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박세진 [패션 역주행에 대처하는 법] - 65페이지
4장 임소연 [K-성형수술의 과학] - 84페이지
5장 안진 [왜 TV에는 백인만 나올까?] - 103페이지
6장 이민 [전시되지 않는 몸들의 삶] - 124페이지
7장 정희원 [지속가능한 몸 만들기] - 141페이지

2015년 프랑스 국회는 지나치게 마른 모델을 패션쇼에 세우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영국에서는 광고표준위원회의 주도 아래 패션 광고에서 너무 마르거나 어려 보이는 모델을 규제했고 실제로 2015년 이브 생로랑의 여름 광고, 2016년 구찌의 겨울 광고가 방영 금지되기도 했다. 이 위원회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비롯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달하거나 특정한 체형을 강요하는 광고도 금지했다. - P61

자기 몸 긍정주의는 마른 모델은 틀리고 플러스 사이즈는 옳다거나 노출은 악이라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사실 타인의 생긴 모습, 몸집, 착장, 패션이 내면에 관해 알려 주는 정보는 거의 없다. 문제는 입고 있는 옷에 전통적 성 역할이나 인종적·문화적 편견 같은 잣대를 들이대 실질적 압력이 생기면서 발생한다. 어떤 사람은 편안한 옷을 입어야 능률이 오르지만 또 어떤 사람은 몸을 압박하고 불편한 옷을 입어야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다. 이는 각자의 맥락에 따라 다를 뿐이다. 어떤 몸 상태가 좋은지, 어떤 패션이 좋은지는 스스로가 찾아가야 할 영역이다. 생각해 보면 패션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재미가 있고 의미가 생긴다. - P62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쌍꺼풀 수술은 근대화와 냉전이라는 이중의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처음 쌍꺼풀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한국전쟁 시기 미군과 함께 내한한 미국의 군의관 데이비드 랠프 밀라드로 알려져 있다. 밀라드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쌍꺼풀 수술을 해 준 한국인 남성 통역사는 ‘째진 눈’이 음흉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어서 ‘둥근 눈‘으로 바꾸고 싶어 - P73

했다. 또 미군과 어울리던 일부 한국 여성들은 서양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자 쌍커풀을 원했다. 북미 유대인들이 유대인 특유의 코를 코카서스 백인처럼 바꾸려 코 성형을 했듯이 그 당시 한국인은 백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눈을 교정했다. ‘믿을 수 없는‘ 아시아 현지의 통역사, 미군과 결혼한 ‘전쟁 신부‘는 냉전이 만든 존재들이다. 쌍꺼풀 수술이 만든 둥근 눈은 아시아인이라는 타자를 서구 백인들에게 덜 위협적인 존재로 바꾸어 주었다. - P74

한국인의 성형수술 전면에 있던 인종주의와 근대화 논리는 점차 흔적을 감췄다. 1990년대 말 서울 강남을 거점으로 성형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2000년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류 열풍이 일면서 성형수술이 추구하는 이상은 백인 여성의 표준 얼굴에서 한국 여성의 예쁜 얼굴로 바뀌었다. - P75

이상적인 얼굴의 비율을 상세하게 정의하는 인체계측학의 작업은 성형수술의 발전에 날개를 달았다. 인종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는 성형 기술이 외모 개선의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아시아인은 백인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더 아름다워지고 싶을 뿐‘이라는 간단명료한 설명은 성형수술이 사회병리적 현상이거나 인종주의의 도구라는 혐의에서 자유롭게 해 주었다. 이른바 인종’과학’의 출현이다. - P78

성형수술의 실천에서 인종은 평균의 문제인 동시에 과도합의 문제다. 지나치게 한국인다운 얼굴이라면 그평범함을 이유로 성형수술을 권유받는다. - P79

매력적인 여성의 얼굴에서 인종적 차이는 거의 없다. 인종적 차이가 눈에 띄는 것은 세 인종의 평균적인 얼굴에서다. 사진계측 분석이 잡아낸 아름다운 여성의 공통적인 특징은 ‘눈과 눈 사이의 간격이 멀고 턱이 작은’ 얼굴이다. 그야말로 인종을 초월한 보편적인 아름다움의 탄생이다. 이제 미인은 국제적으로 통하는 기준이자,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고 의학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자질이다. - P81

‘째진 눈이나 뭉툭한 코, 앞으로 튀어나온 턱‘은 왜 미인이 아닌가? 디지털 인체계측학을 활용한 과학 지식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가짜 과학은 아니다. 오히려그런 설명을 해 주지 않기 때문에 과학이다. 이처럼 ‘왜’를 말하지 않는 과학의 속성은 "모든 근거 있는 믿음의 밑바탕에는 근거 없는 믿음이 놓여 있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로 표현된다. - P83

"예전에 우리 애를 보면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싫어하고 그랬죠. 근데 우리들의 블루스」가 방송되고 나서 사람들이 우리 애 보고 귀엽대요. 은혜는 달라진게 하나도 없는데………… 늘 같은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은혜를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요즘 우리는 참 이상하고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어요."

