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읽을 때도 ‘복잡한 것투성이’라는 문장 있어서 띄어쓰기 잘못된 거 아닌가 했는데, 이 책에도 ‘모르는 것투성이’가 나와서 찾아 봄.

-투성이는 ‘그것이 너무 많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물,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서 앞말에 붙여서야 한다고. 실수투성이, 흙투성이 등등은 자연스러운데 것투성이는 영 낯설게 보이네. 띄어쓰기 어려워.

나는 이날 이때껏 철들어 보지 못한 아이 같다. 내 둘레에는 온통 모를 것, 모르는 것투성이여서 어디에나 코를 디밀고 아무나 붙들고 ‘왜‘냐고 묻는다. 요즈음에는 사람 붙들고 물으면 짜증스러워할까 봐 흐르는 물에게 스쳐 가는 바람에게 떨어지는 나뭇잎에게까만 하늘에게 묻고 또 묻는다. 나는 꿈만 먹고 사는 게으르디게으른 늙은이, 잠이 많아 꿈도 많은, 한 발을 저승에 내딛고 있는 ‘형이상학자‘(?)일지도 모르겠다. - P4

돈 되는 기술, 능력, 학위만 좇도록 만드는 교육은 생각 없이 살도록, 생각할 시간조차 꿈꾸지 못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꿈꿀 수 없으면 한 사람의 삶도 세상도 제자리를 맴돌기 십상이다. 철학은 올바른 가치관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길을 비추는 등대 같은 것이다. 물질 만능 시대에 휘둘려 갈피를 못 잡는 이들에게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형이상학은 그 철학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주춧돌이자 뼈대이다. - P7

진리는 강요할 수 있거나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철학 특히 형이상학은 ‘검증‘과 ‘반증‘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있을 때에 있을 데에 있을 것만 있고, 없을 때에 없을 데에 없을 것이 없는 ‘이론’. 그 안에 사랑과 미래에 대한 꿈을 가득 담은 가장 바탕이 되는 몇 마디 말이 ‘오선지‘ 노릇을 해야 하고, 그 위에 가락이 흘러야 한다. 우리는 그 가락이 흐르는 크고 작은 결에 몸을 실을 수 있어여 한다. - P7

‘틀릴 수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고 ‘오차 범위‘라고 얼버무린다. 누리의움직임에는 오차라는 게 없다. 틀림이 없다. 오차는 사람 머릿속에서만 생겨난다. - P37

산톨에 끝이 있다는 것, 겉과 갓이 있다는 것, 그것들 사이에 틈이 있다는 것, 그 틈 사이에서 힘이 늘고 줄어들어 목숨이 길어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모든 톨에는 끝이 있다는 것, 저마다 어느 땐가는 새로 움트는 삶톨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것. 마치 물결이 높낮이를 이루고, 바람결이 셈과 여림을 가누고, 햇살이 톨과 결로 번갈아 바뀌어 퍼지고, 온통 톨로만 이루어진 듯한 땅별 안에도 깊숙이에서는 무르녹아 뜨거운 힘으로 바뀌는 흐름이있어 서로 이어져 있듯이, 끊어짐이나 갈라섬은 어쩌다 있는 짬, 틈, 새(사이), 참에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 P39

‘삶이 힘이다. 이 힘이 함과 됨으로 나뉘고, 함이 있음의 힘이고, 됨이 없음의 힘이 되더라도 이 둘을 아우르는 힘은 삶에서 나온다.‘ 이 생각은 점점 더 굳어진다. 기독교의 신은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나는 빛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로고스)에는 깊은 뜻이 있다. ‘나는 어둠이요, 죽음이다‘라고 바꾸어도 그 뜻은 바뀌지 않는다. 죽음도 삶의 한 모습이고 삶의 그림자이니까.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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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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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의 눈으로 본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속 영국과 영국을 둘러싼 세계의 시대적 맥락과 크리스티의 개인적 삶이 16가지 단서를 통해 흥미롭게 이야기되며 애거서 크리스티 전작 읽기를 유발하는 책이다! 일단 첫 작품인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부터 순차적으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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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퍼블릭 스쿨이 누리는 세계적인 인기가 《해리포터》 같은 콘텐츠의 엄청난 성공과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스쿨이 영국의 사립학교를 재현하기 때문이다. 물론 호그와트의 만찬장은 이튼이 아니라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다. 그리고 헤르미온느 같은 똑똑한 학생은 입학할 수 없다. 이튼은 아직도 여학생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다. - P117

