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비 오는 바닷가에서 책맥 하기~!


전간기(戰間期): 제1차 세계 대전 종결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발발까지 즉, 기본적으로는 1918년 11월 11일에서 1939년 9월 1일까지의 시대이다. 세계사 전체에서, 특히 유럽의 역사에서 중요하다.

《사막에 내리는 눈》은 결국 출판되지 못했는데, 애거서는 뒤끝을 발휘해서 거의 20년이나 지난 후에 《나일강의 죽음》(1937)을 통해 그 작품을 살려냈다. 오터번 부인이 향토색을 입히려고 이집트까지 와서 집필한다는 책의 제목이 <사막의 얼굴 위의 눈(Snow on The Desert‘sFace)》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소설 속 패러디라 할지라도 작품의 제목으로는 상당히 유치하다. 아마도 애거서가 나름의 유머 감각을 발휘한 때문이리라. - P21

그러다가 근처에 살고 있던 벨기에 난민 집단이 생각났다. "내 탐정이 벨기에인이면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며 은퇴한 경찰을 떠올렸다. 푸아로가 평생의 시리즈가 될 줄 전혀 몰랐던 애거서는 애초에 푸아로를 너무 나이 들게 설정했다며 두고두고 후회했다. "지금쯤 푸아로는 100세도 넘었을 거야"라면서 말이다. - P24

《푸른 열차의 죽음》에는 황금기 추리소설의 지향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대목이 있다. 푸아로는 기차에서 만난 캐서린 그레이가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책이 왜 잘 팔릴까요?"라고 묻는다. 캐서린은 "사람들에게 흥분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겠죠"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이 시대의 추리물은 전쟁후 피폐해진 일상에서 벗어나는 듯한 환상을 주었다. 범인을 추리하는 일이 ‘지성을 간지럽히는 깃털과 같은 자극‘을 주었는가 하면, 거의 모든 범죄가 탐정의 뛰어난 추리로 깔끔하게 종결됨으로써 독자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특히 소프트보일드 추리물은 선인과 악인을 선명하게 구별하는 경향이 있는데, 악인을 찾아 처벌하는 결말은 혼탁한 사회에서 종국적으로 도덕성이 회복된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다." - P31

《13인의 만찬》에서 유명한 여배우 제인 윌킨슨이 푸아로에게 남편을 몰아내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자, 푸아로는 "나는 이혼을 위한 조사 같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고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상류사회에서 실제 탐정들이 맡았던 주 업무가 이혼소송을 위한 뒷조사였음을 생각해보면 푸아로는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그야말로 ‘소설 속의 탐정‘일 뿐이다. - P33

집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누구나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집을 소재로 한 애거서의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해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집이라는 모티브는 특히 영국인들에게 크게 어필했다고 알려진다. 그들은 실제로 집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으로유명하다. 이만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격언인 ‘영국인에게 집은 성(城)이다‘가 떠오를 것이다. 이 격언이 사생활을 중시하는 영국인의 방어적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라면, 영국인들에게는 조금 다른 형태의 집에 대한 집착이 또 있다. 자기들이 발 딛는 곳 어디에나 집부터 짓고 보는 독특한 습성이 그것이다. 오죽하면 제러미 팩스먼(JeremyPaxman)이 ‘영국인들에게 집은 조국의 대체재다‘라는 말을 했을까? 20세기 초에는 "독일인은 독일에 살고 로마인은 로마에 살고 튀르크인은 튀르크에 산다. 그러나 영국인은 집에 산다"라는 시가 나왔을정도다. - P41

그렇다면 애거서 자신의 집은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었을까. 애거서가 애슈필드를 대신하여 사들인 그린웨이 저택은 오랫동안 애거서의 진짜 집 역할을 했다. 애거서는그린웨이를 모티브로 삼아 《회상 속의 살인》, 《0시를 향하여》, 《죽은자의 어리석음》 등을 썼다. 애거서는 오랫동안 그린웨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가 개최하는 작문경시대회에서 교열을 보고 심사위원을맡아 봉사했다. 1976년 애거서가 죽은 뒤 딸 로절린드가 그린웨이에서 살았지만 결국 2000년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에 넘겨졌다. 요양원이나 호텔로 개조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거서가 희망했던 ‘집의 운명‘으로 볼 때 최선의 행로는 아니었으리라. - P49

