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樂術)


 오잉!? 요술(妖術)도 아니고 웬 요술(樂術)? 사전에도 없는 말이고 내가 지어낸

말이다.


 국어 선생님은 도회지에서 전근을 오신 선생님이셨고, 시인이라고 했으며, 혼자 사신단다. 그렇게 도시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선생님이 모닝커피를 마시러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시내에서 하나 밖에 없는 다방 앞을 서성이던 모습을 두어 번 본 적이 있다. 어린 눈에는 그것이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였고, 또 키도 크고 잘생긴 선생님이라 우리 모두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강의 시간에 진도 외에 또 다른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을 생각해 봐라. 예수님은 무엇을 위하여 고난의 짐을 지셨는가? 우리의 인생도 무거운 짐을 지고 언덕을 오르는 것과 같다.


 언덕을 오르던 나그네는 맹수를 피해 우물 속으로 뛰어들어 칡넝쿨에 매달렸지만 우물의 벽 틈으로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나타나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다.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을 의미한다. 나그네의 운명은......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톨스토이의 인생론이다.”  이렇게 침을 뛰기며 열변을 토하시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 선생님 시간은 딴 생각에 사로잡히고 집중이 안 될 수밖에. ‘우리가 인생을 알게 뭐야, 시험 점수나 잘 받고, 부모님이 용돈이나 좀 많이 주면 그것이 최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당시에는 인생보다 시험 점수가 중요했고, 용돈이 더 궁했으니까.


 그렇게 나에게는 별 영양가 없는, 인생 얘기도 듣고, 진도도 나가고 하는데 그렇게 얼마쯤 지나다 보니 필기도 제대로 안되어 있고 정확히 콕 집어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가 좀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시험시간은 돌아왔다. 그런데 마침 국어 시험 시간에 국어 선생님이 감독으로 들어오셨다.


 다른 문항들은 선다형이라 대충 찍어도 된다. 하지만 주관식(요즘은 서술형)은 답을 쓰지 않으면 꼭 앞니 빠진 것처럼 휑한 것이 엉터리라도 답을 써 넣어야 우선은 마음이 편하다.


 문제는 즐길 락() ‘이 좋아할 ’()로 쓰이는 경우를 쓰란다. 생각날 턱이 있나? 덴장, 인생과 용돈이 오락가락하고, 선생님께서는 언제 또 심각했던 인생이 즐겁게 바뀌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 내 쪽으로 쓱- 와서 빈 답안을 보시더니 힌트를 주기 시작하신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智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


 말씀은 공자님 말씀인데 생각이 나야지......아이들은 답을 가르쳐 준다고 원성이다. 그런데 공부 시간에 선생님 말씀 안 듣고 딴 생각하고, 딴 짓하고 있었던 나는 뭐 마이동풍에 우이독경이다.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 생각을 해 보자......,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그래, 그래, 사람들이 이것도 좋아하기는 하지, 에라 모르겠다. 사람들이 좋아한다잖아.’ 요술(樂術). 딱 이렇게 쓰고 답안을 제출하고 나오다 뒤통수 한 방 얻어맞았다. '아이쿠!' 리고 20세기의 세종대왕으로 등극하는 영예을 안았다나 뭐라나......ㅋㅋㅋ


 나는 아직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읽지 못해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내용이 있는지, 뜻이 그렇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요술(樂術)이 틀렸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ㅋㅋㅋ


 나이 먹어가니 요산요수(樂山樂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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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근무 이상 없었나?

 

 중학교, 쉬는 시간. 별로 특별할 것은 없다. 그냥 선생님이 안 계시니까 왔다 갔다 하고, 시끌시끌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 떨고. 내 바로 앞자리에 앉은 녀석

들은 팔씨름이 한창이다.


 그러더니 어느새 반에는 팔씨름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무슨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내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힘자랑으로 일진을 뽑는 것도 아니었는데이상하게도 대 유행이 되었다. 물론 비슷비슷한 체격의 아이들 끼리 붙는다.


