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에 관하여
질병은 얼마나 흔한 것인지, 병이 일으키는 정신적 변화는 얼마나 엄청난지, 건강의 빛이 스러질 때 드러나는 미지의 영역은 얼마나 놀라운지, 약한 독감에 걸리면 얼마나 황폐하고 삭막한 영혼이 드러나는지, 체온이 조금 오르면 어떤 절벽과 풀밭이 화사한 꽃들로 어른거리는지, 병을 앓을 때면 우리 내면의 얼마나 굳센 참나무 고목들의 뿌리가 뽑히는지, 이를 뽑을 때면 어떻게 죽음의 구덩이에 굴러떨어져서 머리 위로 차오르는 소멸의 물결을 느끼다가 천사들과 하프 연주자들이 눈앞에 있을 거라고 느끼며 깨어나서는 치과의 의자에 앉은 채 수면으로 떠오르다가 "입을 헹구세요. 입을 헹구세요."라는 치과의사의 말을 천국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환영하는 신의 인사로 착각하는지를 생각해 볼 때,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을 자주 해야 하므로, 이런 일과 무수히 다른 것도 생각할 때, 질병이 문학의 중요한 주제로서 사랑이나 전쟁, 질투옆에 놓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참 이상하다. - P66
여성의 직업
글을 써서 받은 보수로 페르시아 고양이를 사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 있을까요? 하지만 잠깐 기다리세요. 글은 무엇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내 글은 어느 유명한 남자의 소설에 관한 것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것을 쓰는 동안 책을 논평하려면 어떤 환영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환영은 여자였지요. 그녀를 잘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유명 - P131
한 시 「집안의 천사의 여주인공 이름을 그녀에게 붙여 주었습니다. 내가 논평을 쓸 때면 그녀가 나와 내 글 사이에 끼어들곤 했지요. 나를 성가시게 하고 시간을 허비시키면서 몹시 괴롭혔기에 마침내 나는 그녀를 죽였습니다. 더 젊고 더 행복한 세대에서 자라난 여러분은 그녀에 대해 들어 보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집안의 천사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겠지요. 가급적 간단하게 그녀를 묘사해 볼까요? 그녀는 강한 공감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단히 매력적이지요. 지극히 이타적입니다. 가정 생활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매일매일 자신을 희생합니다. 닭고기가 나오면 다리를 집습니다. 외풍이 들어오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앉지요. 간단히 말해서 자기 나름의 마음이나 소망이 전혀 없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나 소망에 공감하도록 생긴 여자입니다. 무엇보다도(이 말은 할 필요도 없지만) 그녀는 순결합니다. 그녀의 순결함은 그녀의 가장 큰 아름다움이라고, 그녀의 홍조는 그녀의 큰 기품이라고 여겨집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말기에는 집집마다 천사가 있었지요. 내가 글을 쓰게 되었을 때 처음 몇 단어를 쓰자마자 그녀와 맞닥뜨렸습니다. 내가 글을 쓰는 종이에 그녀의 날개 그림자가 드리워졌지요. 그녀의 스커트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방 안에 퍼졌습니다. 내가 유명한 남자의 소설을 논평하려고 펜을 손에 쥐자마자 그녀는 미끄러지듯 내 뒤에 와서 속삭였습니다. ‘얘야, 넌 젊은 아가씨야. 남자가 쓴 책에 관해서 쓰고 있구나. 공감을 보이렴. 다정하게 대하고, 아첨도 하고 속이려무나. 우리 여성의 온갖 기교와 간계를 발휘하렴. 네게 자기 나름의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려무나. 무엇보다도 순결해야 해.‘ 그 - P132
러고 나서 그녀는 내 펜을 잡아 이끌어 가려는 듯했습니다. 이제 내가 언급하려는 행동은 어느 정도 내 공이라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 공은 내게 일정한 수입(연간 500파운드라고 할까요?)을 물려줘서 내가 생계를 위해 순전히 매력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게 해준 훌륭한 조상들에게 돌아갑니다. 나는 몸을 돌려 그녀를 보고 그녀의 목을 움켜잡았지요. 온 힘을 다해 그녀를 죽였습니다. 내가 고발당해 법정에 선다면, 내 행동은 자기방어였다고 변명할 겁니다.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를 죽였을 테니까요. 그녀는 내글에서 심장을 잡아 뽑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펜을 종이에 대는 순간 알았듯이, 자기 나름의 마음이 없다면, 인간관계나 도덕, 성에 관해 진실이라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표현할수 없다면, 소설에 대해서도 논평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여자는 이런 문제들을 자유롭고 솔직하게 다룰 수 없다고 집안의천사는 주장합니다. 성공하려는 여자는 상대를 매혹하고, 회유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요. 그래서 나는 그녀의 날개 그림자인지 빛나는 후광이 내 종이에 드리워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잉크병을 들어 그녀에게 던졌습니다. 그녀는 여간해서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허구적 성격이 그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지요. 환상을 죽이기는 실체를 죽이기보다 훨씬 어려우니까요. 내가 그녀를 해치웠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는 늘 되돌아왔습니다. 결국 나는 그녀를 죽였다고 우쭐해했지만 치열한 싸움을 벌여 와야 했습니다. 그많은 시간에 그리스어 문법을 배우거나 모험을 찾아 세계를 방랑했더라면 더 좋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실재하는 경험이었지요.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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