사실 전간기는 ‘신약 발견의 황금기 (the Golden Age of Drug Discovery)‘라고 불릴 만큼 약학 분야의 혁신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가장 큰 성과로 인슐린과 페니실린의 발명을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의학사에서 다른 어떤 약물보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위대한 발견으로 평가되곤 한다. 제1, 2차 세계대전은 의심할 바 없이 처참한 비극이었지만 신약 개발이라는 측면에서는 엄청난 자극제였다. 수많은 병사와 국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국가와 기업이 단합해 신약 연구와 개발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이다. - P60

약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던 만큼이나 이로운 약과 독약의 모호한 경계, 약에 대한 의존이 인간에게 가져올 폐해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쓴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의 초반부에서 애거서는 이미 그런 우려를 희화화하며 드러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독약을 주었나요?"라는 헤이스팅스의 질문에 병원 조제실에서 근무하는 신시아는 "오! 수백 명에게요"라고 웃으며 대답한 것이다." - P62

롤리와 린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겼다. 롤리는 쓰디쓴 어조로 "너처럼 전쟁에 나갔던 여자들은 가정에 정착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한다. 복무 해제 후 자유로운 여자로 돌아오는 일은 신나는 일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린은 판에 박힌 생활이 지루하다는 느낌과 앞으로는 친구들과 마치 동물처럼 몰려다닐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고향의 일상은 마치 고인 물 같고 비록 전쟁이었을지라도 바깥세상의 경험은 시골 여성에게 주어진 뜻밖의 모험이었다. 린은 그 모험이 주었던 짜릿함을 이렇게 되새긴다. 나는 이 독백이 애거서 작품을 통틀어 가장 감각적인 묘사라고 생각한다. - P71

선박과 부두를 연결하는 배다리가 들어 올려지고 배의 스크루가 돌아갈 때의 흥분, 비행기가 이륙해서 발밑의 대지 위로 솟아오를 때의 전율, 해안선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형상을 바라보는 순간, 뜨거운 먼지와 파라핀 기름, 그리고 마늘의 냄새-소란스럽게 지껄이는 외국말, 이상한 꽃들, 먼지투성이 정원에서 자랑스럽게 솟아난 빨간 포인세티아, 짐을 싸고, 풀고-다음은 어디지? 이 모든 것이 끝났다. 전쟁이 끝난 것이다. - P71

애거서 역시 제1차 세계대전 후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가정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회사나 공직에는 여자를 위한 자리가 전혀 없었고 그나마 취직할 수 있는 상점도 이미 직원으로 꽉 차 있는 상태였다. 애거서는 "전쟁 때는 육해공군에 모두 여자 보조부대가 생겼고, 여성들은 군수공장이나 병원에서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임시직‘이었을 뿐이다"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 여성 참정권이다. 영국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여성들이 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해 국민대표법(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 1918)을 제정하고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이때 남성은 21세부터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21세부터 선거권을 갖게 된 것은 1928년이 되어서였다. - P72

린은 신문에서 떠들어대는 ‘전쟁에서 벗어나 본분으로 돌아온 가정주부‘라는 말이 자신에게는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이후 목적 없이 표류하는 느낌이었다. "전쟁 시절의 노스탤지어가 파도처럼 그녀를 덮쳐왔다." 임무가 분명했던 시절, 삶이 계획적이고 질서정연했던 시절, 개인적인 결정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이제 입대할 때처럼 명석하고 결단력 있고 총명한 여성이 아니었다. 여성들은 이제 집에 돌아와 "생각하기를 멈춘 삶이 주는 안락함" 속에 파묻혀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쏟아지는 총알이나 공중에서 떨어지는 폭탄이 주는 신체적인 위험보다 훨씬 더 무서운 ‘영혼의 위험’이었다. - P72