 나는 늦게 많이 자란 편이라 그때는 별로 키가 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작은 축에 들었다. 그리고 힘도 없었다. 그래도 사내고 보니 승부욕은 있어서 친구들과 팔씨름을 하는데 판판이 진다. 말랑말랑한 녀석에게도 삼판양승해서 한 판을 이기면 두 판은 꼭 졌다. 왼손으로 바꿔 해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나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치욕(?)이었다. ‘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설욕을 하고 말 것이다.’ 다짐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운동장에 있는 철봉과 평행봉을 이용하자.’ 그날부터 나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 서너 명과 점심을 먹기가 바쁘게 철봉과 평행봉으로 달려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비오는 날 빼고는, 점심시간에 매일 철봉과 평행봉에 매달렸다. 달리 뭐 기술? 이런 거 필요 없다. 무조건 매달려 당긴다. 그랬더니 시작할 때는 턱걸이 한 개도 못했는데 차츰 끙끙거리며 반 개 2/3 한 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데 이 한 개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 개를 하고 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해 냈다는 성취감과 그 동안 끙끙거리며 몸에 익힌 노하우에 또 근육도 좀 생기고, 그것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니 실력이 일취월장으로 늘어나 한 번 매달리면 열다섯 개는 기본이고 힘을 짜내면 어렵지 않게 삼십 개는 가뿐하게 넘어섰다.


 그렇게 턱걸이를 연마하고 있던 어느 날, 체육 선생님이 다음 주에 턱걸이 시험을 칠 것이니까 연습들을 하란다. 배치기 불인정에 삼십 개가 만점이다. 그런데

턱걸이가 연습한다고 하루아침에 잘 해지나? 나는 느긋했다. 평소 실력이 있으니.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온다더니 드디어 기회가 왔다. 팔씨름보다 더 고급 기량인 턱걸이로 녀석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버려야지.


 드디어 그날, 운명의 시간이 도래했다. 여섯 명씩 그룹을 나누고 두 명씩 세 개조가 되어, 세 명은 턱걸이를 하고 세 명은 의자에 앉아 카운트를 한 다음 다시

역할을 바꾸게 된다.


 선생님은 저쪽 나무 그늘 밑에 앉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시고 친구들은 열심히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는데, 열다섯 개를 넘어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렇지 못하다. 평소에 팔씨름이 강하다고 자랑하던 아이들도 두 개, 세 개를 넘어가면 발발발 떨면서 오만상을 찌푸리고 버둥거리는데 옆에서 보고 있으면 배꼽을 잡는다. ㅍㅎㅎㅎ, ㅋㅋㅋㅋ.


 이제 내 차례다. 그런데 카운트를 할 내 파트너는 평소에도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희망이라며 점심시간에 젓가락질도 직각으로 하는 키가 큰 녀석이었다. 나는 가볍게 철봉에 뛰어 매달려 척척척 턱걸이를 하기 시작했고 속도도 다른 아이들의 두 배 이상이다. 마음속으로 서른을 세고 가뿐하게 철봉에서 내렸다.


 그리고 파트너를 바라보며 서른하고 확인을 하는데, 이 녀석 멍한 눈으로 나를 본다. 그러더니 에이, 아이다.”한다. 이 녀석, 내가 턱걸이 할 때 옆에 친구랑 수다 떤다고 숫자를 아예 세지를 않았던 모양이다. ‘쪼끄만 게 하면 얼마나 하겠?’이랬던 것 같았다. (야이누마, 키 작다고 턱걸이 못하나?)


 ‘아우, 이걸 그냥......’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뒤통수라도 한 방 날리고 싶었지만 나보다 키가 크니 까불면 다치는 수가 있다. 따진다. “, 내 하는 거 안 봤나?” 그 녀석 “......()” “그러면 도대체 내가 몇 개 했단 말이고?” 그 녀석 또

“......()” 하이고 답답해서리, 그러면 내가 다시 할게.


 화가 나서 큰 소리치고 다시 철봉에 매달렸지만 금방 서른 개 하고 다시 또 서른 개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또 척척척척 스물하고나니 슬슬 기별이 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스물둘” “스물하니 머리 속에서 욕이 나오기 시작한다. ‘!@#$%^&*’ 그리고 하는데 이 녀석 인정!”이런다. ‘야이누마, 약 올리나? 내가 니한테 인정받으려고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나이누마!’