이녹아든처럼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오랜 세월이 지나서 갑자기 나타나는 이야기는 실제로 옛날부터 유럽 곳곳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었다. 테니슨이 서사시로 만든 이후로도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아예 ‘이녹아든 플롯‘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 P126

그래서인지 애거서는 누군가를 특정할 때 외모보다 행동거지를 더 중요하게 다루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장례식을 마치고》일 것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코라가 장례식에 나타났을 때 애버네시 가족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무 때나 불쑥불쑥 말하는 습관이며 한쪽으로 고개를 숙이는 버릇 등이 완벽하게 코라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코라의 특징이었던 만큼 그것만 잘 흉내 낸다면 쉽게 코라로 위장할 수도 있을 터였다. 《13인의만찬》에서는 바로 그 사실을 짚어낸다. 헤이스팅스는 목소리와 걸음걸이가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푸아로는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바로 그렇기에 그것들이 누군가로 가장하는 데 제일 쉽게 이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남의 특징을 포착하는 일, 그 특징을 모방하는 일, 그리고 그것이 모방일 뿐이라는 점을 밝혀내는 일련의 전개가 실타래처럼 얽히는 순간이다. - P129

추리소설 작가로서 최고의 성공을 거둔 뒤에도 애거서는 "나는 여전히 작가인 척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에 휩싸여 있다"라고 고백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가 창조해낸 캐릭터들을 사랑하지도, 심지어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의 정체성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그 부분에 대해 답을 한 적이 없다. 실종사건에 대해 끝까지 굳게 입을 다물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애거서가 왜 그때 남편 애인의 이름을 썼는지 절대로 알 수가 없다. - P130

제1, 2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엄청난 피해와 수많은 변화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단 한 차례도 본토를 침략당한 경험이 없었던 영국인들에게 세계대전은 특히나 낯선 경험이었다. 전쟁터로 떠난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향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물자부족 같은 일상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애거서의 작품에는 마치 생활사 교과서의 부록처럼 사람들의 내핍생활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많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에서 잉글소프 노부인은 전시에는 어떤 것도 낭비할 수 없다면서 휴짓조각까지도 모아서 자루에 넣어 보낸다. - P133

배급제는 1945년 종전과 함께 서서히 폐지되었는데, 완전히 폐지된 것은 1954년이 되어서였다. 1950년에 나온 《예고 살인》에서 배급제로 인한 궁핍함이 모티브가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흥미롭게도 배급제의 효과는 그다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952년 시점에서 그동안 무려 12년 동안 시행되었던 배급제의 영향을 살펴본 전문가들은 "영국인의 평균적인 영양 상태가 오히려 좋아졌다"라는 결론을 내렸다.15 사람들은 적게 먹고, 건강한 음식을 선택하는 식습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식료품의 수입이 어려워지자 농민들은 필요한 식재료를 직접 생산하게 되었다. 정부는 식재료를 둘러싸고 그전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과학적인 통제와 배분‘을 도입해서 국민 전반의 영양을 잘 관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 P139

기차에 비해 비행기는 인간의 자율성을 훨씬 더 박탈하는 이동 수단이다. 좌석에 앉자마자 안전벨트를 매야 하고, 협소한 공간에서 움직임이 더욱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창밖 풍경도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기차에 비하면 단조롭기 그지없다. 그런데 애거서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녀는 비행기보다 공항에 더 큰 불만을 가졌던 것 같다. 그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죽음을 향한 발자국》에 나오는 힐러리의 독백이다.

공항은 어딜 가나 다 비슷하게 생겼고, 이상하게 아무런 특성도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공항은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탓에 어느공항에 가더라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마치 무국적자가된 듯한 묘한 느낌이 든다. …… 이렇게 형편없는 곳인데 왜 그렇게 일찍 나와 대기하라고 하는 것인지!! - P153

애거서는 가장 힘들게 썼던 작품으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1939)를 꼽았다. 스스로 꼽는 최고작도, 제일 좋아하는 작품도 아니지만, 자신이 쓴 어떤 작품보다 ‘장인정신‘을 많이 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작품이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영어판과 번역판 모두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킨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 P163

