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은 쏟아지고
시드니 셀던 지음, 정영목 옮김 / 김영사 / 199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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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은 쏟아지고

(The Stars Shine Down)

                                                                                        시드니 셀던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를 여의고 무능한 아버지 밑에서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뛰어난 미모의 여인으로 성숙한 주인공 라라. 하숙인들을 관리하면서 얻게된 부동산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고향과 시카고의 성공을 거쳐 뉴욕으로 진출하게 된다.

 

 부동산에서의 규칙은 O.P.M(Other People’s Money)이라는 것, 부동산에서 가장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첫째도 위치, 둘째도 위치, 셋째도 위치라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부동산 호경기를 타고 담보와 빚을 갚고 또 빚을 내는 법과 은행 대부를 적절히 이용하여 남자들의 전유물인 부동산 건설 시장에 뛰어들어 세계적인 부동산 회사인 캐머론 앤터프라이즈를 구축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세계 최고의 마천루 건설에 도전하게 된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에는, 성취의 과정에서 경쟁자들과 피고용인들에게 상처를 준 적도 없지 않았고, 갑작스레 찾아온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의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이제껏 사업에 이용했던 마피아 세력과 이별도 하게 된다. 이런 악재들이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따른 자금 압박 및 부동산 경기침체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라라는 마침내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라라는 이를 운명으로 받아 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고, 40이란 나이는 좌절하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매 작품마다 여자 주인공을 등장시켜 그녀들의 애증과 야망을 한 편의 영화같이 풀어나가는 마술을 시전하고 있었던 작가가 이 작품에서는 세계 최고를 꿈꾼 철의 여인을 등장시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후반부의 남편의 상해와 관련한 반전은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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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은 쏟아지고
시드니 셀던 지음, 정영목 옮김 / 김영사 / 199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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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은 쏟아지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뛰어난 미모의 여인이 남자들의 전유물인 부동산 건설 시장에 뛰어들어 명성을 누리다 침몰하는 과정들 속에 여자로서, 기업의 CEO로서 겪어야 하는 애증과 갈등을 한편의 영화처럼 묘사하고 있다. 후반의 반전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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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열국지 10
김구용 옮김 / 민음사 / 199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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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周 列國志

                                                                   

[ 10 ]

진시황, 천하를 하나로

  조나라 군사 40여만 명이 학살당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조나라는 온통 울음바다로 변했다. 조효성왕은 지난날 조괄의 어머니가 남편의 말에 따라 자기 자식을 장수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리던 일이 생각나 그녀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많은 비

단과 곡식을 주어 위로했다.

 

  세객 소대가 범저를 만나 백기를 견제하게 만들었고 진소양왕은 백기와 군사들을 소환하였다. 이후 범저는 칭병하고 전장에 나가지 않는 백기를 국외로 추방하였고 가는 도중 진왕이 칼을 전해 자결하게 하였다.

 

  진소양왕은 기필코 조나라를 무찌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조나라를 압박하고 있었고 조나라는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주변 나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외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때 조나라의 상인 여불위는 장차 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람에게 투자하기로 결심하고 조나라에 볼모로 와 있던 진나라 왕손 이인에게 접근하여 친분을 쌓은 다음 임신한 애첩 조희를 그와 결혼시켰다. 그 후 조희는 아

들을 낳았고 이름을 조정이라 지었다.

 

  여불위는 천금의 재산을 이용하여 이인을, 자식이 없는 진나라 세자 안국군의 정실 화양부인의 적장자가 되게 만들었고 이인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조나라를 탈출하였다. 범저는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하여 진소양왕에게 주나라를 쳐 없애고 제왕이 되기를 권한다. 결국 서주는 함락되고 주난왕은 진나라로 잡혀갔다. 주난왕은 목숨은 부지했으나 천자의 왕호를 삭탈당하고 한낱 진나라의 벼슬아치로 전락했.

 

  진소양왕은 주나라에 있던 구정(九鼎)을 진나라로 운반하게 하였다. 구정을 실은 배가 사수의 중류쯤 갔을 때 솥 하나가 저절로 강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이 물 속에 들어가 그것을 찾으려 하자 갑자기 청룡 한 마리가 나타나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바람에 솥을 건지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주나라의 종묘를 헐었던 장군 영규도 꿈 속에 나타난 주무왕에게 곤장 3백 대를 맞고 등창이 생기더니 한 달 후 등창이 터져 죽었다.