 그날의 사건은 그렇게 내가 턱걸이 쉰다섯 개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고 그 녀석과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헤어졌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후 나는 우리 동기들 가운데 스타가 되었다가 예편한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가 그 녀석인지를 확인 할 수가 없었는데,


 만약에 그 녀석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여 장교로 임관했었다면, 요즘 같이 노크 귀순이다, 오리발 귀순이다, 하고 시끄러운 시기에 꼭 해 줄 말이 있다. “이누마, 그런데 너 적진 관찰하기를 친구 턱걸이 보듯 하면 큰 일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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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1-04-19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력장 만점 맞기 참 힘든 종목이죠.

하길태 2021-04-19 22:1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따로 연습을 해야하는 종목이지요? ^^

새파랑 2021-04-19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턱걸이 30개 정말 힘든데 ㅋ 대단하네요~전 10개까지 해본기억이 ㅎㅎ

하길태 2021-04-19 22:12   좋아요 1 | URL
매일 연습에, 체중이 가벼웠을 때 이야기지요.ㅎㅎㅎ

오늘도 맑음 2021-04-2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뉨~ 경상도 사나이 아닙니까~!!!

하길태 2021-04-20 17:59   좋아요 1 | URL
ㅎㅎㅎ 갱상도지요.^^

han22598 2021-04-22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재밌어요 ^^ 그런데 육사 간다고 젓가락도 직각으로 사용한 키큰 친구분이 너무 웃깁니다. ㅋㅋㅋ 육사 입학 시험에 젓가락 사용하는 것도 시험 보나요???? ㅋㅋ

하길태 2021-04-22 06:29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 녀석 영화 보고 따라한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어깨 힘도 엄청 넣고, 각 잡고 다녔어요.ㅋㅋㅋ

숲노래 2021-05-2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무가 눈앞에서 땀을 뻘뻘 내면서 하는데 딴청을 부리면... 참...

하길태 2021-05-29 15:03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런 녀석, 반에 한 두 명은 꼭 있습니다.ㅋㅋㅋ
 

풍치(風齒)


 시름시름 몸살 기운이 있다. 약을 먹는데도 보통의 경우와는 달리 쉽게 차도가 없더니 잇몸이 붓고 치아가 들떠 음식물을 제대로 씹을 수가 없고 슬슬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풍치가 온 모양이다.


 몸살로 인해서 풍치가 왔는지, 아니면 풍치가 오려고 몸살 기운이 있었든지,

무튼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나를 괴롭힌 것은 풍치였다.


 이전에도 비슷한 몸살의 경우가 있었는데 잘 참아 넘긴 적이 있다. 신호가 오기 시작할 때 즉시 치과에 갔으면 되었을 것을, 처음에는 몰랐고, 조금 심해지니까 만신이 아프고 귀찮아서 진통제만 먹고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 생활의 리듬도 깨

어지고 집중력이 흐트러져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실은 좀 미련하기도 했고 치과에 가기 싫은 것도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 어릴 때의 치과 치료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고 또 종사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과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도 다 내가 겪은 직접경험 때문이다.


 어느 일요일 날, 소파에서 뛰어놀던 세 살 난 손녀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정통으로 앞니가 바닥에 부딪쳤다. 울고불고 난리는 고사하고 엄청나게 흐르는 피에 앞니 두 개가 거의 빠질 정도로 흔들렸다. 피를 닦아주고 아이를 진정시켰지만 어떡허나? 일요일에 문을 여는 치과가 없는데.


 하는 수 없이 안으로 굽어 있는 이를 똑 바르게 펴고 얼음찜질을 하고 하며 부산을 떨다가 다음날 보니, 흔들림도 많이 나아지고 상당히 안정된 듯 했다. 어린이 치과에 데리고 갔더니 가만두면 큰 탈이 난다고 겁을 주면서 앞니 두 개를 뽑고 새로 해 넣어야 한단다.


 저 어린 것에게 간니도 아니고 젖니를 해 넣는다? 썩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할 환자가 어디 있나? 1주일 뒤로 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그 후는 매일매일 손녀의 치아에 관심을 집중시키게 되었는데, 이삼일 쯤 지나니 거짓말처럼 손녀의 치아가 정상화 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예약은 노쇼(No-Show). 좀 괘심하기도 했다. 이렇게 멀쩡해지는 치아를 뽑고 다시 하자니? 그 후로도 손녀의 치아는 큰 탈은커녕 앞니 빠진 개오지가 될 때까지 아무 일 없이 제 기능을 발휘했다.


