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연대기》는 영어와 우리말 모두에 능란한 번역자의 유려함과 뛰어나고 성실한 수고로운 편집으로 독자에게 행복감을 준다. 나는 특히 저자의 참고 문헌 중에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병기한 이런 책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고통과 몸은 내 인생과 공부의 평생 주제인데, ‘동지‘들이 있다면 이 책과 더불어 다음을 읽기 권한다.
외국 필자에 국한한다. 올리버 색스, 앤드루 솔로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앤드리아 드워킨, 오오누키 에미코, 존 사노, 사라 러딕, 미리엄 그린스팬, 도미야마 이치로, 버니 시겔, 케이레드필드 재미슨, 번역 때문에 읽기가 통증인 책도 있지만 저자마다 대개 2권에서 7권까지 번역되어 있다. - P33

몸은 사회적(social/mindful body)이다. 몸은 기억이다. 있는 그대로의 몸은 없다(영어 body는 그냥 ‘시체‘라는 뜻이다). 몸은 언제나 해석이다. 같은 흑인이라도 힘과 스피드를 상징하는 운동 선수 우사인 볼트나 ‘흑진주‘로 불리는 뛰어난 미모의 여성들은 흑인이라기보다 ‘뛰어나지만 특이한 인간‘의 범주로 다시 구분된다. 이들의 예외성은 해석의 힘을 보여준다. 한편 책에도 나오는 ‘one drop rule‘, 즉 선조 중에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인간‘이 될 수 없다는 해석이 존재한다. 영화화되기도 한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의 작품 《휴먼 스테인》(2000년)은 흑인의 피가 인생의 얼룩이자 오점(‘스테인stain‘)의 상징임을 보여준다. 검은색, 그것은 없애야 하지만 없앨 수 없는 것이다. - P39

여성주의 실천이라고 해서 다 ‘올바르거나‘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개인적으로 ‘탈코르셋‘ 운동과 거리가 있다. ‘탈코르셋‘은 기본적으로 젊은 (중산층) 여성의 몸을 전제로 한 것이다. 물론 대단히 중요한 여성주의 실천이지만 통념과 달리 모든 여성이 규범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외모에 대한 관심은 여성마다 다르다. 특히 가난한 여성이나 나이든 여성은 어느 정도 외모 관리(‘코르셋‘)를 하지 않으면 시민권을 박탈당한다. 나 역시 내 옷차림이나 외모 때문에 택시를 잡지 못하거나 노숙자나 좀도둑 취급을 받은 적이 적지 않다.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에 저항함과 동시에 남성 사회가 정한 - P44

여성의 범주를 수용한 지점에서 시작한다. 이처럼 모든 운동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고, 그 핵심에는 몸의 다름과 범주의 문제가 있다. - P45

거듭 말하지만 "내 몸은 나의 것이다."가 아니라 "내 몸이 나다." 우리의 정신이 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바로 나다. 정신은 몸에 속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은 곧 자아관이 된다. 문제는 이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자기 몸을 긍정하기 어려운 사회인데, 과학 기술의 발달로 자아만 팽창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모든 ‘비극‘이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책이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P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미니즘 운동을 발아시킨 존 스튜어트 밀의 저서 《여성의 종속》은 1869년에 출판되었는데, 이후 페미니즘 운동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 P1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을 가장 먼저 포착하여 쟁점화했고,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한 점에서 높이 평가되지만 여성의 지위개선을 위한 개혁주의적인 접근에 그쳤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같은 한계에 부딪치자 페미니스트들은 독자적인 조직이나 이론의 정립문제를 다시 부각하면서 이를 사회주의 사상에 기저를 두고 해결코자 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여성 차별에 근원적으로 저항하고자 중산층 백인 여성 소집단에서 출범한 ‘급진적 페미니즘‘이 대두되는데, 이는 이후 여성 억압의 근원 찾기, 또는 여성 억압이 모든 억압의 뿌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P2

당시 동경에는 여성해방을 주장하는 잡지 《청답>이 간행되어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미술학교 2년 재학 때 동경 유학생들의 동인지인 《학지광》 3호에 최초로 근대적 여권을 주장하는 <이상적 부인>을 기고하였다. 이 글의 주된 내용은 ‘부덕의 장려‘란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앞으로 여자도 기예를 익히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자는 제안이었다. - P86

단편소설 <경희>는 200자원고지 125장으로 역작이다. 여성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근대단편소설의 형식적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의 일부분을 살펴본다면, "경희도 사람일다. 그 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일다. 또 조선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라며 무엇보다 여성을 하나의 주체적 인격체로서 인식하고 이를 전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우리 나라 페미니즘 문학의 선두라 봐도 될 것이다. - P87