 

  진소양왕이 세상을 떠나고 세자 안국군이 등극하였다. 그가 진효문왕이었다. 그런데 그는 부왕의 장례를 마친 사흘 만에 갑자기 죽었고 자초로 이름을 바꾼 이인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불위가 진효문왕을 독살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진장양왕이 왕위에 오르자 화양부인은 태후가 되었고 여불위의 애첩이었던 조희는 왕후가 되었으며 조정이 진나라 세자가 되었다. 그는 어머니 성을 버리고 그저 세자 정이라고 불렸다.

 

 채택이 즉시 승상의 인을 내어 놓았고 여불위가 승상이 되었다. 진장양왕은 여불위를 대장으로 삼아 동주를 공격하여 동주 일곱 고을을 모조리 점령하였다. 이로서 주나라는 38873년 만에 진나라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진장양왕은 신릉군을 없애려고 그를 초청하지만 그는 초대에 응하지 않았고 대신 사신으로 간 주해가 억류당했다가 자살하였다. 이후 진장양왕은 신릉군이 왕위를 노린다는 모함으로 위안리왕과의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질하였고 신릉군은 결국 벼

슬과 권세를 버리고 주색에 빠졌다.

 

  진장양왕이 왕위에 있은 지 3년 만에 병이 났다. 그러자 왕후와 여불위가 옛정이 되살아나서 교정하기 시작했다. 진장양왕은 여불위가 바치는 약을 먹은 지 불과 한 달 만에 죽고 말았다. 세자 정이 왕위에 올랐다 그가 진왕 정이었다. 이때 진왕의 나이 열세 살이었다 그래서 여불위가 나라 일을 도맡아 처리했고 옛 강태공과 견줄 만하다고 상보라 칭했다.

 

  진왕 정이 등극하고 3년째 되던 해부터 천하는 다시 전란에 빠졌다. 한편, 여불위는 조나라와의 전투에 진왕 정의 아우인 장안군 성교를 참전시켰고 성교는 장수 번어기의 충동질에 반란을 일으키는데 동의하게 되었다. 반란은 실패하였고 번어기는 달아나고 말았다. 진왕 정은 왕태후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성교를 참하게 했.

 

  이때 진왕 정은 이미 장성하여 키가 85촌이었고 워낙 영특하고 위대했으며 총명하고 탁월했다. 그는 모든 일을 오로지 자기 주장대로 했다. 어머니 왕태후와 여불위도 그 앞에선 꼼짝하지 못했다.

 

  왕태후의 궁실에 드나들면서 교정을 해 오던 여불위는 왕태후의 끊임없는 음탕한 욕심에 겁이 나서 양물이 크기로 소문난 노애를 내시로 가장하여 왕태후에게 보냈다. 노애를 침실로 불러들여 시험해 본 왕태후는 너무나 만족하여 밤만 되면 노애

와 쾌락을 즐겼다. 그러다가 덜컥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자 왕태후는 병이 났다고 핑계하고 함양성을 떠나 옹주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하여 그곳에 산 지 2년 동안 노애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았고 그들을 밀실에 감춰두고 길렀다. 그런데 하늘에 제사를 지내려 가서 옹주성에 머물던 진왕 정이 이 사실을 알았고, 본색이 탄로 난 노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그를 붙잡아 모든 사실을 실토하게 했다. 노애의 두 아들은 포대에 넣어져 진왕 정이 직접 쳐 죽였고 노애는 차열형을 받았다. 왕태후는 아주 작은 역양궁으로 옮겨져 엄중히 감시하게 했다.

 

  이후 진왕 정은 왕태후의 처우에 관해 간하는 신하 27명을 죽였고 28번째 죽음을 무릅쓰고 간한 모초에게 설복되어 왕태후와의 관계를 복원하였다. 하지만 여불위에게는 진나라 도읍을 떠나 시골 하남 땅에서 일생을 마치라는 서신을 보냈다.

이에 여불위는 독주를 마시고 자진하였다.

