설은 좋아지지 않았지만, 이 에세이는 서문부터 이 책이 좋아질 것 같았다. 달리기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마음이라서 인가? 왜 이 책이 이렇게 꾸준히 인기 있는지 알겠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 대한 서글픔을 품은 덤덤한 이런 문장이 좋다.

자신을 혹사시키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이제까지 쌓아왔던 체력의 축적만으로도 무난한 기록을 올릴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지불해야 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밖에는 손에 넣을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 P88

기록은 문제가 아니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본들, 아마도 젊은 날과 똑같이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별로 유쾌한 일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역할이 있다. 그리고 시간은 나 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충실하게, 훨씬 정직하게 그 직무를 다하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을 때부터(도대체 그게 언제였을까?)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전진해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요절을 면한 사람에게는 그 특전으로서 확실하게 늙어간다고 하는 고마운 권리가 주어진다. 육체의 감퇴라고하는 영예가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 P187


이렇게 러너가 되길 바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그러나 계속해서 달리는 사이에 달리는 것을 몸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거리도 조금씩 늘어갔다. 폼 같은 것도 갖춰지고 호흡의 리듬도 안정되고 맥박도 차분해져 갔다. 스피드나 거리는 개의치 않고 되도록 쉬지 않고 매일 달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달린다는 행위가 하루 세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 쓰는 일과 같이 생활 사이클 속에 흡수되어 갔다. 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습관이 되고, 쑥스러움 같은 것도 엷어져 갔다. 스포츠 전문점에 가서 목적에 맞는 제대로 된 신발과 달리기 편한 옷도 사왔다. 스톱워치도 구입하고, 달리기 초보자를 위한 책도 사서 읽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러너가 되어간다. - P68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P116

 


오늘은 처음으로 출근 전 아침에 달렸다.

필라테스와 등산 가는 날을 빼면 달릴 수 있는 날인 화목금토인데 화요일은 비가 왔고 목요일은 저녁 일정이 있어서 달리기 일정을 고민하다 수요일은 필라테스 가기 전에 달렸고 토요일은 등산 전날이라 오전에 달려야 하니 오늘도 오전에 달려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러 평소 기상시간 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해뜨기 전이라 추울까 걱정했는데 어제보다 날이 풀려서 생각만큼 춥지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평소 달리던 곳까지 이동하지 않고 아파트 안의 산책길을 달렸다. 산책길이 약간의 경사가 있고 조명이 없는 곳은 어둡기도 하고 아파트 출입구와 만나는 지점에서는 산책길을 나왔다 다시 들어가야 해서 입구를 찾아 헤매느라 페이스가 떨어졌다. 페이스가 떨어져서 힘이 덜 들기도 했고 낯선 길을 달리니 길에 신경쓰느라 달리는 구간의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장거리를 달리려면 페이스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얘기를 실감했다.


이제 나의 적은 추위와 비와 눈이다. 아니, 나의 적은 날씨를 핑계 삼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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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25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ㅑ
인용문도 인용문이지만 햇살과함께 님의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명문이네요! 달리기와 나이듦에 대해 다시 한 번 고개 끄덕입니다. 이렇게 같이 달리는 러너가 있어 행복합니다 ㅠㅠ

햇살과함께 2024-10-25 21:12   좋아요 0 | URL
하루키 인용문에 잘 묻어가기 ㅎㅎ
달리기와 함께 늙어가기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같이 오래 오래 달려요~

독서괭 2024-10-25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새벽달리기 좋지 않나요? 전 달리는데 중간에 동트면서 주변이 밝아지면 그게 참 좋더라고요! 러너 햇살님 달료~~^^

햇살과함께 2024-10-26 08:02   좋아요 1 | URL
새벽달리기 좋네요! 고요한 가운데 혼자 달리다가 어스름 밝아지고 하루가 깨어나는 걸 보는 달리기. 더 춥지 않다면 딱 좋겠습니다만.
오늘도 달렸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100킬로를 달린다는 것은 미지의 체험이었고, 모두 각기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잘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은 인내하며 묵묵히 달려 나갈 수밖에 없다. 강한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려고 하는 급진적인혁명의회를 당통Jacques Danton이나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같은 이프랑스 혁명을 이끈 자코뱅파의 지도자들로 혁명 이후 급진적 공화주의를 주장하며 공포정치를 펼쳤다이 변론을 구사해서 설득하는 것처럼, 나는 신체의 각부위를 열심히 설복한다. 격려하고 매달리고 치켜세우기도 하고질책도 하며 고무도 한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될 일이 아닌가, 지금은 어떻게든 참고 힘내다오, 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면하고나는 생각한다 결국은 두 사람 다 목이 뎅강 날아가 버렸잖아. - P170

자동조종 같은 상태로 몰입해버렸기 때문에 그대로 더 달리고 있으라는 말을 듣는다면, 100킬로 이상이라도 아마 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는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조차 머릿속에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나는 그 이상함을 이상함으로 느낄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는 달린다는 행위가 거의 형이상학적인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행위가 먼저 거기에 있고, 그 행위에 딸린 것 같은 존재로서 내가 있다. 나는 달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P175