김우영은 그녀와 나이 차이가 10년이나 연상이었지만 근대적인 여성의 사고를 존중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나혜석이 결혼하면서 요구한 파격적인 결혼 조건인 죽은 애인의 무덤에 돌비석을 하나 세워 달라는 요구까지도 들어주었다. 김우영의 열렬한 구애로 이루어진 결혼은 그녀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녀는 《신여자》 4호에 김우영과의 사랑의 일기를 공개하는 <4년전의 일기 중에서>를 기고하기도 하였다. - P90

《삼천리》 7월호는 <여인 독거기>를 8, 9월호 2회에 걸쳐서는 이혼한 김우영 앞으로 띄운 한국 근대여성사에 전무후무한 이혼 고백서를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내용 중에는 그녀가 최린에게 이런 말을 한 기록이 있다. "나는 공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내 남편과 이혼은 아니하렵니다 … 나는 결코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 즉 최린을 사랑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죠. 본남편이나 본체를 어찌하지 않는 범위내의 행동은 죄도 아니요 실수도 아니며 가장 진보된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고백은 사실상 그녀의 연애론이라 할 수 있다. - P130

그녀는 이혼 고백서에서 자신을 파멸시킨 것이 김우영이라기보다는 남성위주의 사회제도, 그들에게만 유리한 법률과 여권 부재의 사회인습이었다고말하고 있다.
이 공개장은 사회와 김우영에 대한 나혜석의 분노와 저항 심리였다. 신문, 잡지들은 그녀의 저항과 고독한 생활 변모를 끊임없이 기사화하고 행선지를 추적하여 보도했다. 그녀는 최린에게 1만 2천원의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정까지는 가지 않고 양쪽의 타협을 통해 수천원의 위로금을 받았다. 그 이유는 최린에게 수십 회 정조를 유린당했다고 주장한데 따른 대가성이었다. 이 돈은 자신을 위해 청구한 것이 아니었기에 시인으로서 입산 수도를 하고 있는 김일엽 스님을 통해 절에 시주되었다. 한 때 그녀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수덕사로 찾아가 일엽 스님에게 자신도 승려가 되겠다고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35년 《삼천리》 2월호에 <신생활에 들면서〉를 통해 자식에게 유언 아닌 유언을 남겼다. 일부분을 소개해 보면 "4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의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느니라" 이 내용을 보면 분명 그녀 스스로는 보수적인 시대적 상황에 희생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 P131

나혜석의 자유주의적이고 저항적인 기질은 이상향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에는 자신에게 너무도 큰 아픔을 줄 수밖에 없었다. - P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하미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 책, 표지부터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제목이 아주~ 길고 크고 붉은 강력한 글씨로 쓰여 있고, 중간에 그림인지 글씨인지 모를 것이 검은 색과 파란 색으로 그려져 있다.

책 구입 후 표지를 한참 들여다 봤지만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화산 같기도 하고?? 뭘 그린거지? 무엇을 설명하는 그림이지? 궁금증이 일었다. 프롤로그를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사람이었다. 울고 있는 사람들, 같이 손 잡고 울고 있는 여자들, 연대하고 이해하고 서로 돌보는 여자들.

대학원에서 과학사를 공부한 하미나 작가의 우울증에 대한 이론 공부와 본인의 내밀한 이야기와 30명 가량의 젊은 여성 인터뷰이의 솔직한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많은 여자들에게 용기와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책이다. 이제 시작이므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1-17 0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 표지의 그림이 이제야 보이네요. 이해하고 연대하고 돌보는 여자들 좋네요. 보관함에 넣어뒀는데 올해가 가기전에 읽어야겠어요.
 

나는 죽으면 모든 게 끝나서 좋은 것도 좋은 건데, 누군가 후회할 거라는 사실이 좋았던 것 같아. 엄마가 후회할 거다. 내 자살이 엄마한테 형벌이 되기를 바랐거든. - P242

아마도 내가 분출할 수 있는 공격성이란 게 나를 향해서만 있어온 것 같아. - P243

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목숨이 안 아까워 가지고, 여한이 딱히 없어. 그런데 그때랑 지금이랑 다른 건 최고의 한 방을 위해 인생을 사는게 아니라 작은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산다는 거. 한 방이 끝나도 작은 즐거움의 의미가 없어지는 건 아닌데, 너무 인생 한 방인것처럼 생각했어. 허점 없는 논리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내가 발견한 허점이었어. - P243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또한 힘"이기에. - P252

첫째, 건강의 주체로서 스스로 돌보는 힘을 키우는 자기 돌봄! 둘째,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망을 통해서 함께 건강해지는 서로 돌봄, 셋째, 개인 또는 몇몇지인들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돌봄을 조직을 통해 협동하여 이루어 내는 함께 돌봄. - P258

이들은 미쳐 있고 괴상하지만, 동시에 오만하며 똑똑한 여자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에 대한 말과 글이 아니라 이들에 의한 말과 글이다. 무엇보다 주요한 의사결정권이 이삼십대 여성에게 직접 주어져야 한다. - P261