그런데 나중에는 ‘영국인 근성(Englishness, Britishness)‘이라는 말도 나오게 된다. 섬나라 근성과 영국인 근성은 사실 상호 호환이 가능한 말이다. 그런데 섬나라 근성이 주로 다른 나라나 민족을 무조건 싫어하고 경멸하는 배타성을 이야기한다면, 영국인 근성은 ‘우리는 이렇다‘는 자기정체성과 관련해 쓰이곤 한다. 이처럼 정체성을 강조할 때는 보통 ‘영국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결국 동전의 양면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다른 나라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그러면서 자기 정체성이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린다 콜리 (Linda Colley) 같은 학자들은 그런 영국이 18세기에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잦은 전쟁으로 영국이 프랑스라는 타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내부의 통합적 정체성을 만들어냈다는 시각이다. 물론 나는 《지도 만드는 사람》을 통해 밝혔듯이 영국인의 정체성이 그보다 훨씬 빨리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16세기 초 헨리 8세가 로마와 결별하는 순간에 이미 생겨난 것으로 본다 - P171

그 특성을 적확하게 표현한 대목을 《마술 살인》에서 찾을 수 있다. 마플과 루이스 세러콜드는 사람이 갖춰야 할 ‘균형 감각‘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마플이 보기에 영국 사람들의 균형 감각이란 중도가 아니라 패배주의에 치우친 듯하다. 마플은 영국인들은 전쟁에서조차 승리보다 패배하고 퇴각한 일에 훨씬 더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외국 사람들은 왜 우리가 덩케르크(Dunkerque) 철수를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라고 말한다. 영국인들은 승리를 기뻐하는 일이 마치 패전국에 못 할 짓을 하는 것처럼 느끼며 ‘당황스럽다는 듯‘ 행동한다는 것이다 - P172

그런데 ‘승부‘ 혹은 ‘플레이‘라는 말은 이미 시합이나 게임 혹은 싸움을 전제로 한 말이다. 바로 그 시합이나 게임은 또 다른 영국인의 주요 특성이다. 학자들이 영국인들은 ‘게임에 대한 강박적인 선호‘를 지니고 있다고 정의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의 인기 스포츠는 거의 다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19세기에 럭비 스쿨을 필두로 영국의 사립학교들이 많은 스포츠의 규칙들을 정하면서 대부분의 근대 스포츠를 만들어냈다. 영국 정부는 일찌감치 결투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는데, 어떤 이들은 결투를 못하게 된 젊은이들이 대체물로 스포츠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 P173

이 대부호들에게 단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초라한 출신을 완전하게 상쇄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였다. 유럽, 특히 영국의 왕족이나 귀족의 타이틀은 상류사회로의 진입을 보장해주는 가장 확실한 통행권이었다. 그런 열망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1890년대 미국에서는 <작위를 가진 미국인(Titled Americans)》이라는 잡지가 큰 인기를끌었다. 해외의 귀족과 결혼에 성공한 미국인의 신상과 결혼 스토리, 그리고 현재 결혼 가능한 해외 귀족들의 명단과 자세한 신상 정보를 담은 책이었다.
그리하여 영국에는 엄청난 지참금을 들고 귀족 가문에 시집온 미국 신부들이 생겨났다. 영국인들은 그런 신부들을 ‘달러 프린세스(dollar princesses)‘라고 불렀는데, 그 별명에는 조롱과 비아냥이 다분히 담겨있다. 하지만 이들이 영국으로 시집오는 덕분에 영국 귀족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적어도 한 세대 동안 연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TV 시리즈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의 여주인 코라가 미국인으로 설정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코라가 들고 온 지참금으로 위기에 놓였던 저택 다운튼 애비는 한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 P180

애거서는 1900년대 초의 하인들은 엄청나게 솜씨가 좋았다고 회고했다. 그랬기 때문에 당시 하인들에게는 일종의 ‘전문가로서 자긍심‘이 있었다. 게다가 모종의 신비한 특권의식 같은 것이 있어서 가게 점원 같은 사람들을 업신여겼다. 애거서는 아마도 이때 계급적 경멸이 계서적 사다리에서 서로 가장 가깝게 위치한 집단들 사이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수간호사가 하녀를 무시하듯이 말이다.
1901년경 영국에서는 여성 인구의 3분의 1이 하녀로 일했다. 전간기에는 그 숫자가 4분의 1로 약간 줄어들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여성이 젊었을 때 한 번쯤은 하녀의 삶을 경험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0년대 영국 언론들은 ‘하인이 사라진다‘라는 주제로 관련 기사를 크게 내보냈다. 빅토리아 시대의 충직한 하인들이 곧 없어질 것이라면서 ‘좋았던 옛 시절‘의 향수를 듬뿍 담은 기사들이었다. - P193