「우리들의 블루스」가 만든 마법일까. 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 씨의 어머니는 드라마 출연 전이나 후나 딸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그를 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감정이 달라졌다고 했다. - P90

교양 프로그램 피디로서 나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으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대상은 원형과 사뭇 다르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미지를 배치하고 재구성하여 이야기를 입히면, 제작자가 실제라고 믿는 이미지가 구축된다. 이런 의도하지 않은 왜곡은 때때로 대상을 정형화하는 오류를 낳기도 한다. - P91

실제로 편견은 고정관념과 같은 인지적 요소보다 호감과 같은 감정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주목할 점은 편견을 강화하는 감정적 요인이 강한 적대감 같은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무지와 정보 부족, 낮은 접근성으로 생기는 불안과 불편함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잘 모르고 많이 접하지 않은 낯선 대상에 대해 편견을 강화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 편견을 호감이라는 정서로 전환시켰다. - P92

한국의 TV 방송 프로그램에서 외국인들은 인종과 출신 배경,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스테레오타입으로 묘사되어 왔다. 이주노동자는 사고, 죽음, 불법의 표상으로, 결혼이주여성은 한국의 가족주의를 존속시키는 희생적 여성상으로 그려졌다. 반면 백인은 지적이고 문화 수준이 높은 동경의 대상으로 재현된다. 선행 연구들은 미디어가 인종을 서열화하고, 이중적 인종주의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 P93

스테레오 타입이란 용어를 개념화한 미국의 정치사상가 월터 리프만은 『여론』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머릿속의 그림"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점은 그 그림이 직접적인 체험이 아니라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 P94

한국을 사랑하는 백인에 대한 한국 시청자의 호감은 새롭지 않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국뽕 콘텐츠에서 재현되는 외국인의 모습은 7년 전 연구에서 도출한 백인의 정형화된 이미지와는 미묘하게 다르다. 한국문화에 격렬하게 공감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순진해 보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과장되어 우스꽝스러워 보일 때도 있다. 이것이 백인이 텔레비전에서 타자화되는 방식이다. 인종적 서열화로 백인과 비백인의 위계가 설정되어 비백인이 열등하게 타자화된다면, 국뽕을 채우려 백인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백인 또한 타자화된다. 궁극적으로 "우리를 더 멋지게 내보이기 위해 타자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 P101

옷을 "사회적 피부"라고 정의한 인류학자 테런스 터너는 인간이 삶의 단계와 사회적 역할에 따라 사회적 주체로서의 - P116

자신을 연행(perform)하는 데 규범과 코드에 맞는 옷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많은 여성들이 기성복 표준사이즈 체계가 편협하고 차별적이라는 점을 경험으로 인식하면서도 여전히 표준 사이즈에 자신의 몸을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고 애쓴다. - P117

그때의 심증을 지지하는 사회적 현상은 여전히 도처에 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뼈 빼고 다 빼 드립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본 일이 있다. 퍼스널 트레이닝업체의 광고였다. 이런 괴기스럽고 말도 안 되는 목표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문구로 쓰인다. 더 아연실색할 일은, 마른 몸매를 추구하는 사람 중 종아리 근육을 위축시키는 종아리 퇴축술 같은 시술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보행에 필요한 종아리근육은 매끈한 ‘일자 다리‘가 중요한 여성에게 부기를 가라앉히고 없애야 할 ‘종아리 알‘로 인식된다. 이는 외모에 대한 그릇된 신념 체계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자기만족을 향후 50년 이상 지속될 근골격계의 불균형과 교환하는 극도로 비대칭적인 거래가 아닐 수 없다. - P130

사람들의 노화 궤적을 관찰한 장기 연구들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이 드는 사람은 젊어서부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만들고 지킨 이들이었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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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0-12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있어 보여요
표지가 심플하니 역주행, 참신성!

