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근무 이상 없었나?
중학교, 쉬는 시간. 별로 특별할 것은 없다. 그냥 선생님이 안 계시니까 왔다 갔다 하고, 시끌시끌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 떨고. 내 바로 앞자리에 앉은 녀석
들은 팔씨름이 한창이다.
그러더니 어느새 반에는 팔씨름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무슨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내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힘자랑으로 일진을 뽑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대 유행이 되었다. 물론 비슷비슷한 체격의 아이들 끼리 붙는다.
나는 늦게 많이 자란 편이라 그때는 별로 키가 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작은 축에 들었다. 그리고 힘도 없었다. 그래도 사내고 보니 승부욕은 있어서 친구들과 팔씨름을 하는데 판판이 진다. 말랑말랑한 녀석에게도 삼판양승해서 한 판을 이기면 두 판은 꼭 졌다. 왼손으로 바꿔 해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나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치욕(?)이었다. ‘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설욕을 하고 말 것이다.’ 다짐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운동장에 있는 철봉과 평행봉을 이용하자.’ 그날부터 나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 서너 명과 점심을 먹기가 바쁘게 철봉과 평행봉으로 달려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비오는 날 빼고는, 점심시간에 매일 철봉과 평행봉에 매달렸다. 달리 뭐 기술? 이런 거 필요 없다. 무조건 매달려 당긴다. 그랬더니 시작할 때는 턱걸이 한 개도 못했는데 차츰 끙끙거리며 반 개 → 2/3 개 → 한 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데 이 한 개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 개를 하고 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해 냈다는 성취감과 그 동안 끙끙거리며 몸에 익힌 노하우에 또 근육도 좀 생기고, 그것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니 실력이 일취월장으로 늘어나 한 번 매달리면 열다섯 개는 기본이고 힘을 짜내면 어렵지 않게 삼십 개는 가뿐하게 넘어섰다.
그렇게 턱걸이를 연마하고 있던 어느 날, 체육 선생님이 다음 주에 턱걸이 시험을 칠 것이니까 연습들을 하란다. 배치기 불인정에 삼십 개가 만점이다. 그런데
턱걸이가 연습한다고 하루아침에 잘 해지나? 나는 느긋했다. 평소 실력이 있으니.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온다더니 드디어 기회가 왔다. 팔씨름보다 더 고급 기량인 턱걸이로 녀석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버려야지.
드디어 그날, 운명의 시간이 도래했다. 여섯 명씩 그룹을 나누고 두 명씩 세 개조가 되어, 세 명은 턱걸이를 하고 세 명은 의자에 앉아 카운트를 한 다음 다시
역할을 바꾸게 된다.
선생님은 저쪽 나무 그늘 밑에 앉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시고 친구들은 열심히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는데, 열다섯 개를 넘어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못하다. 평소에 팔씨름이 강하다고 자랑하던 아이들도 두 개, 세 개를 넘어가면 발발발 떨면서 오만상을 찌푸리고 버둥거리는데 옆에서 보고 있으면 배꼽을 잡는다. ㅍㅎㅎㅎ, ㅋㅋㅋㅋ.
이제 내 차례다. 그런데 카운트를 할 내 파트너는 평소에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희망이라며 점심시간에 젓가락질도 직각으로 하는 키가 큰 녀석이었다. 나는 가볍게 철봉에 뛰어 매달려 척척척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고 속도도 다른 아이들의 두 배 이상이다. 마음속으로 서른을 세고 가뿐하게 철봉에서 내렸다.
그리고 파트너를 바라보며 “서른”하고 확인을 하는데, 이 녀석 멍∼한 눈으로 나를 본다. 그러더니 “에이, 아이다.”한다. 이 녀석, 내가 턱걸이 할 때 옆에 친구랑 수다 떤다고 숫자를 아예 세지를 않았던 모양이다. ‘쪼끄만 게 하면 얼마나 하겠노?’이랬던 것 같았다. (야이누마, 키 작다고 턱걸이 못하나?)
‘아우, 이걸 그냥......’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뒤통수라도 한 방 날리고 싶었지만 나보다 키가 크니 까불면 다치는 수가 있다. 따진다. “니, 내 하는 거 안 봤나?” 그 녀석 “......(멍∼)” “그러면 도대체 내가 몇 개 했단 말이고?” 그 녀석 또
“......(멍∼)” 하이고 답답해서리∼, 그러면 내가 다시 할게.
화가 나서 큰 소리치고 다시 철봉에 매달렸지만 금방 서른 개 하고 다시 또 서른 개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또 척척척척 “스물∼”하고나니 슬슬 기별이 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스물둘∼” “스물∼셋∼” 하니 머리 속에서 욕이 나오기 시작한다. ‘!@#$%^&*’ 그리고 “스∼물∼다∼섯∼”하는데 이 녀석 “인정!”이런다. ‘야이누마, 약 올리나? 내가 니한테 인정받으려고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이누마!’
그날의 사건은 그렇게 내가 턱걸이 쉰다섯 개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고 그 녀석과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헤어졌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후 나는 우리 동기들 가운데 스타가 되었다가 예편한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가 그 녀석인지를 확인 할 수가 없었는데,
만약에 그 녀석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여 장교로 임관했었다면, 요즘 같이 노크 귀순이다, 오리발 귀순이다, 하고 시끄러운 시기에 꼭 해 줄 말이 있다. “이누마, 그런데 너 적진 관찰하기를 친구 턱걸이 보듯 하면 큰 일 난다,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