그 정도로 많은 수가 하인으로 일했다면 이들은 당연히 근대 영국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움직임이었던 ‘노동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하인은 노동계급의 역사에서 아예 배제되어버린 직종이었다. 노동사 연구를 이끌었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하인의 노동을 단순한 재생산(reproduction)의 영역에 속한다고 규정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로지 상품의 생(commodity production)만을 강조했고, 가사일 같은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하인들은 노동운동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가게 점원들까지도 나서서 조직했던 노동조합을 조직할 생각조차하지 않았다. 최근 학자들은 이들이 노동운동에 나서지 않았던 이유를 고용주와 하인의 관계에서 찾는다. 주인과 하인 사이에는 일종의 가족 같은, 애정 어린 유대감이 있었다는 말이다. - P194

하인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는 고용주가 자신이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모범을 먼저 보여주어야 했다. 그 원칙의 제1 항목은 하인을 향해 예의를 갖추는 일이었다. 어린 애거서가 받았던 최초의 예절교육도 하인들에게 예절을 지키는 일이었다. 애거서의 어머니는 "네게 무례하게 굴 수 없는 위치에 놓인 사람에게 항상 공손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인을 부르는 호칭 또한 계급적 구분이 분명히드러나는 장치였다. 요리사는 근속 연수에 상관없이 항상 ‘미시즈(Mrs)‘라고 불렸고, 하녀는 제인, 메리, 이디스 같은 하녀에 어울리는 ‘적절한 이름‘을 가져야 했다. 바이올렛, 로저먼드, 무리엘 같은 이름은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 P195

영국은 아직도 ‘U and Non-U(Upper class and Non-Upper class, 상류층과 비상류층)‘을 구별하는 ‘분명한 분별 기준‘이 있는 나라다. 냅킨(napkin)은 상류층의 용어이고, 중하류층은 냅킨을 서비엣(serviette)이라고 부른다. 중하류층은 후식을 디저트나 스위트라고 부르지만, 상류층은 푸딩이라고 부르기를 고집한다. 중상류층이 2~3인용 안락의자를 소파(sofa)라고 부르는 데 비해 그 아래 계층은 세티(settee) 혹은카우치(couch)라고 부른다. - P199

마녀술에 비교해볼 때 관상은 그렇게 심하게 박해받지 않았다. 오히려 버젓이 학문의 한 영역으로 자리를 차지해왔다. 놀랍게도 관상은 문명의 발생과 더불어 생겨났다고 알려진다. 이집트, 인디아, 중국 등 고대 문명권 대부분에서 관상과 관련된 석판이나 우화 들이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시대에 관상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는 《관상학》의 권위를 업고 학문으로 대접받았다. 관상은 천문학과 점성술, 때로는 의학과 결합하곤 했으며, 지배계층은 충성스러운 신하와 배신자를 구별하기 위해 중요한 자리에 관상가를 대동했다. 이후 관상은 얼굴뿐만 아니라 손금, 점, 몸짓이나 손짓, 심지어 그림자를 보는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면서 발전하기도 했다. - P207

애거서가 관상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어찌 보면 추리작가로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관상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던 분야가 바로 범죄학이었기 때문이다. - P209

관상을 가장 사악하게 이용한 집단은 독일의 나치였다. 1930년대 독일 과학계에서는 인종별 분류를 위해 관상, 골상과 수상 및 눈(안구의 홍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인종적 분류체계를 고안해냈다. 나치는 이를 토대로 ‘열등한 종족‘인 유대인을 색출했다. 이처럼 관상은 20세기 전반기까지 범죄학이며 우생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활용되고 있었기에 오늘날의 기준을 적용해 선뜻 ‘미신‘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애매한 지점이 있다. - P210

실제로 심령술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전쟁 중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더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사회 전반에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심각한 트라우마를 불러일으켰다. 그런 상황에서 이미 ‘다른 세상‘에 속해버렸지만, 망자와 어떤 식으로든 교신할 수 있다는 믿음은 슬픔에 빠진사람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바가 있었다. - P211

실제로 애거서는 심령술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아마 어머니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애거서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갑자기 알아내는 능력이 있었고, 심령술에 심취했는가 하면 조로아스터교를 비롯해 온갖 종교를 두루 섭렵한 ‘영적 기운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애거서가 추리소설 작가라는 사실이다. 추리소설은 당시의 심령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 P212

추리소설과 심령술이 모두 19세기 중반에 태동했고, 둘 다 미스터리를 풀고자 하는 목적성을 띤다는 사실에서 강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윌리스는 또한 탐정이나 심령술사 모두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죽은 사람이 말하도록 부추기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비록 추리물에서는 망자가 실제로 돌아와 말할 수는 없지만, 탐정이 그를 대신하곤 한다. 탐정은 망자가 남겨둔 실마리를 추적하고 궁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며 위로를 전하는 존재다. - P213