 

  진왕 정은 이사를 데려와 객경 벼슬을 주었고 또 한나라의 한비가 쓴 책(오늘날 전하는 한비자’ 20)을 읽고 그를 등용하려고 이사와 상의했다. 원래 한비와 이사는 순경 밑에서 함께 수학한 동문이었는데 한비의 탁월함을 질투, 시기한 이사가 진왕 정에게 한비를 죽이라고 간한다. 이에 진왕 정이 한비를 감금하자 한비는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하였다.

 

  이사는 진왕 정에게 병법에 달통한 위요를 천거하였고 진왕 정은 그를 태위 벼슬을 주고 병권을 일임했다. 이후 진왕 정은 부고의 황금을 풀어 모든 나라로 침투해 들어가서 그 나라의 유력한 대신들을 매수하도록 했다. 이렇게 사전 작업을 착착 진행한 진왕 정은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시작하였고 출중한 장군 왕전은 그 위명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럴 즈음, 연나라 태자 단은 형가를 시켜 진왕 정을 암살할 계획을 하고 연나라에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번어기의 수급과 연나라 독항 땅 지도를 가지고 진왕 정을 만나 거사를 하게 하였다. 그러나 암살은 실패하였다. 형가는 진왕 정의 칼날 아래 쓰러졌고 진나라 신하들의 몽둥이찜질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진나라는 드디어 연, , , , , 조 육국을 쓰러뜨리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바로 진왕 정 26년이었다. 진왕 정은 황제란 칭호를 썼고 자신이 시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화씨의 옥으로 국새를 만들었다. 이후 진시황제는 천하의 모든 무기를 함양성으로 거두어 녹여 버렸고 아방궁을 지었으며 분서갱유를 일으켰고 만리장성을 쌓는 등  폭군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였다.

 

  그러나 천하를 통일한 후로 영원히 세상을 다스릴 줄 알았던 진나라는 불과 진시황의 손자 자영의 대에 이르러 망하고 말았다. 힘은 이긴다. 그러나 자고로 오래간 예가 없다. 힘보다 강한 것은 덕이다. 열국이 망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덕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열국의 시대는 끝났다.

 

  염선이 열국지를 다 읽고 나서 그 소감을 읊은 구절 중의 하나다. “모든 원인은 당시에 어진 신하를 등용했느냐, 아니면 간신을 등용했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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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20-02-2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국지 열심히 읽으세네요...응원합니다 ~~^^

하길태 2020-02-23 06:52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초록별님!
대하소설을 많이 좋아해서요~~ㅎㅎ 좋은 날들 보내십시오~~
 
동주 열국지 10
김구용 옮김 / 민음사 / 199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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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열국지 제10권] 천하는 최강의 진나라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들이 연합하고 배신하면서 투쟁하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드디어 진왕 정이 등극하여 무력에 의한 천하 통일을 달성하였으나 진나라 역시 멸망하고 열국의 시대는 끝을 맺었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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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열국지 9
김구용 옮김 / 민음사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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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周 列國志

                                                                   

[ 9 ]

합종연횡(合從連衡)

  귀곡 선생 문하에 있던 소진과 장의도 벼슬 욕심에 산에서 내려왔다. 소진은 한, , , , , 조 등 여섯 나라를 설득하여 동맹을 맺게 했고 그는 그 육국의 정승이 되었다이후 진나라는 6국의 동맹을 깨기 위해 여러 나라들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장의가 이를 만류했다소진이 죽고 나자 장의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였고 진나라로 돌아가 정승이 되어 부귀를 누렸다.

 

  한편, 연나라 정승 자지(子之)는 키가 8척에 나는 새도 능히 잡고, 달리는 말도 붙드는 장사였다. 그런데 연왕 쾌가 주색을 좋아하고 나라일에는 몹시 게을러 조회에도 나오지 않자 측근들을 이용하여 왕을 구슬려 연나라를 양도받았다반란 소식을 들은 제민왕이 연나라로 쳐들어갔다. 연왕 쾌는 목을 매고 자살했으며 자지는 사로잡혀 능지처참을 당했다. 이후 제나라는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장의는 지난날 소진이 이루어 놓았던 육국의 합종을 일일이 분리 시켰으며 새로 등극한 진무왕이 장의를 미워하고 자신을 시기하는 신하들이 많음을 알고는 위나라로 피해 갔다가 그곳에서 병이 나서 죽었다.

