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는 여자의 이러한 대담한 이야기가 일종 징하**게 느껴졌다거나 반대로 무슨 감동을 주었다기보다도 흔히 서양 여자들에게 많다는 무도병舞蹈病*이란 병처럼 이 여자에게도 무슨 고백병告白病이라는 게 있지나 않나 싶어서 차라리 의아할 정도였으나 역시 한편으론 언젠가, ‘걔는 제가 남을 사랑할 때라도 무사한 편보다는 까다로운 편을 취하는 성격이래요’ 하던 아내의 말이 생각나서 어쩐지 한 소녀의 당돌한 욕망이 이보다는 훨씬 사나운 현실에 패한 그 페허를 보는 듯해서 싫었다. - P148

에세이-약간의 다름과 미묘한 같음
스프링 노트 한 권을 펼친다. 종이를 후루룩 넘기다 멈춘다.
‘나는 슬픈 고향의 한밤, 홰보다도 밝게 타는 별이 되리라.‘ - P259

그날의 감정이나 특별한 일화일 때도 있었지만, 잊고 싶지 않은 문장이나 다진 같은 것일 때가 더 많았다. 적어둔 문장은 임화의 시 「해협의 로맨티시즘」의 한 구절이다. 나는열아홉 살 때 그 구절을 외웠다. - P260

친구는 그런 게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말을 흘려듣는 것이 안 돼서 자랑을 끝까지 다 들어야만 했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건 자랑이 아니야. 자랑 끝에 달려 나오는 씁쓸함이지. 지식인 남성들은 자랑만 늘어놓지는 않았다. 그들도 아는 것이었다. 자랑하는 남자가 별로라는 것을. 그러나 자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므로, 자기가 자랑하고, 자기가 자기 자랑을 씁쓸해하고, 그 씁쓸함도 자랑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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