1926년 12월 애거서가 실종되었을 때 코넌 도일은 애거서의 장갑을 구해다 유명한 영매에게 갖다주면서 그녀의 행방을 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애거서는 심령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결코 코넌 도일처럼 심령술에 빠지지는 않았다. 물론 한시대가 지나간 탓도 있을 것이다. 심령술 열풍은 1930년대가 되면서 수그러들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제1차 세계대전 때와 같은 심령술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한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사람들이 죽음은 가까이 있는 것,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학습효과를 장착하게 된 탓이다. - P214

보통 거시사가 ‘조선시대 농민은 일반적으로‘와 같은 식으로 전개된다면, 미사는 반드시 ‘옥천에 살던 농민 삼복이‘처럼 실명을 추적한다. 거기서 한 발 나아가 삼복이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그 관계망을 복원한다. - P220

미시사의 또 다른 특징은 일반적인 역사서술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삶을 주목한다는 것이다. 애거서의 작품세계에서 소외계층이라면 주로 하인들일 것이다. 애거서는 다른 어느 추리작가보다 하인에 대해 많이 다루었다. 그런데 하인 말고도 탁월하게 묘사해낸 소외집단이 있다. 바로 노인이다. 애거서만큼 노인을 많이 등장시키면서 그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헤친 작가는 많지 않다. 특히 애거서는 나이든 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했다. - P221

어디 그뿐이랴. 미시사는 거시사가 상정하는 집단적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 개인의 삶을 포착해낸다. 이것은 미시사가 지닌 아주 중요한 매력이자 특징이다. 그래서 대공황, 전쟁, 인권운동, 과학적 발견 등 보통 역사에서 다루는 굵직한 사건들이 개인에게는 무의미하거나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그런 사례 가운데 백미는 《죽은 자의 어리석음》에 나오는 대화다. - P222

또 있다. 미시사는 한 사람에게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인정한다. 거시사가 ‘영웅 XX‘ 혹은 ‘희대의 학살자 XX‘처럼 한 인물에게 하나의 대표적인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과 달리 미시사는 상황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유동적 정체성‘ 혹은 ‘관계를 열어두는 행위‘라고 말한다. 애거서의 작품에는 전혀 뜻밖의 사람이 범인으로 바쳐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특성 때문에 한 사람에게 내재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관찰하는 데 매우 유용한 텍스트다. - P223

마지막으로, 미시사는 이야기체의 역사를 지향한다. 어떤 사건이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행위자, 목격자, 기록자의 증언과 해석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곤 한다. 이처럼 같은 사건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을 다성성(多聲性)이라고 부른다. 그런 이야기들은 때때로 이질적이고 상충하며, 이야기가 섞이면서 심지어 진화하기도 한다. 미시사가들은 이런 복잡한 이야기들을 단순화하지 않고 가능한 한 그대로 적으려 한다. 그러려면 이야기체로 쓰는 방법이 최선이다. 다성성을 잘 보여주는 애거서의 작품으로 《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와 《회상 속의 살인》을 꼽을 수 있다. - P224

1922년 애거서는 무려 열 달에 걸쳐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캐나다를 돌았으며, 하와이에서 한 달 동안 휴가를 보냈다. 그 경험은 그녀의 세계관을 상상할 수 없을 만치 넓혀놓았다. 평생 해수욕을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애거서는 남아프리카의 뮤젠버그(Muizenberg) 해변에 수영하러 갔다가 처음으로 서핑을 경험하기도했다. 애거서는 그 후로도 서핑을 즐겼으며 자신이 영국 여성 중에서 최초의 서퍼였다는 사실을 평생의 자랑거리로 여겼다. - P231

심한 것도 있다. 《침니스의 비밀>에서 앤서니 케이드가 자신이사건에 휘말리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다. 모든 일은 약 3주전 불라와요(Bulawayo)에서 비롯되었다. 불라와요는 영제국 변방의식민지로 앤서니는 그곳을 이렇게 묘사한다. "영국은 오직 영국만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는 영국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하는 종류의 곳이지요." 기가 막히는 표현이다. 식민지가 자기를 쳐다봐주지 않는 본국을 짝사랑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 P237

