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으면 모든 게 끝나서 좋은 것도 좋은 건데, 누군가 후회할 거라는 사실이 좋았던 것 같아. 엄마가 후회할 거다. 내 자살이 엄마한테 형벌이 되기를 바랐거든. - P242

아마도 내가 분출할 수 있는 공격성이란 게 나를 향해서만 있어온 것 같아. - P243

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목숨이 안 아까워 가지고, 여한이 딱히 없어. 그런데 그때랑 지금이랑 다른 건 최고의 한 방을 위해 인생을 사는게 아니라 작은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산다는 거. 한 방이 끝나도 작은 즐거움의 의미가 없어지는 건 아닌데, 너무 인생 한 방인것처럼 생각했어. 허점 없는 논리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내가 발견한 허점이었어. - P243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또한 힘"이기에. - P252

첫째, 건강의 주체로서 스스로 돌보는 힘을 키우는 자기 돌봄! 둘째,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망을 통해서 함께 건강해지는 서로 돌봄, 셋째, 개인 또는 몇몇지인들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돌봄을 조직을 통해 협동하여 이루어 내는 함께 돌봄. - P258

이들은 미쳐 있고 괴상하지만, 동시에 오만하며 똑똑한 여자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에 대한 말과 글이 아니라 이들에 의한 말과 글이다. 무엇보다 주요한 의사결정권이 이삼십대 여성에게 직접 주어져야 한다. - P261

예전에는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발전의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저 밑으로 추락해 버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를 쓰고 제가 원하는 것들을 성취하려고 했죠. 하지만 어떤 날에 제 능력의 120퍼센트로 살아내고 그다음 날 30퍼센트로 추락하는 것보다, 이틀 동안 75퍼센트로 사는 게 낫다는 걸 경험을 통해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요즘은 최대한 평균적으로 살기, 즉 최고치와 최저치 사이의 갭을 완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 P264

이것은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또한, 이전에는 해낼 수 있던 일이 지금은 해낼 수 없는 일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삶의 양식이 바뀐다. 전보다 천천히 살아야 한다.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삶의 중심에 놓인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자기 돌봄에 숙련되어간다(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돌봄을 중심에 두며 삶이 재편되는 것은 환자 당사자만이 아니다. 이들을 곁에서 돌본 사람도 그렇다. - P264

돌봄은 때때로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본질적으로 양가적이고, 맥락적이고, 관계적이다. 돌봄은 사랑·양육·친절 다정과 같은 속성과 자주 연결되지만, 현실의 돌봄은 불안·상처 억울함·분노·증오와 같은 속성과도 밀접하다. 완벽한 돌봄을 하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 P265

맞아요. 돌보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 필요해요. - P273

그것이 자기 돌봄이든, 서로 돌봄이든, 함께 돌봄이든, 또 의료 제도 안의 돌봄이든 바깥의 돌봄이든 우리는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돌봄의 관계적, 맥락적 속성을 치열하게 사유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돌봄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를 구체화하고, 돌봄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끊임없이 다시 시도하고 실험하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을 만들어 가야 한다. 질병, 아픔, 고통을 지워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으로 다시 받아들이는 것처럼, 돌봄의 과정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갈등과 미움, 질투와 억울함 등을 지우고 부정하기보다는 함께 머무르며 나아가야 한다. 돌봄은 언제나 종착지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 P292

고통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핵심은 비슷하다. 치유를 위해서는 먼저 ‘안전하다‘라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그다음, 언어를 통해 지나간 고통의 기억을 애도하고 통합하여, 고통이 파괴한 것과 가르쳐 준 것 모두를 간직한 채로 나를 새롭게 재창조해야 한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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