 나의 직접 경험도 몇 건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아무튼 이렇게 근거 있는 불신은 그 뿌리가 상당히 깊었다각설하고.


 그래도 이러한 불신의 대가는 당연히 나의 몫이다. 안 먹을 수 없으니 밥상 앞에 앉는 것이 제일 고역이다. 이가 흔들리니 제대로 씹을 수가 없어 우물우물 삼킨다. 할매가 그런다 우리집에서 이를 제일 열심히 닦는 사람이 와 그라노?” “글쎄 말이다.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가 보다.” 하는데,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생전에 말씀이 없으신 분인데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야야, 이가 빠졌다.”하신다. 아들 녀석이 덧붙인다. “할아버지 이빨 빠졌는데 어금니란다.” “야이 녀석아 할아버지 이빨이 뭐고? ‘’, ‘치아라고 해야지하고 나무랐지만 정작 아버지의 빠진 치아에 대해서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사진 같은 곳에서 이 빠진 노인들 많이 보아왔는데 나이 먹으면 이가 빠지는 게 정상 아닌가? 아버님 연세가 그렇게 된 모양이다.’하고 가볍게 한 귀로 흘려들었다. 너무도 무심했었다. 이가 흔들려 기능을 못하니 이렇게 불편한 걸 그때는 몰랐었다. 아∼! 이 불효막심한......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모시고 살면서도 잘 해 드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살아생전에 잘 모셨어야 하는데......’ 회한이 밀려온다. ‘흑흑흑 ㅠㅠ 아버지 불효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왜 항상 고통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지? 할매 몰래 운다.


 그리고 다짐한다. 죽으면 아버지 곁으로 가서 언제까지나 모시고 실컷 효도할

것이라고. 고통은 또 다시 귀한 깨달음을 나에게 주었다.(그런데 사실 늙으면 눈물이 메말라져서 감정은 북받치는데 눈물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속으로 우니 할매는 모를 것이다.)


오늘의 교훈. 첫째, 이가 아프면 즉시 치과에 가자. 둘째,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도하자.


(ㅋㅋㅋ 그래도 오래 살겠다고 더 열심히 양치질하고, 내가 만든, 열매로 우려낸 전래 비법으로 가글도 하고, 치과도 다닌다. 임플란트, 비싸고 오래 걸린단다.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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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2 15: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빨은 아플때 빨리 가는게 좋은 거 같더라구요. 늦을수록 더 비싸지는 ㅎㅎ (전 다른병원은 가기 싫던데 치과가는 건 거부감이 없는 ㅋ)
풍치 치료 잘 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교훈 명심^^

하길태 2021-04-12 21:35   좋아요 2 | URL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치과는 대부분이 장사속이 너무 심해서 그게 참 싫더라구요.^^

행복한책읽기 2021-04-12 2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하셨네요. 이는 아프다 싶음 언능언능 치료해야 돈도 적게 들고 통증도 덜더라구요. 아, 아버지 하며 읽다 눈물 안나는 속울음 울었다는 대목서 풋. 웃고 말았어요. 길태님 은근 웃기셔요. 마지막 교훈은 지두 명심!!^^

하길태 2021-04-13 06:57   좋아요 0 | URL
너무 심각하게 사는 것도 정신 건강에는 별로인 것 같아요. 적당히 즐겁게 생각하고 사는게 제일 좋더라구요.^^

mini74 2021-04-13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ㅠㅠ 치과. 제일 가기 싫은 곳 중 하나죠. 오늘의 교훈 저도 가슴에 새겨봅니다.

하길태 2021-04-13 16:08   좋아요 0 | URL
오늘의 교훈을 일찍 체득하지 못했던 저는 갈수록 더 많은 후회와 반성의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ㅠㅠ

han22598 2021-04-15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으면서 눈물이 ㅠ 어른들에게는 이빨이라고 하면 안되는 것도 배우고 갑니다. 이런 글 많이 써주세요.

하길태 2021-04-15 06:4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라더니, 부모님 생각만하면, 잘 모시지 못한 회한으로 가슴 한 복판이 저려 옵니다.ㅠㅠ
 

해탈(解脫)을 미루다

 

 풍치로 힘든 겨울을 보내고 이제 제법 다리에 근력도 붙은 듯하다. 오전 운동을 산으로 향한다. 이제껏 다녔던 시민공원 길과는 반대쪽 길로 나서는데, 아파트 화단을 돌아 산으로 접어드는 길이 온통 화란춘성(花爛春城)에 만화방창(萬化方暢).