 

 진무왕은 한나라를 치러 갔다가 크게 이기고 돌아오면서 주나라의 구정(九鼎)을 보고 힘자랑을 하다가 솥에 오른 발이 깔려 잘렸고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새로 등극한 진소양왕은 초회왕을 납치하다시피 하여 진나라 함양으로 끌고 가서 검중 땅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이에 초나라는 왕을 바꿔버리고 진나라의 요구를 거부하여 진나라가 초나라의 땅을 한 조각도 얻지 못하게 되자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침범하여 성 열다섯 곳을 빼앗았고 초회왕은 조나라로 달아났다.

 

  이때 조나라의 조무령왕은 진나라를 집어 삼키기로 작정하였다. 그래서 세자 하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전해 받은 세자는 조혜왕이 되었고 조부령왕은 스스로 주부(主父)라고 칭했다주부의 큰아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고 큰아들을 숨겨주었던 주부는 궁문이 폐쇄되어 굶어 죽었다.

 

 진소양왕은 제나라의 맹상군을 초청하여 진나라의 승상으로 삼으려 했으나 현 승상 저이질이 반대하자 맹상군을 죽일 마음을 품는다. 이에 맹상군은 진소양왕에게 바쳤던 백호구를 훔쳐 다시 진소양왕의 애첩 연희에게 바치고 목숨을 구해 탈출에

성공하였다.

 

  진소양왕은 맹상군을 없애버릴 계책으로 맹상군이 왕위를 노린다는 요언을 퍼뜨리게 했다. 마침내 제민왕이 유언비어와 요언을 믿고 맹상군으로부터 정승의 인을 거두고 설읍으로 그를 추방했다.

 

  송강왕은 태어나면서부터 용모가 특출했는데 장성하자 키가 94촌이나 되었고 힘이 장사였다. 그는 10만 대군을 양성하여 제, , 위나라의 성들을 빼앗고 등나라를 무찔러 아주 없애버리는 등 활약이 눈부셨다. 그러나 그는 여염의 여자까지 넘보다 그들 부부를 죽이기까지 하였으며 곁에 활을 놓아두고 그에게 간하는 신하가 있으면 활로 쏘아 죽일 만큼 포악한 폭군이었다.

 

  이에 제, , 위나라가 송나라를 치기로 하였다. 제나라의 유인 작전에 휘말린 송나라는 여지없이 패퇴하였다. 송강왕은 뛰어내린 물 속에서 건져내져 갖은 수모를 받고 살해되었다. 세 나라가 송나라의 땅을 나눠 갖고 돌아가자 제민왕은 그 뒤를 쫓아 초나라와 위나라를 크게 무찔러 넓은 땅을 독차지하였다. 배신당한 위, 초나라는 제나라에 대해 이를 갈았다.

 

 제민왕은 맹상군이 위나라로 가버린 후 더욱 교만하고 거칠어져서 자기가 천자가 되려고 궁리했다. 그러자 제나라에 여러 가지 괴상한 일들이 나타났고 명신(名臣)들은 칭병하고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 은거했다. 연나라 연소왕은 지난날 제나라에 압제 받았던 일을 잊을 수가 없어서 보복할 일만 궁리하면서 군사들을 키우고 있었다.

 

  드디어 연소왕은 진, , , 한 네 나라와 연합하고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아 제나라를 침공했다. 결국 제민왕은 크게 패하여 임치성으로 달아나고 연합군들은 점령지를 마음껏 노략질했다그 동안 악의는 제나라 고을 70여 성을 함몰하고 그 땅을 모두 연나라에 편입시켰다. 요치는 연나라의 군세가 만만치 않은 것을 보고 악의와 협력하기로 하고 제민왕을 죽여 버렸지만 그 역시 분노한 백성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제나라 장수 전단은 연나라 군사들을 방심하게 해 놓고 꼬리에 불 붙인 소를 앞세워 연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기겁이 죽고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연나라에 함몰되었던 제나라 70여 성이 모두 해방되었다.

 

  진소양왕은 화씨의 옥이 탐나서 조혜문왕에게 유양 땅 열여섯 성과 옥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진나라를 신뢰할 수 없었지만 인상여가 옥을 가지고 진나라로 향했다. 하지만 결국 진나라는 땅을 주지 않아 옥을 얻지 못했다.