둘의 감정이 육체적 관계를 전제로 한 세속적 의미의 사랑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고, 굳이 분류하자면 ‘남성 간의 사랑‘이다. 그런 사랑은 당시 사회에서 별로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학자들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중·상류층의 남성성이 기본적으로 동성애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소년들은 남자 사립학교에서 기숙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뒤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그들이 진출한 세상, 시티(City, 런던의 금융가) 같은 금융계와 정계, 나아가 제국은 온전히 남성들만의 공간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남성 간의 사랑은 아주 자연스럽게 체화되기 마련이었다. 영국의 영광, 나아가 제국의 영광으로 이어지는 ‘남성성‘의 바탕에는 ‘형제애‘라고 불리는 남성 사이의 끈끈한 우정과 애정이 깔려있었다. - P87

클래리지 호텔이나 도체스터 호텔도 고관대작과 재계의 큰손이 머무르는 호텔로 묘사되곤 하지만 애거서가 가장 많이 동원한 호텔은 단연코 사보이다. 영국 최초의 대규모 최고급 호텔이라는 역사와 전통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전통 있는 호텔이 어쩌다 비영국적인 ‘사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그곳이 원래 사보이 궁전이 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헨리 3세의 왕비 프로방스의 엘레아노르(Eleanorof Provence, 1223~1291)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외삼촌 사보이작 피터(Peter of Savoy, 1203~1268)를 영국으로 불러들였다. - P92

애거서 역시 사보이 호텔의 오랜 단골이었다. 1957년 연극으로 각색된 <검찰 측 증인>의 개막 파티가 열린 곳도 사보이 호텔이었다. 1958년 4월 12일 〈쥐덫>이 런던에서 최장기간 상연된 연극으로 기록되었을 때 축하파티도 그곳에서 열렸다. 그날 초대장 없이 입장하려는 은발의 중년 여성을 도어맨이 제지하는 일이 있었다. 그녀는 수줍게 머뭇거리며 "사람들이 저를 잘 몰라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그런데 항상 저를 들여보내주더군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바로 그 화려한 행사의 주인공인 애거서였다. - P96

이처럼 ‘완벽한‘ 버트램 호텔에 묵으려면 상당한 수입과 사회적 신분이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로비에는 가난한 노부인들이 가득했다. 그런 손님들의 존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러스컴 대령은 지배인에게 저 노부인들이 도대체 무슨 능력으로 이곳에 묵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지배인은 호텔 측에서 그들을 위해 ‘특별가격‘을 책정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물론 그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고, 설사 알게 되더라도 오랜 단골이라서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싼 객실료로 마플 같은 노부인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버트램 호텔의 영업비밀이었다. 노부인들은 영국의 오랜 전통에 열광하는 미국인 방문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바로 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완성하는 액세서리였던 셈이다. - P101

《복수의 여신》은 또 어떠한가. "마치 쉰 살 먹은 오필리아 같군요" 같은 대사는 상대 캐릭터를 분명하게 설정해주는 은유다. 《커튼》에서 이아고가 자꾸 언급되는 일이나 푸아로가 헤이스팅스에게 남긴 《오셀로》 싸구려판은 애거서가 자기의 소설의 플롯과 셰익스피어 작품을 노골적으로 병행시켜 활용한 예이다. - P112

이처럼 추리물에 셰익스피어를 동원하는 일은 저급한 대중소설이라고 폄하되는 이 장르가 최고의 문학적 권위에 기대어 격을 높이려는 전략이었다. 또 소설 속 등장인물은 자신의 지적, 도덕적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셰익스피어를 인용하곤 한다. 영국 추리소설에는 종종 누군가가 셰익스피어 작품과 관련된 비유를 던지고 상대방이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두 사람의 지적 능력의 차이를 단박에 가시화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추리소설에서 뜻밖에 자기에게 익숙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만나게 된 독자라면 색다른 지적 충만감을 느꼈을 것이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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