이것은 메리 루이스 프랫(Mary Louis Pratt)이 《제국의 시선》을 통해 설파한 ‘반정(反征服, anti-conquest)‘이라는 용어를 떠오르게 한다. 반정복은 제국주의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들의 결백을 지켜내고 싶었던 유럽의 부르주아 주체들이 활용한 재현 전략이다. 이 전략은 유토피아적이고 순수해 보여서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권위를 창조해낼 수 있었다. - P242

애거서의 소설은 주로 20세기에 집필된 것이지만 그 내용은 19세기말 제국의 영광과 빅토리아 시대의 정서를 담고 있다. 20세기 후반 그 소설에 열광했던 시간은 영제국의 헤게모니를 자연스럽게 내재화하는 훈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21세기에도 애거서의 콘텐츠는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제국주의를 문화적 현상으로 보자면 ‘식민‘과 ‘탈식민‘의 시간적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중요한 것은 식민지의 정치적 종속이 아니라 ‘식민 세력이 타자의 몸과 공간에 스스로를 새겨 넣는 순간‘인 것이다. 애거서가 소설 속에 녹여 넣은 ‘영원한 영국(Forever England)‘을 이제는 좀 더 냉정한 시선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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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비 오는 바닷가에서 책맥 하기~!


전간기(戰間期): 제1차 세계 대전 종결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발발까지 즉, 기본적으로는 1918년 11월 11일에서 1939년 9월 1일까지의 시대이다. 세계사 전체에서, 특히 유럽의 역사에서 중요하다.

《사막에 내리는 눈》은 결국 출판되지 못했는데, 애거서는 뒤끝을 발휘해서 거의 20년이나 지난 후에 《나일강의 죽음》(1937)을 통해 그 작품을 살려냈다. 오터번 부인이 향토색을 입히려고 이집트까지 와서 집필한다는 책의 제목이 <사막의 얼굴 위의 눈(Snow on The Desert‘sFace)》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소설 속 패러디라 할지라도 작품의 제목으로는 상당히 유치하다. 아마도 애거서가 나름의 유머 감각을 발휘한 때문이리라. - P21

그러다가 근처에 살고 있던 벨기에 난민 집단이 생각났다. "내 탐정이 벨기에인이면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며 은퇴한 경찰을 떠올렸다. 푸아로가 평생의 시리즈가 될 줄 전혀 몰랐던 애거서는 애초에 푸아로를 너무 나이 들게 설정했다며 두고두고 후회했다. "지금쯤 푸아로는 100세도 넘었을 거야"라면서 말이다. - P24

《푸른 열차의 죽음》에는 황금기 추리소설의 지향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대목이 있다. 푸아로는 기차에서 만난 캐서린 그레이가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책이 왜 잘 팔릴까요?"라고 묻는다. 캐서린은 "사람들에게 흥분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겠죠"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이 시대의 추리물은 전쟁후 피폐해진 일상에서 벗어나는 듯한 환상을 주었다. 범인을 추리하는 일이 ‘지성을 간지럽히는 깃털과 같은 자극‘을 주었는가 하면, 거의 모든 범죄가 탐정의 뛰어난 추리로 깔끔하게 종결됨으로써 독자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특히 소프트보일드 추리물은 선인과 악인을 선명하게 구별하는 경향이 있는데, 악인을 찾아 처벌하는 결말은 혼탁한 사회에서 종국적으로 도덕성이 회복된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다." - P31

《13인의 만찬》에서 유명한 여배우 제인 윌킨슨이 푸아로에게 남편을 몰아내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자, 푸아로는 "나는 이혼을 위한 조사 같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고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상류사회에서 실제 탐정들이 맡았던 주 업무가 이혼소송을 위한 뒷조사였음을 생각해보면 푸아로는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그야말로 ‘소설 속의 탐정‘일 뿐이다. - P33

집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누구나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집을 소재로 한 애거서의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해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집이라는 모티브는 특히 영국인들에게 크게 어필했다고 알려진다. 그들은 실제로 집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으로유명하다. 이만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격언인 ‘영국인에게 집은 성(城)이다‘가 떠오를 것이다. 이 격언이 사생활을 중시하는 영국인의 방어적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라면, 영국인들에게는 조금 다른 형태의 집에 대한 집착이 또 있다. 자기들이 발 딛는 곳 어디에나 집부터 짓고 보는 독특한 습성이 그것이다. 오죽하면 제러미 팩스먼(JeremyPaxman)이 ‘영국인들에게 집은 조국의 대체재다‘라는 말을 했을까? 20세기 초에는 "독일인은 독일에 살고 로마인은 로마에 살고 튀르크인은 튀르크에 산다. 그러나 영국인은 집에 산다"라는 시가 나왔을정도다. - P41