 자연이란 참, 며칠 전에는 살인적인 황사와 미세먼지로 뒷산의 형태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지옥을 선 보이더니 오늘은 또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덩달아 봄의 정취를 흠뻑 만끽한다.


 가을이 우리에게 결실과 풍요와 쓸쓸함을 준다면 봄은 시작과 희망과 따스함을

선사하는 것 같다. 이 또한 살아있음을 느끼는 행복이다.


 벌써 지난 이야기지만, 마치 오래 묵혔던 책상 서랍을 정리하듯, 차곡차곡 쌓였던 마음 속의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버리고, 단출해지니, 마음도 가벼워지고 비운만큼 여유로움과 감사하는 마음과 행복감이 채워지는 듯하다.


 이러다 해탈을 하고 도통(道通)하여 승천(昇天)하는 것은 아닌지?ㅋㅋㅋ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가 즐겁지 않겠는가? 10년을 넘게 매일 가던 산인데도 아직도 새로운 것들이 많다. 낯익은 얼굴들도 보이지만 또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화초와 나무와 풍경들, 미처 못 보았던 길들...... 꿈쩍 않고 버티고 있는 산이지만 그 속에 정중동(靜中動)이 있었다.


 숲길을 돌아 훌훌 마음을 털고 내려와 신발과 바짓가랑이의 흙먼지도 털어낸다마지막으로 들르는 근력운동 기구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고장도 잦은데, 어라! 웬 두 아저씨 기구에 매달려 용을 쓰고 있는데 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한 사람은 앉아서 당기는 역기 내리기 기구를 아래로 끌어내려 무리한 힘으로 내리 누르며 푸시업을 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앉아서 하는 가슴 운동 기구를 이상한 자세로 서서 무리하게 내리 누르며 당기고 있다.


 원래가 정상적인 방법을 염두에 두고 역학적으로 설계된 기구라 저렇게 무리한 힘을 가하면 백발백중 고장이다. 자기 것이 아니라고 그러는지 슬며시 화가 난다. 젊었을 때 같으면 한 소리 하겠는데, 한 참 운동 중에 자꾸 비켜달라는 이상한 사람과 싸울 뻔한 경험도 있고, 더욱이 나이 먹어 가니 쫄보가 돼서 참는다.


 보면서 차례를 기다리자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 에이, 이럴 때는 안 보는 것이 약이다. 작전 상 후퇴를 하고 집으로 내려오는데, 속으로 투덜거리며 중얼거려도 영 ∼ 기분이 개운치 않다. 좀처럼 욕을 않는 성격이지만 아무래도 해탈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욕이라도 좀 해야겠다.


 “야이 양반들아! 그래 그걸 그렇게 하면 고장이 안 나나? 이뷁!@#$%^&*. 그기 니꺼 같으면 그렇게 하겠나? 이 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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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1-04-05 16: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해탈하셔서 승천하는 것 미뤄주셔서 다행!이네요.
저도 지난 4년 간 TV News (Mr. Former President) 볼 때마다
어찌나 저절로 욕이 나오던지 저의 욕쟁이로서의 숨은 본능과 재능을 발견했답니다.
맘껏 욕이라도 하는게 정말 확실한 Catharsis 되긴 하니까요.

하길태 2021-04-05 21:15   좋아요 2 | URL
ㅎㅎㅎ 욕쟁이 아줌마 ㅋㅋㅋ
우리 동네에도 TV에 나오는 그런 사람 있어요 ㅋㅋㅋ

붕붕툐툐 2021-04-06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도 하루 하루 해탈을 미루고 있는지라 공감이 됩니다!ㅎㅎ

하길태 2021-04-06 07:0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 질긴, 속세의 일에 연연함이 항상 문제가 되겠지요.^^
 


세근이 때문에 세근 들다

 

 경상도 사투리에 '세근'이란 말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철들다, 의젓하다, 분별력있는등의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이 끝 자인 자는 사람 이름에도 많이 쓰인다. 갑근이, 을근이...... 등등으로.


