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엄숙한 얼굴 소설, 잇다 2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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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여전히 남성의 시선으로 ‘저 여자 왜 저러지?‘하고 ‘그녀‘를 불신하며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내 안의 학습된 남성성이 ‘남편‘의 ‘오라버니‘의 불온한 시선으로 ‘아내‘나 ‘누이‘인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또 한번 들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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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는 여자의 이러한 대담한 이야기가 일종 징하**게 느껴졌다거나 반대로 무슨 감동을 주었다기보다도 흔히 서양 여자들에게 많다는 무도병舞蹈病*이란 병처럼 이 여자에게도 무슨 고백병告白病이라는 게 있지나 않나 싶어서 차라리 의아할 정도였으나 역시 한편으론 언젠가, ‘걔는 제가 남을 사랑할 때라도 무사한 편보다는 까다로운 편을 취하는 성격이래요’ 하던 아내의 말이 생각나서 어쩐지 한 소녀의 당돌한 욕망이 이보다는 훨씬 사나운 현실에 패한 그 페허를 보는 듯해서 싫었다. - P148

에세이-약간의 다름과 미묘한 같음
스프링 노트 한 권을 펼친다. 종이를 후루룩 넘기다 멈춘다.
‘나는 슬픈 고향의 한밤, 홰보다도 밝게 타는 별이 되리라.‘ - P259

그날의 감정이나 특별한 일화일 때도 있었지만, 잊고 싶지 않은 문장이나 다진 같은 것일 때가 더 많았다. 적어둔 문장은 임화의 시 「해협의 로맨티시즘」의 한 구절이다. 나는열아홉 살 때 그 구절을 외웠다. - P260

친구는 그런 게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말을 흘려듣는 것이 안 돼서 자랑을 끝까지 다 들어야만 했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건 자랑이 아니야. 자랑 끝에 달려 나오는 씁쓸함이지. 지식인 남성들은 자랑만 늘어놓지는 않았다. 그들도 아는 것이었다. 자랑하는 남자가 별로라는 것을. 그러나 자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므로, 자기가 자랑하고, 자기가 자기 자랑을 씁쓸해하고, 그 씁쓸함도 자랑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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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

갑작이 밀물처럼 고독이 온다. 드디어 형예는 완전히 혼자인 것을 깨닫는다. - P56

체향초

‘사람이 누구에게나, 무엇에나, 가장 성실해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그건 가장 성실할 수 없는 것을 안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쩐지 외로웠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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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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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노숙, 소매치기. 가출팸을 형성한 아이들의 세계와 마음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작가의 섬세함. 누군가에겐 그 세계 밖에 없지만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 그 희망의 끈이 인수를 살게 하고 이호를 살게 할 것이다. 신발 끈을 묶어주는 무심한 행동만으로도. <페이드 포>도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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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해봤다. 용돈은 거절하면서 몰래 천원씩 훔치는 건 어떤 마음일까. 적은 돈 없어도 티가 나지 않는 돈을 훔칠 때 느끼는 죄책감이 신세를 지면서 느끼는 부채감보다 가벼운 것일까.
신경질적인 마음으로 아이들을 마음 저편에 밀어놓았다가 끌어당겼다가 하고 있으면 반질반질하게 닦인 어둠속에서 귀신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코웃음을 치며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망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 P116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들 어떻게 사는 걸까. 반복되는 일상을 저버리지 않고 평화를 일구는 법은 누가 알려주는 걸까. 그런 게 체득이 되는 인간들은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걸까. 동이 틀 무렵 창가에 어른거리는 고양이 그림자를 눈으로 좋으며 우리는 망했다고 홀로 중얼거렸다. - P198

이호의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는 쭈그려 앉아 운동화 끈을 묶었다.다.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뭐가."
"누가 내 신발 끈 묶어주는 거요."
나는 멈칫했다.
"어릴 때, 누군가가 묶어줬을 거야. 네가 기억 못할 뿐이지."
나는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며 말했다.
"정말 그럴까요.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요."
나는 그럴 거야, 분명히 그랬을 거야, 하고 무언가를 다짐하듯 말했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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