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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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루키가 50대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며 쓴 에세이다.

달리기와 함께하는 살아감에 대한 이야기, 늙어감에 대한 이야기, 소설 쓰기에 대한 이야기.

젋은 시절에 쓴 에세이가 아니어서, 30대의 왕성한 체력으로 매년 풀코스 마라톤과 울트라 마라톤을 겁 없이 도전하던 때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이미 몸의 절정기를 지나서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바로 나!)에게 더욱 좋았던 이야기.

30대만큼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빨리 회복되지도 못하는, 노력하지 않으면 보상받지 못하는, 나이 들어가는 몸으로 달리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

하루키가 30대가 아닌 50대에 이 책을 써서 좋았고, 내가 30대가 아닌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이 책을 읽어서 더 좋았다.


하루키 소설을 최소한 7~8권은 읽었으니 적게 읽은 것도 아닌데(물론 하루키 팬들에 비하면 적지만 7~8권이라면 한 작가의 책으로 이렇게 읽은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셜록 홈즈 같은 추리소설 작가가 아니라면 거의 없을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은 도무지 좋아지지 않는다. 작년에 다시 읽은(100자평도 썼지만) <노르웨이 숲>, 그 이전 가장 최근에 읽은 <기사단장 죽이기>.


하루키의 소설은 좋아지지 않았지만, 이 에세이는 서문부터 이 책이 좋아질 것 같았다. 달리기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마음이라서 인가? 왜 이 책이 이렇게 꾸준히 인기 있는지 알겠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 대한 서글픔을 품은 덤덤한 이런 문장이 좋다.

자신을 혹사시키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이제까지 쌓아왔던 체력의 축적만으로도 무난한 기록을 올릴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지불해야 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밖에는 손에 넣을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 P88

기록은 문제가 아니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본들, 아마도 젊은 날과 똑같이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별로 유쾌한 일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역할이 있다. 그리고 시간은 나 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충실하게, 훨씬 정직하게 그 직무를 다하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을 때부터(도대체 그게 언제였을까?)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전진해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요절을 면한 사람에게는 그 특전으로서 확실하게 늙어간다고 하는 고마운 권리가 주어진다. 육체의 감퇴라고하는 영예가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 P187


이렇게 러너가 되길 바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그러나 계속해서 달리는 사이에 달리는 것을 몸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거리도 조금씩 늘어갔다. 폼 같은 것도 갖춰지고 호흡의 리듬도 안정되고 맥박도 차분해져 갔다. 스피드나 거리는 개의치 않고 되도록 쉬지 않고 매일 달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달린다는 행위가 하루 세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 쓰는 일과 같이 생활 사이클 속에 흡수되어 갔다. 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습관이 되고, 쑥스러움 같은 것도 엷어져 갔다. 스포츠 전문점에 가서 목적에 맞는 제대로 된 신발과 달리기 편한 옷도 사왔다. 스톱워치도 구입하고, 달리기 초보자를 위한 책도 사서 읽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러너가 되어간다. - P68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P116

 


오늘은 처음으로 출근 전 아침에 달렸다.

필라테스와 등산 가는 날을 빼면 달릴 수 있는 날인 화목금토인데 화요일은 비가 왔고 목요일은 저녁 일정이 있어서 달리기 일정을 고민하다 수요일은 필라테스 가기 전에 달렸고 토요일은 등산 전날이라 오전에 달려야 하니 오늘도 오전에 달려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러 평소 기상시간 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해뜨기 전이라 추울까 걱정했는데 어제보다 날이 풀려서 생각만큼 춥지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평소 달리던 곳까지 이동하지 않고 아파트 안의 산책길을 달렸다. 산책길이 약간의 경사가 있고 조명이 없는 곳은 어둡기도 하고 아파트 출입구와 만나는 지점에서는 산책길을 나왔다 다시 들어가야 해서 입구를 찾아 헤매느라 페이스가 떨어졌다. 페이스가 떨어져서 힘이 덜 들기도 했고 낯선 길을 달리니 길에 신경쓰느라 달리는 구간의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장거리를 달리려면 페이스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얘기를 실감했다.


이제 나의 적은 추위와 비와 눈이다. 아니, 나의 적은 날씨를 핑계 삼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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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25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 ㅑ
인용문도 인용문이지만 햇살과함께 님의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명문이네요! 달리기와 나이듦에 대해 다시 한 번 고개 끄덕입니다. 이렇게 같이 달리는 러너가 있어 행복합니다 ㅠㅠ

햇살과함께 2024-10-25 21:12   좋아요 0 | URL
하루키 인용문에 잘 묻어가기 ㅎㅎ
달리기와 함께 늙어가기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같이 오래 오래 달려요~

독서괭 2024-10-25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새벽달리기 좋지 않나요? 전 달리는데 중간에 동트면서 주변이 밝아지면 그게 참 좋더라고요! 러너 햇살님 달료~~^^

햇살과함께 2024-10-26 08:02   좋아요 1 | URL
새벽달리기 좋네요! 고요한 가운데 혼자 달리다가 어스름 밝아지고 하루가 깨어나는 걸 보는 달리기. 더 춥지 않다면 딱 좋겠습니다만.
오늘도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