그렇다면 애거서 자신의 집은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었을까. 애거서가 애슈필드를 대신하여 사들인 그린웨이 저택은 오랫동안 애거서의 진짜 집 역할을 했다. 애거서는그린웨이를 모티브로 삼아 《회상 속의 살인》, 《0시를 향하여》, 《죽은자의 어리석음》 등을 썼다. 애거서는 오랫동안 그린웨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가 개최하는 작문경시대회에서 교열을 보고 심사위원을맡아 봉사했다. 1976년 애거서가 죽은 뒤 딸 로절린드가 그린웨이에서 살았지만 결국 2000년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에 넘겨졌다. 요양원이나 호텔로 개조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거서가 희망했던 ‘집의 운명‘으로 볼 때 최선의 행로는 아니었으리라. - P49

사실 전간기는 ‘신약 발견의 황금기 (the Golden Age of Drug Discovery)‘라고 불릴 만큼 약학 분야의 혁신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가장 큰 성과로 인슐린과 페니실린의 발명을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의학사에서 다른 어떤 약물보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위대한 발견으로 평가되곤 한다. 제1, 2차 세계대전은 의심할 바 없이 처참한 비극이었지만 신약 개발이라는 측면에서는 엄청난 자극제였다. 수많은 병사와 국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국가와 기업이 단합해 신약 연구와 개발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이다. - P60

약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던 만큼이나 이로운 약과 독약의 모호한 경계, 약에 대한 의존이 인간에게 가져올 폐해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쓴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의 초반부에서 애거서는 이미 그런 우려를 희화화하며 드러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독약을 주었나요?"라는 헤이스팅스의 질문에 병원 조제실에서 근무하는 신시아는 "오! 수백 명에게요"라고 웃으며 대답한 것이다." - P62

롤리와 린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겼다. 롤리는 쓰디쓴 어조로 "너처럼 전쟁에 나갔던 여자들은 가정에 정착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한다. 복무 해제 후 자유로운 여자로 돌아오는 일은 신나는 일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린은 판에 박힌 생활이 지루하다는 느낌과 앞으로는 친구들과 마치 동물처럼 몰려다닐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고향의 일상은 마치 고인 물 같고 비록 전쟁이었을지라도 바깥세상의 경험은 시골 여성에게 주어진 뜻밖의 모험이었다. 린은 그 모험이 주었던 짜릿함을 이렇게 되새긴다. 나는 이 독백이 애거서 작품을 통틀어 가장 감각적인 묘사라고 생각한다. - P71

선박과 부두를 연결하는 배다리가 들어 올려지고 배의 스크루가 돌아갈 때의 흥분, 비행기가 이륙해서 발밑의 대지 위로 솟아오를 때의 전율, 해안선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형상을 바라보는 순간, 뜨거운 먼지와 파라핀 기름, 그리고 마늘의 냄새-소란스럽게 지껄이는 외국말, 이상한 꽃들, 먼지투성이 정원에서 자랑스럽게 솟아난 빨간 포인세티아, 짐을 싸고, 풀고-다음은 어디지? 이 모든 것이 끝났다. 전쟁이 끝난 것이다. - P71

애거서 역시 제1차 세계대전 후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가정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회사나 공직에는 여자를 위한 자리가 전혀 없었고 그나마 취직할 수 있는 상점도 이미 직원으로 꽉 차 있는 상태였다. 애거서는 "전쟁 때는 육해공군에 모두 여자 보조부대가 생겼고, 여성들은 군수공장이나 병원에서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임시직‘이었을 뿐이다"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 여성 참정권이다. 영국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여성들이 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해 국민대표법(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 1918)을 제정하고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이때 남성은 21세부터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21세부터 선거권을 갖게 된 것은 1928년이 되어서였다. - P72

린은 신문에서 떠들어대는 ‘전쟁에서 벗어나 본분으로 돌아온 가정주부‘라는 말이 자신에게는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이후 목적 없이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전쟁 시절의 노스탤지어가 파도처럼 그녀를 덮쳐왔다." 임무가 분명했던 시절, 삶이 계획적이고 질서정연했던 시절, 개인적인 결정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이제 입대할 때처럼 명석하고 결단력 있고 총명한 여성이 아니었다. 여성들은 이제 집에 돌아와 "생각하기를 멈춘 삶이 주는 안락함" 속에 파묻혀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쏟아지는 총알이나 공중에서 떨어지는 폭탄이 주는 신체적인 위험보다 훨씬 더 무서운 ‘영혼의 위험’이었다. - P72