예전에는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발전의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저 밑으로 추락해 버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를 쓰고 제가 원하는 것들을 성취하려고 했죠. 하지만 어떤 날에 제 능력의 120퍼센트로 살아내고 그다음 날 30퍼센트로 추락하는 것보다, 이틀 동안 75퍼센트로 사는 게 낫다는 걸 경험을 통해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요즘은 최대한 평균적으로 살기, 즉 최고치와 최저치 사이의 갭을 완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 P264

이것은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또한, 이전에는 해낼 수 있던 일이 지금은 해낼 수 없는 일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삶의 양식이 바뀐다. 전보다 천천히 살아야 한다.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삶의 중심에 놓인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자기 돌봄에 숙련되어간다(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돌봄을 중심에 두며 삶이 재편되는 것은 환자 당사자만이 아니다. 이들을 곁에서 돌본 사람도 그렇다. - P264

돌봄은 때때로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본질적으로 양가적이고, 맥락적이고, 관계적이다. 돌봄은 사랑·양육·친절 다정과 같은 속성과 자주 연결되지만, 현실의 돌봄은 불안·상처 억울함·분노·증오와 같은 속성과도 밀접하다. 완벽한 돌봄을 하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 P265

맞아요. 돌보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필요해요. - P273

그것이 자기 돌봄이든, 서로 돌봄이든, 함께 돌봄이든, 또 의료 제도 안의 돌봄이든 바깥의 돌봄이든 우리는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돌봄의 관계적, 맥락적 속성을 치열하게 사유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돌봄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를 구체화하고, 돌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끊임없이 다시 시도하고 실험하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을 만들어 가야 한다. 질병, 아픔, 고통을 지워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으로 다시 받아들이는 것처럼, 돌봄의 과정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갈등과 미움, 질투와 억울함 등을 지우고 부정하기보다는 함께 머무르며 나아가야 한다. 돌봄은 언제나 종착지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 P292

고통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핵심은 비슷하다. 치유를 위해서는 먼저 ‘안전하다‘라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그다음, 언어를 통해 지나간 고통의 기억을 애도하고 통합하여, 고통이 파괴한 것과 가르쳐 준 것 모두를 간직한 채로 나를 새롭게 재창조해야 한다. - P3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리말부터 강렬하다. 역시 정희진 선생님이다. 강렬함을 금방 망각하는 인간이기에 자주 읽어야 한다.

"읽을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을 내 식으로 바꾸면 책은 보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 P11

공부, 자기 언어를 갖는 것은 피억압 집단에게 가장 필요한 투쟁이다. 남성, 백인 문화는 피억압자의 언어를 두려워하고, 이는 여성 혐오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여성들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제 페미니즘은 가치관이 아니라 자기 계발의 하나가 된 것뿐일까. - P14

비평 자체의 독자성, 내용, 다양성에 따라 그 사회의 창작 활동은 큰 영향을 받는다. 창작과 비평을 나누는 사고는 창작이 상상이라는 통념 때문이다. 하지만 ‘상상‘도 사회 안에서 기존 언어를 기반 삼아 나오는 것이다. - P15

문학은 현실에 대해 말하되, 현실을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하나의 비유는 열 개의 해석을 낳는다. 비유를 통해 기존 개념은 이동하고 분화한다. 전이(轉移), 전의(轉意, 轉義)다. 은유(metaphor)는 meta(over) + phora(carrying)를 합친 단어로서 ‘뜻을 나른다‘
는 의미다. 시인과 소설가들은 오만할 자격이 있다. - P15

내게 글쓰기는 입장과 표현이 가장 중요하다. 장르가 곧 내용인 것은 분명하지만 입장 없는 글쓰기는 어느 장르나 불가능하다. 창작으로서 비평, 예술로서 비평을 지향하는 나는 서평과 그 외 글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개는 서평, 독후감에 형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P15

줄거리 요약이 분량의 반을 차지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줄거리 정리는 독후감을 쓰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세미나나 공부 모임, 대학원 수업에서 읽을거리를 요약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식으로는 공부가 늘지 않는다. 텍스트의 내용과 맥락은 참석하기 전에 숙지하고, 모여서는 ‘토론‘을 해야 한다. - P16

서평 쓰기의 첫 번째 훈련은 글의 서두에 한두 줄 정도로 책의 내용을 집약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책의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고, 그것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해야 한다. 육화된 책의 내용을 몸속에서 ‘뽑아내는’ 작업이다. - P17

불안한 상황 자체는 병이 아니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는 책 제목 그대로 불안에 대한 재해석이다. 불안이 질병일 경우에도 단지 아픈 것이지 ‘미친‘ 것이 아니다. - P27

피억압자이면서 억압자들을 치료했던 파농의 딜레마는 이후 그의 탈식민주의 사상의 핵심이 되었다. ‘치료‘(해방)란 예전으로 돌아가는 정상으로의 회복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이다. 고문 경찰 스스로 자기 위치성을 사유하지 못하면 치료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극심한 불안이 따른다. - P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