각 챕터, 주로 어떤 자료로 꾸려졌는지 직접 봐야겠네요 소개 감사드립니다 햇살과함께님^^

햇살과함께 2022-10-12 12:21   좋아요 1 | URL
역시 ‘외모‘에 관한 이야기라^^
이번 호는 다른 ‘한편‘ 호에 비해 어렵지 않고 재밌네요.
한편 한편이 너무 짧아 늘 아쉽지만요~
 

2장 김애라 [메타버스 아바타의 상태] - 48페이지

제페토의 여러 맵들을 돌아다니고 또 더 많은 아바타들을 만나면서 한 가지 생각이 뚜렷해졌다. 제페토는 여러 면에서 현실과 다른 해방적 특징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바타(의 외모)가 가장 중요하며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소비 자본주의적 특수성이 크게 드러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 P41

제페토의 이용자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과 아바타 꾸미기로 팔로워를 늘려 가는 것이 제페토의 주요 활동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많은 연구자들이 밝혔듯 젠더는 테크놀로지 배치의 물적 조건과 사회적 결과를 조건 짓는다. 예컨대 패션산업과 미용성형은 정체성을 일종의 기호로 만들어 몸을 자본화했다. 그 결과 정체성은 기술적으로 생산·판매·대여 가능한 것이 되었다. - P44

제페토 세계관 안에서 정체성은 자유와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마치 인터넷 기술이 대중화되기시작한 때 사이버공간이 ‘어떤 제한도 금지도 부과되지 않는, 상상되고 행동될 수 있는 것에는 어떠한 한계도 없는‘ 공간으로 여겨졌던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 P47

메타버스 공간에서 정체성은 물리적 세계에 얽매인 이미지로 구현된다. 제페토에서 형성되고 있는 인플루언서 문화와 각종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아바타 패션과 현실의 아이돌 이름을 딴 ‘월드‘의 존재는 우리가 아직 초월적 세계보다는 물리적 세계 안에 존재하도록 강제되고 있음을 알려 준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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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김원영 [외모라는 실체에 관하여] - 30페이지

외모에 적용된 글꼴은 큼직하고 부드러운 곡선에 표정이 담 간 NotCliche로, 청소년디자인제작전문그룹 소속의이현준 디자이너가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외모의 매력에 대한 우리의 차별적 선호는 ‘도덕적’ 잘못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윤리적’으로는 중대한 문제이다. 여기에서 나는 로널드 드워킨을 따라 윤리를 도덕과 구별하고 있다. 도덕이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규율하는 원리와 규칙을 뜻한다면, 윤리는 개인이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와 관련된다. 이러한 구별에 따르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특별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서도 윤리적으로 잘못 살 수 있다. 내가 인생의 대부분을 기계장치에 접속해 쾌락과 즐거움이 가득한 가상현실로 채운다면, 타인에게는 무해한 삶이겠지만(그래서 도덕적 잘못은 없을 테지만) 내 인생을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주어진 삶을 마치 예술작품을 창조하듯 최선으로살아 낼 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드워킨은 주장한다.
- 김원영 - P25

시간의 살과 뼈로 만들어진 외모를 제대로 응시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던 나의 겉모습에서 어느 날 작은 아름다움이라도 발견한다면, 나는 퍽잘 사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장애가 있는, 아픈, 뚱뚱한, 나이 든, 어떤 종류의 상처나 흔적을 가진 몸에게서 "나는 내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라는 고백을 듣는다. 그들의 말을 그저 ‘정신승리‘나 터무니없는 나르시시즘이라고밖에 생각할 줄 모른다면, 그는 자신이 늘들여다본 ‘외모’가 삶의 두터운 시간을 입고서 얼마간 아름다워진 순간을 만나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 잘 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겉모습이 곧 나의 실체라는 점은 받아들인다.
- 김원영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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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9-29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옹! 이런 책도 있군요!!

햇살과함께 2022-09-29 15:19   좋아요 0 | URL
4개월 주기로, 하나의 주제에 대한 10꼭지의 글이 수록된 인문잡지에요!
각 편의 글이 너무 짧은 아쉬움이 있지만,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새로운 인문연구자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계속 구독하고 있어요~
 

알라딘에 이제 검색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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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8호 : 콘텐츠 인문 잡지 한편 8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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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성 있는 주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글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의 입구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좋다. 그리고, 한편의 지난 호와의 연결성도. 콘텐츠에는 동물도 있고 중독도 있고 인플루언서도 있고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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