둘의 감정이 육체적 관계를 전제로 한 세속적 의미의 사랑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고, 굳이 분류하자면 ‘남성 간의 사랑‘이다. 그런 사랑은 당시 사회에서 별로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학자들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중·상류층의 남성성이 기본적으로 동성애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소년들은 남자 사립학교에서 기숙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뒤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그들이 진출한 세상, 시티(City, 런던의 금융가) 같은 금융계와 정계, 나아가 제국은 온전히 남성들만의 공간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남성 간의 사랑은 아주 자연스럽게 체화되기 마련이었다. 영국의 영광, 나아가 제국의 영광으로 이어지는 ‘남성성‘의 바탕에는 ‘형제애‘라고 불리는 남성 사이의 끈끈한 우정과 애정이 깔려있었다. - P87

클래리지 호텔이나 도체스터 호텔도 고관대작과 재계의 큰손이 머무르는 호텔로 묘사되곤 하지만 애거서가 가장 많이 동원한 호텔은 단연코 사보이다. 영국 최초의 대규모 최고급 호텔이라는 역사와 전통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전통 있는 호텔이 어쩌다 비영국적인 ‘사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그곳이 원래 사보이 궁전이 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헨리 3세의 왕비 프로방스의 엘레아노르(Eleanorof Provence, 1223~1291)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외삼촌 사보이작 피터(Peter of Savoy, 1203~1268)를 영국으로 불러들였다. - P92

애거서 역시 사보이 호텔의 오랜 단골이었다. 1957년 연극으로 각색된 <검찰 측 증인>의 개막 파티가 열린 곳도 사보이 호텔이었다. 1958년 4월 12일 〈쥐덫>이 런던에서 최장기간 상연된 연극으로 기록되었을 때 축하파티도 그곳에서 열렸다. 그날 초대장 없이 입장하려는 은발의 중년 여성을 도어맨이 제지하는 일이 있었다. 그녀는 수줍게 머뭇거리며 "사람들이 저를 잘 몰라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그런데 항상 저를 들여보내주더군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바로 그 화려한 행사의 주인공인 애거서였다. - P96

이처럼 ‘완벽한‘ 버트램 호텔에 묵으려면 상당한 수입과 사회적 신분이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로비에는 가난한 노부인들이 가득했다. 그런 손님들의 존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러스컴 대령은 지배인에게 저 노부인들이 도대체 무슨 능력으로 이곳에 묵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지배인은 호텔 측에서 그들을 위해 ‘특별가격‘을 책정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물론 그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고, 설사 알게 되더라도 오랜 단골이라서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싼 객실료로 마플 같은 노부인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버트램 호텔의 영업비밀이었다. 노부인들은 영국의 오랜 전통에 열광하는 미국인 방문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바로 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완성하는 액세서리였던 셈이다. - P101

《복수의 여신》은 또 어떠한가. "마치 쉰 살 먹은 오필리아 같군요" 같은 대사는 상대 캐릭터를 분명하게 설정해주는 은유다. 《커튼》에서 이아고가 자꾸 언급되는 일이나 푸아로가 헤이스팅스에게 남긴 《오셀로》 싸구려판은 애거서가 자기의 소설의 플롯과 셰익스피어 작품을 노골적으로 병행시켜 활용한 예이다. - P112

이처럼 추리물에 셰익스피어를 동원하는 일은 저급한 대중소설이라고 폄하되는 이 장르가 최고의 문학적 권위에 기대어 격을 높이려는 전략이었다. 또 소설 속 등장인물은 자신의 지적, 도덕적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셰익스피어를 인용하곤 한다. 영국 추리소설에는 종종 누군가가 셰익스피어 작품과 관련된 비유를 던지고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두 사람의 지적 능력의 차이를 단박에 가시화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추리소설에서 뜻밖에 자기에게 익숙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만나게 된 독자라면 색다른 지적 충만감을 느꼈을 것이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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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6, 529 -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
노동건강연대 기획, 이현 정리 / 온다프레스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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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억울한 죽음 중에 압도적인 사고가 추락사다. 너무도 반복적으로, 비슷한 작업 상황에서 추락으로 죽는다. 기본적인 안전장치 만으로도 회피가능한 죽음이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를 취급하는 현실에 분개하며, 먹먹한 마음으로 천천히 애도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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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0 07: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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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0 0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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