 

  진소양왕이 다시 조혜문왕에게 회견을 요청하여 만났지만 조왕을 누르려는 진왕에 대해 인상여의 적절한 맞대응으로 두 나라는 우호 관계를 맺고 헤어졌다. 왕은 인상여에게 최고 벼슬인 상상을 제수했다. 그러자 정승 염파가 불만을 품었으나 나라를 위한 인상여의 생각에 감복하여 두 사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변하지 않을 생사를 함께하는 벗이 되기로 하였다.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문경지교(刎頸之交)란 바로 인상여와 염파의 우정에서 비롯된 말이다.

 

  진나라는 초나라를 치고, 위나라를 치고, 한나라를 침범하였다. 조나라 군사들은 진군을 크게 무찔러 한나라를 도왔다. 제나라가 연나라를 물리치자 난처한 상황에 빠진 위나라는 지난날 연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쳤던 일을 사과하러 수가와 범저를 사절로 보냈다. 제양왕의 추궁에 도도하게 대응한 범저를 보고 욕심이 난 제양왕이 그에게 벼슬을 주어 제나라로 모시려했다.

 

  그런데 수가가 이를 의심하여 정승 위제에게 고자질을 했고 위제는 범저에게 곤장질을 하여 죽었다고 내다버렸다. 그런데 범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변성명하여 이름을 장녹이라 했다. 장녹은 진나라 사신 왕계를 따라 진나라로 갔다. 그리고 진소양왕을 만나 구세력들을 몰아내게 하였고 자신은 승상이 되어 응후라는 작호를 받았다.

 

  위나라에서 사신으로 수가가 왔다. 장녹은 자신이 범저임을 밝히고 수가에게 복수를 하려 했으나 하도 비는 꼴이 불쌍해서 살려주었고 자신이 범저임을 진소양왕에게도 실토하였다. 범저는 수가에게 정승 위제의 목을 끊어서 진나라로 보내라 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이 소문을 들은 위제는 그날 밤으로 정승의 인을 버리고 조나라 평원군에게로 가서 숨었다.

 

  진소양왕은 구원(舊怨)도 갚고 승상 범저의 원수도 갚기 위하여 20만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평원군은 끝까지 잡아떼며 위제를 내놓지 않았다. 귀국한 조소양왕은 평원군을 진나라로 초청하고 그 틈을 이용하여 조효성왕에게 위제의 목을 요구했다. 위제는 도망쳐 위나라로 갔다. 하지만 신릉군에게 환대

받지 못하자 칼로 목을 찔러 자살하였다.

 

  조효성왕은 위안리왕으로부터 위제의 목을 받아 진소양왕에게 보냈고 조왕은 이를 범저에게 내주었다. 범저는 위제의 목에서 살과 가죽을 벗겨내고 해골에 옻칠을 하여 요강으로 사용했다. 옛날 범저를 죽도록 매질하여 빈객들에게 오줌을 누게 했던 원수에 대한 복수를 단단히 한 셈이었다.

 

  진소양왕은 범저의 계책인 원교근공(遠交近攻)에 따라 제, 초와 우호를 맺고 한나라로 쳐들어갔고 한나라는 조나라를 싸움에 끌어들이기 위해 상당 일대의 성 열일곱 곳을 조나라에 바쳤다. 조효성왕은 평양군 조표의 말을 듣지 않고 평원군을

보내 그 성들을 접수하였다.

 

  진나라 장수 왕흘과 조나라 장수 염파 간의 대치가 오래되자 범저는 반간계(反間計)를 써서 염파 대신 조괄을 상장군으로 삼게 하였고 조나라는 백기를 상장군으로 삼게 했다. 조괄은 대패하여 전사했고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여만 명은 모조리 살해당했으며 돌아간 군사는 불과 240명이었다고 한다.

 

  무안군 백기는 군사를 시켜 조나라 포로의 두골만 거두어 영루 앞에 쌓게 했는데 그것이 산을 이루었고 그 산을 두로산(頭顱山)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그 위에 으

리으리한 대()를 세워 자신의 이름을 따서 백기대라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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