앞에서도 썼지만,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듯이 나는 쓰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쓴다고 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고를 형성해간다. 다시 고쳐 씀으로써 사색을 깊게 해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문장을 늘어놓아도결론이 나오지 않고, 아무리 고쳐 써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경우도 물론 있다. 가령 지금이 그렇다. 그럴 때에는 그저 가설을 몇 가지 제시할 수밖에 없다. 혹은 의문 그 자체를 차례차례 부연해갈 수밖에 없다. 혹은 그 의문이 지닌 구조를 뭔가 다른 것과 구조적으로 맞대어 비교하든지. - P185

기록은 문제가 아니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본들, 아마도 젊은 날과 똑같이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별로 유쾌한 일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할이 - P186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역할이 있다. 그리고 시간은 나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충실하게, 훨씬 정직하게 그 직무를 다하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을 때부터(도대체 그게 언제였을까?)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전진해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요절을 면한 사람에게는 그 특전으로서 확실하게 늙어간다고 하는 고마운 권리가 주어진다. 육체의 감퇴라고하는 영예가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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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4-10-25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 초에 읽었는데 내년에 다시 읽어야겠어요ㅎ

햇살과함께 2024-10-25 15:27   좋아요 1 | URL
이 에세이 정말 좋았어요! 하루키 나이대가 되어서 다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10-25 17:43   좋아요 1 | URL
저도 정말 좋아하는 에세이입니다. 달리기 의지를 다시 다지기 위해서 전 매년 읽어야겠어요ㅠㅋ

햇살과함께 2024-10-25 21:09   좋아요 1 | URL
달리기 느슨해질 때 다시 읽기!
 

체중도 순조롭게 줄고, 얼굴 모습도 약간 말끔해졌다. 자기 몸이 이렇게 변화해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젊었을 때보다는 변화에 시간이 걸린다. 젊었을 때 한 달 반이면 가능했던 일이 3개월이 걸리게 된다. 운동량과 달성된 일의 효율도 눈에 띄게 나빠진다. 그러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체념하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으로 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인생의 원칙이며, 그 효율의 좋고 나쁨이 우리가 살아가는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다니고 있는 도쿄의 체육관에는 "근육은 붙기 어렵고 빠지기는 쉽다. 군살은 붙기 쉽고 빠지기는 어렵다"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짜증 나는 사실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 P83

자신을 혹사시키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이제까지 쌓아왔던 체력의 축적만으로도 무난한 기록을 올릴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지불해야 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밖에는 손에 넣을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 P88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P116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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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24 1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 저의 체중은 순조롭게 줄지 않을까요? 하아-

햇살과함께 2024-10-24 11:18   좋아요 1 | URL
ㅎㅎ 저 4주차 끝났는데 1키로 줄었어요! 근데 이건 달리기 효과라기보다 최근에 건강검진 받은 자각효과와 추운 날씨로 맥주 먹는 횟수가 줄어서인 듯요 ㅎㅎㅎ
하루키 소설 안좋아하는데 이 책은 너무 좋네요! 달리기와 늙어감에 대한 사유가 특히.
 

여기에는 ‘철학‘ 이라고까지는 말하기 어렵다 해도, 어떤 종류의 경험칙관찰과 경험에서 얻은 법칙과 같은 것은 얼마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은 적어도내가 나 자신의 신체를 실제로 움직임으로써 스스로 선택한 고통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 P10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P19

그리고 나는 - 그런 여러 가지 흔해빠진 일들이 쌓여서 지금 여기에 있다. 카우아이의 북녘 해안에.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면 때때로 나 자신이 해변에 밀려온 한낱 나무토막에 지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등대 쪽에서 불어오는 무역풍이 유칼리나무를 머리 위에서 산들산들 부드럽게 흔들어댄다. - P21

달리고 있을 때 어떤 일을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대체로 오랜 시간을 달려본 경험이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깊이 생각에 잠기곤 한다. 글쎄, 도대체 나는 달리면서 무엇을 생각하고있는 것일까, 하고.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제까지 달리면서 무엇을 생각해왔는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확실히 추운 날에는 어느 정도 추위에 대해 생각한다. 더운 날에는 어느 정도 더위에 대해 생각한다. 슬플 때는 어느 정도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즐거울 때는 어느 정도 즐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앞에서도 썼듯이,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두서없이 떠올릴 때도 있다. 때때로(그런 것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소설의 괜찮은 아이디어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를 때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 P36

마음이 받게 되는 아픈 상처는 그와 같은 인간의 자립성이 세계에 대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당연한 대가인 것이다. - P40

그러나 계속해서 달리는 사이에 달리는 것을 몸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거리도 조금씩 늘어갔다. 폼 같은 것도 갖춰지고 호흡의 리듬도 안정되고 맥박도 차분해져 갔다. 스피드나 거리는 개의치 않고 되도록 쉬지 않고 매일 달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달린다는 행위가 하루 세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쓰는 일과 같이 생활 사이클 속에 흡수되어 갔다. 달리는 것은지극히 당연한 습관이 되고, 쑥스러움 같은 것도 엷어져 갔다. 스포츠 전문점에 가서 목적에 맞는 제대로 된 신발과 달리기 편한 옷도 사왔다. 스톱워치도 구입하고, 달리기 초보자를 위한 책도 사서 읽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러너가 되어간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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