 국민학교 고학년 때였다. 우리집 골목 옆에 골목에 장세근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사람이 아니라 우리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되기 전까지 그는 그냥 우리 동네 청년이었고, 수다 떨기 좋아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은 세근아, 니 언제 세근 들래?” “세근이 뭐꼬, 세근이, 남자가 열 근은 돼야지” “니는 장(항상) 세근이라서 열 근은 못 채우겠제?”하고 놀리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우리도 그냥 우리끼리는 동네에서 세근이, 세근이하고 불렀다.


 그런데 이 장세근 선생님은 우리보다 나이가 열다섯은 더 먹었고 매부리코에 찢어진 눈, 꼬리가 처진 팔자 눈썹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면 좀 무섭게 생겼고 실제로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은 그를 무서워했다.


 그런 세근이 선생님이 장가를 간다는 소문이 들리던 어느 일요일, 우리반 아이들과 조기 청소를 마치고 아침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쪽 삼거리 길에서 멋진 코트를 쫙 빼입은 세근이 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일직을 하러 학교로 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끼리 아주 작은 소리로 , 저기 세근이 간다. 세근이 간다.”하고 속삭이다가 내가  세근아어디 가노하고 희희덕거렸다.


 그런데 저쪽에서 길을 가던 선생님이 멈칫멈칫 하더니 딱 뒤돌아서서 우리들을 부르신다. “, 너희들 이리 와 봐라.” 친구가 그런다. “, 니 목소리 들은 것 아이가?” “에이, 설마.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고는 주춤주춤 선생님 앞으로 갔다.


 선생님은 특유의 그 무서운, 찢어진 눈으로 우리들을 내려다보시며 조금 전에 내 이름 부른 애 나와.”하신다. 딱 걸렸다.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리 속에서 풀 스피드로 난무한다. ‘아이쿠, 죽었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그렇게 귀가 밝을 줄이야.’ 하지만 나는 어린 마음에도, 나 때문에 친구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장렬하게 전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쓱- 나서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제가 했습니다.”했다. 그랬는데 세근이 선생님, 옆 골목에 사는 나를 알아 볼만도 했을 텐데, 아니면 정말 몰랐을까? 안면 몰수다. “따라와!”하신다.


 그래서 그날 아침에만 두 번째로 학교에 등교했다. 교무실에서 실컷 벌 받고, 다음날 우리 담임 선생님께 고자질해서 불려가서 또 꾸중 듣고또 사과하고, 암튼 악몽 같은 이틀이었다.


 다행히 부모님께는 꼬지르지 않았는데 그 사건으로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세근이가 듣는다, 그래서 이후로 나는 세근이 들었다. 절대로 남의 뒷담화를 안 한다. 큰소리로는,ㅋㅋㅋ


세근이 선생님 그때는 미안했심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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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3-31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들 친구 이름이 세근인데...!
재미있네요~^^

하길태 2021-03-31 21:15   좋아요 2 | URL
나증에 선생님이 될려나? 성이 장씨는 아니겠죠?ㅋㅋㅋ

jenny 2021-03-31 1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근이라는 사투리 처음 알았는데, 세근이 때문에 세근들다 ㅎㅎ 재미있고 따뜻하네요

하길태 2021-03-31 21:17   좋아요 2 | URL
어른들은 아예 대놓고 ‘시근‘이라고도 한답니다.ㅎㅎㅎ

mini74 2021-03-31 18: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근이가 아니라 열근쯤 됐음, 아님 새근이가 세근들었으면, 허허 웃으며 너그럽게 봐주시지 않았을까요 ㅎㅎ

하길태 2021-03-31 21:20   좋아요 3 | URL
제 어린 시절의 가장 치욕적인 사건 중의 하나였습니다.ㅎㅎ

붕붕툐툐 2021-03-31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안 듣는 데서 그런걸 가지고 너무 하시네~ 걍 모른 척 해주시지~ 귀들은 어찌나 밝으신지~ 저도 누구 얘기하면 그분이 다 듣고 있어서 정말 웬만하면 남의 얘기는 안해요!ㅎㅎ

하길태 2021-04-01 07:2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절대 큰 소리로 하면 안돼요.ㅋㅋㅋ

han22598 2021-04-01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근들다가 그런 뜻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ㅎㅎ 세근 선생님 이야기 재밌어요 ^^

하길태 2021-04-01 07:2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세근이 덜 들었을 때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